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 연희다.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를 코앞에 둔 지금,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콩국수라고 답할 것이다. 평소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여름만 되면 냉면, 모밀, 아이스크림 같은 차가운 음식을 찾아 헤매는데, 늘 마지막엔 콩국수로 돌아오게 된다. 여름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음식이랄까.
그동안 수많은 콩국수를 먹으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하늘 아래 같은 콩국수는 없다는 것.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콩의 종류부터 농도, 면발, 곁들이는 음식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콩국수의 취향을 말할 땐 늘 소금이냐 설탕이냐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쉬워 취향별 콩국수 가이드를 만들었다.
녹진하고 고소한 콩물파부터 달큰한 서리태파, 쫄깃한 칼국수면파, 새로운 스타일의 뉴웨이브 콩국수파까지. 콩국수가 처음인 사람도, 이미 좋아하는 사람도 이번 여름 자신만의 최애 콩국수 한 그릇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다. 이번 여름 모두가 콩국수의 담백한 매력에 풍덩 빠지길!
TYPE 1. 고소 녹진 콩물파
“콩국수의 본체는 콩물이라고 “
콩국수 맛의 8할, 아니 9할은 콩물로 결정된다. 대충 삶아서 갈면 그게 콩물 아니야? 하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맛있는 콩물을 만들기란 보기보다 까다롭다. 오래 삶으면 텁텁해지기 쉽고, 대강 삶으면 콩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포슬포슬하게 삶아냈다면 이제는 얼마나 곱게 갈아낼지 새로운 갈림길에 놓인다. 얼마나 가느냐에 따라 콩물의 농도와 질감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껍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곱게 갈면 크림처럼 밀도가 높고 콩 맛을 빽빽하게 느낄 수 있다. 반대로 거칠게 갈아내면 두유처럼 후루룩 마시기 좋은 콩물이 된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때 정해진 농도와 간이 최종적으로 어떤 면발, 곁들임과 가장 좋은 궁합을 보여줄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레시피에는 ‘콩을 삶은 후 간다’고 적혀 있지만 그 짧은 문장 안에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숨어 있다. 결국 콩이 은밀하게 품고 있는 고소함을 한 톨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집요하게 굴어야만 최고의 콩물에 도달할 수 있다. 새하얀 콩물 한 그릇엔 그런 고민의 흔적이 녹진하게 담겨 있다.
목구멍에 때려붓는 고소함
@정선콩국수 소소정

콩물은 콩국수 전문점의 자존심이다. 어떤 콩을 쓸지, 얼마나 삶을지, 어느 정도로 곱게 갈지 등 수많은 고민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그 가게만의 시그니처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정선콩국수 소소정은 그런 자부심이 특히 잘 느껴지는 곳이다. 고명으로 올라간 백태 세 알만 봐도 알 수 있다. 고고한 자태로 ‘보아라, 강원도 정선 백태를 엄선해 직접 간 콩물의 자태를.’ 이런 아우라를 뽐내는 것 같달까. 정선 백태는 일교차가 큰 환경에서 자라 알이 단단하고 진한 고소함과 깔끔한 뒷맛이 특징이다. 덕분에 콩물도 진하지만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곳 콩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다. 바로 콩결! 요플레처럼 가벼우면서도 꾸덕한 질감이 목구멍을 코팅하듯 부드럽게 넘어간다. 덕분에 콩의 고소함을 오래 음미할 수 있다. 면과의 밸런스도 훌륭하지만 늘 먹다 보면 콩물이 먼저 바닥난다.
- 서울 서초구 동광로 68 1층
콩국수계의 상견례 프리패스상
@임병주 산동칼국수

