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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을 마시면서 선물 포장을 하는 날

안녕, 나는 음식과 술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크게 개의치 않고 뭐든 쓰고 찍고 버무리는 에디터 손기은이다. 오늘은 낮샴에 대해 찬양을 조금...
안녕, 나는 음식과 술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크게 개의치 않고 뭐든 쓰고 찍고…

2020. 12. 20

안녕, 나는 음식과 술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크게 개의치 않고 뭐든 쓰고 찍고 버무리는 에디터 손기은이다. 오늘은 낮샴에 대해 찬양을 조금 해보려고 한다. 일 때문에 시음 행사장에 가면 낮 11시에도 샴페인을 여러 잔 마시는 일이 많고, 유럽의 어느 좋은 호텔의 조식 뷔페에 샴페인이 나와 속으로 ’웬 횡재횡재’ 호들갑 떨면서 겉으로는 우아하게 한 잔 넘기는 일도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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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마시는 좋은 샴페인 한 잔은 이상하게 정오가 되기 전 마시는 샴페인 보다 그 맛이 더 선명하고 명쾌하다. 한껏 텐션이 올라와 축배의 잔을 드는 그 기분이 아니라, 진짜 잘 구운 써니사이드업 달걀프라이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떼어먹을 때처럼 기분이 말끔하고 쾌청해진다. 기가 막히게 온도를 잘 맞춘 샴페인이 서브 되면 겨울날 풀 먹인 두꺼운 이불 속에 처음 들어갈 때의 그 온도처럼 차가운 동시에 포근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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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천하는 샴페인베세라 드 벨퐁과 프란치아코르타는 모두 정오가 채 되기 전에 처음 마시고 기억 속에 깊게 박혀 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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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세라 드 벨퐁 샴페인은 최근 국내에 재론칭한 샴페인 하우스로 가스트로노미(Gastronomy) 샴페인을 표방하고 있다. 좋은 음식과 곁들일 때 가장 맛이 빛나는 샴페인이 되기 위해 양조에 심혈을 기울이고 보틀 모양이나 레이블 역시 식탁 위에서 모던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리뉴얼을 거쳤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무릎 위에 바스락거리는 새하얀 냅킨을 올린 채 베세라 드 벨퐁 엑스트라 브뤼를 한 잔 마시는데 또 기분이 청명해지면서 입맛과 혈색이 동시에 확 돌기 시작했다. 따뜻한 고소한 브리오쉬 빵의 귀퉁이를 조금 떼어 함께 먹으니 어제의 음주로 남아있던 숙취도 한 방에 사라졌다. 이 샴페인을 눈앞에 두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기포가 정말 조밀하고 섬세하게 올라오는 걸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기포의 크기를 작게 만들기 위해 샴페인 하우스에서 과학적인 노력을 기울인다고 들었다. 그래야 식사에 곁들이기 더 좋은 한 잔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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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샴페인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프란치아코르타가 있고, 내 기억 속 프란치아코르타 중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은 오전 11시에 마셨던 벨라비스타(Bellavist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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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 시음회가 이른 오전부터 열려서 헐레벌떡 들어갔고, 이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고 정신이 또 번쩍 들었다. 상파뉴 지역에서 기틀을 닦은 와인메이커가 완벽하게 익은 포도를 골라 만드는 와인으로, 응축미가 느껴지는 맛과 힘차고 풍부한 향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이후로도 이 와인이 보이면 꼭 사둔다.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마시기엔 벨라비스타 알마가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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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말연시에는 여럿이 모여 북적이는 홈파티를 열지는 못할 것 같다. 대신 대낮부터 샴페인 한 병을 까고 밤까지 조금씩 마시는 호사를 부려볼 생각이다.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챙기고 이걸 조물조물 포장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이럴 때를 위해 고이 아껴준 박영준(@park.d) 일러스트레이터의 포장지 패턴북을 드디어 꺼낸다. 내가 좋아하는 색감, 텍스쳐가 느껴지는 그림 때문에 평소에도 그의 작품을 계속 들여다봤는데, 이 패턴북은 실컷 들여다보다가 필요할 때 북북 찢어서 포장지로 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상품이다. 어떤 사람에게 무얼 보낼지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일단 샴페인부터 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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