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M의 취향] 수건의 맨살

삶의 변화는 때때로 아주 작은 것으로 시작한다. 이를테면 수건을 바꾸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오늘은 수건을 리뷰하려 한다. 광목 수건,...
삶의 변화는 때때로 아주 작은 것으로 시작한다. 이를테면 수건을 바꾸는 것 같은…

2018. 09. 04

삶의 변화는 때때로 아주 작은 것으로 시작한다.
이를테면 수건을 바꾸는 것 같은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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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건을 리뷰하려 한다. 광목 수건, 이름부터 낯설다. 광목(cotton cloth). 문자 그대로 면직물을 말한다. 좀 더 들어가면 형광, 표백 등의 처리를 하지 않은 자연가공한 천으로 목화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짠 후, 삶아낸 자연에 가까운 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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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도 좋은 포장이다. 박스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실을 푼다. 정말 가느다란 실이다. 행여 끊어질까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박스를 열면 방금 세수를 하고 나온 듯한 말간 얼굴의 수건이 얼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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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두가지다. 크림색과 그레이. 우리집에 있는 노랑, 갈색, 보라색 수건과는 달리 자태가 참 청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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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스러운 색이나 로고 없이 자연스러운 모양과 빛깔이다. 약간 누런 색을 띠는데 그것대로 자연스럽고 좋다. 조금 더 가까이 보니 소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회색빛 실로 아주 촘촘하게 박음질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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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라는 브랜드가 새겨진 태그는 어딘가에 수건을 걸어 둘 때 유용하겠다. 실과 바늘로 멋을 부린 로고는 퍽 귀여운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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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일반적인 수건을 상상했다면, 이 수건의 첫인상은 좀 곤란할 수도. 두께는 얄팍하고 판판한 이 천이 과연 물기를 얼마나 흡수할 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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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에 닿는 느낌이 참 좋다. 공기 함유량이 많은 포실포실하고 따듯한 느낌의 일반 수건과 달리 피부에 닿는 광목 수건의 온도는 한결 더 낮게 느껴진다. 시원한 맨 살갗을 만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부드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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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분이 좋아서야. 당장 이 수건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베개 커버로 사용하는 거다. 유난히 덥고 끈적였던 올 여름, 베개 커버를 매일 빨수 없으니 매일밤 베개에 새 수건을 깔고 잠이 들었다. 위생적이긴 했지만 까칠했고 치워버리고 싶을 만큼 뜨거웠다. 광목 수건은 최고의 베개 커버다. 매일 밤 뺨에 시원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며 곤히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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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물기를 잘 흡수하지 못할까 의심스럽다면 사용하기 전 한 번 빨아서 사용하자. 세제는 일반 세제부터 베이킹 소다까지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다. 100% 면 소재는 튼튼하니까. 세탁을 하고 나면 긴장을 늦춘 듯 한 결 부드러워진다. 잘 말린 수건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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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다른 느낌에 조금 낯설었지만 조금 더 사용해보니 피부에 무리가 가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물만 흡수하더라.

샤워를 하고 문질문질이 아니라 톡톡 물기를 닦는다. 한시라도 빨리 몸의 물기를 없애는 데만 급급했던 이 시간이지만 수건을 바꾸고 나니 의식하게 된다. 좋은 물건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던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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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목으로 만든 이 수건의 가장 큰 장점은 먼지 날림이 거의 없다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얄팍하고 까칠해지는 일반적인 수건과 달리 광목수건은 시간과 함께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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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를 닦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수건을 의자 위에 던져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건을 들었는데 조금 놀랐다. 축축하고 무거울거라 생각했던 수건이 그새 한결 가벼워졌다. 물기를 빨리 흡수하고 그만큼 또 빨리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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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있는 수건은 모두 다른 곳, 다른 시간에 왔다. 어떤 건 누군가의 돌잔치나 창립, 준공을 기념하고 있다. 어떤 것은 아주 오래되어 사포처럼 까슬거리고, 아직 뜯은지 얼마 안 된 새것은 그나마 부드럽다. 오늘 어떤 수건을 쓰게 될지는 로또처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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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브랜드의 모토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하루의 시작’이다. 태어나 단 한 번이라도 수건을 이렇게 열심히 들여다 본 적이 있던가.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바꾸는 방법은 매일 쓰는 물건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수건을 바꾸고 매일 아침이 이 수건처럼 조금 더 가볍고 사랑스러워졌다. 오늘 M의 취향은 여기까지!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