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WWDC는 팀 쿡 CEO의 마지막 무대였습니다. 키노트 말미에 그는 그동안을 돌아보며, “많은 사람들이 애플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경험하도록 노력해 왔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애플의 목표는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죠.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팀 쿡의 가장 큰 임무였던 하드웨어의 고도화와 공급망 안정을 통한 생태계 확장은 분명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존 터너스 체제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어쩌면 애플이 다시 새로운 가치를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컴퓨터와 아이팟,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의 시대’를 넘어, 반도체와 대중적인 제품 카테고리로 생태계를 넓힌 ‘팀 쿡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는 AI 중심의 ‘존 터너스 시대’로의 전환을 기대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 ‘애플 인텔리전스’, 그리고 ‘시리 AI’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그동안 애플이 AI 분야에서 다른 기업들에 비해 뒤처져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애플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앞으로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벌써 2년?! 애플은 그동안 무얼 했을까
애플은 지난 2024년 WWDC를 통해 애플 인텔리전스를 공개했고,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돌아보면 당시의 AI 기술은 이제 막 그 가능성 너머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요. 하지만 애플은 다소 잠잠했고, 왜 오픈AI나 구글, 메타처럼 대규모 언어 모델을 내세우지 않느냐는 지적이 이어졌었지요.
애플도 이 AI 중심의 변화를 누구보다 기다려 왔지만 그 파도가 너무나도 갑자기, 그리고 크게 밀려 왔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걸로 보입니다. 이건 기술적인 부분 뿐 아니라 그간의 개인정보, 사생활 보호 등을 중심에 둔 애플의 철학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결국 애플이 선택한 것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는 것이 아니라 기기를 중심으로 우리의 일상에 깊게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인공지능에 개인정보를 모두 맡기는 것은 걱정스럽다는 일반인들의 시선과도 맞아 떨어지는 결정이었습니다. 애플은 이를 위해서 대부분의 AI 관련 처리를 기기 내에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이 개인정보에 더 깊이 다가설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결정은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크게 공감합니다.
애플이 2024년 준비했던 당장의 목표는 기기 내의 모든 데이터를 학습하고, 또 기억하고 그 안에서 모든 개인 정보들 사이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리를 통해서 내 일상 관련 정보들에 대해 더 깊이 접근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먼저 기기가 충분한 성능을 내야 했는데, 일단 메모리 부족이 시급했습니다. 결국 애플은 이 커다란 AI 플랫폼의 변화를 8GB 메모리로 제한해야 했습니다. 당장 당시의 아이폰 중에서도 최신형에 속하는 아이폰 15 프로 라인업만 가능한 일이었지요.
AI 모델 개발도 쉽지 않았습니다. 머신러닝 기반의 AI는 결국 더 많은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학습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두고 완성이 되는데, 애플로서는 모델을 학습하고 튜닝하는 데에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애플이 다루려는 데이터는 결국 개인정보인데, 애플이 이용자 데이터는 학습에 손대지 않겠다는 강한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온전한 학습 데이터 세트를 모으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을 거에요. 그걸 몇 달만에 완성하는 것은 제 아무리 애플이라고 해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오픈AI의 폭발적 성장과 구글의 반격, 그리고 앤트로픽 등 새로운 강자들이 가능성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던 시기였던 만큼 세상의 관심도, 인력도, 인프라도 모두 글로벌 AI에 집중되었습니다. 성능과 데이터 활용이 제한된 모바일 기기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능했던 일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결국 애플 인텔리전스는 기대만큼 언어모델로서의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고, 시리의 업데이트는 기약없이 미뤄졌습니다. 지난해 WWDC25에서도 애플은 시리에 대해서 ‘조금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할 뿐이었습니다. 이건 애플 AI의 방향성 문제가 아니라 당장 닥친 모바일 경험의 흐름에 대한 위기였습니다.
변화의 시작, 구글과 손 잡다

