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타마고에게 간장을 뿌려줘요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오늘은 먹고사는 얘기를 준비했다. 며칠 전에 마트에 갔다가, ‘테라오카 타마고 간장’이라는 걸 샀다. 이름 그대로 계란에 뿌려먹는...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오늘은 먹고사는 얘기를 준비했다. 며칠 전에 마트에 갔다가, ‘테라오카…

2017. 11. 26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오늘은 먹고사는 얘기를 준비했다. 며칠 전에 마트에 갔다가, ‘테라오카 타마고 간장’이라는 걸 샀다. 이름 그대로 계란에 뿌려먹는 간장인데, 요즘 워낙 유명하단 얘길 많이 들었던 터라 지나칠 수 없었다. 밥과 계란, 간장만 있으면 된다니. 그 간단함도 좋지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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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캠핑에 다녀온 직후라, 사무실에 캠핑용 버너가 있었다. 사무실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기름냄새 풍기며 계란후라이를 지지기 시작했다. 계란은 무조건 반숙이다. 노른자가 당장이라도 터져 흘러나올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간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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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막 전자레인지에 돌린 뜨끈한 즉석밥 위에 버터를 한 조각 얹는다. 금세 녹아버린다. 버터만 올렸는데, 벌써 마음이 동한다. 흰쌀밥은 사람으로 따지자면 내 이상형쯤 된다. 튀지 않고 겸손하며,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고, 항상 중심을 잃지 않는다. 아! 탄수화물의 요망함이란.

긴축정책을 외치며 이마트에서 제일 저렴한 ‘노브랜드 즉석밥’을 구입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밥이 영 푸석하다. 다음엔 돈 많이 벌어서 햇반을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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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잡느라 흰자 가장자리가 과하게 익어버린 계란후라이를 버터밥 위에 슬쩍 올려준다. 노른자는 완벽한 레어. 이런 노른자를 보면 터트리고 싶은 마음과 절대 터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함께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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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오늘의 주인공 타마고 간장을 뿌려줄 차례다. 밥 한 공기에 한 스푼 반 정도 넣으라던데, 난 두 스푼 넣었다. 왜냐하면 나는 원래 짜게 먹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싱거운 것은 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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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분을 맞이한 탄수화물의 자태가 곱다. 저대로 쓱싹쓱싹 비벼준다. 계란 노른자가 톡 터지며 밥알에 스미기 시작한다. 간장과 버터가 만나니 익숙한 고향의 향기가 난다. 어린 시절 엄마가 밥 잘 안 먹는 남동생에게 비벼주곤 했던 ‘버터 간장밥’의 향기다. 참고로 말하자면, 난 어린 시절부터 밥 안 먹어서 속 썩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평생을 한결같이 입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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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장밥의 맛은 어땠냐고? 엄청 특별한 맛이냐고? 물론 그건 아니었다. 근데 맛있었다. 은은한 단맛과 가쓰오부시 향이 올라오는 삼삼한 간장이었다. 일반 간장보다는 덜 짜고, 스키야키 국물을 졸인 것처럼 복합적인 풍미가 있다. 일반 간장으로 비벼먹을 때보다는 간도 알맞고, 깊이가 있다. 묘한 단맛도 끌리고 말이다. 디에디트의 세 여자가 테이블에 둘러 앉아 늦은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본래 날계란 노른자에 간장을 뿌려 비벼먹는 게 오리지널 레시피라던데, 다음에 시도해봐야겠다.

계란 요리가 아니더라도 볶음이나 조림, 찌개 육수 등 다양한 곳에 쓸 수 있겠다. 실파를 쫑쫑 썰어넣고 밥에 비벼먹어도 괜찮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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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이 타마고 간장밥에 홀딱 반해서, 저녁에도 즉석밥에 비벼 먹었다.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의외로 버터가 없이 비벼먹는 편이 간장이 가진 향을 즐기기에 더 좋다는 것. 참기름 역시 추천하지 않는다. 간만에 흰쌀밥의 즐거움을 깨우쳐준 훌륭한 레시피였다. 너무 맛있어서 여기저기 자랑했더니, 나 말고는 모두 먹어본 슈퍼스타 간장이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아직 맛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추천. 소박한 추억의 맛이 업그레이드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하지만 두 끼 연속으로 먹으니 조금 물리더라. 오늘의 리빙포인트, 아무리 맛있어도 시간차를 두고 먹자.

그나저나, 사무실에서 요리(?)를 해봤더니 조리 기구를 갖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냄새 안나고 깔끔하게 쓸 수 있는 걸로. 발뮤다 토스터나 필립스 에어프라이어 같은 거 좋잖아? 에디터M, 듣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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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