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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 프로 써보니까 좋아?

안녕, 여러분. 유럽 순회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에디터H다. 이탈리아 남부의 섬, 시칠리아에서의 한 달살기는 여러모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름다운 정원에 반해...
안녕, 여러분. 유럽 순회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에디터H다. 이탈리아 남부의 섬, 시칠리아에서의…

2019. 11. 06

안녕, 여러분. 유럽 순회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에디터H다. 이탈리아 남부의 섬, 시칠리아에서의 한 달살기는 여러모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름다운 정원에 반해 예약한 우리 숙소는 그야말로 촌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가까운 슈퍼가 없어 30분을 걸어가야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했다. 문밖으로 3분만 걸어 나가면 지중해가 넘실거리는 삶이라니. 해가 지고 나면 거짓말처럼 온 동네가 고요해졌다. 가끔 짖어대는 옆집 개가 아니라면 세상이 멈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조용했다.

한 달 동안 이탈리아 시골 동네의 삶에 젖어있다가 에어팟 프로를 사러 프랑스 파리에 들렀을 때, 제일 먼저 의식하게 된 변화는 소리였다. 귀를 긁고 지나가는 온갖 종류의 소음들. 사람들의 목소리, 자동차 배기음,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 구두 소리, 전화 벨소리. 도시란 원래 이렇게 시끄러운 곳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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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촬영지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에어팟 프로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왼쪽 귀에 하나, 오른쪽 귀에 하나. 연결음 또롱. 그 순간, 거짓말처럼 소음이 멀어졌다. 내 옆으로는 여전히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모든 소리가 멀찍이 희미하게 들렸다. 마치 우주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영화 장르가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그래비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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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에어팟 프로 개봉 소감은 이렇듯 강렬했다. 애플이 웹사이트에 써놓은 에어팟 프로 홍보 문구가 그제야 생각났다. “귀에 뭔가를 착용했다는 감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롯이 당신과 음악만 남게 되죠.” 이 낯간지러운 문구가 절반 정도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애플이 노이즈 캔슬링을 넣은 인이어 헤드폰이 출시하고 ‘프로’라는 수식어를 붙였길래 “돈을 더 받겠다는 뜻이군!”하고 삐딱하게 생각했건만 이런 물건을 만들어낼 줄이야. 이쯤되면 스마트폰보다 이어폰을 더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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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WF-1000XM3, 오른쪽 에어팟 프로]

솔직히 기대가 없었다. 내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원데이 투데이 써본 게 아니다. 기본적인 원리는 다 똑같다. 헤드폰에 달린 마이크로 외부 소음을 측정한 다음에, 그 노이즈와 반대되는 음파로 상쇄간섭을 일으켜서 소음을 줄이는 기술이다. 본래 비행기 소음을 상쇄시키는 파일럿용 헤드폰으로 개발된 기술이기도 하다. 주변 소음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당연히 매혹적인 기능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헤드폰이 노이즈 캔슬링을 지원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기능만큼 헤드폰 부피가 커지고, 배터리 소모가 커지며, 단가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작은 크기 탓에 항상 배터리 문제에 시달리는 완전 무선 이어폰에게 노이즈캔슬링은 쉽지 않은 숙제였다. 여태껏 시중에 나와있는 완전 무선형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중에서 쓸만한 건 아마 소니 WF-1000XM3가 유일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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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WF-1000XM3, 아래 에어팟 프로]

