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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B어워즈] 욕심 없는 남자

안녕, 에디터B다. 올 한해도 절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항상 그랬고, 언제나 그랬듯이. 포장을 뜯는 순간부터 “그래 이거야!”하던 물건도 있었고, 중고나라에...
안녕, 에디터B다. 올 한해도 절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항상 그랬고, 언제나 그랬듯이.…

2019. 12. 24

안녕, 에디터B다. 올 한해도 절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항상 그랬고, 언제나 그랬듯이. 포장을 뜯는 순간부터 “그래 이거야!”하던 물건도 있었고, 중고나라에 올리기 귀찮아서 방치해놓은 아이템도 있었다. 심지어는 몇 개월째 택배 박스도 뜯지 않은 물건도 있다.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샀다가 하루 만에 궁금증이 사라져버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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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을 하면 나의 방탕한 소비습관을 마주해야 하기에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부디 아버지와 어머니 등 일가친척이 이 글을 읽지 않으면 좋겠다. 이번 해에도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잘 사고 싶다고 소원을 빌어본다. 그것말고는 다른 욕심이 없다.


올해의 출력장치
카카오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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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제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지각하지는 않을까? 만약 카카오 미니가 없었다면 매일 밤 이런 고민을 안고 잠들었을 거다. 카카오 미니의 출력은  7W로 스피커치고는 크지 않지만 알람 시계로 쓰기엔 큰 편이다. 알람음은 멜론에 등록된 노래 중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서태지의 ‘울트라매니아’ 같은 곡으로 해놓으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기능은 멜론을 쓰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 단, 미리듣기 정도의 길이만 나온다. 이것도 큰 단점은 아니다. 어차피 모닝콜로 쓸 거라면.

잠에서 깬 다음에는 알람을 끄기 위해 음성으로 제어해야 한다. “카카오야, 그만”이라고 내 입으로 내뱉어야 한다는 거다. 그 뒤로는 라디오를 틀어달라고 하고, 날씨를 알려달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잠은 더 멀리 달아난다. 인식률이 좋아서 답답할 일이 없다. AI스피커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모닝콜이라니, 활용도가 대단치 않다고 느낄 수 있지만 분명 삶의 질은 올라갈 거다. 2020년부터 절대 지각하지 않고 싶다면 카카오 미니를 가까이 두자.


올해의 신발
디스커버리 버킷디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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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버스로 30분쯤 되는 거리는 그냥 걸어간다. 매번 그러는 건 아니다. 술 한잔해서 찬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거나 팟캐스트가 그날따라 더 재밌으면 걷곤 한다. 이런 이유로 평소 발이 편한 신발을 선호한다. 언제 어떤 이유로 걷고 싶어질지 모르니까. 지금까지 가장 만족스러웠던 운동화는 아식스 젤카야노 트레이너인데 헬스장에 3개월치 이용료와 함께 기부하고 왔다. 어차피 구멍 난 신발이었다. 재구매하려다 보니 시국이 그래서 다른 제품을 찾게 되었다. 대안으로 찾은 게 디스커버리 버킷디펜더다. 아식스 젤카야노가 편했던 이유는 신발 내부가 슬립온 형태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버킷디펜더 역시 마찬가지다. 덕분에 신발끈을 꽉 멜 필요도 없고, 발 전체를 감싸는 착화감이 좋다. 디스커버리에서는 여행 및 산행도 가능한 트레블 워킹화로 소개하고 있다. 굽이 있는 편이라 산행에 좋은지 잘 모르겠다. 기능적으로 더 훌륭한 신발은 많겠지만 어글리슈즈의 투박한 매력, 블랙이 주는 멋스러움 그리고 키높이 효과까지 갖춘 신발은 찾기 힘들 거다.


