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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최선의 텀블러, 최후의 머그

안녕, 에디터B다. 며칠 전에 내 친구 친구J를 만났다. 소비 성향과 가치관을 따지면 그 친구와 나는 한국와 아르헨티나랄까. 정반대 지점에 있다....
안녕, 에디터B다. 며칠 전에 내 친구 친구J를 만났다. 소비 성향과 가치관을 따지면…

2021. 11. 02

안녕, 에디터B다. 며칠 전에 내 친구 친구J를 만났다. 소비 성향과 가치관을 따지면 그 친구와 나는 한국와 아르헨티나랄까. 정반대 지점에 있다. J에게는 오직 단 두 벌의 티셔츠밖에 없으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쇼핑을 해야 할 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이 집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몹시 괴롭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카페에서 예쁜 물건을 발견하면 갖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하니, “넌 예쁜 물건을 보면 갖고 싶니?”라고 처음 들어보는 반응을 보였다. J와 나는 어차피 가는 길이 다르니 그 친구의 소비성향을 본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조금의 반성은 한다. 지나친 맥시멀리스트 활동은 지구에 해가 되니 텀블러와 머그컵은 그만 모으자고 또 한 번 다짐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내 주변에서 돈 좀 써본 사람들에게 물었다. ‘단 하나의 텀블러 혹은 머그컵을 쓴다면 무엇을 쓰겠습니까?’ 하나의 컵을 오래 쓰자는 메세지를 담아 기획했지만 어째 결과물을 보니 물욕만 더 생기는 것 같다. 이번 기획은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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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에디터B> 카페 꼼마 아이스 커피잔

홍대역 3번 출구 옆, 카페 꼼마라는 곳이 있었다. 지금은 올리브영이,바론 전에는 피자집이 있던 그 자리다. 한때 북카페가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합정역과 홍대역 인근에는 출판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북카페가 많았다. 후마니타스 책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카페 창비, 빨간책방 그리고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카페 꼼마. 이 컵은 카페 꼼마에서 산 물건이다. 컵에는 소설가 김연수가 쓴 문장이 적혀 있다. ‘사랑이라는 게 뭔가? 그건 그 사람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 즉 그 사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 문구를 지금의 나에게 대입해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가늠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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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조서형> 스탠리 클래식 트리거 액션 트래블 머그 473ml 그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손에 넣는 법: 시간을 보낸다. 에피소드가 충분히 쌓일 만큼 함께 지낸다. 이내 일회용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애정이 깃든다. 이보다 나은 물건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성공이다. 스탠리의 텀블러는 이 방법을 사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칠칠맞은 인간이 아무리 떨어트리고 흘려도 조금도 사라지지 않으니까. 얘는 수없이 아스팔트 위를 구르고 계단에 찍혔다. 그러나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3년을 매일같이 썼는데 여전히 내용물은 한 방울도 새지 않고, 뜨겁거나 차갑거나 확실한 온도를 유지한다. 녀석은 정말이지 터프와 불멸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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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에디터H> 애플 머그

나는 기념품으로 머그를 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유독 아끼는 물건이 하나 있다. 2016년, 애플의 초대를 받아 떠났던 살인적인 스케줄의 출장길. 잠시 짬을 내서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캠퍼스에 들렀을 때 산 ‘애플 머그’다. 전 세계에서 한 곳, 오직 애플 본사에서만 판매한다는 말에 25달러 짜리 컵을 사재기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 브랜드의 기념품이지만 일본 도예가가 만들었다는 아이러니도 재밌다. 손잡이가 큼직해 실용적이며, 사과 로고가 위풍 당당하게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어디서 샀냐”고 물어볼 때마다 괜히 들뜬 기분이 되어 얼마나 구하기 힘든 물건인지를 무용담처럼 늘어놓곤 한다. 트렁크에 힘겹게 싣고 온 나머지 머그는 아끼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그중 몇몇은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않지만, 혹시 누군가 머그에 새겨진 애플 로고를 발견하고 “어디서 샀냐”고 물어볼 때마다 내 이름을 떠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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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에디터M> 폴리가든 마블 머그

