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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의 전기차, 포르쉐 타이칸

안녕하세요!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정우성입니다. 테슬라 모델 Y 시승기 재밌게 보셨죠? 아직 안 보셨다면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그때 제가 에디터 H한테...
안녕하세요!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정우성입니다. 테슬라 모델 Y 시승기 재밌게 보셨죠? 아직 안…

2021. 06. 09

안녕하세요!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정우성입니다. 테슬라 모델 Y 시승기 재밌게 보셨죠? 아직 안 보셨다면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그때 제가 에디터 H한테 그랬습니다.

“포르쉐 건들지마…”

아니, 에디터 H가 글쎄 테슬라를 보면서 포르쉐 생각이 났다는 거예요. 속도 때문에 그랬다면 인정. 그런데 디자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대서 정말 놀랐어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자동차와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거리에서 테슬라 모델 3, 모델 Y를 볼 때마다 조금씩 에디터 H를 이해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죠. ‘아… 저기가 저래서 포르쉐를 생각했구나…’ 하고요.

테슬라는 성공적으로 대중에 안착한 회사입니다. 모델 3와 모델 Y가 시장을 장악한 속도와 마케팅과 잠재력은 정말 어마어마하죠. 하지만 포르쉐는 대중적인 회사가 아닙니다. 포르쉐는 시작부터 꿈이었고, 꿈의 지위를 내려놓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참 많은 사람의 꿈일 거예요. 혹시 이 말 들어보신 분, 계세요?

“내가 꿈꾸던 차를 찾을 수 없어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1400_P08_0822_a5[오른쪽부터 페르디난트 포르쉐,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 디자인 부서 에르빈 코멘다.]

포르쉐 창업주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입니다.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가 한 이 말은 너무나 유명하죠. 자동차 기자들끼리는 포르쉐가 새로운 모델을 출시할 때마다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지구에는 없는 기술력, 즐기기는 쉽지만 흠을 잡기는 참 힘든 성능이라는 뜻이죠.

몇 년 전, 새로 출시한 포르쉐 718 박스터를 시승하려고 스페인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하루 종일 시승을 하고 돌아온 후, 저녁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에 모였어요. 포르쉐 엔지니어, 마케팅 담당자도 한 테이블에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어요.

“우리끼리 ‘포르쉐는 외계인들이 만든다’는 농담을 많이 해.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그럼. 근데 그거 농담 아니야. 원래 오늘도 같이 나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지금 사무실에서 야근하고 있어. 새로운 걸 좀 만들고 있거든.”

우린 다 같이 웃었지만, 718 박스터의 성능에 충분히 젖어 있는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차라리 믿고 싶어지는 거 있죠? 포르쉐 연구소에는 정말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상상, 괜히 좀 즐겁잖아요?

아마 그날 야근하던 포르쉐 외계인에게 어떤 숙제가 있었다면 타이칸을 더 완벽하게 개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요즘은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포르쉐가 프랑크푸르트 국제 모터쇼에서 미션 E를 공개한 게 2015년이었으니까요. 제가 출장 갔던 시기하고도 얼추 비슷합니다. 미션 E는 포르쉐의 전기차 콘셉트였어요. 한 번 보세요. 2020년 말에 한국에 출시한 타이칸의 디자인 언어가 그대로 살아있죠?

1400_NewsAffinity-Porche-reveals-the-mid-range-electric-sports-car-Taycan-4S-EV.jpg[포르쉐의 전기차 콘셉트 카 ‘미션 E’]

포르쉐 타이칸의 첫 시승은 트랙에서였습니다. 아직 인증 전이어서, 공도에서는 운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미리 경험했던 거죠. 그때 시승했던 차는 타이칸 터보 S. 타이칸 중에서도 최상위 모델이었어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8초. 최대출력은 761마력에 달하는 슈퍼카죠.

1400_2019-taycan-turbo_s[포르쉐 타이칸 터보 S]

이런 속도는 인간의 감각을 좀 왜곡시킵니다. 혈류를 빠르게 하고 시야를 좁게 하죠. 공포인지 쾌락인지 모르겠는 감정에 순식간에 빠져들게 하고 나도 모르게 어떤 소리를 내게 됩니다. ‘으아아아’하는 감탄일 수도 있고 한숨일 수도 있을 거예요. 혹은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입을 꾹 다문 채 다만 그 속도에 압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이칸은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포르쉐에서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을 가득 담고 있었어요. 일단 전기차니까,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최대의 힘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가차 없는 거죠. ‘하나아, 두울, 셋!’ 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하!’ 하는 순간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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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속도를 올리는 순간 타이칸의 실내에서는 좀 비현실적인 소리를 듣게 됩니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랙>에서 전투기가 출격할 때 나는 소리 아세요? 우주 전투기를 상상할 때 딱 떠오르는 바로 그런 소리. 공기가 없는 곳에서 더 빠르게 날기 위해 설계한 어떤 탈 것의 사운드. 일상을 우주로 왜곡하는 바로 그런 감각. 타이칸의 설계가 외계인에 의한 거라면, 그날 야근했던 그 외계인은 아주 짙은 향수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일상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틀의 일상을 타이칸과 함께했던 거죠. 겨울의 복판이었고, 주행 중에 폭설을 만나기도 했던 이날의 기록은 저희 더파크 채널에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날의 놀라움은 속도나 소리가 아니었어요. 타이칸의 일상성이었습니다. 빨리 달릴 때는 간이 똑 떨어지게 달리던 타이칸이 서울 시내에서 보여준 감각은 정말이지 호사스러웠거든요. 타이칸은 포르쉐를 대표하는 스포츠카 911과 비즈니스 쿠페 파나메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모델입니다. 디자인은 911에 가깝고, 감각은 파나메라에 가까워요. 가장 미래적인 자동차의 디자인을 가장 전통적으로 유지하고,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승차감을 구현해낸 거죠.

