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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커피 가이드: 멜버른 편

멜버른 커피의 심장부를 걷다 
멜버른 커피의 심장부를 걷다 

2026. 02. 24

안녕, 나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심재범이다. 얼마 전, 바리스타들이 사랑하는 커피 도시, 멜버른에 다녀왔다.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을 해마다 배출하며 커피 애호가들과 바리스타들의 성지가 된 멜버른의 카페는 어떤 모습일까? 3일 동안 30여 곳의 카페를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자타 공인 멜버른 스페셜티커피 사대천왕과 개인적으로 좋았던 소규모 독립 매장 3곳을 정리했다. 


[1]
Proud Mary Coffee 

프라우드 메리

가장 먼저 프라우드 메리 커피를 방문했다. 프라우드 메리는 세븐시즈, 마켓레인, 세인트알리와 함께 멜버른의 4대 커피로 알려졌으며, 세계 최고의 스페셜티커피 로스터로 손꼽히는 곳이다. 프라우드메리 본점은 멜버른 도심 외곽 콜링우드에 위치한다. 콜링우드는 프라우드 메리를 중심으로 독립 커피 매장과 감각적인 식당들이 모이며 최근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다. 

프라우드 메리는 현지에서 브런치로도 정평이 난 곳이다. 인기 메뉴는 베이컨과 해시브라운. 일반적인 바삭한 베이컨이 아니라, 이탈리아식 판체타처럼 도톰하고 짭조름한 베이컨과 감자를 큼직하게 썰어 강한 불에 구운 해시브라운의 질감이 인상적이다. 브런치와 함께 주문한 커피는 과테말라 산타 펠리사 농장의 스타마야 내추럴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 촉촉한 베이컨과 질감이 살아 있는 해시브라운 사이로 스며드는 에스프레소의 향미가 질 좋은 스파클링 와인처럼 생생했다.

프라우드 메리라는 이름은 1970년대 팝송 ‘Proud Mary’에서 따왔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흐르는 증기선을 노래한 후렴구처럼, 스페셜티커피 매장이면서 꾸준하게 정진하는 그들만의 리듬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2]
St. Ali Coffee

멜버른 남부 공장 지대에서 시작한 세인트 알리는 멜버른 스페셜티커피 문화의 출발점인 곳이다. 2005년 문을 연 이후, 커피와 음식을 높은 수준으로 선보여, 멜버른 뿐만 아니라 전세계 스페셜티커피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세인트 알리의 외부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하지만 내부는 테이크아웃 바와 홀 좌석이 분리된 넓은 공간에 올데이 브런치와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친다. 원조 매장답게 다양한 굿즈와 커피 관련 제품들도 함께 진열되어 있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하나의 커피 플랫폼처럼 느껴졌다.

커피 메뉴는 기본 에스프레소와 밀크 베리에이션을 중심으로, 다양한 싱글 오리진과 창작 음료까지 폭넓게 구성되어 있다. 세인트 알리의 추천 메뉴는 에스프레소 플라이트. 블렌딩 1종과 싱글 오리진 2종, 총 세 잔의 에스프레소를 비교하며 마실 수 있는 메뉴이다. 기본 블렌딩은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를 연상시키는 진득한 질감과 단맛이 인상적이고,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는 보다 선명한 산미와 향미가 대비를 이룬다.

세인트 알리

세인트 알리는 멜버른 커피가 ‘취향’에서 ‘산업’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표현하는 곳이다. 척박한 공장지대에서 시작한 스페셜티커피 로스터가 다양한 음식과 상품을 선보이면서, 멜버른 커피 산업의 새로운 기준이 된 셈이다. 


[3]
Seven Seeds Coffee

세븐시즈

멜버른 대학가 주변에 위치한 세븐시즈는 멜버른에서 가장 차분한 스페셜티커피 매장이다. 프라우드 메리와 세인트 알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발산한다면, 세븐시즈는 조용히 집중하는 쪽에 가깝다. 매장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낮아지고,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펼치거나 노트북을 여는 손님들이 눈에 띈다. 대학가 특유의 학구적인 공기가 가득했다. 