WF-1000XM3도 잘 만든 제품이지만 나한테는 착용감이 살짝 무거웠다. 귓구멍이 좁은 편이라 인이어만 끼면 이압이 높아져서 통증이 느껴지는 증상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어팟 같은 오픈형을 선호해왔다. 나라고 인이어의 단정한 차음성이 싫었던 게 아니다. 착용감이 문제였다. 제품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완벽하게 편하다 싶은 인이어 제품은 잘 없더라. 그런데 에어팟 프로에는 팁 안쪽에 아주 작은 구멍이 나있다. 귀가 먹먹한 현상을 줄여주는 통풍구다. 이 통풍구로 귀 안쪽의 기압을 균일화해주기 때문에 이압이 높아지는 현상이 없다고. 고작 구멍 두 개 뚫어놓고 이렇게 거창하게 표현하다니… 앱등이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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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사용해본 결과 놀랍게도 진짜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지만, 이어팁이 귀와 꽉 맞물려 안쪽에 압력이 느껴지는 현상이 많이 줄었다. 착용감도 가벼운 편이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뛰어봐도 빠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고정된다. 물론, 인이어치고 가벼운 거지 오픈형인 에어팟 2세대 제품과 비교한다면 훨씬 묵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에어팟 프로를 착용하고 테스트 중이다. 1시간 넘게 음악을 들어봤는데 평상시에 인이어 이어폰을 착용했을 때에 비해 귀에 느껴지는 압박감이나 통증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귀에 착용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의 자연스러움은 아니다. 다른 제품과 비교해 확실히 착용감이 가벼운 편이지만, 인이어를 불편해하는 타입이라면 구입 전에 테스트해보는 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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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 프로는 기본으로 장착된 이어팁 외에 스몰 사이즈와 라지 사이즈의 이어팁이 추가로 들어있는데, 나는 스몰로 교체해 사용하면 좀 더 압박이 덜하고 편하더라. 다만 차음성도 줄어드는 느낌이라 어느 쪽이 좋은지는 계속 사용하며 테스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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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착용했을 때는 블루투스 설정에서 ‘이어팁 착용 테스트’를 해보자. 가장 잘 밀착되고 음향이 선명하게 들리는 이어팁 사이즈를 선택하기 위한 테스트다. 나의 경우엔 S, M, L 세 가지 사이즈 모두 ‘밀착 정도 양호’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아 크리티컬한 사이즈 차이가 아니고서야 용인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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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 캔슬링 성능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양쪽 이어버드를 착용하고 0.5초 쯤 지나면 귀 주변에 막이 씌워지는 것처럼 소리가 차단되는 게 느껴진다. 생활 소음을 걸러내는 솜씨가 상당하다. 자동차 배기음이나 에어컨,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 노트북 팬 돌아가는 소리 등 익숙해서 의식하지 못하던 화이트 노이즈를 놀라울 만큼 걷어낸다. 오히려 완벽하게 차단되지 않는 사람 목소리나 타자치는 소리 등이 두드러지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당연히 대중교통에서 들리는 소음에도 효과적이다. 외부 소리도 잘 잡지만, 내 안에서(?) 생기는 소음도 확연히 줄여준다. 이를테면 귀 안에서 이어팁이 부스럭 대는 소리나 얼굴을 움직이며 귀 안에서 발생하는 소리 같은 것들. 노이즈 캔슬링을 끄고, 켜며 비교해봤을 때 이런 내부 소음들이 효과적으로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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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자. 에어팟 프로에는 2개의 마이크가 있다. 외향 마이크가 주변 소리를 감지해 환경 소음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반대 소음을 발생시켜 주변 소음이 사용자의 귀에 들리기 전에 차단 시킨다. 또, 귀를 향한 내향 마이크가 잔여 소음까지 차단해준다. 사실 이건 기본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 노이즈 캔슬링 작업이 초당 200회에 걸쳐 끊임없이 주변 소음에 적응하고 그에 맞게 대응한다는 사실이다. 초당 200회라니. 그 사이에 끊임없이 내외부에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고 튜닝한다는 뜻이다. 엄지 손톱보다 조금 큰 유닛에 이 정도 작업을 해낼 수 있는 프로세서가 들어가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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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에어팟 2세대, 오른쪽 에어팟 프로]

에어팟 2세대와 에어팟 프로를 비교해보면 생김새도 많이 달라졌다. 일단 마이크가 달린 막대 부분의 길이가 훨씬 짧아졌다. 유닛 자체로만 보면 오리 주둥이처럼 생긴 에어팟 프로가 훨씬 볼썽사납지만, 막상 착용해보면 노출되는 부분이 적어 오히려 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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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를 잘 살펴보면 움푹 들어간 부분이 보인다. 이 전에는 이어버드를 살짝 두드리는 조작으로 전화 받기나 다음 곡 같은 간단한 조작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 부분에 포스 센서가 들어갔다. 손가락으로 꼬집듯이 살짝 잡아 누르면 미세하게 딸깍거리는 반응이 느껴진다. 이 조작으로 전화를 받거나 재생 목록을 넘길 수 있다. 두 번 누르면 다음 곡, 세 번 누르면 이전 곡인데 자꾸 세 번 중에 한 번이 덜 인식되어 재생 정지가 되는 일이 많다. 적응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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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를 길게 누르는 조작으로 노이즈 캔슬링 활성화 여부를 전환할 수 있다. 에어팟 프로는 총 3가지 소음 제어 옵션을 제공한다. 노이즈 캔슬링을 활성화한 ‘노이즈 감쇠’ 모드와 노이즈 캔슬링 ‘끔’ 모드, 주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노이즈 수용’ 모드다. 노이즈 캔슬링 단계가 따로 조절 되지 않는 것은 다소 아쉽다.

대신 노이즈 수용 모드에서 주변음 모드가 상당히 깨끗하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편이다. 다른 노캔 제품의 주변음 모드는 인위적으로 주변 소리를 확성기로 틀어주는 것 같아서 잘 쓰지 않는데, 에어팟 프로는 밸런스가 꽤 훌륭하다. 조용한 실내에서는 노이즈 캔슬링 ‘끔’ 모드도 나쁘지 않다. 이어팁으로도 어느 정도 차음이 되기 때문에 노이즈 캔슬링을 활성화하지 않으면 배터리 시간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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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스펙상 에어팟 프로의 음악 재생 시간은 최대 4시간 30분이다. 5시간인 에어팟 2세대에 비해 30분 정도 줄어든 시간이다. 노이즈 캔슬링을 활성화한 상태에서 측정한 시간이기 때문에, 노이즈 캔슬링을 비활성화하고 사용하면 에어팟 2세대와 똑같이 최대 5시간 동안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통화시간은 오히려 늘었다. 에어팟 프로 기준 최대 3시간 30분, 에어팟 2세대는 최대 3시간이다. 다 좋은데 장거리 비행에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대신 사용하기엔 에어팟 프로의 배터리 시간이 아쉽다.

아직 에어팟 프로의 모든 것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일주일간 써본 느낌으로는 호들갑스러운 칭찬을 참기 어렵다. 만나는 사람마다 “에어팟 프로 좋아?”라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대박이야”라고 답했다. 왜냐면 대박이니까. 애플이 하반기에도 에어팟 장사로 한 밑천 마련할 것 같다. 물건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통화품질이나 음질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리뷰를 전하겠다.

도시는 너무 소란스럽다. 에어팟 프로와 함께 시끄러운 서울 생활에 다시 적응 중인 에디터H의 개봉기는 여기까지.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