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연말 모임 시즌만 되면 정신 못 차리는 객원 에디터 상언이다. 내향형 인간인지라 어딜 가나 북적이고 소란스러운 연말 약속은 늘 버겁다. 그렇다고 사회생활과 우정을 위해 모든 만남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정말 가깝고 아끼는 친구들은 슬쩍 집으로 초대해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는 쪽을 택한다.
문제는 음식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것. 솔직히 친구들도 내 요리는 크게 기대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음식은 과감하게 전문가(배달 앱)에게 맡기고, 나는 분위기만 차리기로 한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비주얼에서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대접의 첫 단추가 어긋나는 법이니까.
배달 음식이라도 생기 있어 보이게 만들어줄, 죽은 음식도 살려내는 심폐소생술급 플레이팅 아이템을 모았다. 음식 종류에 딱 맞는 그릇들로 정리했으니, 배달 온 플라스틱 용기째 내놓거나 설거지 귀찮다고 일회용 접시를 꺼내는 일은 부디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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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는 여기에,
만초니 우드 서빙 보울

이름부터가 듬직한 우드 서빙 보울이다. 지름 30cm의 넉넉한 사이즈로 샐러드나 사과, 바나나, 샤인머스캣 같은 과일을 통째로 담아두기 좋다. 식전주를 할 때 집어먹을 팝콘, 나초, 감자칩 등을 가득 담아두는 용도로 써도 제격이다.
만초니 피에트로의 제품들은 이탈리아산 알더 우드를 사용해 핸드메이드로 제작된다. 알더 우드는 현지에서 고급 가구에 주로 쓰이는 소재기도 하다. 덕분에 광택감이 덜한 일반 우드 보울과 달리 확실히 존재감이 뚜렷한 편. 테이블 위에 툭 두기만 해도 인상적인 오브제가 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식기 세척기 사용은 어렵다는 것.

음식을 하나하나 개인 접시에 덜어 내오기 번거롭다면, 차라리 이렇게 큰 보울을 가운데 두고 각자 덜어 먹게 하자. 남기는 음식 없이 깔끔하게 홈파티를 즐기는 팁이기도 하다. 잊지 말자, 홈파티는 뒷정리까지 내 몫이니 음식물 쓰레기도 결국 내가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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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는 여기에,
디토140 모시 서클 플레이트

한국 전통 직물인 모시의 결을 유리로 재해석한 플레이트다. 불투명한 무광의 질감 덕분에 색감이 뚜렷한 요리를 담아낼 때 가장 깨끗한 배경지가 되어준다. 입맛을 돋우는 캘리포니아 롤이나 핑거푸드용 카나페를 올려도 좋지만, 어딘가 연약하고 창백한 눈밭 같은 질감을 보자니 단번에 회가 떠올랐다.

제철 방어와 숙성회를 한 점씩 차곡차곡 올렸을 때 음식도, 접시의 매력도 서로 시너지를 낸다. 특히 회처럼 신선함이 생명인 음식은 정갈한 무드가 돋보이는 플레이트에 올렸을 때 훨씬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릇을 미리 살짝 차갑게 한 뒤 회를 올리면 끝까지 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팁!
판매하는 사이트에는 스퀘어 모양도 사이즈별로 구비되어 있다. 만약 집에 원형 접시만 가득하다면, 이번 기회에 스퀘어 형태를 골라 테이블에 리듬감을 줘보는 것도 좋겠다. 가격은 3만 3,000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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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는 여기에,
쇼지구찌 리키에 앞접시

쇼지구찌 리키에의 유리를 블로잉 기법으로 부드럽게 풀어낸 작은 접시다. 투명하고 매끈해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지만, 표면을 따라 흐르는 은은한 곡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낮에 자연광이 들어와 유리 안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우면 그 자체로 테이블 분위기를 완성할 수 있다.

살짝 내려앉은 표면 굴곡을 활용해 젓가락을 올려두고 앞접시로 써도 좋고, 크림치즈나 후무스, 잼처럼 점성 있는 소스를 담아 잼 나이프와 함께 내면 훌륭한 셰어 플레이트가 된다. 올리브나 초콜릿 한두 조각처럼 가벼운 안주를 담아도 섬세함을 더해줄 수 있다.

홈다이닝에서 용도를 세분화한 접시를 내어주는 호스트는 유난히 센스 있어 보이기 마련이다. 이 작은 유리 접시는 준비된 주최자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디테일이 되지 않을까. 이 정도라면 과하지 않지만, 디테일을 아는 사람의 식탁이라는 인상을 자연스럽게 남길 수 있겠다. 가격은 4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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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은 여기에,
엠마 콜만 라 핏투라 보울
엠마 콜만의 드로잉이 돋보이는 보울이다. 지름 28cm에 깊이감도 있어 국물 자작한 찜 요리나 탕수육, 팔보채처럼 부피감 있는 배달 음식을 담기에 넉넉하다. 특히 컬러풀하고 위트 있는 엠마 콜만의 그림이 동양적인 음식과 만났을 때 느껴지는 의외의 조합이 식탁에 강렬한 포인트를 더해준다.