세븐시즈 본점은 멜버른 도심 북쪽, 멜버른 대학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멜버른의 대표 재래시장인 퀸 빅토리아 마켓에서도 멀지 않다. 입구에서 주문하면 서버와 바리스타가 커피와 음식을 가져다주는 구조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프라우드 메리와 닮았지만, 분위기가 훨씬 절제되어 있다.

세븐시즈에서 호주식 아메리카노인 롱블랙을 마셨다. 호주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숏블랙, 아메리카노를 롱블랙이라 부른다. 세븐시즈의 롱블랙은 더블샷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커피의 질감이 명확하고 향미가 과하지 않고 또렷하다. 조식 메뉴는 아보카도와 스크램블 에그. 프라우드 메리의 음식과 커피가 맹렬한 완성도를 과시한다면, 세븐시즈의 음식은 커피와의 궁합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머물수록 신뢰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멜버른 커피의 학구적인 온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매장이다.


[4]
Market Lane Coffee  

퀸 빅토리아 마켓 내부에 있는 마켓레인커피에서 ‘매직(Magic)’을 마셨다. 매직은 더블 에스프레소에 소량의 따뜻한 우유를 더한 커피이다.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조합이 마술처럼 절묘해 매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메뉴판에 없지만, 멜버른의 스페셜티커피 매장에서 주문이 가능한 히든 메뉴이다. 일설에는 바리스타들이 바쁜 근무 시간에 에스프레소에 카페라테를 만들고 남은 스팀밀크를 빠르게 부어 마시는 것에서 개발된 메뉴라고도 한다.  

마켓레인

마켓레인의 매직은 깔끔한 에스프레소와 현지 단일 목장의 크리미한 우유가 균형을 이룬다. 커피가 앞서 나가지 않고, 우유가 덮어버리지 않는다. 유행을 좇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마켓레인의 태도가 한 잔에 고스란히 담겼다. 화사하지만 과하지 않은 산미와 투명한 단맛, 그리고 깔끔한 후미가 마켓레인의 스타일을 설명한다. 우유를 비롯한 낙농 제품 역시 지역의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

마켓레인은 시내 여러 곳에 지점이 있지만, 퀸 빅토리아 시장 안에 있는 매장을 추천한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 낙농제품, 해물과 심지어 육류 제품까지 멜버른 시민의 주방을 책임지는 생생한 시장 한켠에서 테이크 아웃 매장의 임팩트가 강렬하다. 

마켓레인은 멜버른 커피의 ‘기본값’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특별해 보이려 애쓰지 않고, 늘 같은 온도로 커피를 내놓는다. 클래식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5]
A Coffee  

에이커피

콜링우드의 에이커피는 멜버른 최초 한국인이 운영하는 로스터리다. 한국 출신 로스터이자 바리스타인 정호승은 멜버른 커피 신에서는 보기 드문 차분한 감도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장 내부는 화이트 톤의 커피바와 은은한 빛이 스며드는 박스형 구조로 구성돼 있고, 여백이 많은 공간과 간결한 레이아웃 덕분에 자연스럽게 커피에 집중할 수 있다. 

에이커피에서 플랫화이트를 마셨다. 낮은 산미와 절제된 우유의 단맛이 먼저 다가오고, 커피가 조용히 뒤를 받친다.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다. 매직이 멜버른 바리스타들의 작업용 밀크커피라면, 플랫화이트는 호주의 밀크커피를 대표하는 메뉴다. 에이커피의 플랫화이트는 커피와 우유의 비율이 정확하다. 어느 쪽도 앞서지 않고, 한 잔을 마실 때까지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플랫화이트를 평양냉면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가장 클래식한 우래옥의 육수에 가깝다. 단정하고 정제된, 불필요한 것이 빠진 맛이다.

에이커피는 클린컵이 뛰어나고, 단맛과 후미가 정돈돼 있다. 플랫화이트가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싱글오리진 필터커피도 현지에서 반응이 좋다.


