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좋아하면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 안경도 예외는 아니다. 취향이 많은 맥시멀리스트 문구인 김규림 필자는 최근 안경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지난주 MBC <나 혼자 산다>를 봤다면 익숙한 그 곳, 을지로의 ‘퍼프스터프’ 공방이다. 코드 쿤스트가 안경을 만든 곳 역시 이 곳. 방송에 자세히 나오지 않은 안경 만드는 기나긴 과정을 글로 읽어 보자.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은 내가 직접 만들었다. 안경을 만들었다니? 쓰면서도 믿기지 않지만 진짜다. ‘만들기’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다. 스무 시간 동안 아세테이트를 톱질해 형태를 잡고, 열심히 줄질하고, 사포로 광을 내다 보니 어느샌가 손에 안경이 들려 있었을 뿐이다.
시작은 목공방 선생님에게 요즘 안경을 재밌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안경을 만들 수 있다고요?’ 심지어 주말 클래스는 인기 강의 수강신청처럼 어렵단다. 궁극의 커스텀은 스스로 만들기. 게다가 무엇이든 한 번씩은 직접 만들어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병까지 갖고 있는 나는, 다음 주에 곧장 ‘퍼프스터프(PUFFSTUFF)’라는 공방의 안경 만들기 수업을 등록했다.
퇴근 후 도착한 을지로의 어둑한 골목. 스러질 것만 같은 건물들을 지나 2층의 안경 공방에 도착했다. 안경을 자기 손으로 만드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톱질을 하는 사람, 사포질을 하는 사람, 각자가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작업에 몰입해 있었다. 오오, 저것이 바로 나의 미래?
바로 작업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우선은 안경 디자인부터. 사실 나는 15년 전 라섹 수술을 한 덕에 눈이 꽤 좋지만,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 얼굴 꾸미기 요소로 안경을 자주 쓴다. 그래서 안경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 찬장을 메운 십수 개의 안경 중 자주 손이 가는 것들은 따로 있다. 적당한 사이즈감과 무게, 동그라미의 크기까지 마음에 쏙 드는 안경 두 개를 가져가 레퍼런스 삼아 형태를 먼저 잡았다. ‘둥글둥글한 뿔테 안경을 만들어보자’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이게 웬걸. 선택의 연속이었다.
안경 전면부 길이는 몇으로 할 건지, 알과 알 사이 브릿지는 얼마나 띄울 건지, 브릿지 형태는 일자로 만들 건지 곡선형으로 만들 건지. 무언가를 직접 만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늘 똑같다. 이 안에도 우주가 있구나. 무심코 쓰던 것들에도 누군가가 고심해 만든 디테일이 숨어 있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실 걸작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깨달음의 순간과 새로운 세계를 찍먹해보며 얻는 자잘한 지식들이야말로 내가 수고롭게 온갖 만들기 수업을 다니는 이유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경 다리 안쪽에 있는 숫자들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들은 시리얼 넘버가 아니라 각각 안경 렌즈의 가로 폭 / 브릿지 폭 / 안경 다리 총 길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서 확인해보니, 그간 유난히 얼굴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안경들은 대부분 비슷한 가로 폭이 적혀 있었다. 앞으로 안경 고를 때의 기준이 한층 명확해지겠다.

안경 디자인을 마치고 그 다음 할 일은 아세테이트 자르기. 기왕 직접 만드는 것이니 특별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빨간 아세테이트 시트를 골랐다. 갓 디자인한 도안을 1대 1 사이즈로 프린트해 딱풀로 붙인 후, 최대한 선 가까이에 톱을 대고 켜기 시작한다. 한 시간가량 톱질을 하다 보니 문득 든 생각. 아니 잠깐, 이거 CNC 기계 쓰면 10초면 커팅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사실은 맞다. 그러나 우리는 을지로에, 안경을, ‘굳이’ 만들러 온 사람들이 아니던가. 쉬운 길 대신 아날로그의 맛을 살린 공정까지가 이 수업의 완성이겠거니 한다. 퇴근 후 방문한지라 체력전으로 헉헉대기 시작할 때쯤, 무한대 표시를 닮은 안경 전면부가 탄생했다. 음, 뿌듯해라. 어쩐지 절반은 완성한 것 같다.
오산이었다. 5회짜리 수업이 이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다. 톱으로 칼선 가까이를 1차로 잘라두었다면, 이제는 칼선과 딱 맞는 곳까지 무한 줄질 지옥이 시작된다. 평소에는 도통 쓸 일 없는 ‘줄’을 활용하는 감각이 다소 생경하다. 커팅선과 최대한 가까이 가도록 아슬아슬한 줄타기. 조금만 힘을 더 주면 선을 넘어 금세 숭덩 떨어져나가니, 정신을 바짝 붙들고 힘을 조절해야 한다. 미세한 부분들까지 작은 전동 사포로 갈아주면, 형태는 어느 정도 완성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세테이트 판을 잘 잘라놓은 무언가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을 가장 그럴듯한 안경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빠우’라는 공정이다. 표면을 연마제로 문질러 광택을 내는 작업인데, 몇 시간가량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이 작업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가게에서 파는 수준의 퀄리티로 훅 올라가 보인다. 손끝이 뜨끈해질 때까지 열심히 광택을 낸 다리와 전면부를 금속으로 잇고, 열을 가해 얼굴형에 맞춰 곡선을 내주면 만들기도 이내 끝이 난다.

‘기왕’이라는 핑계로 가지고 있는 안경들보다 더 과감하게 빨간색에 호피무늬 다리를 조합하고, 형태도 평소 쓰는 것보다 볼드하게 만들었는데, 막상 완성된 안경을 보니 이렇게나 마음에 들 수가 없다. 사이즈, 컬러 조합, 알의 크기, 브릿지 형태, 다리의 길이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 선택들로 이루어진 물건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 그래도 여기에 만드는 동안의 시간들까지 담겨, 세상에 둘도 없는 물건이 되었다. 작업하는 내내 계속 써보며 수정했더니 처음 썼을 때부터 오래 쓴 물건처럼 자연스러웠다. 요즘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안경을 가지고 나간다. 안경을 매일 끼지 않는 사람인데도 이렇게 뿌듯한데, 매일 쓰는 사람이 만들면 얼마나 더 흐뭇할까 싶다.
함께 수강하는 사람들 중 절반은 안경 디자이너, 안경사 등 업계 종사자로 보였지만, 간간이 나처럼 그저 안경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시중에 있는 안경이 2%쯤 아쉬운 당신이라면? 아무래도 이 수업이 최고의 선택이 될지도 모르겠다. 준비물은 약간의 체력뿐.
나에게 좋아하는 분야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방법은, 그 세계를 파고들어 원리를 이해해 보고 서툴러도 더듬더듬 만들어보는 것. 그럼으로써 삶의 해상도를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다. 한 달, 스무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곁눈질한 안경이라는 세계도 몹시 흥미로웠다. 마음에 드는 안경이 생긴 건 물론이고, 이제는 길 가는 사람들의 안경을 볼 때도 디테일이 달리 보이니 이걸로도 수업을 들은 이유는 충분하다. 다음엔 어떤 세계를 탐방하러 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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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림
문구인 & mix coffee mak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