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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M어워즈] 사는 건 우리의 미래다

안녕 에디터M이다. 소비를 말하는 내게 매년 쓰는 어워즈 기사는 일 년 동안의 성적표를 받아 보는 기분이다. 이혜민 학생은 올한해 상당히 부진했군요....
안녕 에디터M이다. 소비를 말하는 내게 매년 쓰는 어워즈 기사는 일 년 동안의…

2019. 12. 25

안녕 에디터M이다. 소비를 말하는 내게 매년 쓰는 어워즈 기사는 일 년 동안의 성적표를 받아 보는 기분이다. 이혜민 학생은 올한해 상당히 부진했군요. 부모님의 각별한 케어가 필요합니다. 어째 별로 산 게 없는 것 같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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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니까 2019 어워즈도 내 마음대로 골라봤다. 인생은 사고 쓰고 사는 일의 반복. 내년엔 조금 더 멋지게 써보리라 다짐하며 에디터M의 2019어워즈 시작한다.


올해의 지름
루이스 폴센 PH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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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목표 중 하나는 독립이다. 솔직히 내 독립에 어떤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다. 나이가 들면 둥지를 떠나는 아기새처럼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서울의 어마무시한 부동산 가격에 좌절하고, 주님 아래 건물주라는 말을 아로새기며 주말마다 부동산 투어를 하고 있다. 그러다 홧김에 아직 구하지도 못한 집에 둘 조명을 샀다.

루이스 폴센의 PH2/1테이블 램프. 학의 다리처럼 고고한 스탠드 위에는 백로처럼 청초한 3중 유리갓은 새의 깃털처럼 우아하게 빛을 뿜어낸다. 1927년의 디자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인 디자인이다. 사진만 봤을 땐 이게?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진짜 좋은 물건은 사진으로는 그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 쓴 좋은 마감과 거기서 오는 물건의 무게는 직접 보고 만져봐야 알 수 있다. 전구도 없이 온(내가 나중에 따로 샀다) 이 램프를 내 방에서 켰을 때 알았다. 아 이건 정말 좋구나. 자, 이제 이걸 둘 집만 구하면 되겠다.


올해의 취향
도레이씨 안경닦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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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진짜 리뷰의 즐거움을 느끼는 건 이런 아이템이다. 아니, 누가 안경닦이를 7천 원이나 주고 사? 이런 생각에 음흉한 웃음을 띄우며 “써보면 그런 말 안 나올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템. 손에 닿고 자주 써서 쓸 때마다 흐뭇할 물건 말이다. 올해 ‘M의 취향’ 베스트는 누가 뭐래도 도레이씨 안경닦이다. 이 얄팍한 천쪼가리는 뿌연 안경부터, 지문 가득한 스마트폰 화면, 기름진 맥북 화면까지 못 닦는 게 없다. 정말 믿고 한 번 써보시라니까. 약장수처럼 보여도 상관없다. 왜냐면 정말 좋으니까.


올해의 발견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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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누군가 에디터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손사래를 치며 말릴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우리가 하는 일을 우아한 정신노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박봉에 머리를 쓰는 일보다 손과 다리가 바쁜 날들이 더 많으니까. 하지만 이 직업에도 분명 좋은 구석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바로 직업의 특성상 전 세계를 여기저기 기웃거릴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출장과 여행의 중간쯤 되는 경험이 일 년에 적어도 서너 번은 된다. 올해도 일본, 모로코, 시칠리아, 파리까지 참 많이도 다녔다.

올해의 여행지로 시칠리아와 모로코 중 끝까지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시칠리아는 에디터H가 언급하지 않을까 싶어 모로코를 골랐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내 리스트니까. 도시 전체가 오렌지색으로 그린 수묵화  같은 건물들과 푸른 하늘 그리고 더 푸른 야자수. 히잡 속에 가려진 따듯한 눈빛과 친절했던 여성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이국적이고 따뜻했던 도시가 눈 앞에 있다. 낯선 도시 모로코는 과히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언젠가는 꼭 다시 한번 그곳에 가고 싶다.


