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캠퍼들의 라면비책

안녕, 먹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누차 말하는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매번 그렇게 말해 왔더니, 이제 뭐가...
안녕, 먹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누차 말하는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누가…

2021. 06. 14

안녕, 먹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누차 말하는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매번 그렇게 말해 왔더니, 이제 뭐가 진짜인지 헷갈린다) 관심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캠핑에 라면은 꼭 필요하다는 사실쯤은 안다.

먼저, 자동차가 없는 나는 많은 재료를 운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면은 무겁지 않고 부피도 크지 않다. 그리고 나는 요리를 잘 못 한다. 라면은 대충 끓여도 그럭저럭 맛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MBTI는 P로 끝난다. 라면은 오늘 저녁, 내일 아침을 뭘 먹을지 꼼꼼하게 세워둔 계획이 없이도 먹을 수 있다. 그냥 끓이거나, 찌개나 탕에 넣어 사리로 활용하거나, 대충 부수어 와작와작 씹어 먹어도 된다. 추워도 얼지 않고, 더워도 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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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모님 아래서 자라다가 열아홉 살 겨울에 독립한 나는 라면 먹을 일이 많았다. 오전에 배가 고프면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고, 오후에 배가 고프면 라면을 끓여 먹는 일이 보통이었다. 라면은 이렇게 가까이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관심 밖이었다. 마트에 가면 습관처럼 스테디셀러와 신제품 라면을 한 묶음씩 사다 먹으면서도 어떤 재료를 추가하거나 조리 방법을 바꿔 라면을 더 맛있게 먹을 생각까지는 닿지 못했다. 라면 봉지에 있는 것만 꺼내어 끓여 먹거나, 기껏해야 냉동 만두와 날계란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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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요즘은 비가 어찌나 자주 내리는지 ‘다음 주에 캠핑 가자’는 말 대신 ‘날씨 상황 보고 캠핑 한 번 가자’가 자연스럽다. 올봄 텐트를 새로 샀다는 전 직장 선배는 일기 예보만 바라보다가 텐트를 펼쳐보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 다가오는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더 미룰 수는 없어. 퇴근 박이라도 하자.” 선배의 말에 급하게 짐을 쌌다. 운전은 선배가, 음식은 내가 챙기기로 했다. 습관처럼 라면을 챙기다가 멈칫. 푸드 매거진 출신 선배와 가는데, 대충 라면이나 끓여 먹긴 아쉽지 않나, 이 기회에 라면을 더 맛있게 먹어보고 싶기도 하고. 냉장고 속 채소와 선반의 양념, 그리고 냄비까지 종류별로 챙겼다. 야무지게 먹어야지.


[1]
MSR 코팅 프라이팬에 해 먹는 매운탕 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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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빗방울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간밤엔 사방에 흩뿌려진 민들레 홀씨에 코가 간질간질했는데, 비가 와서 공기가 모두 축축하게 가라앉았다. 후닥닥 라면을 끓였다.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은 프라이팬. 사고서도 한참을 뿌듯해하던 MSR의 코팅 프라이팬이다(급하게 챙기느라 손잡이를 빼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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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자취요리 신’ 님의 매운탕 라면 레시피를 참고했다. 먼저 캔 참치를 통째로 기름까지 달궈진 팬 위에 얹는다. 기름이 지글지글 끓으면 빨간 라면 스프를 통째로 털어 넣는다. 매운탕의 얼큰한 바다향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참치 살에 스프가 잘 스며들면 물 550mL을 붓는다. 종이컵으로 세 컵 정도라고 생각하면 맞다. 칼칼한 맛을 위해 청양고추를 넣는다. 나는 타이밍을 놓쳐 다음 단계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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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 사리를 넣는다. 후추, 고춧가루, 썬 고추를 넣으면 더 깊은 맛이 난다. 파도 썰어 넣으면 좋다고 하던데, 나는 못 넣었다. 콩나물, 무, 버섯, 쑥갓, 산초가루까지 넣어 먹은 사람의 후기는 깊고 비릿한 제대로 된 매운탕 맛이랬는데, 난 아니었다. 애매하게 맛이 따로 놀았다. 라면에 캔 참치를 넣은 딱 그 정도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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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들인 재료에 비해 맛은 아쉬웠다. 별점은 셋. 첫 단계에서 참치와 스프를 타기 직전까지 볶아야 향을 제대로 낼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엔 나의 프라이팬을 믿고 바짝 열을 먹여 봐야겠다. 뭐든 깔끔하게 볶아내는 프라이팬 구매처는 [여기].