우리 집에 머그가 몇 개나 있더라? 마음에 드는 컵이 보일 때마다 하나씩 사들였으니, 아마 꽤 될 거다. 하지만 모든 물건이 그렇듯 유독 손이 자주 가는 물건은 정해져 있는 법. 내 경우는 폴리가든의 마블 머그다. 서툰 솜씨로 빚은 듯한 모양새가 투박하고, 두툼한 손잡이는 둔탁해 보이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정이 간다. 적당히 거친 표면 때문인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혹은 뜨거운 차를 담아도 내 입술에 닿는 온도는 미적지근함을 유지한다. 둥글고 두터운 손잡이에 검지와 중지를 끼워 넣으면 오랜 친구의 손을 잡는 것 처럼 편안하다. 흙을 켜켜이 쌓은 것 같은 무늬는 이 세상에 똑같은 게 하나도 없어서 더 특별하다. 잠이 오지 않는 여느 밤 차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마다 나는 항상 이 컵을 고른다. 세련되고 잘 빠진 컵도 좋지만, 다들 나처럼 내 손에 찰싹 붙는 자기만의 컵을 찾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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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드리고 마케터 이규환> 아스티에 드 빌라트 트리 컬러 컵

나는 그냥 예쁘고 멋있는 것보다 숨겨진 무엇인가가 있는 것에 끌린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트리 컬러 컵처럼. 난 이 컵으로는 커피만 마신다. 파랑색과 빨강색 띠가 둘러진 하얀색 컵에 검은색 커피를 마시다 보면, 컵 안쪽 바닥에 노란색 모자를 하늘 위로 올린 소년이 스르륵 등장한다. 서프라이즈를 천천히 만나고 싶으면 네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 천천히 마시고, 빠르게 만나고 싶으면 시원한 물에 더치 커피를 타서 벌컥 벌컥 마신다. 뭐, 내 맘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18만 원짜리 컵으로 서프라이즈를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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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p. 매거진 편집장 남필우> 네이버후드 컵, 인텔리젠시아 20주년 카푸치노 컵

기능을 넘어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컵을 좋아한다. 특히 한정판으로 출시되거나 특정 브랜드에서 굿즈 개념으로 나온 컵에 마음이 흔들리곤 하는데, 의류 브랜드 네이버후드에서 2016년 선보였던 머그컵(왼쪽) 그리고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 20주년 기념 블랙캣 카푸치노 컵(오른쪽)이 그러하다. 패션 브랜드의 굿즈 개념으로 나온 네이버후드 컵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주로 케멕스로 커피를 내려서 마실 때 사용했다. 커피를 거의 다 마셨을 때 컵 내부 바닥에 HAVE A NICE DAY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쿨하면서도 촌스러운 부분이라 생각되어, 매면 그 문구가 나타날 때면 “꼭 이래야만 했나?”라는 혼잣말을 하기도. 근래에는 데스크 위에서 오브제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는 컵이다. 오른쪽 블랙캣 카푸치노 컵은 시크한 블랙 고양이와 골드링의 조합이 환상이다. 컵과 소서가 세트인데 손님들에게 내어드리면 예쁘다는 소리를 항상 들어서 수년 동안 아끼며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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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에디터 김은아> 네스프레소 버츄오 트래블 머그 540ml

나는 한 우물을 파는 브랜드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내게 텀블러는 곧 휴대용 커피잔과 같은데, 커피잔은 역시 커피 전문점이 잘 하겠지 싶은 단순하고 이상한 논리로 네스프레소의 텀블러를 선택했다. 설마 그렇게 캡슐을 열심히 만들어놓고 커피를 막 맛없게 식혀버리는 컵을 팔겠어?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4년째 흠집 하나 없는 튼튼함, 가방 안에서 흔들려도 새지 않는 견고한 이음새, 무엇보다 출근길에 따라둔 음료의 온도를 퇴근시간까지 유지하는 막강한 보온보냉력까지 모든 기능이 만족스럽다. 군더더기 없는 실용적인 디자인도 질리지 않는다. 굳이 단점을 꼽는다면…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 바로 다음 텀블러를 살 기회… 왜냐면 영원히 쓸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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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ro 조향사, 작가 전아론> 이케아 바르다겐 고블렛잔

