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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커피 가이드: 후암동 편

오래된 골목 사이 후암동 커피 산책
오래된 골목 사이 후암동 커피 산책

2026. 11. 03

안녕, 나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심재범이다. 서울역에서 남산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후암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오래된 주택 사이로 작은 식당과 세탁소, 새로운 빵집이 공존하는 곳이다. 좁은 골목과 가파른 언덕에 개성있는 스페셜티커피 매장들도 사이좋게 모여 있다. 이번에는 후암동을 뜨겁게 달구는 특별한 카페들을 정성껏 소개한다. 


[1]
패스로스터스

패스

서울역에서 후암동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패스로스터스는 작은 로스터리 카페다. 작은 규모 안에 원두 진열대와 좌석, 커피바, 바리스타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원선본 바리스타는 국가대표 라테아트 챔피언 경력을 시작으로 메뉴 개발과 컨설팅, 로스팅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에 패스로스터스(이하 ‘패스’)를 새롭게 열었다.

패스는 커피 본연의 다채로운 맛과 향미를 일상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선보이고자 한다. 커피 생두가 가진 좋은 맛과 향을 온전히 드러내고, 로스팅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결점과 불필요한 잡미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을 지향한다. 그래서 전문적인 장비가 없어도 가정에서 커피의 개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지금 패스에서 추천하는 커피는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부쿠 사이사 내추럴. 잘 익은 포도를 연상시키는 향미와 자두 같은 산미, 입안에서 솜사탕처럼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단맛이 표현된다. 자연 건조식 커피 특유의 화려한 개성이 있으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는다.

패스는 커피에 따라 13g, 16g 정도로 비교적 적은 양의 원두를 사용한다. 커피를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적절한 농도와 추출을 통해 커피 고유의 향을 깨끗하게 표현한다. 패스의 브루잉 커피는 질감이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향미가 선명하다. 

가능하다면 라테아트 챔피언 원선본 바리스타의 클래식 카푸치노를 꼭 마셔보자.에티오피아 내추럴과 콜롬비아 워시드를 미디엄 로스팅한 커피를 기반으로 가공 방식이 다른 우유를 조합한 ‘블렌딩 밀크’를 사용해, 적절한 온도의 우유와 촉촉한 거품, 에스프레소의 향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커피의 향미와 우유의 단맛이 조화롭다. 

패스의 공간에는 커피 애호가, 동네 주민, 전문 바리스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오가는 과정 속에, 패스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오솔길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 주소 | 서울 용산구 소월로2길 37 1층
  • 영업 시간 | 월-금 8:00-17:00, 주말 12:00-18:00
  • 추천 메뉴 |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부쿠 사이사 내추럴, 클래식 카푸치노

[2]
엘카페

엘카페

한국 스페셜티 커피 산업의 레전드, 양진호 로스터의 엘카페가 후암동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엘카페는 최신 카페 트렌드와 달리 반듯하고 정돈된 공간이 아니다. 러프하다 싶을 정도로 커피와 장비, 원두와 각종 도구들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고, 오랫동안 커피를 해온 로스터리 특유의 작업장 같은 분위기가 있다. 과하게 꾸미지 않고 시간을 공간에 녹여냈다.

엘카페는 후암동의 언덕길 오래된 건물 2층에 있다. 경사진 후암동 골목에 자리해 입구에 들어서면 묘하게 반지하 작업실 같은 느낌이 든다. 입구에는 블루리본 최다 선정 인증서가 보이고, 내부에는 에스프레소 머신과 브루잉 바, 각종 추출 도구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커피 업계는 유행이 빠르다. 로스팅 포인트가 바뀌고 추출법이 달라지며 새로운 품종과 가공 방식이 계속 등장한다. 그사이 수많은 카페들이 생겼다가 사라졌지만, 엘카페에는 쉽게 변하지 않는 클래식한 맛이 있다. 그러니 엘카페에 처음 방문한다면 기본부터 마셔보자.

대표적인 블렌드는 클래식 블렌딩과 이탈리안 잡이다. 가능하다면 두 종류의 블렌딩을 에스프레소로 한 잔씩 비교해보기를 추천한다. 같은 로스터리에서 만든 커피의 성향이 명백히 다르다. 클래식 블렌딩은 스페셜티커피의 정석같은 향미를 보여주고, 이탈리안 잡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처럼 진득하고 묵직하다. 커피리브레 다크리브레, 모모스 에스쇼콜라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강배전 에스프레소다. 

이번에는 베트남 엑셀사와 페루 게이샤를 마셨다. 엑셀사는 최근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품종이다. 곡물을 연상시키는 고소하고 복합적인 질감이 인상적이고, 꽃이나 복숭아처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향미가 아니다. 감칠맛과 묵직한 여운이 길게 이어지고 무언가를 오랫동안 푹 우려낸 듯한 묘한 맛도 있다. 

페루 게이샤는 전성기의 파나마 게이샤를 떠올릴 만큼 섬세하고 화려하다. 킬리안 향수를 연상시키는 농염하면서도 섬세한 장미향과 긴 여운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엘카페는 클래식 블렌딩과 이탈리안 잡 같은 오래된 커피를 지켜가면서 재밌는 싱글오리진 커피를 계속 소개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커피 애호가들이 엘카페를 경험하기 위해 상경하는 이유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는 공간과 커피 맛의 엘카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 주소 | 서울 용산구 후암로 68
  • 영업 시간 | 월-금 7:30-18:30, 주말 9:00-20:30
  • 추천 메뉴 | 클래식 블렌드, 이탈리안 잡 

[3]
오르소 에스프레소바

오르소 에스프레소바는 후암동 골목길 주택가 한편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삼면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열려 있고, 창밖으로 오래된 동네의 풍경이 그대로 들어온다. 

