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만화평론가 이재민입니다. 사실, 저는 여름이 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여름에는 향수 뿌리는게 아주 제한되니까요. 특히 한국처럼 습한 날씨엔 자주 샤워하고, 보습 잘 하고, 데오드란트나 잘 뿌리는게 최고기도 하고요. 근데 너는 만화평론가 아니냐고요? 사실 제 취미중 하나가 향수입니다. 뿌리는 것도, 모으는 것도. 만드는 것 빼고 다 합니다. 본업에서도 그렇습니다. 만화 만드는 것 빼고 다 하죠.
그런 제 직업은 주로 혼자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강의를 하거나, 회의에 가거나, 아니면 촬영을 가거나 하는 식이죠. 시간으로 따지면 그걸 준비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깁니다. 그렇게 혼자서 일할 때 기분 내기 좋고, 어디 갈때 ‘꾸민 티’를 은은하게 내기도 좋은 아이템이 향수니까요.
근데 향수는 혼자서 입문하기엔 꽤 장벽이 높습니다. 일단 가격이 그렇고요, 쓰임새가 그렇습니다. 많은 취미가 그렇듯, 비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좋은 건 대부분 비쌉니다. 그래서 싼맛에 쓰는 향수를 쓰자니 너무 제한되고, 여기저기서 많이 뿌리는 향은 또 싫구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고심해서 골랐습니다. 가격대별로 조금만 고민해도 되는 가격부터, 큰 고민 필요한 가격까지. 물론, 제가 고심해서 골랐다고 해도 꼭 시향은 해보시고 취향에 맞는 향수를 찾으시길!

관심은 있는데 향수 잘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
10~20만 원대
향수를 조금 써보고 싶지만 흔한 향수를 들여놓고 안쓰는건 싫으신 분들을 위한 추천입니다. 작은 사이즈로 한 병을 써보고, 다 비우시면 조금 더 큰 사이즈를 들이는 준서PD의 지혜를 본받으십시오…(이 영상 속 ‘향기템 추천’에 나옵니다)
입생로랑 – MYSLF Le Parfum

입생로랑이라는 하우스는 ‘시크함’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하우스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제 취향인 제품은 마이셀프 라인입니다. 사실 입생로랑 하면 ‘리브르’가 떠오르죠. 물론 좋은 향수지만 남자인 제가 뿌리긴 어렵습니다. 그럴 때 찾는게 Y, 또는 마이셀프(MYSLF)입니다.
Y는 워낙 폭넓게 팔린 베스트셀러기도 하고, EDT는 호불호 없는 향이어서 좋죠. 하지만 저는 마이셀프가 좀 더 취향입니다. 향도 향인데, 병이 입생로랑의 프렌치 시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도 가을겨울에는 마이셀프 르 퍼퓸을 추천하는 이유는, 유니크한 시그니처 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 뿌리기 좋기도 하구요.
첫 향은 오렌지꽃 향, 약간의 시트러스로 시작해서 우디가 중심을 잡고, 앰버와 바닐라로 이어지는 향조가 아주 매력적입니다. 호불호 없을 향이지만, 흔하지는 않은 향이예요. 지속시간도 꽤 긴 편이고, 한여름만 아니라면 봄까지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여름에 뿌리긴 어렵지만, 남자향수 특유의 스킨향이나 비슷한 향조가 별로라면 이 향수입니다. 약간 무게감 있지만, 포멀한 룩을 주로 입으신다면 데일리로도 어색함이 없는 매력적인 향수입니다.
겔랑 – L’homme Idéal EDP

겔랑은 오늘 소개하는 브랜드 중에 유일하게 향수 전문 브랜드로 출범한 곳입니다. 1828년 설립했으니까 2년뒤면 200주년, 뭔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하우스니까 지금 미리 알아두면 좋을것 같아요.
아몬드와 라벤더, 시트러스와 허브로 시작해서 체리, 바닐라, 장미와 가죽, 우디향으로 마무리되는 복합적인 향이 굉장히 매력적인 향수입니다. 달달한 향수를 찾으신다면, 그리고 향수 덕후들 사이에서 유명한 ‘겔랑의 바닐라’를 맛보기 하기에도 좋은 향수죠.
너무 튀는 향수는 싫지만, 너무 무난한 향수도 싫다면. 치명적이고는 싶지만 퇴폐까지는 가고싶지 않다면 절제된 겔랑 르 옴므 이데알 EDP를 추천합니다. 패딩을 입고 뿌려도 좋지만, 코트를 입은 날 뿌리고 ‘나 오늘 힘좀 줬다’ 싶을 때 좋습니다.
패딩 이야기를 한 만큼, 추운 겨울날 뿌리기에 아주 좋은 향수입니다. 데일리로 쓰기엔 조금 무거울 수 있지만 한번만 뿌려도 존재감이 확실합니다. 다만 달달한 향수, 술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니 꼭 시향을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에르메스 – Musc Pallida