애플은 결국 2026년 초, 구글과 손잡고 애플 인텔리전스의 기본이 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애플은 애초 세상의 정보는 챗GPT에 맡기는 것으로 애플 인텔리전스를 시작했고, 그 어떤 AI 플랫폼이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쪽은 경쟁 영역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정보의 맥락을 읽는 시리의 핵심 기술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맞았습니다.
구글은 이 부분에서 가장 앞서 있습니다. 애초 구글의 인공지능에 집중했던 분야 중 하나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사이의 맥락을 읽어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지, 지금 뭘 사고 싶고, 어디로 여행하고 싶은지를 미리 맞춰보는 ‘관심법’에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광고 효과와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제미나이는 이제 가장 말귀를 잘 알아듣고 세상을 잘 이해하는 AI 모델로 꼽힙니다. 애플이 당장 필요한 AI 모델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죠.
이번에 등장한 2세대 애플 인텔리전스의 파운데이션 모델은 구글의 제미나이, 그리고 여러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받아들여서 개발했습니다. 그렇다고 애플이 제미나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아닙니다. 애플은 여전히 처음의 약속, 그러니까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에 대한 철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기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그리고 제한된 클라우드 내에서 컴퓨팅만 돕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애플 인텔리전스 파운데이션 모델을 따로 개발합니다.
이번 WWDC26 키노트에서도 크레이그 페더리기 수석 부사장이 ‘AI는 강력한 기술이고 의미있는 일들을 해내지만 세상이 지금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도 AI의 편리함에 그 이용량이 점점 늘어나고, 어느새 제 AI 서비스는 저의 많은 것들을 꿰뚫고 있습니다. 사소한 질문에도 제 일과, 최근의 관심사를 엮어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말하는 것이 때로는 섬칫한 일이지요.
시리 AI의 방향성, ‘행동하는 AI’로 진화

어쨌든 애플의 이번 키노트는 애플 인텔리전스의 확장, 그리고 시리 AI의 기능에 집중됐습니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훨씬 매끄러워졌고, 세상 밖의 정보를 소홀히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냅니다. 요즘 언어 모델들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반영한 거죠. 이미지 처리도 훨씬 강력해졌고, 목소리도 제미나이 라이브를 떠올릴 만큼 자연스럽게 억양과 감정을 담아내는 게 인상적입니다.
시리 AI는 2년 전 WWDC 키노트에서 발표했던 것처럼 개인정보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대답을 만들어 냅니다. 이게 확실히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데이터의 정리인데, 애플은 이번에 OS들의 직접적인 변화를 크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 베타 OS는 변화가 크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대신 내부의 데이터 처리 구조를 싹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스케줄러를 정리해서 프로그램의 실행 속도를 높이고 데이터를 불러오고 전송하는 속도부터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데이터 검색도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집니다. 이는 모두 애플 인텔리전스의 데이터 학습이 더 적극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애플은 앱들이 시리 AI를 활용하는 예를 여러가지 시연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이번 WWDC에서 가장 중요한 애플의 방향성을 언급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바로 ‘행동’입니다.

키노트의 시연을 몇 가지 살펴보죠. 사진을 보다가 시리에게 묻습니다. ‘여기는 정확히 어디야?’ 시리는 위치를 답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제프가 최근에 이사했다고 했는데 집이 어디라고 했지?’ 시리는 그 동안 주고 받은 메시지와 이메일을 모두 꿰뚫고 있기 때문에 단숨에 새 집의 위치를 단숨에 알려줍니다. ‘그럼 제프 집에 갔다가 아까 사진의 장소까지 가는 길을 알려줘’라고 하니 시리는 애플 지도를 펼쳐서 경로를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월드컵 일정에 대해서 묻습니다. 시리 AI는 단순 정보를 언급하는 것을 넘어 최근의 지식 그래프처럼 각 국가별 경기 일정을 그래픽으로 만들어서 보여줍니다. 이걸 보고 특정 경기를 짚어 두 국가의 대표 음식들은 뭐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시리에게 이걸 설명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요. 그리고 ‘이 음식들을 포함한 메뉴와 함께 해당 월드컵 경기 일정에 맞춰 단체 메시지 방에 초대를 보내줘’라고 말하니 시리가 내용을 담은 메시지를 만들어서 확인합니다. 전송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게 이뤄집니다.