Photography: Christoph BauerPostproduction: Wagnerchic – www.wagnerchic.com

일상적인 타이칸의 실내는 도서관 열람실 같습니다. 무척 조용해요. 도로에서 올라오는 진동이나 떨림을 잡아내는 수준은 그야말로 고급스럽습니다. 부유하고 도전적인 완벽주의자의 전기차라고 해야 할까요. 이 뒷좌석에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셔도 어색하지 않을 거예요.

전기차 구매를 염두에 두고 계시는 분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주행가능거리죠? 타이칸의 주행가능거리는 289km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실망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테슬라 모델 Y 롱레인지는 511km죠. 퍼포먼스 모델은 448km입니다. 주행가능거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몇몇 분들은 절대 포르쉐 타이칸을 소유할 수 없겠죠?

바로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포르쉐가 작심하고 미디어 시승행사를 열었습니다. 얼마 전이었죠. 강원도 고성의 한 호텔에서 시작한 시승은 하루 종일, 정말이지 하루 종일, 점심식사 직후부터 저녁식사 직전까지 7시간 이상 쉴 틈 없이 이어졌어요. 약 350km 구간이었습니다. 시승 코스에는 고속도로와 국도가 섞여 있었어요. 강원도에 있는 세 개의 언덕을 넘기도 했죠. 구룡령과 운두령, 대관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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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운두령의 커브는 굉장했습니다. 몇 개의 헤어핀이 이어지고, 업힐과 다운힐의 조화도 아찔했습니다. 그 길을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주파했는데, 저는 전비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달렸습니다. 포르쉐잖아요. 포르쉐는 포르쉐 답게 타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세상엔 승리를 즐기기 위해 탄생한 차가 있고, 일상의 효율을 위해 태어난 차가 있습니다. 포르쉐의 모든 모델은 전자에 속합니다. 그러니 능력과 안전이 허락하는 한 즐기는 거예요. 이런 코스를 언제 또 달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물론 고속도로에서는 여러 가지 모드를 테스트하기도 했습니다. 노멀 모드와 레인지 모드, 스포츠 모드에서의 차이점도 만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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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빠른 분들은 짐작하셨을까요? 제가 아까 포르쉐 타이칸의 인증 주행가능거리가 289km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제가 시승했던 기세로, 총 350km에 달하는 코스를 완주하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행가능거리는 오히려 10km 이상 남아있었습니다. 같은 그룹에서 달렸던 다른 기자는 100km 이상 남아있었어요. 놀랍죠? 나중에 들어보니 운전의 기세가 다르긴 했습니다. 그분은 시종일관 레인지 모드로 달린 것 같았어요. 속도도 내지 않았고요.

Deutschlandreise mit dem Porsche Taycan 4S, Foto: Fluss Oder, Hafen,Kulturhafen, Gross Neuendorf, Brandenburg

물론, 그렇게 달리면 더 멀리 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 누가 포르쉐를 그렇게 탈까요? 이런 소리를 내면서 이런 속도로 달리는 차를. 속도의 모든 구간, 코너를 꺾는 모든 감각, 아주 세세한 디테일과 만듦새에 조차 완벽을 기하는 이런 차를. 자동차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꿈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 이런 차를 말예요.

타이칸보다 더 빠른 차? 더 비싼 차? 당연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포르쉐 같은 감각으로 달릴 수 있는 차는 포르쉐뿐입니다. 그 감각, 한 번 체험하면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이미 완벽한데 다시금 완벽을 추구하는 책임감. 자꾸만 생각나는 이런 느낌, 포르쉐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Photography: Christoph BauerPostproduction: Wagnerchic – www.wagnerchic.com

최근에는 포르쉐 타이칸 터보 S를 출시했습니다. 제가 최초에 트랙에서 시승했던 바로 그 고성능 모델.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2.8초예요. 타이칸은 ‘활기가 넘치는 젊은 말’이라는 의미의 터키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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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정우성

시간이 소중한 우리를 위한 취향 공동체 '더파크' 대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고전음악과 일렉트로니카, 나무를 좋아합니다. 요가 에세이 '단정한 실패'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