임병주 산동칼국수는 2017년부터 9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될 만큼 알 사람은 다 아는 칼국수 맛집이다. 그러나 칼국수 맛집으로만 기억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콩국수가 이곳을 사계절 내내 북적이게 만드는 이유이기 때문. 임병주 산동칼국수의 콩국수는 오이나 깨 같은 흔한 고명 하나 없이 순백의 모습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깨뜨리기 미안할 정도의 뽀얀 국물과 면을 보면 ‘콩국수의 정석’이 이런 것인가 싶다. 콩국수계의 상견례 프리패스상이랄까? 콩물은 콩의 입자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곱고 밀도가 높다. 흔히 밀도가 높으면 느끼해지기 쉬운데 끝맛이 청량해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콩국수 입문을 앞둔 친구가 있다면 고민 없이 이곳을 데려갈 것이다.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37길 65
의외의 케미! 콩국수와 계란
@두부사랑

여름이 오면 분식집, 중국집 등 대부분의 가게에서 콩국수를 개시한다. 창문에 붙은 화려한 ‘여름 콩국수 개시’ 포스터를 보면 반가움보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경험상 맛있는 콩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물론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다). 하지만 두부 전문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직접 두부를 만드는 가게에선 콩물도 직접 갈 가능성이 높으니까. 두부 사랑의 콩국수는 계란을 고명으로 올려주는데 부드러운 콩물과 포슬포슬한 계란의 조합이 의외로 잘 어우러진다. 콩물은 숟가락으로 뜨면 후두둑 떨어질 정도의 농도로 부담 없이 꿀떡꿀떡 먹기 좋다. 브레이크 타임 없이 운영하기 때문에 식사 시간을 살짝 피해 방문하면 웨이팅 없이 여유롭게 콩국수를 즐길 수 있다.
- 서울 중구 동호로10길 8-3
TYPE 2. 서리태 콩국수파
“콩국수의 악마, 달큰하고 고소해!”
일반 콩국수의 녹진 고소함이 살짝 부담스럽다면 서리태 콩국수를 추천한다. 서리태, 그러니까 검은콩은 백태보다 지방질과 당도가 높아 콩 특유의 비린내가 훨씬 적고 단맛과 고소함이 강하다. 서리태로 만든 콩물은 보통 껍질째 갈아 만들기 때문에 거무스름하면서 푸른빛을 띤다. 까맣게 생긴 게 맛은 달큰해서 K드라마의 츤데레 남주 같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점에서도.
머리 띵해지게 시원한 콩국수
@신당동천팥죽
기세 좋게 내리쬐는 햇볕에 바람 빠진 풍선마냥 온몸이 축축 처질 땐 이곳 콩국수가 떠오른다. 여름 몸보신은 이열치열이라지만 뜨거운 음식을 상상하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을 때 신당동천팥죽의 콩국수에게로 달려간다. 진한 콩물 속에 잠긴 얼음 세 조각의 냉기를 떠올리면서. 이곳 콩물은 검은콩을 곱게 갈아 텁텁함이 없고 후루룩 마시기 좋다. 얼음으로 차가워진 그릇을 두 손으로 들고 진한 국물을 들이키면 순간 머리가 띵해지며 쌓였던 열기가 싹 씻겨 내려간다. 물론 얼음이 녹아도 콩물이 밍밍해지지 않으니 천천히 음미해도 좋다.
- 서울 중구 다산로44길 33
소금, 설탕은 하수야 고수는 백김치다
@교대밀밭 교대점