올해의 술
릴레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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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술이라… 매년 어워즈를 뽑으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항목이다. 리뷰했던 수많은 술들 중에서 어떻게 단 하나만 뽑는단 말인가. 나는 그 모두를 각각 다른 이유와 기분으로 사랑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결국 올해의 술은 릴레 블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술 취향이 조금씩 다른 디에디트 사무실에서 가장 빠르게, 몇 병이나 소비되었던 술이니까.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난 포도를 베이스로 한 이 우아한 식전주는 언제 마셔도 딱 적당하게 달콤하고 향긋하다. 얼음을 가득 부은 잔에 알코올 도수 17도의 릴레 블랑을 가득 부어 마시면 싱그러운 백도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어워즈를 핑계로 릴레 블랑을 사기 위해 이마트에 들렀는데 아쉽게도 품절. 더 유명해지기 전에 부지런히 마셔둬야지.


올해의 띵템
드롱기 프리마돈나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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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물어본 건 아니지만. 디에디트의 직원들의 복지 만족도는 드롱기의 프리 마돈나 엘리트를 들이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데에 내 통통한 손가락을 걸겠다. 우리는 커피를 참 많이도 마신다.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또 한 잔, 그리고 오후에 또 한 잔. 심지어 가끔 권PD는 퇴근길에 테이크 아웃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버튼 한 번으로 고소하고 향긋한 향이 솔솔 나오는 커피가 바로 나오는 전자동 커피머신이란 얼마나 빠르고 아름다운 행복인지. 핸드드립의 느림의 미학도 좋았지만 역시 우리는 문명의 노예. 원두만 넣으면 에스프레소부터 오래 내려 마시는 롱커피까지 뚝딱 내려주는 드롱기 프리마돈나 엘리트를 올해의 디에디트 사무실 띵템으로 뽑겠다. 덕분에 매일매일이 참 편했다. 그동안 우리가 내린 커피 값만으로도 벌써 400만 원이란은 뽕뽑았지. 다만,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나도 못 하는 생수로 샤워를 하는 사치스러움과 영상만 찍으면 자꾸 윙윙대는 통에 가끔 미울 때도 있긴 하지만 이젠 이거 없인 못 산다.


올해의 대화
디에디톡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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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나에게 좀 외로운 해였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결혼해 한평생 절친이 생겼고 덕분에 별다른 약속 없이 금요일 밤을 보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친한(이게 포인트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에너지를 얻고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는 나에겐 퍽 서운한 일이다. 오늘 나눈 대화가 어땠는지는 집에 돌아가는 길 발걸음의 가벼움에서, 샤워 물줄기 아래의 혼잣말에서, 자려고 누운 이불의 무거움으로 알 수 있다.

올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대화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김하나 작가와의 대화다. 만나서 직접 대화를 한 건 아니지만, 함께 살고 있는 황선우 작가와의 관계가 상황이 에디터H와 나와 너무 비슷해서 박수를 짝짝 치며 타자를 쳤다. 결혼도 싱글도 아닌 ‘조립식 가족’이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의 인생을 있는 힘껏 응원한다.


올해의 이차
백억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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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에디터H와 함께 참 많이도 걸었다. 누가 내 목덜미로 숨을 뱉어내는 것 같은 습한 공기 사이로 휘적휘적 두 팔을 힘차게 가르며. 그날도 그랬다. 성수의 불 꺼진 공장촌 사이로 힙의 바이브가 뿜어져 나오는 수상한 가게를 발견하고 우리는 홀린 듯이 그곳에 들어갔다. 조악한 방수포로 어설프게 마련한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흥겨운 얼굴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낮에는 세차장 밤에는 포장마차로 변신하는 이곳의 이름은 백억포차.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고추장찌개를 파는 곳. 추천메뉴는 ‘청어알 젓갈과 두부’. 구멍이 송송 뚫린 돌김에 담백한 두부와 아삭한 오이 그리고 짭짤한 청어알 젓을 싸서 먹으면 행복이 이런 거구나 싶다. 그날 이후로 성수에서 2차는 항상 백억포차다. 넷이서 배가 터지고 얼큰하게 취하도록 시켜도 10만 원이 안 나오니 가성비도 어찌나 훌륭한지.