모든 술을 좋아한다. 커피도 차도 좋지만 다시 생각해도 술이 1등이다. 가장 자주,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바로 와인. 허세가 아니라 와인이 몸에 제일 잘 맞는다(가만, 약간은 있으려나 허세?).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 많으면 대여섯 번도 마신다…. 그럴 때 주로 쓰는 잔이 바로 이 이케아 바르다겐 고블렛 잔이다. 이케아라니! 그럴싸한 와인잔이 아니라 실망했나? 물론 나도 리델 같은 비싼 와인잔만 고집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술김에 설거지하다가 깰 정도로 섬세한 유리인데다, 관리법도 까다로운 터라 우리 집에서 점점 멸종되어 갔달까. 그에 비해 이 고블렛잔은 취해서 좀 떨궈도 괜찮을 만큼 튼튼하다. 목이 짧아 귀여우면서도 안정감이 있고 그립감도 좋다. 작은 몸집에 비해 담기는 술의 향이 넉넉한 것도 마음에 든다. 언젠가 나도 음주량이 줄어들고, 더 좋은 와인을 찾게 되는 날이 오면 이 잔을 떠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1만 원~3만 원 사이의 가성비 와인을 거의 매일(?) 마시는 나에게 이만큼 친숙하고 편안한 와인잔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정든다는 게 이런 거 아닌가?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이 잔에 와인을 잔뜩 마실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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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에디터 김정현> 플러스엑스의 10주년 머그

지인에게 선물 받은 이 아름다운 머그컵, 지금은 못 사는 제품이다. 브랜딩 기반의 크리에이티브 그룹 ‘플러스엑스’의 10주년 기념 한정판 굿즈거든. 무광 화이트의 단단하면서도 매끈한 촉감이 무척 고급스럽다. 심플하고 단정한 디자인에, 컵 안쪽에 쓰인 글자 포인트는 덤. 커피나 물을 부어 글자가 보일 듯 말 듯 한 지점까지 채웠을 때의 묘한 쾌감이란! 사무실에서 매일매일 사용하고 가끔은 촬영 소품으로 써먹기도 하는 효자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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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에디터 박인혜> 하와이 관관청 텀블러

가볍고 휴대성이 좋아야 좋은 텀블러겠지만, 난 예쁜 게 최고다. 내 눈에 예뻐야 손이 간다. 그렇게 주구장창 들고 다녀서 색이 바랜 텀블러가 하와이 관광청 굿즈 텀블러. 들고 다니면 괜히 하와이 생각도 나고 (하와이에 가본 적은 없지만) 좋다. 언젠가 하와이에 갈 건데, 남자친구랑 갈 거다. 근데 남자친구가 연락이 안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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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사진 에디터, 전 디에디트 PD 이윤희> 모슈 텀블러

텀블러는 정말 까다로운 제품이다. 튼튼하고 새지 않고 보온 보냉도 되면서 오브제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니까. 2018년도부터 4년 째 쓰고 있는 모슈 텀블러를 소개한다. 우유병 같은 디자인이 질리지도 않고 450ml의 넉넉한 용량을 갖추고 있다. 스태인리스로 되어 있어서 정말 튼튼하며 무엇보다 절대(정말 절대) 새지 않고 뛰어난 보온보냉을 자랑한다. 이전에 아아를 넣은 모슈 텀블러를 그대로 두고 퇴근한 적이 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도 얼음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그때부터 인생 텀블러로 소개하고 다닌다. 얼음을 넣기엔 조금 입구가 좁지만 그쯤이야 얼음 트레이를 작은 것으로 사면 해결된다. 이 텀블러를 쓰고 4년간 새 텀블러를 소비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환경 보호가 아닐까. 다들 텀블러만큼은 그린워싱에 속지 않고 하나로 정착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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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