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나는 차는 잘 몰라요

얼마 전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디에디트를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 초대하고 싶어요!” 솔직히 의아했다. 난 ‘차알못’이고, 운전도 못하는데 모터스튜디오에 가서...
얼마 전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디에디트를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 초대하고 싶어요!”…

2018. 02. 01

얼마 전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디에디트를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 초대하고 싶어요!”

솔직히 의아했다. 난 ‘차알못’이고, 운전도 못하는데 모터스튜디오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솔직하게 내 정체(?)를 털어놨다.

“저는 모터스튜디오에서 취재를 하기엔 아는 게 없답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모터스튜디오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답변은 의외였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공간일지도 모른다면서, 그냥 와서 재밌게 놀아달라고. 2018년의 내 계획 중 하나가 공간 리뷰를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노는 건 우리 특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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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부터 알록달록 차려입은 디에디트의 세 에디터가 바깥나들이에 나섰다. 유난스럽게 추운 날이었다. 옷깃을 부여잡고 도착한 모터스튜디오 고양은 생각보다 더 웅장한 규모였다.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비정형의 스틸 패널로 연결된 지붕을 바라보며 “우와!”하고 감탄했다. 영하 12도의 날씨 속에 하얀 입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입김 뒤로 보이는 독특한 실루엣은 마치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랄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아티스틱한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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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들어서니 역시나 수많은 자동차가 우릴 반긴다. 솔직히 자동차보다는 배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쇼케이스 뒤로 펼쳐진 커넥트 월은 쉽게 볼 수 없는 구경거리다. 일단 크다. 참 크다. 그 앞에 짤막한 에디터 세 명이 서있으니 더 작게 보일 정도로.