올해의 카메라
아이폰11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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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감성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이폰11 pro는 좋아도 너무 좋다. 시칠리아에서 4천 200만 화소의 소니 R3로 사진을 많이 찍기도 했지만, 기억하고 싶은 순간엔 손이 가는 건 아이폰이었다. 취약했던 저조도 촬영도 야간사진 모드로 극복하고, 인덕션이니 환공포증이니 말이 많았던 3개의 카메라지만 난 뭐 이렇게 사진이 잘 나오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용서해줄 수 있다. 게다가 아이폰 뒷면이야 잘 보지도 않는걸. 아무래도 나에게 아이폰11 pro는 올해의 스마트폰이라기보다는 올해의 카메라에 가까운 것 같다.


올해의 PPL
케이스티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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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조회 수를 뽑는다면, 무려 196만 뷰를 자랑하는 아이폰 꿀팁 영상이다. 에디터H의 깨알 같은 꿀팁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다름 아닌 H가 사용하고 있는 케이스였다. 오죽하면 디에디트 연관검색어가 ‘디에디트 케이스’로 바뀔 정도 였을까. 어느 날 거짓말처럼 에디터H와 내가 각각 다른 문구로 스팽글 케이스를 주문했다. 차이가 있었다면, 나는 EDITOR M을 새기고 에디터H는 회사 이름을 새겼다는 것. 놀랍게도 광고도 협찬도 1도 없이 내돈내산 케이스다. DHL과 콜라보를 하고, 스마트폰 케이스에 비행기 티켓을 입히고 이들의 힙은 끝이 없다. 아마 봄에 난 또 케이스티파이를 지르게 되겠지. 보고 있나? 케이스티파이?


올해의 향
인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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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땐 여전히 인센스에 불을 붙인다. 독한 향이 열어둔 창틈 사이로 빗물처럼 빨려 나가며 방 안에 남는 은은한 잔향은 즐기는 일은 주말 오전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이런저런 인센스를 사용해봤지만 이상하게도 아직까지도 질리지 않고 꾸준히 사용하는 건 나그참파다. 부담 없는 가격 때문에 언제나 집에 몇 박스씩 쟁여두고 쓴다.


올해의 생산성
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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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는 글을 쓰는 일보다 정산을 하는 일이 더 많았다. 게임 미션처럼 맥락도 주어지는 일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자니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싶고.. 사람은 생각하고 도구를 쓰는 동물이렸다.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좋다는 생산성 앱을 닥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나에게 최고의 능률을 선사한 앱은 역시 노션이다. 다사다난했다가 성대하게 끝났던 디에디트 3주년 파티 준비도 노션으로 했고, 기사 리스트 작성도 노션으로 한다. 요즘 노션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곳도 많이 보인다. 리디페이퍼는 사용자 가이드를 노션으로 만들어서 뿌렸고, 요즘 핫한 크리에이터를 위한 멤버십 커뮤니티 코사이어티는 노션으로 일정과 참가  신청을 받더라. 이를 본받아 내년엔 디에디트도 업무에 노션을 적극 활용해볼까 생각중인데…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고민 중이다. 만약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면 여기를 참고해보자.


올해의 영상
대표의 삶

이 영상을 올해의 영상으로 꼽은 건 순전히 여러분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다. 직원들은 날 싫어하지도 어려워하지도 않으며 여기에 있는 건 다 연출된 거짓이다!

사실은 고맙다. 삼삼오오 바다로 미식  투어로 심지어 에디터H마저 시내로 나갈 계획이 있던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인턴 잭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영상을 기획하고 하루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고 편집했다. 카메라를 끄고 카페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싫은 척했지만 사실은 꽤 즐거웠다.

시시각각 우리의 모습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계속 포스팅해준 우리 인턴 에이미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우리의 멋진 에이미는 지금 암스테르담에서 멋진 삶을 이어가고 있다.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는 시칠리아 한 달 살기는 청춘처럼 서툴고 푸르고 반짝였다.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