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술을 사랑하는 홈텐더 글렌이다.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법은 간단하다. 마음에 드는 맥주를 고르고, 차갑게 보관해, 깨끗한 잔에 따라 마시는 것.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캔맥주라면 잔조차 필요 없다. 그런데 같은 맥주도 따르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면 어떨까? 심지어 익숙한 카스 한 잔이 전혀 다른 맥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면?
와인에는 소믈리에가 있고, 칵테일에는 바텐더가 있다. 그렇다면 맥주에는? 맥주를 따르는 기술, 푸어링(Pouring)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잔을 기울이는 각도와 따르는 속도, 거품의 양과 질감까지. 작은 차이로 탄산감과 쓴맛, 목 넘김을 바꿔낸다.
오늘 소개할 곳은 맥주를 따르는 과정에 집중해 맥주의 신세계를 보여주는 세 곳의 맥주 푸어링 바다. 이곳에선 우리가 잘 알던 맥주도 색다르고 특별해진다.
1. 소(笑)

나는 을지로에서 6년 동안 회사를 다녔다.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곳이 있었다. 충무로 인현시장에 있는 맥주 바 ‘소(笑)’다. 처음 방문하고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런 곳을 진작 알았더라면 퇴근길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러 종종 들렀을 텐데 말이다.

소는 일본의 타치노미(立ち飲み)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스탠딩 바다. 의자 없이 서서 술을 마시는 곳이라고 하면 불편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경험하면 꽤 매력적이다. 술자리를 거창하게 벌일 필요도, 오래 머물 필요도 없다. 퇴근길에 잠깐 들러 시원한 맥주 한두 잔을 마시고 가면 그만이니 가뿐하다.
이곳의 주인공은 카스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그 카스를 ‘부드러운 카스’와 ‘거품없이 짜릿한 카스’ 두 메뉴로 나누어 판매한다. 맥주는 똑같지만 따르는 방식이 다르다.

‘부드러운 카스’는 이름처럼 거품과 맥주가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스타일이다. 메뉴판에서 첫 잔으로 추천하는 맥주다. 반면 ‘거품없이 짜릿한 카스’는 거품 없이 맥주를 채워 탄산의 시원하고 짜릿한 매력을 강조한다. 두 잔의 매력이 전혀 달라 뭐가 더 낫다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두 잔 모두 정말 훌륭했다. 카스는 풍미가 조금 밍밍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따르기 스킬 하나로 전혀 다른 맥주가 된 것 같았다.

사실 이런 훌륭한 맛이 단지 따르기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을 비롯해 앞으로 소개할 곳 모두 맥주의 보관부터, 맥주를 따르는 서버의 관과 맥주가 담기는 잔 세척 등 맥주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꼼꼼히 관리하고 있었다. 이를 보증하는 ‘생맥주 품질관리 마스터’ 인증서가 오늘 소개하는 세 곳 모두 입구에 크게 걸려있다.

이런 기본기와 정성 위에 훌륭한 따르기 실력이 더해져 익숙한 맥주도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마법이 가능해졌다.
2. 비어홀 중(衆)
소에서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형제 가게인 ‘비어홀 중(衆)’이 있다. 얼핏 들으면 작을 소(小)와 가운데 중(中)을 떠올리겠지만, 소는 웃을 소(笑), 중은 무리 중(衆)이다.

소가 골목에 숨어 있는 아늑한 술집이라면, 중은 단체로도 갈 만한 조금 더 넓고 세련된 공간이다. 금속 소재의 긴 바에 맥주 탭이 줄지어 있고, 중앙에는 크고 작은 테이블이 여럿 놓여있다.

중에서는 카스를 네 가지 푸어링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역시 같은 카스를 사용하지만 거품의 양과 질감, 탄산감이 각기 달라 전혀 다른 맥주처럼 느껴지는 메뉴들이다.

재미있는 건 맥주마다 권장 음용 시간까지 정해져 있다는 점인데, 7분, 3~7분, 3분, 그리고 가장 짧은 건 30초 내에 마셔야 하는 것도 있었다.
30초 내에 마셔야 한다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메뉴는 MILKO. 밀코는 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을 마시는 맥주다. 그래서 맥주 한 잔을 액체 없이 거품으로만 가득 채운다. 처음 보면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마셔보면 특유의 매력이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거품이 액체로 변하기 때문에 빠르게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사진을 찍을 생각이라면 서둘러야 한다.
함께 주문한 스탠다드 역시 훌륭했다. 거친 거품 속 살아있는 프레시한 탄산감이 매력적인 스타일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는데, 평소 즐기던 카스에 비해 확실히 탄산감이 강하면서도 뭐 하나 튀지 않게 밸런스가 좋았다. 말 그대로 스탠다드라 할 만했다. 바 한쪽에 걸려있는 ‘THE STANDARD OF CASS’라는 문구에 눈길이 갔다.

소와 마찬가지로 중 역시 스탠딩 바다. 가볍게 들러 맥주 한두 잔을 즐기기 좋지만, 공간이 넓어 이름 그대로 여럿이 함께 방문하기에도 좋겠다. 이런 곳에서 회식을 한다면, 맛있는 맥주를 실컷 즐기면서도 서서 마시는 만큼 술자리가 마냥 늘어지지는 않을 테니, 딱 좋게 회식 끝내고 집에 갈 수 있겠다 싶었다.
3. 맥주대학 한국 캠퍼스
내가 맥주 푸어링을 처음 접한 건 일본 도쿄의 ‘맥주대학’이었다. 한 종류의 맥주를 방식만 바꿔 따라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무척 신기했다. 작년에 도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실제로 방문했는데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기린 라거 한 종류로 만드는 십 여 가지의 메뉴는 생긴 것부터 맛이나 향, 탄산감까지 전혀 달랐다.

