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K-위스키 붐은 온다?

김창수 위스키와 쓰리소사이어티스의 기원 위스키. 한국 대표 위스키 2종을 소개합니다
김창수 위스키와 쓰리소사이어티스의 기원 위스키. 한국 대표 위스키 2종을 소개합니다

2024. 02. 15

안녕, 위스키가 달아서 글을 쓰는 글렌이다. 세계 5대 위스키 생산 국가가 어딘지 맞춰 볼 사람? 역사로 보나 생산량으로 보나 가장 유명한 위스키 생산국 다섯 곳을 말하면 된다. 정답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그리고 일본이다.

의외라고 생각되는 나라가 있을까? 지인에게 물어봤을 때는 일본이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었다. 위스키는 서양 술인데 어떻게 일본이 거기 끼냐면서. 하지만 일본 위스키 역사는 100년이 넘고, 일본을 대표하는 산토리 위스키가 작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았으니, 다섯 나라 중에는 위스키 생산 역사가 가장 짧지만 막내라 하기에는 무시 못 할 세월이다.

이 밖에도 위스키를 만드는 국가는 많다. 2010년대 들어 여러 주류 품평회를 휩쓸며 혜성처럼 등장한 카발란은 대만 위스키고, 인도 역시 위스키 생산 강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외에도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뉴질랜드, 호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술 좋아하기로는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한국에서는 위스키를 만들지 않을까? 기쁘게도, 있다! 2020년, 국내에도 위스키 증류소가 들어섰다. 그것도 두 곳이나. 바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와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 두 증류소는 각자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두 위스키 브랜드에 대해 알아보자.


쓰리소사이어티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는 국내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다. Three Societies, 이 이름에 브랜드의 특별한 정체성이 담겨있다. 미국, 스코틀랜드, 한국, 세 가지 사회가 한 브랜드에 있다는 뜻이다.

[출처 :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 공식 홈페이지]

첫 번째는 미국. 수제 맥주를 좋아한다면 ‘핸드앤몰트’라는 브랜드를 들어봤을 거다. 핸드앤몰트를 성공시킨 재미교포 출신의 도정한 대표가 쓰리소사이어티 증류소의 대표다. 맥주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후 위스키로 제2의 도전을 하는 셈이다.

두 번째는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의 총책임자인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전통적인 스카치 생산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한국만의 개성을 담은 위스키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세 번째는 한국. 위스키를 만들어가는 한국인 직원들이 있다. 이렇게 쓰리소사이어티스라는 이름에는 한국, 미국, 스코틀랜드 등 서로 다른 세 개의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위스키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위스키 좋아하는 사람들은 ‘삼사회’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2021년부터 세 가지 국가를 상징하는 호랑이, 독수리, 유니콘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출시했고, 2023년 첫 정규 제품인 ‘기원 배치 1’을 출시 했다. 기원은 시작과 바람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배치는 한 번에 생산되는 단위를 의미하는 말로, 버전이나 시리즈 정도로 이해해도 좋다. 2023년 12월에는 기원 배치 4가 나왔다. 짧은 기간 내에 벌써 네 번째 정규 버전이 나올 정도로 쾌활한 행보다.

[왼쪽부터 기원 배치1, 2, 3]

배치 1부터 4까지, 사용하는 캐스크나 생산 방식을 달리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해오고 있다. 기원 위스키는 특유의 알싸한 매운맛, 그리고 살구나 파인애플이 연상되는 과일 풍미가 인상적이다. 배치가 달라져도 이 느낌은 항상 깔려있다. 최근 배치로 올수록 숙성기간이 늘어나 맛이 좋아지고 안정감이 느껴진다는 평이 많다.

[기원 배치 4 피티드, 스모크드. 출처 :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 공식 인스타그램]

이 다양한 시리즈를 한자리에서 마셔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청담동에 있는 ‘기원 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바 뒤쪽으로 놓인 커다란 캐스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캐스크로 연결된 탭을 통해 바로 위스키를 따라준다.

증류소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정규 배치 이외에도, 물을 타지 않은 원액 그대로인 CS 즉,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메이플 캐스크, 싱글 캐스크 제품 등 다양한 라인업을 맛볼 수 있다.

