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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다이어리] 디지털의 잠 못 이루는 밤

하루 평균 스마트폰 화면을 깨우는 횟수가 135번에 달했다
하루 평균 스마트폰 화면을 깨우는 횟수가 135번에 달했다

2018. 11. 08

오늘도 퇴근이 늦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의 강변북로는 아우토반이 따로 없다. 난폭하게 내달리는 택시 뒷자리에서 다짐한다. 내일은 절대 이렇게 늦게 들어가지 말아야지. 집에 가서 빨리 씻고 자야지. 온몸이 아프다. 빨리 눕고 싶다. 눈이 감긴다.

오후 내내 무너져내릴 듯 무거운 눈꺼풀이었는데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놀라울 만큼 가벼워진다. 물기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말릴 틈도 없이 아이폰을 찾는다. 미묘한 기대감을 갖고 화면을 들여다본다.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는 설명하기 힘들다. 당연한 얘기지만 샤워하기 전의 세상과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소셜 미디어에 몇 개의 의미 없는 포스팅이 추가됐을 뿐이다. 평양냉면이나 고양이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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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나의 짧은 밤은 잠들지 못하고 드넓은 세상을 헤매기 시작한다. 모든 신경을 엄지손가락에 집중하고, 그저, 들여다본다. 신혼인 친구 부부의 저녁 상차림이 어땠는지, K의 꽃집엔 얼마나 많은 손님이 들었는지, 내가 팔로우하는 귀여운 언니의 새 부츠는 얼마나 근사한지. 그러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페이지도 들쑤시고 다닌다. 미국에서 최초의 여성 무슬림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했다는 기사를 읽고 입을 떡 벌린다. 웹툰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넷플릭스. 그 다음엔 유튜브를 연다. 얼굴이 뽀얀 소녀 셋이 앉아 메이크업을 하며 까르르 웃고, 어떤 사람은 라면 다섯 개를 끓여 단숨에 국물까지 비워낸다. 유튜브 구독 목록을 한 바퀴 돌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이번엔 쇼핑이다. 며칠째 마음속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결제하지 못한 무스탕의 상품 후기를 꼼꼼하게 확인한다. 결국 오늘도 결제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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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재미도 없다. 손에서 놓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이대로 잠들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직 이 작은 화면 속 세계에 내가 확인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초조함. 결국 ASMR 유튜버의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다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메일과 페이스북, 유튜브 앱을 차례로 연다. 양치를 하면서도 손에서 폰을 놓지 않는다. 출근길에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엔 출근길 택시에서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그러시더라. 손님 잠깐만 밖에 좀 보세요. 단풍은 지금 잠깐이에요. 기사님이 허허 웃으시는 소리에 바깥을 봤다. 성내천을 따라 노랗게 익은 은행나무가 가득했다. 창문을 열어 사진 한 장 찍으려는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단풍보다 중요한 업무 전화였다.

얼마 전 디지털기기의 의존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읽은 적이 있다. 1,00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설문에서 82.8%가 ‘우리 사회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하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디지털기기 중독이라 진단하고, 디지털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답한 사람도 조사 대상의 절반 이상인 54.7%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세상 사는 모습은 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수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렸다. 놀이터를 뛰어놀던 아이들이 작은 게임기를 더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말세가 된 건 아니다. 이 모든 변화에 섣불리 ‘중독’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냉정하게 관찰한 결과 나의 증상은 중독에 가까웠다. 아니, 중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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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확인했던 스크린타임 화면]

이 사실을 정확하게 깨달은 계기는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 iOS12에 추가된 스크린타임 기능이었다. 이름처럼 사용자가 화면을 활성화해둔 시간을 기록해주는 기능이다. 제일 처음 받아본 성적표(?)는 충격 그 자체였다. 겨우 오후 2시. 자정부터 카운트해서 14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내가 아이폰을 들여다본 시간은 5시간 33분이었다. 넷플릭스 1시간 26분, 유튜브 1시간 20분, 페이스북 58분, 레진 코믹스, 인스타그램… 밤새 잠을 참아가며 폰을 뒤적대고 다닌 결과였다. 7일 치 평균 통계를 받아봤을 땐 더더욱 기가 막혔다. 페이스북을 그렇게 오래 했을 줄이야. 아무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피드를 그렇게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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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스마트폰 화면을 깨우는 횟수가 135번에 달했다. 알람은 하루에 126개씩 울린다. 끔찍한 숫자였다. 업무 시간엔 대부분 맥북을 사용한다는 걸 고려하면 상황은 더더욱 심각했다. 내가 디지털기기가 없이는 1분도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뜻 같았다.

스마트폰 중독이나 게임 중독에 대한 화두는 한국에서만 뜨거운 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의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당연히 IT 기업들의 책임론이 대두됐다. 기업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면 주가에도 영향을 준다. 안팎으로 압박받던 IT 기업들이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솔루션을 내놓기 시작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P에 사용자가 어떤 앱을 얼마나 쓰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마련했다. 어떤 시간대에 주로 사용하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앱마다 사용시간을 제한할 수 있고, 스마트폰 화면의 불빛이 취침을 방해하지 않도록 흑백모드로 바꿀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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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모르고 있지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앱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다. 유튜브 설정에서 ‘시청 중단 시간 알림’을 활성화해두면, 내가 설정한 알림 빈도마다 잠깐 시청을 쉬어가자는 메시지가 표시된다. 인스타그램 역시 하루 평균 얼마나 앱을 이용하는지 그래프 형태로 보여주고, 설정한 시간마다 사용 시간에 대한 알림을 전송할 수 있게 했다.

흥미로운 일이다. 여태까지 모든 제조사와 플랫폼 공급자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제품을, 우리 서비스를 더 많이 쓰게 할까?’를 골몰해 왔는데 이제 그 반대를 연구해야 하니 말이다.

애플의 스크린타임도 그중 하나다. 사용자의 스크린타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특정 앱 카테고리에 대해 일일 사용 시간을 제한하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는 시간을 설정해두도록 했다. 특히 부모가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기능이 각광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강제적인 방법보다 내게 효과적인 건 통계 자체였다. 오늘의 사용 제한 시간이 끝났다는 알림이 울려도 나는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하지만 하루에 7시간 넘게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는 ‘수치’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밤마다 손에서 폰을 놓고 싶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내 모습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기술은 죄가 없다. 스마트폰은 훌륭하다. 좋은 제품을 쓰며 내 삶에도 좋은 변화가 많았다. 아이패드와 애플펜슬로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했고, 영상 편집을 배웠다. 글만 쓰던 시절보다 유튜브를 시작하며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인스타그램에서 캐나다로 이민간 친척 언니의 다정한 소식을 본다. 여행지에서 아이폰으로 근사한 사진을 찍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나누고, 메시지를 보내고, 어디서나 중요한 업무를 볼 수 있다. 10년 전에 꿈꾸던 미래 세상에 살고 있다. 기술이 내게 제공하는 것들은 얼마나 달콤한가.

그러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하다면 그에 맞게 오래 쓰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즐겁지 않고,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않은데, 디지털기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불안함은 나쁘다. 잠들지 못해 피곤한 눈을 억지로 비벼뜨며 6인치 화면 속 세상에 과의존 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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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의식적으로 ‘오늘은 잠깐만 보고 자야지‘하며 다짐한다.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다. 졸리면 자고, 더 이상 볼 것이 없으면 폰을 내려두는 습관을 가지려고 한다. 지난주보다 36%가량 줄었다는 내 스크린타임을 보니 약간 흐뭇해진다.

여러분의 밤은 불안하지 않으신지.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혹시 잠 못 들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