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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어딘가의 요리, 스몰디쉬빅쇼

안녕, 에디터B다.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음식이 맛있는 곳이다. 음식에 특별한 한끗이 있는지, 개성이 없어도 완성도가 높은지를 따진다....
안녕, 에디터B다.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음식이 맛있는 곳이다. 음식에…

2022. 04. 11

안녕, 에디터B다.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음식이 맛있는 곳이다. 음식에 특별한 한끗이 있는지, 개성이 없어도 완성도가 높은지를 따진다. 음식이 맛있다면 그다음에 분위기를 본다. 인테리어, 음악,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같은 것들 말이다. 단순히 외관이 힙하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는다. 한 끼 식사를 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이유가 있는 멋부림이어야 한다.

추격전 중에도 밥을 챙겨 먹는 박명수처럼 아무리 바빠도 맛있는 한 끼는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맛없는 음식 때문에 시간과 돈을 버린다. 망쳐버린 식사를 복구할 방법은 없고, 그날의 기분마저 다운시킨다. 내가 유난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디에디트 독자들이라면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음식점을 소개할 땐 더 까다롭게 마음을 무장한다. 자, 그럼 오늘의 식당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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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에 있는 스몰디쉬빅쇼에 다녀왔다. 이곳은 홍콩 음식을 베이스로 한 아시안 퓨전 식당이다. 메뉴 하나하나를 보면 중식 같지만 전통 중식과 다르다. 딸기탕수육, 핫치킨 바오, 참깨 멘보샤 등 퓨전 메뉴를 판다. 스몰디쉬빅쇼는 도산분식, 아우어베이커리, 나이스웨더로 유명한 CNP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2021년 2월에 정식 오픈했다. 참고로 오늘의 음식 탐방은 디에디트에서 향수 리뷰를 써주시는 전아론 에디터와 함께 다녀왔다. 아로라는 향수 브랜드를 운영할 정도로 예민한 후각을 가졌고, 수많은 맛집 탐방으로 발달한 미각을 가진 분이다. 나와 전아론 에디터 둘 다 음식엔 진심인 건 같지만, 입맛은 다르니 거기서 오는 차이를 종합적으로 참고하면 도움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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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기 전에 어떤 메뉴를 먹을지 이미 다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니 생소한 메뉴가 많이 보였다. 최근에 리뉴얼한 모양이다. 원래 먹으려고 했던 새우차오미엔과 마라 아부라소바가 보이지 않아서 대신 홍콩식 소고기 볶음, 풀드포크 바오, 핫치킨 바오를 주문했다. 스몰디쉬빅쇼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어향가지는 봄 개편에도 살아남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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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고 공간을 살짝 둘러봤다. 보통 홍콩과 관련한 음식을 팔면 쇠창살이나 형형색색의 화려한 조명을 인테리어에 ‘적극’ 활용하는데, 그런 게 없어서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 (빨강, 초록 조명과 쇠창살 이제 좀 지겹다) 그리고 WWE의 레전드 레슬링 선수 빅쇼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여기저기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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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에는 성냥개비, 술잔, 마작 키링, 스티커도 있었다. 내 기억에 빅쇼는 선역 보다는 악역을 도맡아 했고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귀여운 캐릭터였다. 왜 빅쇼를 퓨전 중식당의 마스코트로 결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유가 어쨌든 의외여서 참신했다. 굿즈는 하나하나 다 귀여웠다. 특히 마작 키링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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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는 큼지막한 JBL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었고 옛날 한국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음악은 한국, 음식은 중국, 캐릭터는 미국, 그 조합이 기묘했다. WWE에서 레슬러가 등장할 때는 테마곡이 울려 퍼진다. 관객들은 테마곡의 전주만 듣고 이미 환호를 지르거나 야유를 보낸다. JBL 스피커가 주방 양옆에 매달린 이유는 아마도 음식이 주방에서 출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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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본격적으로 식사를 해보자. 매콤 오이 샐러드, 홍콩식 소고기 볶음면, 바오 2개가 포함된 런치 세트를 시켰고(2만 9,900원), 어향가지를 추가로 주문했다(1만 4,000원). 총 가격은 4만 3,900원.


1. 매콤 오이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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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_4점. 그릇에 자작하게 담긴 고추기름과 땅콩 소스. 거기에 조각난 오이가 마치 작은 섬들처럼 잠겨있다. 산뜻하지만 존재감이 강하지 않은 오이에 맞게 소스가 무척 묽은 편. 고추기름에 살짝 더해진 마라 향은 튀지 않고, 땅콩 소스의 고소함이 강하지는 않지만 기분 좋게 올라온다. 거기에 아삭한 오이의 식감을 더했으니.

에디터B_3.5점. 런치 세트에 포함되어 있어서 반강제적로 먹게 되었는데, 의외로 맛있다. 샐러드라기보다는 국물이 푸짐한 오이무침에 가깝다. 오이무침을 땅콩 소스, 고추기름을 넣어 재해석했다. 사진으로는 안 보이겠지만 고추기름이 국물 위에 층을 형성하고 있고, 그릇 밑바닥에는 땅콩소스가 가라앉아있다. 오이 하나를 집어 바닥에 가라앉은 소스를 힘껏 묻혀 먹으면 오이의 아삭함과 땅콩소스의 고소함, 고추기름의 매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메뉴가 아니라는 점에서 호감. 다른 메뉴를 먹는 중간중간에 입을 새로고침하기에 좋다.