이 공간은 1월 말까지만 운영되었다. 아쉽게 놓친 분들은 남양주 화도읍에 있는 증류소로 투어를 가면 되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가 하나같이 좋았다. 증류소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를 확인할 수 있고, 네이버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신청 링크는 [여기].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는 최초의 한국인 마스터 디스틸러가 위스키를 만드는 곳이다. 증류소의 대표이자 마스터 디스틸러인 김창수는 우리나라 위스키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범상치 않은 그의 발자취를 살펴보자.

[출처 : 김창수 위스키 공식 인스타그램]

술을 즐겼던 학창 시절, 그는 명인 김창수라는 동명의 전통주 명인 이름이 쓰인 포스터를 보고 양조에 처음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교에서는 술을 강요하는 문화가 있었고, 그는 그런 문화에 질려 건전한 음주 문화를 전파하는 동아리를 만드는 것으로 음주 문화를 즐겼다. 그렇게 다양한 술을 접하다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술의 종류가 많지 않아 아쉬웠고, 특히 ‘우리나라도 훌륭한 위스키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고 한다. 졸업 후 바텐더나 주류 관련 일도 해 보았지만 위스키 증류에 대한 꿈은 커졌고 1000만 원을 모아서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위스키 증류소를 돌면서 일을 시켜 달라고 무작정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증류소 투어 인증 도장. 출처 : 생계형 음주 연구소 블로그]

이렇게 방문한 증류소가 무려 102곳. 방문하는 곳마다 퇴짜를 맞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텐트에서 잠을 자는 등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오기가 생겨 목표했던 102개의 증류소를 끝내 모두 돌았다고 한다.

[출처 : 생계형 음주 연구소 블로그]

이쯤 되면 한 군데쯤은 청을 들어주지 않을까 했지만 동양에서 온 낯선, 그리고 열정 말고는 아직 준비가 부족했던 청년을 받아준 곳은 아쉽게도 없었다.

그럼에도 위스키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귀국 후에는 집에 소규모 장비를 갖추고 증류를 하며 위스키를 독학했고, 주류 수입사에서 일하면서 위스키와 관련된 일을 계속했다. 바로 이듬해에 놀라운 기회가 찾아왔다. 스코틀랜드에서 102개 증류소를 모두 방문했던 날 한 바에서 유일한 동양인을 만나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대화를 청했는데 우연히도 그 사람은 일본 치치부 위스키 증류소의 직원이었다. 이때의 인연이 이어져 김창수의 스토리가 일본에 알려지게 됐고, 일본 NHK 방송 출연과 치치부 위스키 증류소 연수를 겸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당시 일본에서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닛카 위스키의 창업자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일대기를 조명한 드라마가 유행을 했고, 그의 별명인 ‘맛상’을 따 김창수 씨를 ‘한국의 맛상’으로 소개한 거다.

[출처 : 일본 NHN 방송]

그동안 혼자 고군분투 해오던 그에게는 제대로 된 위스키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비슷한 또래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것도 큰 즐거움이었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2020년 드디어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를 열었다. 최초로 한국인이 양조 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다.

김포에 위치한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증류소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작은 증류소는 세 명이 일하는 에드라두어 증류소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곳보다도 훨씬 작다. 증류기는 일반적인 증류소에서 쓰는 것에 비하면 1/10 정도 수준. 규모는 작지만 당화, 발효, 증류, 숙성 등 위스키 생산의 여러 과정을 위한 설비들이 알차게 모여 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증류소를 소개하는 영상이 있으니 궁금하다면 랜선 투어를 떠나보자.

[출처 : 김창수 위스키 공식 유튜브]

2022년 4월, 드디어 김창수 위스키 첫 번째 에디션이 출시됐다. 김창수 위스키 첫 번째 에디션 병에 적힌 문구는 ‘우리나라도 위스키 만든다.’ 혹시 조금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저 문구를 바라보며 첫 번째 에디션을 마시던 순간의 감정을 잊을 수 없다. 여기에 담긴 스토리를 생각하니 조금 뭉클하기도 했고. 김창수 씨의 마음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눈물도 찔끔 났을 것 같다.

