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디에디트의 카메라 리뷰어 이주형입니다. 요즘 후지필름의 기세가 무섭죠. 내놓는 카메라마다 비상한 관심과 함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X100VI에 중형 센서를 박아버린 GFX100RF가 하이라이트였어요.
그 와중에 제 손에는 흥미로운 카메라가 들려 있습니다. 바로 X-Half인데요. 딱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든 카메라입니다. 그러니 여기 지면(?)을 빌려 좀 자세히 얘기해 보도록 할까요.
(리뷰에 사용된 제품은 디에디트 구독자이신 ‘우죽’ 님이 빌려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외관부터 보겠습니다. 간단히 말해 X100VI를 기반으로 좀 더 작고 뭉툭하게 줄여놓은 듯한 모양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작은 카메라들과 비교해 보면 같은 크기의 센서를 탑재하고 있는 소니의 RX100V보다 확실히 좀 더 크고, 리코의 GR IIIx와 비슷한 크기였어요. 두께는 두 카메라보다 모두 두꺼운 편입니다. 전반적인 소재감은 고급스럽지 않다는 의견이 많지만, 전 이 급의 카메라에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듦새도 탄탄했고요.
조작계는 설정할 게 많지는 않은 카메라다 보니 매우 간단합니다. 심지어 방향 패드도 없이 대부분의 메뉴를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하며, 위에는 플레이백 버튼과 영상과 동영상 모드를 바꿀 수 있는 스위치가 있는 게 다입니다. 메인 모니터 옆에는 현재 선택한 필름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는 작은 화면이 있는데, 사실 옆에 있는 메인 모니터와 하나의 같은 LCD 패널이라고 해요. 위에는 노출 조정 다이얼과 함께 무슨 특이한 레버가 있는데, 이건 이따가 얘기해 보겠습니다.
뷰파인더도 있는데요. 이따가 얘기할 필름 카메라 모드를 사용하면 LCD로 구도 확인도 할 수 없어서 이것 만으로 촬영해야 합니다. 어떠한 기능도 없는, 옛날 필름 콤팩트 카메라처럼 단순히 렌즈가 보는 화각을 구현한 목측식 뷰파인더입니다. 심지어 조리개나 셔터 속도 정보도 볼 수 없습니다. 사실 목측형 뷰파인더는 위치 때문에 렌즈가 보는 화각과 완전히 같기는 힘든데, 이건 X-Half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완벽하게 구도를 맞추는 건 확실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렌즈가 볼 화각을 오버레이로 표시해 주는 프레임 라인이 그려져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X-Half라는 이름의 기원을 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먼저 ‘Half’라는 부분이죠. 아마 하프카메라라는 개념에서 따 왔을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의 35mm 필름의 촬상면을 반으로 나눠서 한 롤의 필름을 두 배로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가 바로 하프카메라입니다. 작년에 출시한 펜탁스 17 역시 하프카메라예요. X-Half라는 이름은 아마 X 시스템의 APS-C 센서의 반 크기의 센서를 탑재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X-Half는 1,800만 화소의 타입 1 센서를 사용합니다. 사실 전체 기준으로는 2,000만 화소 정도지만 원래 3:2 비율인 센서를 4:3 비율로 크롭하여 사용해서 1,800만 화소로 줄어들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소니가 RX100 시리즈나 ZV-1 시리즈에 탑재하는 센서와 비슷하거나, 구형 모델에 사용했던 센서일 것으로 추정돼요. 특이하게도 센서를 세로로 배치했는데, 이 말은 즉 카메라를 가로로 두고 찍으면 세로로 사진이 찍힌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프카메라로서의 정체성과도 어울리면서도, 요즘 버티컬이 대세인 부분에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에요. 재밌는 건 가로로 사진을 찍어도 사진이 회전이 안 된 채로 저장되기 때문에 나중에 사진을 회전해 줘야 한다는 점이에요.
여기에 F2.8 조리개의 풀프레임 환산 32mm 단렌즈를 조합하는데, 조리개를 조작할 수 있는 다이얼이 달려 있습니다. 이 카메라에서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죠. 다만 센서가 워낙 작아서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하더라도 배경 흐림은 크게 기대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단순히 어두운 곳에서 셔터속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거예요.
X-Half가 처음 공개됐을 때 많은 불만을 야기했던 부분이 바로 RAW를 못 찍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저도 RAW로 많이 찍기 때문에 발표 내용만 들었을 때 의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사용해 보니 이 카메라의 개념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고, 솔직히 제가 이 카메라를 사용했던 방식을 생각하면 RAW는 굳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차피 카메라에서 촬영해서 곧바로 앱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옮기고, 거기서 바로 클라우드 사진 라이브러리에 동기화했으니까요.