항공사에 전화를 걸면 시리 AI는 신호음이 가는 사이에 해당 번호가 항공사라는 것을 알아채고, 왜 전화를 하는지 의도를 짚어 봅니다. 아마 예약이나 기존 예약에 대한 변경 등을 목적으로 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그럼 기존의 개인정보를 살펴봅니다. 마침 예약 정보가 이메일에 담겨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항공 스케줄, 편명, 예약 번호 등을 화면에 미리 띄워주면 정보를 찾느라 헤맬 필요 없이 깔끔하게 원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결국 시리 AI가 가는 길은 ‘무엇인가 행동’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걸 조금 더 고도화하는 것이 바로 에이전트 AI입니다. 최근 맥 미니 품절을 일으킨 ‘오픈클로’ 같은 것이지요. 마치 키보드와 마우스를 쥔 것처럼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해치우는 구글의 ‘제미나이 스파크’도 있습니다.
제가 시리에 기대하는 부분도 바로 이 에이전트 AI에 있습니다. 현재 에이전트 AI는 그 기대만큼이나 큰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얘가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는 겁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권한을 주는데, 엉뚱한 물건을 구입한다거나, 개인정보를 메일로 전송하고, 지금 한창 뜨거운 주식 계좌를 지워버릴 수도 있어요. 결국 안정성과 철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애플이 추구하는 AI도 결국 완전한 신뢰를 얻어서 더 많은 일을 과감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결국 애플의 AI 경쟁력, ‘개인정보 보호의 신뢰’

다만 이 역시 지금은 조금 이른 수준입니다. 물론 구글은 최근 구글 I/O를 통해 이 에이전트 AI를 중심에 두고 강력한 개인 정보 처리를 해내고 있습니다. 애플은 아직은 이에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현재의 모델 수준으로는 신뢰를 얻기도 쉽지 않지요. AI는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 감정적으로도 천천히 다가서야 합니다. 구글은 구글대로, 애플은 애플대로의 접근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애플도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개인정보를 통해 맥락을 이해하고, 의도를 내다 본 다음의 단계는 결국 행동에 있으니 말이지요. 애플이 신뢰를 얻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이 ‘행동하는 AI’에 곧바로 연결됩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새로운 애플 인텔리전스와 시리 AI는 미국에서 영문으로만 쓸 수 있습니다. 개발자 베타 버전 뿐 아니라 정식 출시되는 시점에도 기본적으로는 미국과 영어라는 제약이 있을 거에요. 물론 애플은 한국어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여러가지 규제와 정치적인 이유로 유럽과 중국이 당장 시리 AI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차례가 더 빨리 돌아오긴 하겠지만 올 연말은 되어야 우리말을 능숙하게 하는 시리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애플 사용자라면 누구나 애플 인텔리전스에 서운한(?) 점이 있죠. 실망도 겪었지만 여전히 기대가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제미나이나 챗GPT, 클로드 등의 다른 서비스로 이미 AI를 밀접하게 쓰고 있긴 하지만 이를 운영체제에서 마음 편하게 처리해 주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니까요. ‘이걸 어떻게 알았지?’가 아니라 ‘좋아, 잘 알고 있군’이라는 생각으로 접하는 일상의 AI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겁니다.

누가 더 잘 하네, 못 하네…라는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는 모든 서비스에 열려 있고, 우리는 그걸 복합해서 잘 쓰면 됩니다. 애플은 모든 것의 원천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기술들을 애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가장 좋은 경험을 만들어내는 기업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구글의 AI는 LG의 디스플레이, 삼성의 메모리처럼 애플 기기를 구성하는 가장 좋은 재료이고, 이제 애플이 이걸로 어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갈 지에 대해 기대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애플 인텔리전스, 그리고 시리는 이제 사람들의 기대치에 가까이 올라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국어는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애플 인텔리전스와 시리 AI는 한국어를 포함한 거의 모든 언어로 작동하게 되지만 곧바로 공개된 개발자 베타 OS를 비롯해 정식 배포되는 올 가을에는 미국에서 영어를 쓰는 이용자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후 여러 언어로 확대되는 식입니다.
애플은 딱 2년 전 이 자리에서 애플 인텔리전스와 시리를 공개했지만 그게 현실이 되기까지는 기대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AI는 쉽지 않은 일이고 애플은 그 상당 부분을 혼자, 그리고 기기 내부에서 처리하려는 큰 목표를 세우면서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키노트를 통해서 보여주려는 것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라기보다 애플이 오랫동안 인공지능으로 하려던 일들이었습니다. 다만 그 동안 기기의 성능과 초기 단계의 인공지능 기술만으로는 완벽하지 못했던 일들이었습니다.
‘애플이 늦었다’는 평가는 분명하지만 애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글의 모델을 적용하는 것처럼 어떤 방법으로든 가야 할 길 자체는 명확합니다. 물론 당장 이번 OS27에서 보여줄 시리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AI 경험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방향성과 재료는 준비되었고, 이제 이를 처리할 강력한 프로세서들을 지닌 기기들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애플다운 방법으로 AI를 보여줄 차례입니다. 중요한 건 ‘애플이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적절한 기술로 편리한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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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