2. 홍콩식 소고기 볶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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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_3.5점. 스몰디쉬빅쇼에는 2가지 런치 세트가 있는데, 양쪽 모두에 이 메뉴가 포함되어 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데 왜지? 궁금증은 메뉴를 한 입 먹자마자 풀렸다. 이건… 잡채!? 굴소스의 느낌이 더해져서 좀 더 짭짤하긴 하지만, 누구나 호불호 없이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개성이 강한 메뉴들 가운데서 이 음식은 편안한 중간 조율자 역할을 하겠구나. 특별하지 않은 것도 이렇게 큰 매력이 될 수 있다.

에디터B_3.5점. 테이블 위에 놓이자마자 강렬한 향기를 발산한다. 잡채 같은 향이 난다. 숙주, 양파 등 채소가 듬뿍 들어가서 그런지 일단 푸짐해 보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면과 파. 면은 1cm 정도 되는 넓은 면을 사용하는데 당면 정도로 쫄깃했다. 파는 아쌀한 맛이 사라지기 바로 직전까지 볶았는데 날 것의 맛을 간직한 그 정도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 양이 푸짐하니 배를 채울 목적으로 소고기 볶음면은 기본으로 시키는 걸 추천한다. 복합미라고 해야 할까. 당면, 파, 숙주를 한가득 입에 넣어서 먹을 때 가장 맛있었다. 하지만 이걸 먹기 위해서 방문한다? 그건 모르겠다. 일단 나는 아니다.


3. 어향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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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_4.5점. 소스만으로도 생선의 향을 더해준다고 해서 ‘어향’이라던데, 나에겐 어향보다 마한 향이 더 느껴졌다.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소스는 튀김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베어 무는 순간 바사삭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 안에 숨어있는 가지는 기름을 머금어서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다. 가지의 느낌만 살짝 남기고 사라진달까. 달고 짠 맛이 다소 강한 편이라 꼭, 꼭, 꼭! 술과 함께 곁들이길 추천한다. 스몰디쉬빅쇼에는 양하대곡이나 연태로 만든 특이한 하이볼이 있거든. 분명 조합이 좋을 텐데, 그게 아쉬워서 한 번 더 들러야 할 것 같다.

에디터B_2.5점. 마라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마라의 중력은 너무도 커서 블랙홀처럼 다른 맛을 빨아들인다. 마라가 들어간 어향가지는 내 입맛에 별로였다. 하지만 마라가 들어가서 별로인 건 아니었다. 이 시리즈의 취지가 맛에 대한 여러 평가를 전해주는 것이기 때는 나는 전아론 에디터와 반대편에서 어향가지를 강력하게 ‘별로’라고 말할 거다. 싫다고 소리치는 아따아따의 단비처럼 말이다. 가지는 형태를 잃어버릴 정도로 액체화되어 있었다. 나는 가지의 물컹함을 좋아한다. 조림이든 튀김이든 파스타 알라 노르마(가지 파스타)든 없어서 못 먹지 거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스몰디쉬빅쇼의 어향가지를 입에 넣으면 내가 가지를 먹었나 싶다. 전소되어버린 황룡사지 9층 목탑처럼 간신히 흔적과 숨결만 느낄 수만 있다. 이것도 하나의 스타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가지의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추천하기 힘들다.


4. 풀드포크 바오/핫치킨 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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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_3점/3.5점. 홍콩에서 처음 맛봤던 이후로, 바오를 먹는 건 거의 5년 만이었다. 스몰디쉬빅쇼의 바오는 뭔가 말랑하고 호빵 같은 질감이라 친숙했달까. 풀드포크 바오는 부드럽게 찢긴 돼지고기와 요즘 핫한 당근라페의 조합, 핫치킨 바오는 치킨에 매콤한 소스를 바른 내쉬빌 스타일에 치즈 소스가 더해진 조합이었다. 장조림의 민족으로 자랐지만, 갖가지 양념을 바른 외쿡 치킨의 맛이… 더 좋았네…?

에디터B_3점/4.5점. 먼 길을 돌아오느라 고생했다. 스몰디쉬빅쇼의 스페셜리티는 바오다. 원래는 난자완스 바오, 치킨할리피뇨 바오 두 종류가 있었는데 리뉴얼되면서 풀드포크 바오, 핫치킨 바오로 바뀌었다. 둘 중 베스트를 꼽자면 핫치킨 바오다. 빵과 고기의 조화에 대해서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오븐에 굽지 않고 쪘기 때문에 햄버거의 번과는 촉촉함에서 큰 차이가 있다. 수분을 머금도 있으며, 촉촉하고 탱탱한 식감이다. 핫치킨은 그렇게 맵지 않고 나쵸 소스가 들어가서 전형적인 내슈빌 핫치킨과는 조금 다른 맛이다. 근데 양이 적은 건 아쉬웠다. 이렇게 맛있는 줄 모르고 하나를 반 갈라 먹었는데, 한 입 먹으니 사라지고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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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디쉬빅쇼에서 파는 요리는 하나 같이 술을 부르는 음식이었다. 간이 세고 짭짤하다. 이런 음식에 술을 먹지 않는다는 건 유죄인데, 남아있는 업무가 많기 때문에 죄를 저지르기로 했다. 중국술로 만드는 하이볼을 마셔본 적이 없는데, 연태 하이볼과 양해대곡 하이볼이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다른 메뉴가 궁금해서 재방문할 의사는 있다.

스몰디쉬빅쇼

  •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62길 41-20 1층
  • 12:00-22:00 / 15:30-17:00 브레이크타임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