[6]
Path Coffee 

패스 커피에서 브루잉 커피를 마시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상업 매장에서 이 정도로 손을 쓰는 게 가능할까 싶을 만큼, 추출 과정이 섬세하고 꼼꼼했다. 물줄기와 시간, 도구의 움직임, 바리스타의 동작이 과장 없이 이어져 커피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감동스러울 수 있는 장면이었다. 

패스 커피는 퀸 빅토리아 마켓에서 멀지 않은 조용한 동네에 자리한 작은 스페셜티커피 매장이다. 외관이 어두워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좁은 입구를 지나면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 공간이 드러난다. 입구 쪽에는 브루잉 전용 바가, 안쪽에는 에스프레소 바가 자리한다. 밝지 않은 조도의 차분한 공간으로 소란스럽지 않지만, 커피를 사랑하는 지역 주민들로 늘 가득차 있다.

브루잉 커피 다음으로는 오트 라테를 주문했다. 패스 커피는 기본 밀크 커피를 오트밀크로 선보인다. 카페라테는 낮은 산미의 커피를 바탕으로 향미가 풍부하고, 후미와 밸런스가 안정적이었다. 식물성 우유와의 조합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 또렷하다. 브루잉의 섬세함과 밀크 커피의 편안함이 같은 리듬으로 이어졌다. 

브루잉 커피부터 오트 라테까지 모든 커피가 과시하지 않고 차분하게 본질에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멜버른에서 가장 독립적인 분위기와 따뜻하고 안정적인 커피를 만났다. 


[7]
Patricia  

멜버른 도심의 직장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커피바, 패트리시아는 터미널이 멀지 않은 상업지구에 단 하나의 테이크아웃 커피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면도로 깊숙이 숨어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자연스럽게 늘어선 대기 줄이 커피 매장의 존재를 드러낸다.

패트리시아는 스탠딩으로만 운영되는 곳이다. 외부에 간이 의자가 놓여 있고, 좁은 매장 내부에 사람이 가득하지만, 숙련되고 친절한 바리스타들 덕택에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매장 안쪽 벽면에 그날의 조간 신문이 정성껏 비치되어 있는데, 종이 신문의 질감이 도심의 호흡, 커피바의 리듬과 묘하게 겹쳤다. 오래된 단정한 느낌이랄까? 

패트리시아

패트리시아의 메뉴는 단출하다. 블랙, 화이트, 필터. 메뉴가 많지 않지만, 선택과 집중이 명확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매장에서 케냐 필터커피를 주문했다. 패트리시아의 필터커피는 선명한 개성과 샴페인을 연상시키는 질감, 정확한 향미 표현까지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개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앞선 매장들이 커피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면, 독특한 분위기의 패트리시아는 멜버른 도심 직장인에게 카페인 해방구와 같은 곳이다. 


멜버른을 대표하는 4곳의 스페셜티커피 로스터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소규모 독립 매장 3곳을 소개했다. 대부분의 매장들이 지역 주민들과 밀접하게 교류하면서 꾸준하게 성장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최근 3년 동안 2번의 세계 챔피언을 배출한 Axill Coffee도 훌륭하지만, 매장이 많아서 점포에 따라 편차가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멜버른에 방문했다면, 시내에 위치한 빅토리아 미술관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앙 도서관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미술관은 전시 구성이 매력적이며 특히 회화관이 감동스럽고, 도서관도 인상적이다. 도심의 식당가는 다양한 곳이 있지만, 도삭면으로 유명한 저렴한 중식당(Lanzhou Noodle Bar)이 좋았다. 마라향을 연상시키는 매콤한 육수와 현장에서 잘라내는 도삭면이 피곤한 일정을 편안하게 달래줄 것. 

About Author
심재범

커피 칼럼니스트. '카페마실', '동경커피', '교토커피'를 썼습니다. 생업은 직장인입니다. 싸모님을 제일 싸랑하고 다음으로 커피를 좋아합니다. 아 참, 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