[김창수 위스키 첫 번째 에디션]

그 이후로 국산 보리로 만들어 국산 나무통에 숙성한다거나,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캐스크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담긴 에디션들이 출시되었다.

[김창수 위스키 두 번째, 세 번째 에디션]

2023년 12월에는 김창수 위스키 다섯 번째 에디션이 출시됐다. 더현대 서울, 그리고 두 명의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는데, 병에 그려진 그림과 전용 도자기 잔이 각각 두 작가의 작품이다.

[김창수 위스키 다섯 번째 에디션. 출처 : 김창수 위스키 공식 인스타그램]

지금까지 나온 김창수 위스키 에디션은 모두 한정판으로 소량 출시되어서 만나기가 쉽진 않다. 나도 다섯 번째는 아직 못 마셔봤다. 그러니 몇몇 바에서 김창수 위스키를 접한다면 맛을 보길 추천한다. 한국 위스키의 저력이 느껴지면서도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맛이다. 위스키 좋아하는 사람들은 김창수 위스키를 ‘창스키’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위스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증류소가 두 곳이나 생겼고,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니 꽃길만 걸을까? 그러기 위해서 꼭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세금이다.

우리나라는 술, 특히 위스키에 붙는 세금이 비싼 편이다. 해외에서 수입된 위스키에는 세금이 얼마나 붙을까? 관세 20%, 주세 72%, 교육세가 주세의 30%만큼, 마지막으로 부가가치세 10%가 붙는다. 이렇게 하면 원래 10만 원이었던 위스키가 세금만 11만 원이 넘게 붙는다. 우리가 지불하는 금액의 절반 이상이 세금이다.

국산 위스키는 더 불리하다. 수입 주류는 수입신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데, 국산 주류는 제조원가, 판매관리비, 이윤을 모두 더한 금액이 과세표준이다. 마케팅 비용, 유통 비용, 심지어 포장지에도 세금이 붙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건데 왜 이렇게 비싸냐. 이 돈이면 차라리 수입 위스키를 사 마시겠다.’는 생각을 해봤다면, 사실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위스키가 이른바 ‘양주’로 불리며 사치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던 시기도 있지만,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취향에 대한 지평이 넓어진 요즘에는 위스키도 하나의 취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래서 이 주세 제도를 들여다보고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2024년 1월부터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류에서 일부 금액을 기준판매비율이라는 항목으로 차감해 주기로 했다. 문제가 됐던 해외 수입 주류보다 세금이 더 붙는 불리한 구조는 개선된 거다. 올해부터 소줏값이 내려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이 기준판매비율 관련 내용이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우리나라 주세가 이렇게 비싼 근본적인 원인은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원가와 상관없이 용량이나 도수가 같다면 세금이 같은 종량세를 택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생산 비용이 올라가도 세금 부담이 없으니 좋은 재료로 품질을 높인 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생산자가 많아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국내 주류 문화의 발전과 여행이나 직구를 통해 위스키를 구입하며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을 줄이기 위해서도 위스키에 종량세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20년에 맥주와 막걸리에 대해 종량세가 적용되면서, 국내 수제맥주, 막걸리 산업이 많이 발전했다.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 역시 종량세 도입을 골자로 하는 주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니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보자.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술을 빚고 마시는 걸 즐겼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전까지는 집집마다 술을 담그는 가양주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고도 하고. 시에 등장하는 술 익는 마을이 어디인지는 알려져 있진 않지만 아마 시인이 살았던 때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술 익는 마을을 발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쓰리소사이어티스,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는 올해로 만 3년을 맞는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최소 3년 이상 숙성해야 합법적으로 위스키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다.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조건을 갖춘 우리나라 위스키가 드디어 올해 나오는 거다. 이제 시작이다.

술 한 잔에 풍류를 즐겼던 민족의 후예가 만드는 위스키는 앞으로 어떤 역사를 써 갈까? 이를 지켜볼 수 있는 동시대에 살고 있어 기쁘다. 한국 위스키가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날이 오길 바라며 축배를 들자. K-위스키 붐은 온다!

About Author
글렌

위스키와 칵테일에 대해 글을 쓰는 홈텐더. 술이 달아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