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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고추가 들어간 위스키, 기원 에드워드 리 에디션

기원이 만든 홍고추맛 위스키
기원이 만든 홍고추맛 위스키

2025. 12. 26

안녕, 술에 대한 글을 쓰는 글렌이다.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 기원에서 흥미진진한 위스키를 출시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 국산 홍고추와 뜨거운 물을 오크통에 넣어 몇 달간 시즈닝해 홍고추의 캐릭터를 입힌 후, 기원 증류 원액을 담아 3년 이상 숙성했다고 한다.

*기원 위스키와 기원 위스키 증류소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글을 참고하자.

기원

흔히 위스키는 ‘통빨’이라고 한다. 보리를 수확한 후 발아, 당화, 발효, 증류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수십일 정도. 그에 비해 오크통에 담아 숙성하는 기간은 몇 년에서 몇십 년까지 가기도 하니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위스키는 보통 새 오크통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담았던 오크통에 숙성하는 경우가 많다. 새 오크통은 나무 맛이 너무 짙게 배어나와 오래 숙성하기 적합하지 않거니와, 이전에 담았던 내용물의 맛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게 함으로써 위스키에 추가적인 풍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스카치위스키는 전통적으로 버번 위스키나 셰리 와인을 숙성했던 오크통을 주로 사용해 왔지만, 최근에는 맥주나 럼을 담았던 오크통 등 보다 다양한 캐스크를 활용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레드 페퍼 캐스크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취향을 가르는 한 모금

“매울까?”

이 위스키 출시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위스키의 향미를 이야기할 때 ‘맵다’거나 ‘스파이시하다’는 표현이 종종 쓰이지만, 이는 다소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후추처럼 알싸한 자극이나, 알코올 도수가 높아 혀가 얼얼해지는 느낌을 관습적으로 ‘맵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추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다면 레드 페퍼 캐스크에서 숙성한 이 위스키는 정말로 매콤하고 스파이시할까? 자연스레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대답하기 전 일단 내 소개부터 하자면 나는 매운 걸 그리 잘 먹는 편은 아니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 딱 신라면 정도. 불닭볶음면은 먹으려면 물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 나에게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는 매웠다.

위스키의 향과 첫 모금에서는 바닐라를 떠올리게 하는 달큰한 풍미가 먼저 느껴졌다. 그러나 입 안에 머금고 시간이 지나자 매운맛이 입 안 전체로 확 퍼졌다. 다 삼키고 나서도 얼얼한 여운이 한참 맴돌았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다. 이제 이 위스키의 공식 테이스팅 노트를 보자.

Nose: 홍고추와 바닐라, 잘 익은 과실 향
Taste: 부드럽게 퍼지다가 쾅 하고 터지는 강렬한 홍고추의 풍미
Finish: 입안 가득 오래 남는 뜨겁고 스파이시한 홍고추의 여운


출처: 기원 위스키 증류소 공식 인스타그램

보통 테이스팅 노트라고 하면 어려운 과일과 향신료 들이 진지한 말투로 적혀있는 경우가 많은데. 쾅 하고 터진다느니, 뜨겁고 스파이시 하다느니, 유쾌한 테이스팅 노트 덕에 웃음이 쾅 하고 터졌다.

조금 아쉬운 점은 나에게는 이 위스키가 꽤나 매워 그냥 마시기엔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홍고추가 이렇게까지 매운가 싶을 정도다. 내 기준으로는 최소한 청양고추, 혹은 베트남 고추나 페퍼론치노에 가까운 맵기다. 반면 나보다 매운 음식을 훨씬 잘 먹는 아내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한 모금 마시더니 곧바로 탄성을 내뱉었다.

“아, 이거 내가 좋아하는 그 맛이네! 데킬라에 타바스코 타서 먹는 그거!”

