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성수동에서 붉은 벽돌 벽화를 찾아보세요

안녕, 성수 피플 에디터H다. 성수동에 사무실을 얻은 지 벌써 햇수로 5년. 처음 이 동네에 올 때만 해도 “성수동이 왜 뜨는...
안녕, 성수 피플 에디터H다. 성수동에 사무실을 얻은 지 벌써 햇수로 5년. 처음…

2022. 02. 17

안녕, 성수 피플 에디터H다. 성수동에 사무실을 얻은 지 벌써 햇수로 5년. 처음 이 동네에 올 때만 해도 “성수동이 왜 뜨는 거지?”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성수는 서울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네가 됐다. 왜냐고? 이른바 ‘핫플’이 생겨나는 트렌드의 최전방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고유의 멋과 향을 잃지 않는 독특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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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성수에서 어디가 제일 핫해?” 이 질문을 수없이 받지만 생각보다 콕 찝어 말하기 어렵다. 성수는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한 이정표가 없고, 골목골목 보석 같은 장소가 불친절하게 숨어있기 때문에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래도 성수 바이브를 찐-하게 느낄 수 있는 산책 코스는 있다. 일단 성수역부터 뚝섬역까지 지하철역을 따라 걸어보자. 서울 시내에 몇 없는 지상철이 주는 독특함이 있다. 길에는 아직도 80년대 전후로 지어진 빨간 벽돌 건물이 즐비하다. 오래된 공장 부지를 그대로 살린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말이다. 그렇게 뚝섬역 사거리까지 걸어가면, 조금 더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성수의 메인 스트리트라고 봐도 좋다. 서울숲 근처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개성 있는 핫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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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거의 매일 퇴근할 때마다 이 길을 지나다니곤 한다. 그런데 엊그제였나, 익숙한 뚝섬역 사거리를 지나다가 낯선 벽화를 발견했다. 밤에 차를 타고 지나가느라 정확히 보진 못했는데, 커다란 벽 가득히 아기자기한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뭘까? 성수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벽화를 본 건 처음이었다. 베를린이나 런던에서 봤을 법한 스케일이었기 때문에 단번에 호기심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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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니 에디터M이 스마트폰 사진 하나를 보여준다. “우리 집 앞에 이런 거 생겼다?” 사진 속에는 어젯밤 스치듯 봤던 벽화가 있었다. “여기 지금 공사 중인데 가림막에 그림 그린 건가 봐. 힙하지?” 그제야 사진 속 그림을 제대로 봤다. 견출지와 농구공, 손목시계, 씨씨 오렌지 주스, 쓰다만 노트까지… 누군가의 책상에서 꺼내온 것 같은 물건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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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 벽화는 네오밸류가 만든 도시문화 플랫폼 브랜드 ‘루프스테이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공사 현장의 가림벽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발상을 전환해 ‘아트월(Art wall)’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다. 누군가에게는 공사장 가림막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새로운 이야기 방식이자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력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사실 요즘 소위 ‘뜬다’는 동네가 다 그렇겠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포크레인이 오토바이처럼 드나들며 공사가 멈추는 날이 없다. 피로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어제까지만 해도 건물이 있던 자리를 허물어버린 걸 보면 어쩐지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아트월 프로젝트를 통해, 공사로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 같은 삭막한 풍경에 예술을 입히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시공사 이름이 크게 새겨져 있기 일쑤인 공사장 가림막에 아름다운 작품을 그려 넣겠다는 기가 막힌 생각을 한 것이다. 오호,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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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벽화가 비주얼 아티스트인 ‘노보(NOVO)’의 작품이다. 예전에 나이키와도 서울의 자유로움을 표현한 프리런 에디션을 선보여서 화제가 되었던 국내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성수동에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벽화가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역시 노보의 아트웍이더라. 설치미술, 회화, 드로잉 등 다양한 작업물을 선보이며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오고 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이 트렌디하고 눈길을 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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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 멋도 없고, 색깔도 없는 공사장 가림막이 큼직하게 들어서 있었다. 뚝섬역 사거리에서 서울숲역 방향으로 모퉁이를 돌 때마다,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대체 언제까지 공사하는 거야…”라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왜냐면 여기가 상당히 눈에 띄는 자리다. 유동인구도 많고, 핫플도 밀집돼 있다.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며 한눈에 내다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건너편에는 아름다운 빨간 벽돌 빌딩의 ‘블루 보틀’ 건물이 있고, 모퉁이를 돌면 내가 성수동에서 제일 좋아하는 와인바인 ‘미도림’이 나온다. 