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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위스키가 맛있다

디에디트의 두 여자가 5종류의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그리고 취했다. 빈병이 쌓일 때마다 점점 취해가는 우리의 모습은 영상으로 확인해 보자. 술에도...
디에디트의 두 여자가 5종류의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그리고 취했다. 빈병이 쌓일 때마다…

2016. 12. 02

디에디트의 두 여자가 5종류의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그리고 취했다. 빈병이 쌓일 때마다 점점 취해가는 우리의 모습은 영상으로 확인해 보자.

술에도 가계도가 있다. 와인을 증류하면 브랜디가,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된다. 곡류를 발효시켜 맥주를 만들고 여기서 좀 더 순수한 알콜만을 뽑아내 오크통에 숙성시킨 것이 바로 위스키다. 와인과 맥주는 브랜디와 위스키의 조상님이다.

위스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단일 증류소에서 물과 몰트만을 가지고 만드는 위스키를 ‘싱글몰트 위스키’, 2곳 이상의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를 혼합해 만드는 것이 ‘블렌디드 위스키’다. 90년대 이후 전세계는 싱글몰트 위스키 붐이 일었다. 단일 증류소에서 만드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맛과 향이 진하고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다. 와인처럼 만들 때의 온도나 습도 숙성한 오크통의 상태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반면 여러 원액을 섞어 브랜드가 추구하는 맛을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맛의 평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간혹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셔야 진짜 위스키를 마시는 거라며, 블렌디드 위스키를 폄하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논쟁을 무의미하다. 무엇을 마실지는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다. 물론 싱글몰트 위스키가 훨씬 비싼 몸값을 자랑하긴 한다. 하지만 비싸다고 다 좋은 술은 아닐 뿐더러 가격은 질보다는 희소성과 더 가까운 개념이니까. 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다.
좋은 위스키와 더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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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술은 5종류의 블렌디드 위스키다. 솔직히 비싸고 개성 확실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준비하고 싶었는데, 디에디트 자금사정이 넉넉치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에겐 남대문 수입 상가를 털어 찾아낸 귀여운 미니어처 양주가 있으니까.


시바스 리갈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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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외치고 싶은 그 이름! 그것도 아주 되직한 된소리로… 사실 시바스는 이 술을 만든 형제의 이름이고, ‘리갈’은 제왕이란 뜻이니 해석하자면 시바스 형제가 제왕을 위해 만든 술이란 뜻이다. 걸죽한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과거 어떤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소문 때문인지 어두운 곳에서 사치스런 안주와 함께 마셔야 할 것같은 느낌적 느낌.

하지만 편견을 버리고 보면 시바스 리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맛을 낸다. 잔을 입에 갖다대는 순간, 화학 약품같은 특유의 향 때문에 배에 힘이 ‘퐉’ 들어가면서 긴장을 하게 되는데 의외로 맛은 달콤하다.


발렌타인 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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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우리집 찬장에는 발렌타인이 마를 날이 없었다. 아버지가 받아오시는 술 선물 90% 이상이 발렌타인이었으니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선물했다는 건 호불호 없이 누구나 무난하게 좋아할만한 맛이라는 이야기다. 발렌타인 17년은 알콜 도수 43%로 오늘 시음한 위스키 중 가장 도수가 높았지만, 그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목넘김이 부드러웠다. 그렇다고 향과 맛이 없는 밍숭맹숭한 맛은 아니다. 바닐라 향과 훈연향 등 다양한 향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다. 목넘김이 좋고, 향이 살아있으면서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다. 아, 이래서 다들 발렌타인 발렌타인 했던 거구나! 블렌디드 위스키의 정석을 보여주는 맛이다.


얼리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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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 타임즈는 대표적인 버번 위스키다. 버번 위스키는 또 뭐냐고? 위스키는 기본적으로 보리로 만든다. 하지만 미국의 드넓은 평원에서 옥수수를 대량 재배하던 캔터키 사람들은 남아도는 옥수수로 위스키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한 버번 위스키가 탄생했다. 얼리 타임즈는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만들어진다.

시작은 달콤했으나, 그 끝은 씁쓸하리라. 향은 달콤한데, 맛은 소박하지 그지 없다. 혀과 코를 쏘는 매운맛이 난다. 미국 금주법 당시 약용으로 허가를 받고 판매를 했을 정도였다고. 투박한 라벨에서 느껴지듯, 얼리 타임즈는 우리네 소주처럼 서민의 애환이 느껴지는 정서가 있다. 거친 하루를 끝내고 오늘의 근심거리를 집어 삼키듯 꿀꺽 마셔보자.


산토리 가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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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 위스키는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재패니스 위스키의 시조새 같은 존재다. 그 누구도 일본이 위스키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그 시절, 산토리의 창업주 토리이 신지로는 야마자키 증류소를 세운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10년이 넘는 연구를 거듭한 끝내 나온 것이 바로 산토리 가쿠빈이다.

탄산수를 넣은 하이볼만 마셔봤지 산토리 위스키의 맛을 온전히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쿠빈’은 일본어로 사각의 병(角甁)이란 의미다. 각진 네모 모양의 병에 거북이 등을 음각으로 새긴 독특한 병모양이 이 위스키의 특징이다. 맛은 알콜 도수 40도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만큼 부드럽다. 에디터H는 이미 맥주랑 섞은 것처럼 순하다고 표현하더라. 뭐 튀는 것 없이 부드러운 맛을 내는 어쩐지 일본 사람과 많이 닮아있는 맛이다.


제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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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슨은 230년 전통의 아이리시 위스키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판매율 1위를 자랑할 만큼 인기가 있는 술이다. 제임슨이 이렇게 인기가 좋은 이유는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는 맛집의 인기 비결과 비슷하다. 뛰어난 가성비, 누구나 좋아할만한 대중적인 맛 덕분. 위스키 특유의 소독약 같은 맛이 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워 위스키를 처음 마시는 사람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인데, 술좀 하는 에디터H는 위스키 특유의 향이 부족해 재미없다고 하더라. 하지만 난 모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이 고운 위스키를 집에 쟁여두고 밤마다 홀짝홀짝 마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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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늘 시음기는 끝! 치열하게 마시고 난 후의 흔적.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