올해의 과자
쫄병스낵 짜파게티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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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처럼 생긴 과자를 좋아한다. 뿌셔뿌셔를 좋아하고, 쫄병스낵도 좋아한다. 언젠가 GS편의점에 갔는데 쫄병스낵 옆에 비슷하지만 낯설게 생긴 과자가 또 있더라. 짜파게티맛 쫄병스낵이었다. 맛은 모두가 아는 짜파게티 맛. 혹시 짜파게티를 부셔먹어봤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보다 좀 더 과자 같은 맛이랄까. 짜파게티를 부셔먹어도 맛있으니 재정적 여유가 된다면 시도해보면 좋겠다. 이 과자의 유일한 단점은 판매처가 흔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참고로 올해의 과자 분야에서 끝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제품이 있는데 천하장사 더블링 콰트로 치즈다. 소시지를 한 입 베어먹으면 치즈 폭포가 쏟아진다. 비유가 아니다 진짜 쏟아진다.


올해의 티셔츠
라이프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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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나는 라이프(LIFE) 티셔츠를 입기 전과 입은 후로 나눌 수 있다. 그 정도로 이 티셔츠를 자주 입었다. 정확히는 라이프 아카이브(LIFE Archive)의 티셔츠. 순전히 라이프 매거진이 소재가 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좋아해서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빨간 로고만 보면 구매욕이 샘솟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전에 썼던 이 기사를 보면 좋겠다. 설명이 너무 길어질 것 같거든.

아무튼 처음에는 검은색 티셔츠 한 장을 샀다. 그 다음에는 흰색과 회색을 한 장씩 더 샀다. 그리고 며칠 뒤 세 장을 또 샀다. 그 다음에는 슬링백을 사고, 백팩을 사고, 토트백을 샀다. 시칠리아 한 달 살기 영상을 보면 내가 지나칠 정도로 라이프 티셔츠를 많이 입고 나오는데 그거밖에 안 가져가서 그런 거다. 가격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그런 무책임한 브랜드가 아니다. 헤비코튼을 사용해서 더 두껍고 짱짱하다. 티셔츠에는 라이프 매거진에 실렸던 사진이 크게 들어가있다. 소장하는 재미가 있다. 내년에는 어떤 티셔츠를 만들어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


올해의 노동요
고상지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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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노동요는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모든 음악이다. 방금 이 문장이 낯설게 느껴질 거다. 고상지? 반도네오니…뭐? 이런 반응, 익숙하다. 고상지는 사람 이름이고 반도네온은 악기 이름이다. 탱고에 많이 사용되는 아코디언을 닮은 손풍금, 연주법이 너무 어려워서 악마의 악기라고도 불리는 악기가 바로 반도네온이다. 고상지의 음악은 연주곡이기 때문에 가사가 없으며 격정적인 연주가 많다. 노동요로 듣기에 좋은 이유다. 내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추천하는 것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고상지, 두 번째는 치하오 치킨이다.


올해의 치킨
BHC 치하오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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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나는 치하오를 알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농담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맛있다. 밤 늦게 혼자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해물찜이나 대방어나 족발까지, 모두 혼자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같이 먹어야 더 맛있다. 신기하게도 치킨이라는 메뉴는 혼자 먹어도 맛있는 메뉴다. 가끔은 혼자 먹어야 더 맛있을 때도 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치하오 치킨이 맛있다며 주변에 홍보를 하는데 양념은 중국식 고추기름인 라유와 흑식초를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붉은 때깔을 보면 양념치킨과 다를 바 없지만 양념치킨이 단맛과 약간의 매콤함이 전부라면 치하오는 단맛을 덜어내고 매운맛을 메인으로 살렸다. 그리고 맵기만 한 게 아니라 뭔가 맛있게 매운데?라는 인상을 준다. 아마 흑식초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흑식초만 먹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몇 개월 전 망상해수욕장 옆에 있는 BHC 매장에서 처음 먹었는데 그때는 바삭한 튀김옷이었고, 서울에 와서 배달을 시켜먹으니 튀김이 양념을 먹어 약간 물러졌는데 둘 다 맛있다.