일단 하우스가 에르메스입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뮤스크 팔리다는 이번 에르메상스의 신상이고요(아마 이 글이 나갈 때는 새로운 제품, 진생 빌로바가 나왔을 겁니다), 이름 자체가 ‘머스크’와 ‘아이리스(이리스 팔리다라는 품종이 있대요)’에서 왔습니다. 머스크 향은 좋은데 흔한 머스크가 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딱 좋은 향입니다. 셔츠를 주로 입으시는 분들이라면 이 향수가 딱이예요. 에르메스의 절제된 미니멀함을 살리면서, 동시에 고급스러움을 잡았거든요.
포근하고, 따뜻하고, 약간의 베이비파우더 향과 한국인이 좋아하는 비누같은 깔끔한 느낌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실크 질감의 부드러운 머스크와 부드러운 아이리스, 그걸 감싸는 알데하이드의 깔끔함이 잘 갖춰진 퀄리티 높은 향수입니다. 지속력도 나쁘지 않고, 발향도 은은하게 좋은 편입니다.
에르메스의 상위라인, 에르메상스는 100ml로만 판매합니다. 그리고 비싸죠. ‘한철’ 쓰기에 100ml짜리를 추천하다니, 정신 나간거 아니냐구요? 물론 풀보틀로 저 두병을 사면 거의 100만 원입니다. 그런데 에르메스 향수에는 ‘노마드’라는 미니보틀 묶음이 있습니다. 15ml 4병에 구성에 따라 다르지만 25~30만원 선입니다. 꼭 직접 시향해보시고, 마음에 드는 향수가 있다면 여러가지를 섞어서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니까, 재고 문의해보시고 마음에 드는 향을 찾는것도 재미겠죠. 아니면 친구와 2개씩 구매해도 좋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가을 조합은 뮤스크 팔리다, 베티버 통카, 오스망뜨 윈난, 앙브르 나르길레.
입문은 했고, 고급 라인으로 가보고싶다는 분들께 추천
30만원 이상
30만 원 이상부터는 취향의 영역입니다. 이정도 가격을 지불하신 분들이라면 ‘남들과는 다른’ 향수를 찾으실 거고, 본인의 취향도 확고할 겁니다. 여기부턴 매장 숫자도 굉장히 제한적이기도 하고, 일단 무지 비싸요. 그러니까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쯤 시향해보시고 구매하시길 추천합니다.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 – Angelique Noir

가을 겨울, 단 한병의 향수만 있어야 한다면 저는 안젤리크 누아르입니다. ‘예술’을 뜻하는 아트(L’art)와 ‘원료’를 뜻하는 라 마티에르(La Matière)를 더한 겔랑의 상위 라인 중에서도 가장 예술적인 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향수입니다.
안젤리카, 베르가못으로 톡 쏘는 향으로 시작해 약간의 쌉쌀함과 허브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그 쌉쌀함이 오렌지 꽃, 안젤리카 뿌리의 달달함으로 이어지고, 그게 마지막 마다가스카 바닐라와 앰버, 크리미한 시더우드로 이어지면서 고급스럽고 투명한, 그리고 우아한 잔향으로 이어집니다.
20대보다는 30대 이상에게 어울리는 고급스럽고 차분한 향,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이어지는 향이예요. 시원한 풀향에서 시작해 은은한 바닐라로 넘어가는 향조는 정말로 꼭 한번쯤 체험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입생로랑 르 베스티에르 – TUXEDO

앞으로 단 하나의 하우스에서만 향수를 쓸 수 있다면, 저는 입생로랑의 소위 ‘옷장(Le Vestiaire)’라인을 고를 겁니다. 생로랑이 생전에 영감을 받았던 어머니의 옷장, 그리고 생로랑이 만들었던 기념비적인 옷과 그가 탐닉했던 재료들을 모티프로 만든 향수들이예요.
턱시도를 생로랑이 개발하진 않았지만, 여성에게 턱시도를 입혀 런웨이에 올린건 생로랑이 처음입니다. 1966년 선보인 최초의 여성용 턱시도 수트 ‘르 스모킹’을 향으로 구현했습니다.
고수 씨앗과 바이올렛 잎의 서늘하고 쌉싸름한 향으로 시작해 후추와 장미 오일로, 그리고 앰버그리스, 패출리와 바닐라 버번으로 이어지는 향조는 정말 어느 부분이건 매력적입니다. 르 스모킹이 대비되는 직선과 곡선을 조합해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낸 것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날카로운 향과 부드러운 향을 조합했어요. 혹시 해외 나갈 일이 있으시다면, 열심히 면세점을 들여다보시길. 면세점에서 구매하면 꽤 괜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향은 좋지만, 정가로 사기엔 지갑은 소중하니까.
오늘 5종을 소개했지만, 여기에 넣을까 말까 끝까지 망설인 향수들도 차고 넘칩니다. 소개 못한 하우스만 해도 샤넬, 구찌, 프라다, 루이비통, 디올과 같은 패션 브랜드부터 이솝, 딥티크, 메종 프란시스 커정처럼 잘 알려진 니치향수 브랜드에서 아무아쥬나 보아디시아 더 빅토리어스 같은 생소한 브랜드들까지. 기회가 된다면 아예 하우스별 추천향수를 들고 오고 싶은 마음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살려주시겠죠…? 그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향수 이야기로 봬요!
About Author
이재민
만화평론가이자 만화 전문 에디터. 서울웹툰아카데미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