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객원 에디터 조서형이다. 처서가 지나도록 여름이 끝날 기미가 없길래 마지막으로 진짜 최종 버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목적지는 영월이다. 강원도 영월에는 영월읍과 남면, 북면 외에 이런 구역이 있다. 김삿갓면, 무릉도원면, 한반도면. 엥? 싶은 특이한 이름이다. 영월군은 인구 3만 7,000명의 작은 도시지만, 2박 3일 휴가가 짧게 느껴질 만큼 풍성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궁금하다면 아래 기사를 마저 읽어보시라.
영월로 떠난 이번 여정은 ‘먼뜰리바팩’과 함께했다. 매달 자전거에 야영 짐을 싸서 떠나는 모임이다. 영월 내 모든 관광지 이동은 자전거로 했으며 물론 재미는 배가 되었다.
산 따라, 물 따라
동강 래프팅
여정의 시작은 동강 래프팅. 래프팅이라는 말 앞에는 동강이 붙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유명한 코스다. 센터에서 차를 타고 약 13km의 산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문만 열면 산이라 하여 ‘문산’이라 이름 붙은 동네에 내렸다. 고무보트를 들고 강가로 이동해 안전 교육을 듣고 노를 젓기 시작한다.
이곳은 물고기가 많아 비단처럼 반짝이는 ‘어라연’, 동강의 백미다. 배에는 12명까지 탈 수 있다. 우리는 인원이 많아 7명, 8명이 보트를 나눠 탔다. 때로는 구령에 맞춰 노를 저으며, 때로는 주변 경관의 설명을 들으며 동강을 흘러 내려간다. 수심이 깊은 곳이 나오면 보트를 세워놓고 다이빙과 수영을 즐긴다. 비 온 뒤 맑은 하늘 아래서 유유자적. 신선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수심이 얕은 곳에선 사람들이 다슬기를 잡고, 깊은 곳에선 새들이 물고기를 잡는다. 동강에 사는 민물가마우지는 무려 수심 6m까지 잠수할 수 있다. 우아하게 나는 황새, 백로, 왜가리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정선과 평창에서 온 이 물은 서울까지 이어져 한강으로 합류한다. 예전에는, 이 물길로 한양에 나무를 실어 보냈다고 한다.
여름의 초록빛을 가득 머금은 풍경 사이로 물살을 헤치며 보트가 나아간다. 해가 머리 위로 비출 때면 강사님이 노를 이용해 머리 위로 물을 뿌려준다. 차갑다며 손을 내젓지만 다들 반기는 눈치. 독특한 기암절벽을 놓치지 않도록 설명도 더해준다. 두꺼비 모양, 빨간색 손도장, 신선이 술을 마시며 놀다 갔다는 스팟까지, 자연 구경만큼 대단한 구경이 없다. 여울진 곳에서는 노를 젓지 않아도 보트가 휩쓸려 내려간다. 후룸라이드처럼 격렬하게 솟구쳤다 떨어지기도 한다. 아무튼 재밌다.
래프팅은 유속과 노를 젓는 속도에 따라 다르지만, 약 세 시간이 걸린다. 꽤 긴 시간 스마트폰 없이 풍경만 보면서 노를 저어야 하니 대화가 필요한 가족이나 팀 단위로 들르면 좋겠다. 마음속 복잡하게 꼬인 얘기가 술술 풀려나올 것이다.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230-1
영월 대표 시인
김삿갓 계곡 캠핑장
김삿갓이라니 절대 음감 게임에서 등장하는 이름 아닌가. 글자만 봐도 머릿속에 ‘김↗삿갓삿갓’이 자동 재생된다. 김삿갓은 양주에서 태어나 가평에서 자랐으나 호적 등록은 영월에서 한 실제 인물이다. 물론 실명은 아니다. 조선 후기 조부를 탄핵한 글을 써 장원급제를 한 김병언의 별명이자 필명이 김삿갓이 되었다. 그는 어머니가 염원하던 장원이 되었으나 조상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하늘을 쳐다볼 수 없다고 판단해 양반 신분을 버리고 방랑하는 삶을 선택했다. 5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조선 팔도를, 삿갓을 쓰고 방랑하며 자연 경관과 민중의 삶을 시에 담았다.