[2]
코베아 구이바다에 끓인 탄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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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라면을 끓이던 백종원이 땅콩버터 한 숟가락을 푹 떠서 집어넣었다. ‘윽!’ 소리가 절로 났다. 아니 선생님, 멀쩡히 잘 끓어오르던 라면 국물에 땅콩버터라니요. 땅콩버터라면 으레 게스트하우스 조식으로 나온 것을 빵이나 비스킷 조각에 쓱쓱 발라 먹는 것이 아니던가요… 디저트를 국에 말아 먹는 기분인데요. 색도 별론데요. 누렇고 걸쭉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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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백선생님의 가르침이니 일단 물 500mL를 끓인다. 코베아 구이바다에는 550mL 선이 표시되어 있어 그에 조금 못 미치게 부으면 된다. 평소처럼 라면을 끓인다. 스프를 먼저 넣든, 면 사리를 먼저 넣든 상관없다. 면이 익으면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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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는 실온에도 녹는 재료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넣어도 충분하다. 숙주도 아삭하게 먹으려면 불이 꺼진 다음 넣어주자. 반숙 달걀을 반 갈라 올렸다. 땅콩, 참깨 소스, 청경채와 볶은 돼지고기로 만드는 중국 사천의 얼큰한 탕 요리인 탄탄면 맛이 얼추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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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로 시작하는 피드백을 주고 싶은 기분이다. 더 제대로 맛을 내려면, 기름에 파와 고춧가루 한 큰술을 볶은 다음 물을 넣고 끓이는 것을 추천한다. 선배는 식초와 고추기름을 마지막에 넣는다면 더 풍부한 향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줬다. 크기가 애매하다고 투덜거리더니, 잘 써먹는 구이바다 구매처는 [여기].


[3]
하이브로우 쿡케이스에 끓여 먹는 오뎅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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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는 ‘오뎅한그릇’이라는 걸 판다. 인스턴트 어묵탕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야외 수영장에서 늦도록 놀고 와서 수건을 걸친 채 오들오들 떨며 먹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겨울에 편의점에서 술을 마실 때 안주로 즐겨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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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과정은 간단하다. 먼저 준비된 어묵탕을 찬합에 다 붓는다. 100mL 정도 물을 더 넣은 다음 끓인다. 라면 스프는 반만 넣어도 충분하다. 이다음엔 평소 라면 끓이듯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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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한 어묵에 라면을 걸쳐 한 젓가락 호로록 삼키니, 천국이다. 간이 이미 배어있는 국물을 이용해 끓인 거라 감칠맛이 좋다. 술안주로도, 해장으로도 좋을 개운함이다. 식감별로 여러 종류 어묵이 있어 골라 먹기에도 좋다. 나는 곤약이랑 무가 가장 맛있다. 고품질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물이 빨리 끓는 하이브로우의 쿡 케이스 구매처는 [여기].


[4]
누룽지를 곁들인 참깨라면 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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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활동가들의 ‘왓츠 인 마이 백’ 콘텐츠를 찍은 적이 있다. 가벼운 백패킹인 BPL(BackPacking Light)을 즐기는 사람의 가방에선 먹을 게 거의 나오지 않았다. 빼빼 마른 누룽지가 전부였다. 누룽지는 뜨거운 물만 부어서 불려 먹어도 되고, 여차하면 그냥 씹어 먹어도 되고, 포만감도 꽤 오래 유지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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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누룽지는 후식이죠.” 먹는 즐거움까지 절제된 캠핑을 못내 아쉬워하자, 그는 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먹는 법을 알려줬다. 알고 보니 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먹는 것은 이미 많은 라면 애호가들이 공유하는 레시피였다(기사를 쓰다 보니, 이미 GS25에서 ‘참깨누룽지탕면’이라는 이름으로 시제품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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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도구를 챙기는 일조차 귀찮을 날을 가정해서 이번엔 컵라면을 꺼냈다. 누룽지를 넣어 끓이기에 가장 맛있는 라면, 참깨라면으로 샀다. 계란 블록과 참기름은 누룽지와 찰떡이다. 조리법은 매우 쉽다. 면을 꺼내고 컵 맨 아래에 누룽지를 깐다. 면과 스프를 얹은 다음 뜨거운 물을 표시 선 조금 위까지 붓는다. 3분을 기다렸다가 뚜껑을 열면 완성. 김 가루를 얹으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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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고 따뜻한 누룽지 라면은 아마 아는 맛일 테지만, 번번이 위로가 되는 그런 매력을 가졌다. 컵라면으로 금세 출출해질 배를 채우기에도 누룽지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비주얼이 아쉬워서 별은 하나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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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