초단위로 변하는 화려한 영상물을 넋 놓고 바라봤다. 이 앞에선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찍게 된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커넥트 월에 플레이되던 영상은 모두 국내외 유명 미디어 아티스트들과 함께 제작한 작품이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상을 촬영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화려한 색감과 움직임이 감각적이면서도 깜찍하다. 다들 플레이 버튼을 클릭해서 꼭 한 번 감상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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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차량은 대부분 직접 내부를 살펴보고 탑승할 수 있다. 작년에 면허를 따서 ‘운전 욕망’과 ‘자동차 욕심’에 물이 오른 막내 에디터가 온갖 차를 들쑤시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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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특히 관심을 보였던 차가 바로 신형 벨로스터. 막내가 벨로스터 앞에서 레이싱 모델처럼 포즈를 잡자 전문가인 구루(Guru)가 와서 해당 모델에 대해 쉽게 설명해준다. 알고 보니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모델인데 운 좋게 구경할 수 있었다고. 화려한 그래픽의 랩핑이나 바디라인이 감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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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에 전시된 모든 것들이 확실한 테마를 가지고 유기적인 여정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나의 완결성있는 스토리가 공간을 완성하고 있다는 느낌. 실제로 상설전시를 감상하는 동안 ‘스토리텔러’라고 부르는 전문가들이 전시 내용을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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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의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쭉 나열해두었는데, 생각보다 인터랙티브하게 체험해볼 수 있어서 놀라웠다. 지루한 역사 박물관 같은 콘텐츠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관람객들이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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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광석을 손으로 만져보고, 버튼을 눌러 용접 로봇을 작동시켰다. 컬러를 고르면 차체에 바로 페인팅이 되는 프로그램도 재밌었다. 사실 말로만 들으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현장 학습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나도 직접 가보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각 과정의 느낌을 너무나 정교하게 구성해놔서 몰입도가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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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층 내려가면 더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직접 만지고, 반응하고,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듣는 감각들을 세련되게 활용했다. 입구에는 에어백으로 만든 터널이 있는데 굉장히 근사하다. 푸르스름한 조명 속에서 수십 개의 에어백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하나의 설치 예술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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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침침한 조명이 좋아서 인증샷도 잔뜩 남겼다. 구루분께 물어보니 실제로 에어백과 동일한 소재로 만든 전시라더라. 손바닥이 그려진 에어백은 손을 갖다대면 즉시 바람이 빠졌다가 다시 부풀어 오르며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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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사운드 체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공간 자체가 수십 개의 LED로 빛나는 공간이 우주에 온 것처럼 이질적이고 근사했다. 매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듯한 구성이 좋았다. 지루할 틈 없이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옴니버스 미드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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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체험은 직접 차를 타는 것도 아니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가 없어서 감동도 컸을까. 자동차가 작동하면서 느껴지는 소리를 비주얼과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동원해 완벽하게 표현했다. 비오는 날 달리다가 창문을 내리는 소리, 창 밖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날아가는 소리. 그 공간의 한 가운데 서서 그 소리와 조명을 체험하면 입이 떡 벌어진다. 이건 진짜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으니 다들 꼭 한 번 가보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차량용 시트를 설치해 놨다면 더 실감나는 체험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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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틱 아트는 한 편의 짧은 공연이다. 1,411개의 키네틱 폴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파도의 곡선을 표현하고, 자동차의 곡선을 표현한다. 그 움직임이 살아있는 것처럼 절묘하고 역동적이다. 막내 에디터와 나에 비해 시큰둥하던 에디터M도 여기선 마음이 동한 것 같았다. 키네틱 아트를 보고 나서 에디터M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차알못인 그녀는 현대 자동차란 브랜드에 크게 관심이 없었단다. 아니 현대 자동차에 대해 올드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세련된 브랜드라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이다. 새삼 브랜드가 가치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요소가 필요한지 실감했다. 제품 그 자체만으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수많은 콘텐츠를 덧씌워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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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깔깔거리며 하루종일 돌아다닌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이라는 공간 역시 ‘현대 자동차’의 새로운 이미지를 한 겹 덧씌우는 콘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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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동차는 잘 모르지만 디테일이 강한 브랜드를 좋아한다. 이 공간은 조명 하나, 화장실로 향하는 표지판 하나까지 정교하게 계산되고 디자인된 디테일의 결정체였다. 여기서 우리는 기업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아 이렇게 세련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구나. 이걸 보여주기 위해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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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에디터의 강력한 바람으로 진행된 테마 시승 또한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라 할 만큼 구성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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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라운지에서 시승자의 이름이 적힌 열쇠를 받고, 구루와 함께 탑승한 뒤 시승이 시작된다. 막내 에디터의 숨겨진 운전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동승한 구루분이 “이 정도면 초보운전 치고는 잘하는 거다”라며 얼마나 용기를 주시던지. 이 에피소드는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길. 시승 전 과정이 항공기 탑승처럼 여정의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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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을 좋아하는 나답게 2층에 있는 브랜드샵을 지나치지 못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생각보다 멋진 물건이 많더라. 정신을 차리니 나도 모르게 카드를 긁고 있었다. 현대 자동차가 직접 개발했다는 은은한 향의 차량용 방향제와 포니 미니카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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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의 마지막은 맛있는 식사여야 한다. 4D 체험에 자동차 시승까지 하느라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해비치호텔 셰프들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더라. 한식부터, 이탈리안, 퓨전 아시안까지 메뉴가 너무 다양해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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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마음에 이것저것 시켰는데 다 맛있었다. 로제소스 딱새우 스파게티를 추천한다. 중앙에 펼쳐진 오픈 키친과 탁 트인 통유리의 조화로 공간이 시원스러웠다. 요리도 좋았지만 커다란 목재 테이블이나 메뉴판 같은 요소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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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을 부딪히며 여정 종료. 우주선에 탑승한 것 같은 하루였다. 다들 비슷한 얘기를 했다. 별 기대 없이 왔는데 너무 재밌었지, 하면서. 나는 차는 잘 모른다. 그치만 브랜드가 가진 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남자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 이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영상을 구경하러 가자. 재미는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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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