영월에는 김삿갓의 생가와 묘, 문학관이 있고, 이 동네를 아예 김삿갓면이라 이름 붙였다. 동네를 따라 흐르는 계곡의 이름도 당연히 김삿갓 계곡이다. 자전거를 타고 끝없는 오르막을 오르느라 해가 지기 직전까지 페달을 굴렸다. 힘든 와중에도 마을의 아기자기함이 눈에 들어온다. 예밀포도마을, 김삿갓 파출소, 김삿갓 펜션과 김삿갓 카페까지 표지판이 모두 방랑 시인 김삿갓을 상징하는 삿갓을 쓰고 있다.
영월 첫 번째 날, 김삿갓 계곡 옆 캠핑장에서 야영을 했다. 이 일대 계곡과 공터는 야영이 금지되어 있어 펜션이나 캠핑장을 이용해야 한다. 어느 곳에 자리 잡아도 콸콸 시원하게 흐르는 김삿갓 계곡과 매미 소리의 한여름 앙상블을 누릴 수 있다.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영월에서 만나는 작은 한반도
선암마을 한반도지형
3년 전에도 영월에서 늦여름 휴가를 보냈다. 그날의 늦여름에는 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독특한 전망대가 있다고 하여 평창강이 둘러싼 선암마을로 향했다. 수목이 우거진 숲길을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한반도의 호랑이 모양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천의 침식과 퇴적이 굽이쳐 흐르며 조각한 기막힌 작품이다. 탁 트인 환경이 일몰을 보기에도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최근 5년 간 세 번의 여름휴가를 영월에서 보냈다.
이번에는 전망대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그 아래의 뗏목 체험장을 이용했다. 다행히 이름만 뗏목이고 모터로 나아간다. 뗏목의 노는 삿대라고 한다. 검지를 들어 삿대질할 때 그 삿대다. 사람이 힘을 쓸 필요는 없지만, 한쪽에 삿대를 두어 체험의 즐거움을 준다. 여기서 인증샷도 찍어보자. 뗏목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절경을 배경으로 나아간다. 전통 옷을 입은 진행자가 지형에 관한 설명도 해준다. 체험은 약 30분간 진행된다. 선암마을에서는 기념품으로 한반도 모양으로 구운 파운드케이크를 판다. 영월의 특산품 수수와 곤드레로 만들었다.
주소 |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영월을 여행해야 할 이유
영월군의 면적은 서울시보다 1.8배 넓다. 1,000만을 향해가는 서울시와는 반대로 영월의 인구는 3만으로 수렴하고 있다. 그만큼 너른 자연을 여유롭게 누릴 수 있다는 것. 도시에서 와글와글 더위를 버텨냈다면 영월에서 한갓지게 시간을 보내보자. 남은 여름을 기분 좋게 보내고 가을을 맞이할 에너지 재충전 완료다.
먹을 것: 영월은 바다를 접하지 않고 척박한 산에 있어 역사적으로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다. 대신 부족한 식재료를 활용해 어떻게든 맛있게 식사를 해내기 위한 선조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서부시장에 들러 메밀전병과 올챙이국수를 먹어보자. 찰기가 없고 거칠거칠한 재료를 씹다 보면 꽤 달다. 여기에 메밀 막걸리를 곁들이면 진짜 영월 여행하는 기분이 난다. 영월역 앞엔 다슬기 해장국을 파는 식당이 즐비하니, 아무 데나 들러 고소하고 쫄깃한 맛을 볼 것을 추천한다. 마침, 다슬기는 여름이 제철이다.
볼 것: 영월에는 무릉리와 도원리를 합친 무릉도원면이 있다. 무릉도원면 무릉리 주천강 상류에는 신선이 노닐었다고 하는 정자, 요선정이 있다. 요선정 아래에 내려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요선암 돌개구멍이 있다. 화강암에 크고 작은 동그라미가 파여 물살이 회오리치는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할 것: 운탄고도 1330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트래킹 성지다. 태백, 삼척, 영월, 정선의 4개 폐광지역을 걸을 수 있다. 개발되지 않은 강원도의 자연환경과 광부들의 산업 유산을 둘러볼 수 있어 매우 독특하다. 영월은 이 운탄고도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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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GQ 코리아 디지털팀 에디터. 산과 바다에 텐트를 치고 자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