올해의 부러움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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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성격이 아니다. 가족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행복한 부부 생활? 화목한 가정 생활? 별로 부럽지 않다. 아니, 관심이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는 꽤나 대단했던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오손도손하고 화목한 가정이 부러워졌다.

이 책은 배우 봉태규가 쓴 에세이다. 그는 포토그래퍼 하시시 박과 결혼해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에세이는 봉태규의 시선에서 바라본 가족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그가 서툰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권위적이지 않고, 아들에게 아버지보다는 친구가 되고 싶어하고, 개인주의적이며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려 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 그리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속마음이 담긴 에세이를 읽으며 내 모습도 한 번 그려보게 되었다. 화려한 문체로 눈을 휘어잡는 에세이도 많지만, 나는 그쪽보다는 수수하고 솔직한 글에 더 끌린다.


올해의 입력 장치
한성 무접점 블루투스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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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나는 무접점 키보드를 쓰기 전과 쓰고 난 후로 나눌 수 있다. 이번엔 진짜다. 무접점 키보드를 처음 쓴 건 재작년이었다. 한성컴퓨터 제품이었는데 습기 관리를 잘못한 탓인지 고장이 났다. 고쳐보려 했지만 금세 다시 고장났다. 보통 무접점은 도각도각하며 초콜릿 부러뜨리는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한성은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키감에 중독된 채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 그 다음에는 레오폴드 제품을 만났다. 그 키보드는 지금까지도 쓰고 있지만 쓸 일이 많이 없다. 디에디트에서는 업무용으로 맥북을 쓰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하다. 키보드와 터치패드를 오가는 동선이 꼬인다. 요즘에 쓰는 키보드는 한성 무접점 블루투스 키보드다. 이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무접점 키보드가 전무했다. 해피해킹이 있었지만 가격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말 한성 땡큐다. 스마트폰, 태블릿 어디에나 잘 붙기 때문에 요즘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에 글 쓸 때 애용하고 있다.


올해의 잡지
혼라이프 매거진 베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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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잡지는 아니다. 올해 창간한 잡지 중 가장 인상 깊었고 앞으로 발행할 이슈가 더 기대되는 매거진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베뉴는 라이프스타일 잡지다. 보통 라이프스타일 같은 모호한 용어를 쓰면 패션 잡지인 경우가 많은데 이 잡지는 패션 매거진도 아니고 뷰티 매거진도 아니다. 도시에 사는 싱글의 삶을 다루는 혼라이프 잡지다. 매 호마다 하나의 도시를 정해 1인 가구의 삶을 탐구하는데, 지금까지 서울, 상하이, 베를린을 다뤘다. 취재 대상이 전 세계 도시인이라는 것도 흥미로운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베뉴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베뉴의 디렉터로 참여하는 박지호 전 아레나 편집장은 ‘유에스오 서울’(@uso_seoul)이라는 공간을 최근에 오픈했다. 예전부터 박 전 편집장이 구현하고 싶었던 ‘잡지의 공간화’를 시도한 곳이라고 하니 나같은 잡지애호가의 마음은 콩닥콩닥 거린다.


올해의 리빙템
미스터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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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뻥이라니, 디에디트에서 뚫어뻥을 추천하다니.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대단한 제품이길래 추천하는 걸까 궁금하지 않나? 처음 입주했을 땐 멀쩡해보이는 집도 시간이 흐르면 하나둘씩 고장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변기가 막히는 건 큰 스트레스. 막히는 일은 생각보다 잦다. 게다가 혼자 산다면 누구에게 대신 해결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다섯 개 정도의 제품을 써봤는데 미스터펑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보통의 뚫어뻥은 직접 손으로 밀어 공기의 압력을 만드는 방식이지만, 미스터펑은 탄산 실린더를 넣어 압력을 만들어낸다. 변기 안에 총을 쏜다고 생각하면 된다. 실린더를 안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반동이 생길 정도로 강한 탄산이 나오며 모든 것들을 저 배수구 너머로 보내버린다.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없었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변기와 관련된 스트레스는 없을 거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