이 곳에서는 맥주를 따르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공연을 보는 것 같다. 주문한 맥주가 나올 때가 되면 직원이 일부러 손님을 바 앞으로 부른다. 그러면 마스터는 어떤 방식으로 따르는지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며 잔을 기울이고 탭을 조작해 한 잔의 작품을 담아낸다.

그렇게 인상 깊었던 도쿄 맥주대학에서 직접 맥주 따르기를 배운 제자가 운영하는 곳이 한국에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반가웠다.

바로 경기도 동탄에 위치한 ‘맥주대학 한국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 책상과 의자, 벽에 걸린 과목 안내, 그리고 바 뒤편의 커다란 칠판까지 학교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펼쳐진다.

맥주는 카스와 한맥을 사용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맥주로 푸어링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카스는 탄산감과 청량감을, 한맥은 부드러운 풍미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일본 맥주대학에서 맛보고 가장 좋았던 맥주를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었다. ‘시원하게 따르기’ 일본에서는 ‘소카이 쓰기(爽快注ぎ)’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소카이는 상쾌하다는 뜻으로, 이름 대로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 특징이다.

이 푸어링의 핵심은 거품을 만드는 방법에 있다. 맥주 위에 거품을 올리고, 그 거품 위에 다시 맥주를 따르면 새로 따르는 맥주가 순식간에 풍성한 거품으로 변한다. 거품에 닿으면 맥주가 거품으로 변해버리는 특성을 살린 것인데, 회식 자리에서 두 번째 잔에 거품이 많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원리라고 한다. 실제로 보면 정말 신기하니 꼭 경험해 볼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서도 도쿄에서처럼 맥주를 따를 때마다 설명이 이어졌다. 왜 이런 방식으로 따르는지, 거품과 탄산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맥주 한 잔을 주문할 때마다 강의가 시작된다.
이 강의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여기서 퀴즈가 나오기 때문이다. 커다란 칠판에 적힌 매주 바뀌는 퀴즈의 정답을 맞히면 그 주의 맥주를 받을 수 있다.

수업을 열심히 들은 나는 당연히 성공! 만점의 비결은 교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거다. 사장님이 일본에서 직접 푸어링을 배우게 된 사연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계기로 맥주 따르기에 이렇게까지 빠지게 됐을까.

맥주대학 한국캠퍼스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원래는 아이리시 펍에서 일하면서 맥주에 관심이 생겼는데, 일본에 맥주 따르기를 전문으로 하는 맥주대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여러 차례 찾아가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렇게 끈질기게 문을 두드린 끝에 결국 기술을 전수 받아, 한국으로 돌아온 후 맥주대학 한국 캠퍼스를 연 것이다. 일본 맥주대학 사장님에게는 다른 일본인 제자들도 있지만, ‘맥주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곳은 이곳이 처음이라고 한다.
수많은 푸어링 기술을 배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화려한 거품을 만드는 기술이나 여러 번에 걸쳐 섬세하게 완성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저는 한 번 따르기를 제일 사랑해요.”
‘한 번 따르기’는 말 그대로 맥주를 한 번에 따라내는 방식이다. 잔을 기울여 회전을 주며 맥주를 따라내 탄산감과 청량함을 살리는 스타일인데 얼핏 보기에는 꽤 단순하고 쉬워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이 방식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잔을 기울이는 각도, 맥주가 떨어지는 위치, 따르는 속도. 이런 미묘한 차이에 따라 맥주의 맛이 크게 달라져, 따르기 실력의 차이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매일 가게 문을 열기 전 한번 따르기를 여러 번 연습한다고 했다.
맥주 따르기 마스터에게 배운
캔맥주 완벽하게 따르기
맥주 따르기 장인에게 집에서 맥주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따르기 방법에 대해서도 물었다. 칭따오 캔맥주를 하나 가져온 그가 손수 시범을 보여줬다.

첫 번째 팁은 캔을 딸 때에 있었다. 맥주 캔을 조심스럽게 따서 탄산이 최대한 날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다. 맥주 캔을 박력있게 따다가 거품이 터져 나오곤 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아차 싶었다.
그런 다음 낙차를 크게 주고 일직선으로 맥주를 따른다. 거품이 잔의 3분의 2정도 될 때까지 따른 다음 거품이 조금 줄어들기를 기다린다. 거품이 충분히 가라앉고 정돈이 되면, 잔을 기울여 거품 안에 맥주를 집어넣는다는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맥주를 마저 따라준다. 그러면 맥주를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아주 쫀쫀한 거품이 올라간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집에서 즐길 때 뿐만 아니라 회식자리나 모임에서 사용하면 반응이 매우 좋다고 하니 당장 써먹어 봐야겠다.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언제 마셔도 반가운 술은 역시 맥주 아닐까. 그 친근한 맥주를 한층 더 맛있고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이 바로 ‘따르기’다. 맥주를 사랑하는 당신이 따르기를 꼭 경험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사랑, 아니 맥주 한 잔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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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위스키와 칵테일에 대해 글을 쓰는 홈텐더. 술이 달아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