이렇게 발길이 자주 닿는 곳에 답답한 가림막이 드리운 채, 도시의 모든 색채를 먹어버리고 있다는 건 정말 서글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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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 사거리를 지나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겠지. 오히려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두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요즘은 근사한 배경이 있으면 무조건 멈춰서서 사진 한 장 찍어주는 게 국룰이니까. 특히나 날씨가 좋아지면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멋을 내고 서서, 인증샷을 찍겠지. 인스타그램 #성수동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빨간 벽돌 벽화 앞에서 찍은 사진이 넘쳐날 게 틀림없다. 주말마다 성수동을 찾은 활발한 힙스터들이 저마다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시크한 포즈를 취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제일 먼저 가서 찍어야겠다. 난 성수 피플이니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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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트월은 “Everything, the digital world doesn’t have(디지털 세상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라는 메시지를 노보 작가의 필체를 통해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잊고 지낸 소중한 가치(만남, 소통, 교류 등)를 루프스테이션을 통해 다시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메시지다. 학창 시절을 성수동에서 보낸 작가의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오브제들을 ‘아트월’에 담아 디지털 세계에서는 전할 수 없는 대화와 경험들이 가득한 라이프스타일 도시를 만들자는 의미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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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94m, 세로 6m가 넘는 큰 벽을 메시지가 있는 작품으로 채우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찾아가며 어떻게 ‘포토존’으로 만들지를 연구했는데, 결국 성수역을 대표하는 붉은 벽돌로 가림벽을 채운다면 성수의 지역적 정체성이나 포토존으로서의 미관도 만족할 수 있겠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이 부분은 성수 피플로서 매우 칭찬하고 싶다. 우리 사무실도 40년 가까이된 오래된 상가에 위치해있는데, 예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이다. 건축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80년대에 지어진 건물 중에는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이 많더라. 성수에도 신축 건물이 바쁘게 들어서며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이 붉은 벽돌이 상징하는 ‘성수의 분위기’가 아직 견고한 것만은 분명하다. 벽화 안에 라인으로된 집 모양은 정말 집을 상징하는데, 지붕이 2개인 이유는 예전 성수동에 많던 공장의 지붕 형태를 따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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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덧붙이자면 곳곳에 위트있는 요소들이 숨어있다. 공사장로 들어가는 출입구에는 ‘근로자 출입구’라는 귀여운 필체의 글씨가 쓰여있는데, 노보 작가가 직접 작업한 손글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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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성수동에서 보냈다는 노보 작가는 “성수동에는 큰 공장들이 많았지만, 그 골목 사이에서도 뭔가 아기자기한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며 “아트월이 들어가는 부지는 학교 갈 때 매일 오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고 밝혔다. 성수동 벽화 작업에 그려진 정물들을 보면 그 시절의 기억이 가득하다. 매일 친구들과 갖고 놀았던 농구공, 성수동의 수많은 의료 제조업 공장을 보며 품었던 패션 디자이너의 꿈, 이름표, 노트…. 성수동에서의 추억이 이번 작업에도 반영되었다는 게 재밌다. 성수에 아트월을 만들고 싶다는 의뢰를 받았을 때도 더없이 반가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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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 살던 어린 남자아이가 하루하루 썼던 일기가 모이고 모여서, 이렇게 표현된 성수동 벽화 속의 그림일기가 됐다는 그의 대답에서는 마음이 약간 찡해지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 걸맞은 완벽한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무미건조했던 회색 벽에 컬러풀하고 위트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서는 것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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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지휘한 네오밸류는 앞으로도 지역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루프스테이션’의 미션을 따라 예술가, 음악가, 장인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의 라이프스타일 변주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첫 단추인 ‘루프스테이션 성수’를 시작으로 익선동, 홍대 등 다양한 도시를 무대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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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어디에나 화려한 디지털 전광판이 들어선 시대에, 벽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아날로그함이 재밌다. 네오밸류 역시 이번 프로젝트를 새로운 도전으로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브랜드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내게 영감을 준다. 아마 이런 시도들이 서울 곳곳에서 다채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거리를 만들겠지. 여러분도 성수에서 아트월을 발견한다면, 반갑게 사진 한 장 찍어주시길.

*이 글은 네오밸류의 유료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