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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아 나와라

10월 31일, 일 년 중 가장 음산한 날을 맞아 이태원으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 수많은 사람들이...
10월 31일, 일 년 중 가장 음산한 날을 맞아 이태원으로 향했다. 무거운…

2016. 10. 31

10월 31일, 일 년 중 가장 음산한 날을 맞아 이태원으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으니까.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고, 디에디트와 더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매년 할로윈을 낀 주말이면 이태원은 말그대로 헬(hell)로윈이 된다]

예상했던 대로 이태원의 모든 거리가 몬스터로 들끓고 있었다. 피를 뚝뚝 흘리는 좀비, 할리퀸과 저승사자가 우리 곁을 휘청대며 지나갔다. 모든 괴물이 신기했지만 무섭진 않았다. 우리 주변에선 이것보다 훨씬 더 기괴한 일들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지않나. 어쩌면 진짜 괴물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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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답지 않게 너무 심각했지? 사실 흥겨운 할로윈 밤이었다. 할로윈(원래는 핼로윈이 맞는 말이지만, 난 도저히 그렇게 못 쓰겠다) 할로윈은 일년 중 음기가 가장 센 날이다. 미처 저세상으로 가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도는 귀신들을 속이기 위해 괴물 분장을 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인 것처럼 꾸미는데서 시작했다. 괴물과 귀신, 그리고 인간이 한데 뒤섞여 거리를 헤매는 음산하고, 기묘한 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마음 속 괴물을 깨워볼까. 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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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두 여자의 컨셉은 ‘월리를 찾아라’.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시너지 효과를 내는 코스튬이다. 빨간색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빨간 모자, 그리고 지팡이 정도만 있으면 되니 가성비 또한 훌륭하다.

에디터H가 단체복 맞추는 곳에서 산 티셔츠는 마치 비닐을 뜯어 만든 것처럼 차갑고 바스락 거리고, 얇았다. 덕분에 난 다음날 감기 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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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터줏대감 같은 ‘더 방갈로’가 할로윈을 맞아 정말 제대로 좀비 하우스를 꾸며놨다는 소식을 들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계단에 피와 내장이 널부러져 있었다. 무슨 놀이동산 호러 하우스에 온 줄. 직원들이 모두 실감나는 좀비 분장을 하고 있어서 화장실도 못 물어볼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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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방갈로의 할로윈 스페셜 칵테일. ‘빨간 물약 마실래, 파란 해골 마실래?’ 에디터H는 마법의 물약을, 난 해골물을 마시고 차가운 밤거리를 쏘다녔다. 술을 마셔 몸이 좀 데워졌다. 자, 이제 거리의 몬스터들을 만나러 가보자.

거리에서 수많은 월리를 만났다. 월리끼리 통하는 동질감. 만나면 일단 하이파이브부터 하고 사진도 찰칵. 위아더 원. 금세 친구가 된다. 마지막 사진 속 외국인은 그냥 티셔츠에 모자만 썼을 뿐인데 왜 제일 월리랑 비슷한 거죠?

할로윈 코스튬에도 스테디셀러가 있다. 정말 매년 수퍼 마리오나 월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년엔 좀 더 과감한 것에 도전해 봐야지. 아무리 봐도 우리의 존재는 무섭기 보단 깜찍하다.

본게임은 지금부터다. 우리가 했던 시시한 코스튬 말고 진짜를 만날 차례다. 이태원 거리에서 만난 깜찍한 괴물들을 만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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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섹시한 악마와 경찰. 하앍하앍]
[오빠 그 망사 스타킹 어디서 났어요? ]
[붉은 다크서클로도, 거무튀튀한 의상으로도 이 커플의 훌륭한 비주얼을 가릴 수 없다]
[이태원에 석촌호수가 떴다]
[응. 언니가 눈깔게. 잘못했쪄.]
[추운 길바닥에 쭈구리고 있던 가오나시들. 꼬물꼬물, 꼬물꼬물.]

[와 나 치킨 달라고 할 뻔. 하얀 피부에 인상까지 고퀄 코스튬]
[인간 파도에 휩쓸리는 와중에 섭외한 ‘귀신 잡는 소녀들’ ]

밤 10시. 모든 촬영을 끝내고, 즉석떡볶이에 소주 한 잔. 이태원은 이제 막 밤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늙고 지쳤다. 괴물의 밤은 젊은이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술이나 마시고 취해보자.

Processed with VSCO with e6 preset[넘나 건전한 디에디트]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