이외에도 엠마 콜만의 제품은 헤이(HAY)를 통해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드로잉이 마음에 든다면 개성 있는 플레이트, 저그 등과 믹스매치 해보자. 음식이 다소 평범할지라도 테이블 전체에 예술적인 무드를 불어넣어 활기찬 다이닝을 완성할 수 있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접시에 사용된 색감과 음식 컬러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 육회처럼 색이 강한 음식이라면 무채색 플레이트를, 오일 파스타나 리조또처럼 색이 옅은 음식은 엠마 콜만처럼 패턴이 화려한 그릇에 담아 그 자체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연출해보자. 가격은 15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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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파스타는 여기에,
최문정 작가 모래 너머 디저트 플레이트 L

직선으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플레이트를 은근히 찾기 힘들다. 보통 보울 형태는 곡선으로 디자인되는 편인데, 최문정 작가의 이 접시는 플랫하면서도 살짝 깊이감을 준 디자인이라 활용도가 높다.

사이즈는 스몰, 미디엄, 라지 세 가지. 사이즈에 따라 디저트부터 메인디시까지 충분히 소화 가능하다. 특히 하단부는 흙의 질감을 살리고 상단은 백자로 쌓아 올려 거칠면서도 단정한 양면적인 매력을 지녔다. 소박하면서도 우아해 미니멀한 화이트 테이블이나 묵직한 우드톤 탁자 어디에도 잘 어울린다.

오픈 토스트나 파스타 같은 양식은 물론, 제육볶음까지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다. 라지 사이즈로 하나 구비해 두면 언제, 어떤 배달 음식을 올려도 필살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전천후 아이템! 가격은 1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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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여기에,
이송암 작가 블랙 면기

백자의 청아한 매력을 아는 이라면, 흑자의 차분하고 깊은 멋 역시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검은색 식기는 테이블 위에서 세련되고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만 밝은 색보다 스크래치가 났을 때 눈에 잘 띄어 관리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땐 플레이트 대신 면기를 흑자로 선택하는 것이 해답이 된다.

양식처럼 펼쳐 담기보다 수북이 담아내는 밥과 면 요리에는 면기가 필수적이다. 특히 라면, 김치볶음밥, 제육덮밥 등 붉은 양념이 주를 이루는 한식을 검은 그릇에 담았을 때 가장 완벽한 대비를 이뤄 음식이 훨씬 선명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차분하지만 세련된 이송암 작가의 흑자 시리즈 면기는 근사한 선택지다. 소(小) 자는 높이가 있어 국물 요리에, 대(大) 자는 너비가 넓어 볶음밥 등 푸짐한 양을 담기에 적합하다. 평소 즐겨 먹는 메뉴에 맞춰 하나쯤 장만해 둔다면 식탁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가격은 6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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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구이는 여기에,
윤상현 작가 직사각 접시
윤상현 작가의 기물은 푸른색 유약과 하얀색 결정 유약을 사용해 제품마다 텍스처가 다른 점이 매력이다. 유약의 흐름에 따라 도드라지는 컬러 그라데이션은 마치 청명한 하늘에 실구름이 스르륵 지나가는 듯 몽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길고 좁은 직사각형 형태는 음식의 ‘선’을 강조하고 싶을 때 유용하다. 스시처럼 정갈한 단품 요리나 노릇하게 구운 생선구이, 꼬치 요리처럼 길쭉한 배달 음식을 옮겨 담기에 최적이다. 식사 후 차와 함께 곁들일 다과나 과일을 올려 디저트 플레이트로 활용해도 산뜻한 인상을 준다. 가격은 1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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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과는 여기에,
사예 팔각접시
손님을 초대했을 때 테이블 위에 펼쳐진 플레이팅은 호스트의 여유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음식을 비좁은 접시에 가득 채우기보다는, 쏟아질 염려 없이 넉넉한 여백을 둬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것 역시 환대의 방식 아닐까.

사예의 팔각 플레이트는 바로 그 여유로움을 담아낼 줄 아는 제품이다. 연한 베이지 톤에 거친 텍스처, 구워낼 때 자연스럽게 토스트된 듯한 그을림은 따뜻하면서도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섬세한 마감 덕분에 음식을 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오브제 같다.

과일이나 간단한 다과를 조금씩 올려 의도적으로 여백을 주면 훨씬 격식 있는 플레이팅이 완성된다. 사예의 다른 제품들 역시 마름모, 타원형 등 다양한 쉐잎으로 구성되어 함께 매치하면 고전적이면서도 안정감 있는 무드를 연출할 수 있다. 가격은 5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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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은 여기에,
이악크래프트 shell-et

아찔하게 얇고 위태롭게 아름다운 글라스만이 고블렛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쓰는 식기만큼이나 손님이 사용할 잔 역시 단단한 안정감을 줘야 모두가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악크래프트의 쉘 고블렛은 실용적인 안정성을 택하면서도 우아함과 화려함을 놓지 않았다.

통통하고 넉넉한 세라믹 바디에 고전 조각품처럼 스템(다리) 부분만 실버로 코팅했다. 묘하게 펄감이 도는 유백색 세라믹과 차가운 실버 스템의 조화가 이렇게 감각적일 수가. 와인이나 샴페인을 담아도 좋지만, 실버 스템이 주는 청량감 덕분에 활용 범위가 넓어진다. 디저트 타임에 요거트나 아이스크림 같이 차가운 디저트를 담아내면 그 자체로 완벽한 마무리가 된다.
쉘 컬렉션은 전체가 화이트거나 실버인 버전을 포함해 총 3가지. 마감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므로 핸드메이드 특유의 미묘한 차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가격은 1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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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
팔리는 기사를 쓰며, 안 팔리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균형 있는 삶은 중요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