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뭐가 다를까, 더현대 서울 방문기

안녕, 에디터B다. 나는 쇼핑은 좋아하지만 몰링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다. 첫 번째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을...
안녕, 에디터B다. 나는 쇼핑은 좋아하지만 몰링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2021. 03. 07

안녕, 에디터B다. 나는 쇼핑은 좋아하지만 몰링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다. 첫 번째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을 가기 위해 롯데백화점을 지나는 것, 두 번째는 CGV 용산에 가기 위해 아이파크몰을 지나는 것. 차라리 세상 모든 브랜드를 한군데 모아둔 네이버 쇼핑이 더 재미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더현대 서울’ 방문기를 쓰고 있는 이유는 ‘그곳은 뭔가 다르다’라는 이야기를 며칠 사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를 불나방으로 태어나 사람이 붐비는 핫플레이스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탓에 뭐가 어떻게 다른지 라섹 수술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더현대 서울 방문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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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753번 버스에서 내려 여의도 공덕아파트를 지나 더현대 서울로 걸어갔다. 가는 길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평일 낮에도 사람이 미어터진다더니 혹시 오늘이 바로 내가 코로나에 걸리는 그날인 걸까 살짝 걱정이 됐다. 마스크를 두 개 쓰고 올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을 하며 눈 바로 밑까지 마스크를 올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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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더현대 안으로 입장했는데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특별히 다른 건 느끼지 못했다.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이 없다는 것 빼고는 비슷해 보였다. ‘아니! 다르긴 다르네’라고 느낀 건 1층을 반 바퀴 돌았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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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 여기저기 잔뜩 장식을 해놓았다. 내가 기억하는 백화점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이런 사람이다. 왠지 한남동에 살 것 같고, 럭셔리하고 세련되지만 빈틈이 없고 심심한 사람. 식물로 인테리어를 해놓으니까 한남동에 살지만 성수동을 더 좋아하는 멋쟁이 같은 느낌이 났다. 조금 더 친근해 보였다. 식물, 불, 햇빛 이런 자연 요소를 인테리어에 활용하면 쉽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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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규모의 공간에도 플랜테리어라는 용어를 쓰는 게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식물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애플, 아마존에는 식물관리부서가 따로 있다는데 더현대에도 식물관리팀이 따로 있지 않을까. 살면서 식물을 네 번 키우고 네 번 말려 죽인 사람으로서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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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는 지상 6층, 지하 2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인데 1층부터 2층, 3층, 4층까지 올라가면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백화점에도  많이 봤던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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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의 하이라이트는 5층이다. 내 생각만 그런 게 아니라 더현대에서도 분명히 5층을 필살기로 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5층에는 1,000평 규모의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가 있다. 그게 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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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이건 5층에서 찍은 사진인데 사진이 실물의 반의반도 담지 못했다. 4층으로 내려가서 조금 더 가까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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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5층에 올라오기 전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5층에서 놀고 있었던 것 같다. 5층 중심에는 실내 정원이 크게 있고, 바로 옆에는 블루보틀, 번패티번이라는 수제버거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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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정원을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빈자리를 확인한다, 앉는다, 끝. 음료를 주문해야만 공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조건 같은 건 없다.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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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빈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자리를 잡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자리가 비기를 기다리며 실내 공원을 배회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방을 챙기는 시늉을 하면 바로 근처로 가서 대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누군가 자리를 뜨려고 하면 바로 옆으로 와서 대기하더라. 내가 일어나려고 할 때도 한 남성이 “가시는 거죠?”라고 묻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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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실내 공원에 앉아 있는 게 어색했다. 구찌, 태그호이어를 지나 푸르른 공원에 앉아 있는 기분이 낯설었다. 내부 공간에 인위적으로 꾸민 외부 공간이 어색했다. 게다가 주변에 설치해놓은 스피커에서는 새소리가 들리는데 지저귐의 빈도가 잦은 편이라 부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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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30분 정도 글을 쓰다 보니까 정말 공원에 있다는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채광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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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면 유리창 너머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한눈에 보인다. 백화점에 이토록 많은 창문이라니, 이토록 많은 초록과 햇살이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내 정원은 더현대에서 내가 가장 만족스러웠던 공간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실내 공원의 많은 남녀노소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그런 장면들을 백화점에서 보는 게 새로웠다. “고객 여러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하세요”가 아니라 “햇볕도 쬐고 쉬다가 가세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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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즈 포레스트는 더현대에서 가장 힘주어 만든 공간일 거다. 하나라도 더 많은 브랜드를 더 입점시키기 위해 공간을 분할하지 않고 공원을 만들었다는 선택부터 신선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요즘 예쁜 카페에는 포토스팟이 없는 곳이 없는데, 더현대에서는 실내공원을 거대한 포토스팟으로 쓰고 있다. 단순히 쇼핑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기고 놀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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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에서 많이 떠들었으니까 다시 아래로 내려가자. 5층 다음으로 더현대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지하 1층, 지하 2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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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은 테이스티 서울이라는 이름의 식품관이다. 태극당, 슈퍼말차, 르프리크, 금옥당, 테일러 커피, 탐광, 밀본 등이 있다. 내가 모르는 브랜드도 많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수티’라는 곳은 몽탄, 금돼지식당, 뜨락이 뭉쳐서 만든 BBQ 브랜드라고 한다. 다음에 가면 수티에 한번 가봐야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유명 맛집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아서 여기가 천국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래도 여의도 인근에서 이렇게 맛집이 많은 곳은 찾기 어려울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꽤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여의도 직장인들은 좋겠다. B1을 방문할 때가 12시 반쯤 됐었는데, 점심시간에 걸쳐있어서 그런지 가장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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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도 재미있었지만 B2가 최고였다. 여기는 뭐랄까, 힙하다. 여의도에 있는 공간 중 여기만큼 힙한 곳이 없을 거다. 아니, 여의도만 따질 게 아니다. 국내 백화점 중에서 더현대 지하 2층이 가장 힙할 거다. 백화점과 힙하다는 말, 여의도와 힙하다는 말을 한 문장에 쓰게 될 날이 오다니. 여긴 고급스럽거나 럭셔리한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고 실험적이고 트렌디한 공간이다. 뭐가 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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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과 한남동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사무엘 스몰즈 편집샵이 백화점 지하 2층에 있다. 빈티지 가구와 각종 디자인 소품을 판매하는 곳. 형형색색의 멀티탭을 본다면 ‘아 여기가 거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B2로 내려가자마자 다른 층과는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시티팝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에서 흘러나온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다른 층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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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들어가면 매거진B 팝업스토어와 압구정 수제버거 맛집 폴트 버거도 볼 수 있다. 폴트 버거는 테니스장을 컨셉으로 인테리어하는 곳인데, 여기서도 컨셉을 잘 살려 놓았다. 지하 2층이 아니라 다른 층에 있었다면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을 텐데,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다이어트 중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폴트 버거를 먹었을 거다. 버거 냄새가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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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의 스틸북스, 성수동의 포인트 오브 뷰다. 각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가이드북에서 B2에 대한 설명을 보면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MZ세대의 개성과 남다른 취향을 만족시킬 패션, F&B, 컬처 브랜드로 가득한 크리에이티브 공간’이라고 적혀 있다.