소금 vs 설탕. 콩국수 하면 자동 완성 문장처럼 등장하는 오랜 논쟁이다. 하지만 오늘은 소금과 설탕 말고 김치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김치파는 콩국수의 느끼함을 김치의 맵싸함으로 보완하는 맛잘알 타입이다. 하얀 음식에 빨간 음식만큼 최고의 궁합도 없으니까. 교대밀밭은 그런 김치파에게 ‘백김치’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안한다. 국내산 서리태를 거칠게 갈아 만든 콩국수에 끝맛이 시원한 백김치를 곁들이면 콩의 고소함은 그대로 즐기면서 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담백하면서도 상큼한 콩국수와 백김치 조합, 여름이 지나기 전에 꼭 한 번 도전해보길 추천한다.
-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26길 61
싹수 검은 콩국수의 맛
@답십리별미
최현석 셰프는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에 출연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주방에서 셰프 위에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재료.” 즉, 얼마나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지가 맛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답십리 별미식당의 콩국수는 맛있을 수밖에 없다. 경북 예천군 서리태 콩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식당 벽면에 메뉴판만큼 큼직하게 걸린 서리태 콩밭 사진에선 사장님의 자부심이 느껴지는데 콩국수를 한 입 맛보면 그 자신감이 바로 이해된다. 좋은 재료가 주는 서리태 본연의 고소함과 달큰함이 제대로 느껴지는 곳. 콩물에 별다른 간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기 때문에 순정 상태로 담백하게 즐기길 추천한다.
-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48길 98
TYPE 3. 칼국수면 콩국수파
“입안에 착 감기는 쫄깃함 “
콩국수에는 소면, 중면, 메밀면 등 다양한 종류의 면이 사용된다. 보통 콩물의 퀄리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면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인공인 콩물이 더 빛나기 위해선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조연도 필요한 법. 어떤 면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콩국수의 매력이 달라지는데, 그중 나의 최애 조합은 칼국수면이다. 다른 면보다 두껍고 표면이 거칠어 녹진한 콩물을 듬뿍 머금기 때문. 덕분에 한 입 가득 넣었을 때 콩물과 면이 함께 밀려오는 만족감이 훨씬 크다. 콩국수 맛집 중 칼국수 전문점이 유독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타면과 콩물의 댄스 댄스 댄스
@서민준밀밭

라면은 꼬들면, 시리얼은 강경 바삭파인 나는 어떤 음식이든 식감이 가장 중요하다. 콩국수에서 느낄 식감이 어딨냐고 묻는다면 서운하다. 콩국수는 콩물과 면, 두 가지로 이루어진 단순한 음식이라 오히려 면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민준밀밭은 직접 만든 수타면을 사용해 쫄깃탱글한 식감과 씹을수록 밀의 고소함이 잘 느껴진다. 맷돌로 간 고운 콩물이 면의 거친 표면에 꾸덕하게 묻어 한 입 가득 먹었을 때의 만족감이 높다. 이곳의 또 다른 감동 포인트는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보리밥!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빈 보리밥은 시원한 콩국수를 맞이하는 최고의 빌드업이 아닐까.
-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 192
45년 살아남은 강한 콩국수
@충무칼국수
오래 살아남은 것이 강하다는 말을 신뢰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쉽게 대체되는 시대에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건 호불호를 떠나 실력파라는 증거니까. 충무칼국수는 종로5가 골목길 끝자락에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 맛집이다. 매일 아침 백태와 서리태를 섞어 갈아낸 콩물은 고소함과 단맛의 밸런스가 매력적이다. 칼국수 전문점답게 투박하면서도 쫀득한 수타면은 너무 묽지 않은 콩물과 잘 어우러진다. 오랜 세월 합을 맞춰 온 듀오의 무대를 보는 느낌이랄까. 모든 면에서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딱 중도를 지킨 정석적인 맛의 콩국수다.
-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23-5
이 시대의 맛집 인재
@꾸왁칼국수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만 원을 넘지 않는 메뉴는 하늘의 별 따기다. 오죽하면 만 원 이하 가성비 식당만 모아둔 지도 ‘거지맵’이 유행했을까. 꾸왁칼국수는 전 메뉴가 만 원을 넘지 않는 부담 없이 한 끼 해결하기 좋은 식당이다. 가격이 착하다고 맛도 착한 건 아니다. 콩국수는 검은콩을 거칠게 갈아 만든 진한 스타일로 너무 빽빽하지도 두유처럼 크리미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농도다. 중간중간 서리태 껍질이 씹히기도 하는데 거슬리기보다는 직접 간 콩물이라는 느낌이 들어 괜찮았다. 생활의 달인 칼국수 편에 출연한 가게답게 쫀득한 면발과 콩물의 궁합도 손색없는 곳. 착한 가격에 그렇지 않은 맛. 이 시대 최고의 맛집 인재가 아닐까.
-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67-13
TYPE 4. 뉴웨이브 콩국수파
“콩국수계의 영크크”
콩국수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최초의 콩국수 레시피는 1800년대 말에 쓰인 『시의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름 별미로 꾸준히 사람들의 밥상에 올랐던 셈이다. 최근에는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 음식 콩국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파스타부터 수프, 쑥을 활용한 콩물까지. 익숙한 듯 낯선 콩국수의 기분 좋은 변주를 확인해 보자.
소개팅에서 먹어도 되는 콩국수
@해뷰