그렇다. 아내는 예전에 어느 바에서 막잔으로 데킬라 샷에 타바스코를 넣어준 것을 서비스로 맛본 뒤, 가끔 그 레시피를 일부러 주문하곤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매운 걸 즐기는 ‘맵수저’에게는 취향을 저격하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강렬한 킥이 있는 위스키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칵테일 재료로서도 매력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위스키 상자 안에는 이 위스키의 앰버서더인 에드워드 리 셰프의 시그니처 칵테일 레시피가 동봉되어 있었다. 홈텐더의 전공을 살려 곧바로 만들어봤다.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
칵테일 레시피 2종

칵테일

진저 비어의 매콤하면서도 단맛이 홍고추의 캐릭터와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여기에 석류 홍초가 상큼함을 더해 매콤 새콤 달콤한 균형을 이룬 칵테일이다. 여기서도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는 존재감을 잃지 않고 독특한 매콤함을 강렬한 킥으로 더했다.

진저 비어가 생소하다면 진저 에일로 대체해도 된다.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탄산이 생기는 것이 진저 비어이고, 탄산수에 향을 더한 것이 진저 에일이지만, 두 음료 모두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 국내에서는 이 구분이 크게 중요치 않다. 진저 비어가 보통 좀더 깊은 생강향이 나지만 이 칵테일에서는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가 충분히 강렬하다. 그런 점에서 더 라이트 한 진저 에일도 좋은 선택이 될 듯 하다.

진저에일

진저 에일로 대중적인 제품은 캐나다 드라이나 이마트 피코크 제품이 있고, 진저 비어는 분다버그를 쓰면 된다. 꼭 한 번 시도해보자.

시그니처 칵테일을 마시다 보니 새로운 레시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홍고추에 두뇌 회전을 빠르게 하는 효능이라도 있는 걸까. 고추가 들어가 있어 제법 맵지만, 특유의 새콤달콤한 국물이 자꾸만 생각나는 맛. 바로 오이냉국이다. 이 위스키로 오이냉국을 닮은 칵테일을 한 번 만들어봤다.

오이가 들어가는 칵테일이라니, 오이 헤이터라면 눈이 커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꽤 근본 있는 레시피다. 모던 클래식 칵테일을 유행시킨 바텐더 샘 로스는 뉴욕의 밀크 앤 허니에서 근무하던 시절, 버번 위스키에 오이와 라임, 엘더플라워 리큐르를 곁들인 ‘켄터키 메이드(Kentucky Maid)’라는 칵테일을 만들었다. 이 칵테일은 기주를 다른 술로 바꾸면, 그 술이 탄생한 나라의 이름을 따 칵테일의 이름도 함께 바꿔 부르는 전통이 있다. 예를 들어 버번 위스키를 아이리시 위스키로 바꾸면 ‘아이리시 메이드(Irish Maid)’가 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로 만든 이 칵테일은, ‘코리안 메이드(Korean Maid)’라 불러야겠다.

코리안 메이드 (Korean Maid)

– 기원 레드페퍼 캐스크 30ml
– 오이 슬라이스 4장 (머들러로 잘 으깨기)
– 생제르망 엘더플라워 리큐르 15ml
– 레몬 주스 15ml
– 심플 시럽 10ml

시원한 오이향이 먼저 느껴지고, 엘더플라워의 은은한 꽃 향과 함께 새콤달콤한 맛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마무리는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 특유의 매콤함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전체적으로 오이냉국처럼 시원하고 상큼하게 시작해, 매콤하고 깔끔하게 끝나는 칵테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한국 위스키

기원 증류소는 올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그동안 수량이 한정된 리미티드 버전 위주로 위스키를 출시해 온 것과 달리 기원 호랑이, 독수리, 유니콘 등 정규 라인업이 생겼다. 또 샌프란시스코 세계주류경연대회에서 베스트 오브 클래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직은 한국 위스키가 다소 생소하지만, 기원 증류소의 최근 행보는 한국 위스키가 세계 시장에 우뚝 설 날을 그려보게 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나온 대담하고 독특한, 어쩌면 가장 한국적이라고 부를만한 이 위스키, 연말을 뜨겁게 마무리 할 한잔으로 추천한다. GS25 WINE25+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가격은 19만 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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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위스키와 칵테일에 대해 글을 쓰는 홈텐더. 술이 달아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