많은 브랜드에서 MZ시대를 잡기 위해 각종 노력을 하지만 노력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은데, 더현대의 지하 2층은 꽤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한 것 같다. 서울 각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지하2층만으로도 더현대에 갈만한 이유가 충분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나만 하더라도 작년부터 나이스웨더 가야지, 포인트 오브 뷰 가야지 계획만 짜다가 여러 이유로 아직도 가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노력이 MZ세대를 잡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MZ세대에 속한 사람도 모를 거다. 나는 ’00세대’라는 단어는 기성세대가 편의를 위해 거칠게 묶은 카테고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마네, 모네와 르누아르를 편의상 인상주의로 묶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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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좇는 사람들에게 더현대의 작전이 유효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진으로 소개한 브랜드는 더현대 B2에 입점한 브랜드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연남동이나 성수동 같은 핫플레이스가 재미있는 이유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브랜드가 계속 생기고, 몰랐던 골목에서 몰랐던 재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인데, 더현대의 지하 2층은 그런 재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바로 아래 매장은 번개장터가 운영하는 스니커즈 리셀 스토어인데, 이 매장은 더현대 밖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형태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가는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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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방문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미소를 본 것 같다. 터덜터덜 걷는 발걸음이 아니라 폴짝폴짝 신이 난 발걸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역병 창궐 이후에 낯선 공간에서의 모험이 정말 오랜만이지 않나. 목에는 사원증을 걸고 가이드북을 펴고 맛집이 어디 있는지 찾는 모습이 흡사 여행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하다 보니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었는데… 과연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크게 반응을 보였을까. 과연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더현대는 새로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