콩국수와 모던한 인테리어의 감각적인 식당 분위기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콩국수를 파스타처럼 풀어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퓨전 한식 주점 해뷰에서는 콩국수를 재해석한 ‘콩크림 국수’를 맛볼 수 있다. 오징어 먹물 파스타면에 고소한 콩크림과 흑임자가루, 호두정과를 올려 완성한 메뉴로 콩국수를 크림 파스타처럼 즐길 수 있다. 전체적으로 맛의 밸런스가 좋고 색 조합이 예뻐 콩국수의 변신을 보는 기분이랄까. 모던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의 식당이라 특별한 날 친구나 연인과 함께 방문하기 좋다.
-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28길 1
Team 할매입맛 다 모여
@풀 발효부엌
쑥, 팥, 콩. 할매입맛이라면 절대 지나치지 못할 조합이다. 나는 이 셋 중 하나라도 들어갔다 하면 무조건 먹어봐야 하는 할매입맛 중증 단계인데, 풀 발효부엌의 콩국수에는 세 재료가 모두 들어간다. 그러니 별수 있나. 당장 먹어봐야지. ‘제주 우무 쑥 콩국수’는 초록빛 쑥 콩국물과 우뭇가사리면, 직접 쑨 팥고명이 올라간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쑥의 향긋함과 고슬고슬한 팥의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져 자꾸 숟가락이 간다. 특이한 점은 면 대신 우뭇가사리를 사용했다는 것. 묵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야들하고 탱글한 식감이라 후루룩 먹기 좋다. 전체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이 잘 느껴져 한 그릇을 다 비워내도 속이 편안하다.
- 서울 마포구 포은로 89 2층
지중해에서 먹는 콩국수는 이런 느낌일까
@비지수프바

비지 수프 바는 토속 음식인 비지를 수프와 핀초(오픈 샌드위치) 조합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밀가루와 크림을 사용하지 않아 건강하게 한 끼 먹고 싶을 때 찾기 좋다. 여름을 맞아 비지 수프로 만든 콩국수 메뉴를 출시했다고 해 다녀왔다. 콩국수는 콩비지와 두유, 참깨, 레몬으로 만든 차가운 비지 수프를 파스타면에 부어 먹는 방식이다. 비지의 거친 식감과 점도 있는 국물이 파스타면과 의외로 잘 어울렸고, 끝에 살짝 맴도는 레몬의 산미도 매력적이었다.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치즈의 고소함이 느껴져서 신기했다. 가본 적은 없지만 지중해 어딘가의 작은 식당에서 팔 것 같은 맛이랄까.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취향에 따라 하몽, 그래놀라, 고수 등을 곁들여 먹어도 좋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조합은 고수와 그래놀라. 레몬과 고수의 향긋함, 그래놀라의 바삭한 식감이 보기보다 잘 어울린다.
- 서울 성동구 성덕정19길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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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
에디터 연희. 마음에 방이 많아 기웃거리는 주제가 많습니다. 세상이 너무 재밌어서 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