오르소는 원래 해방촌에서 시작할 뻔했다. 해방촌에서 오래 눈여겨보던 공간이 있었는데, 계약을 마음먹은 날 다른 에스프레소 바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걷다가 후암동까지 내려왔고 우연히 지금의 공간을 만났다. 당시에는 후암동이 어떤 동네인지, 어떤 상권인지도 잘 몰랐다. “어디에서든 열심히 하면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한둘씩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오르소가 시작됐다.

‘Orso’는 이탈리아어로 곰이라는 뜻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묵직한 커피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찾다가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 오르소의 기본 에스프레소도 이름처럼 묵직하다. 화려한 산미와 향을 앞세우기보다 클래식한 이탈리안 에스프레소에 가깝다. 다크초콜릿과 볶은 견과류, 쌉싸름한 단맛과 진득한 질감이 중심에 있다. 강한 산미가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오히려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

처음 방문한다면 기본 에스프레소부터 마셔보자. 그대로 마셔도 좋고 비정제 설탕을 한 스푼 넣어 충분히 저어 마시면 더욱 좋다. 설탕이 녹으면서 에스프레소의 질감은 더욱 진득해지고 마지막에는 거의 시럽처럼 변한다. 두 번째 추천 메뉴는 그라니따. 에스프레소 슬러시처럼 차가운 메뉴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자주 찾는 메뉴이다. 차가운 질감과 진한 커피, 적당한 단맛이 잘 어울린다.

가능하다면 카푸치노도 꼭 마셔보자. 진득한 에스프레소와 따뜻한 우유가 만나 편안하지만 커피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 이탈리안 카푸치노이다. 좋은 에스프레소가 밀크커피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오르소의 에스프레소는 전문가를 위한 커피가 아니고, 누구나 쉽게 마실수 있는 일상의 에스프레소에 가깝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아침에 편한 옷차림으로 들어와 한 잔 마시고 나갈 수 있는 커피다. 그래서인지 오르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 젊은 사람과 중년층, 외국인과 동네 주민까지 한 공간에 섞인다. 동네 아이들은 오너 바리스타를 ‘곰돌이 삼촌’, ‘커피 이모’라고 부르고, 명절이면 이웃과 음식을 나눈다. 바리스타 역시 단골들의 이름까지 기억하면서 정겹게 지내고 있다.

오르소는 화려한 에스프레소바 라기보다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곳에 가깝다. ‘커피 파는 사랑방.’ 바쁘고 분주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카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 주소 | 서울 용산구 두텁바위로1길 107 1층
  • 영업 시간 | 월-금 8:00-17:00, 주말 8:00-18:00(화요일 휴무)
  • 추천 메뉴 |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4]
업스탠딩

후암동에서 남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해방촌 신흥시장이 나온다. 신흥시장은 오래된 해방촌의 풍경과 지금의 변화가 묘하게 겹쳐 있는 장소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가게와 최근 들어온 식당, 바, 카페가 좁은 골목 안에서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

업스탠딩은 신흥시장 안에 위치하고 있다. 거친 콘크리트와 오래된 건물의 흔적을 그대로 남긴 좁고 높은 공간 한가운데 계단이 있고, 1층 커피바에서 시작해 2층을 지나 옥상까지 이어지는 수직적인 구조다. 커피를 주문한 뒤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자. 1층에서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신흥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오래된 시장 안에 작은 커피 공간을 위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하다.

업스탠딩 커피는 정통 멜번 스타일의 남반구식 커피를 지향한다. 업스탠딩의 오너 바리스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뉴질랜드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면서 에스프레소와 밀크커피를 중심으로 한 호주의 커피 문화를 경험했다고. 

매장의 상징 같은 남산 블렌딩으로 브루잉과 밀크커피를 함께 마셨다. 남산 블렌딩은 자연건조식 에티오피아 커피를 중심으로 충분한 볼륨과 질감을 만들면서 복합적인 과일 향을 살린 커피다. 브루잉에는 에어로프레스를 사용한다. 커피와 물을 일정 시간 함께 두었다가 압력을 이용해 추출하는 단순한 도구지만, 커피의 향미를 선명하게 살리면서도 충분한 질감을 표현할 수 있다. 같은 남산 블렌딩으로 만든 밀크커피는 커피의 과일 향과 산미가 우유와 만나면서 살짝 요거트를 연상시키는 뉘앙스가 생긴다. 고소하고 달콤한 라테와는 달리, 산뜻하고 입체적이다.

이외에도, 업스탠딩을 처음 방문한다면 매직을 마셔볼 것. 매직은 멜버른의 스페셜티 커피 매장에서 즐겨 마시는 밀크커피다. 에스프레소에 비교적 적은 양의 우유를 더해 커피의 향미와 우유의 질감을 함께 즐기는 방식이다. 부드러운 우유의 질감이 입안에서 맥주 거품처럼 가볍고 촉촉하게 느껴진다. 

  • 주소 | 서울 용산구 신흥로 99-11
  • 영업 시간 | 매일 10:30-19:00
  • 추천 메뉴 | 남산 블렌딩, 매직

좋은 동네에 좋은 카페가 생기는 것인지, 좋은 카페가 모여 좋은 동네를 만드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후암동은 카페가 동네에 스며드는 방식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매일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카페는 동네의 일부가 되었다. 

About Author
심재범

커피 칼럼니스트. '카페마실', '동경커피', '교토커피'를 썼습니다. 생업은 직장인입니다. 싸모님을 제일 싸랑하고 다음으로 커피를 좋아합니다. 아 참, 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