후지필름의 상징과 같은 필름 시뮬레이션 13종을 지원하는 것도 이러한 후보정의 필요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메인 X 시리즈나 GFX 시리즈보다는 개수가 적지만, 프로비아나 벨비아, 노스탤직 네거티브, 리얼라 에이스 등 인기가 많은 시뮬레이션은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빛이 카메라 틈새로 필름에 비추어지는 효과를 재현한 ‘라이트 리크’나 그레인 설정 등이 추가로 가능해요.
하지만, 이 카메라의 진가는 바로 필름 카메라 모드입니다. 필름 카메라 모드를 처음 셋업 하면 원하는 필름 시뮬레이션과 장수, 그리고 노출 모드(자동/조리개 우선)를 선택할 수 있는데, 설정을 완료하고 일단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순간 한 번 설정해 둔 값들은 변경할 수 없어요. 한 번 필름을 넣으면 중간에 필름을 변경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셈입니다. 물론 중간에 남은 필름을 포기하고 빼는 것과 비슷하게 모드를 강제 종료하는 게 가능하긴 합니다.
후면 LCD 모니터는 구도 확인용이 아닌 남은 필름 장수를 보여주는 상태 LCD로 바뀌고, 모든 구도는 목측형 뷰파인더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 아까 얘기했던 위의 특이한 레버를 사용합니다. 바로 필름 카메라의 필름 전진 레버를 구현한 것인데요. 이 레버를 사용해 다음 사진을 찍을 준비를 사용자가 직접 해 줘야 하죠. 물론 필름 카메라처럼 기계적인 레버는 아니고, 단순히 전자 신호를 전달하는 버튼과 같은 개념입니다. 실제 필름 카메라의 전진 레버의 미는 맛은 아니지만, 그 느낌을 살리는 데는 충분했어요.
저는 이 카메라를 써 본 4주가량의 기간 동안 이 모드로만 사용했습니다. 그 경험은 독특했어요. 필름 카메라 모드에서는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스마트폰 앱을 통해 ‘현상’할 때까지 보지 못하는데, 필름 카메라가 그렇듯이 한 롤을 하루에 다 못 찍는 경우도 상당해서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의 호기심과 나중에 현상할 때 그날의 추억(?)을 돌아보기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경험을 요즘 천장 없이 치솟는 필름 값의 부담 없이 간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는 점도 재밌는 부분이었죠. 결론적으로, 필름 카메라 모드는 많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에서 열광하는,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러모로 X-Half는 사진에 막 취미를 들인 사람들에게는 재밌게 사진을 배울 수 있는 카메라, 그리고 이미 미러리스 카메라가 있는 프로 사진작가들이나 취미 사진가들에게는 RAW 보정 등의 후작업의 부담 없이 찍을 수 있는 취미용 서브 카메라로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써보면서 몇 가지 문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일단 첫 번째로 아쉬운 것은 손맛입니다. 필름 전진 레버는 실제로 내부 메커니즘과 연결된 실제 필름 카메라와 달리 단순히 스프링이 달린 구조라 밀 때 기계적인 저항의 느낌은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아쉬운 것은 단순히 버튼을 누르는 거 같은 셔터 버튼의 가벼운 클릭감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후지필름 카메라에서는 묵직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더 아쉬웠죠. 셔터를 누르고 나서 실제로 사진이 찍히는 느낌도 RX100V와 같은 비슷한 급의 카메라보다 감흥이 덜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카메라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은 화질입니다. 아까 X-Half의 센서가 소니 RX100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얘기했는데, 거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같은 센서가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크기의 센서를 사용하는 RX100V를 개인 카메라로 오랜 기간 동안 사용했기에 이 센서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이를 감안하면 결과물은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밝은 환경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어두운 환경에서는 사진을 촬영할 때 생기는 노이즈를 과도하게 제거하는 과정에서 디테일이 상당히 뭉개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설정에서 필름 그레인 효과를 켜주면 뭉개짐을 어느 정도 가려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많이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필름 카메라의 느낌을 재현한 결과물에 2000-2010년대의 디지털카메라들이 겪던 문제가 그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니 뭔가 아이러니했달까요.
사용하면서 발견한 다른 문제는 바로 속도입니다. 간단히 말해, 모든 게 느립니다. 처음에 켰을 때 실제로 촬영이 준비되는 데 1초 넘게 소요되고,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다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의 시간도 꽤 오래 걸립니다. 특히 전진 레버가 달린 필름 카메라의 묘미는 찍자마자 바로 전진 레버를 밀어서 바로 다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준비 해두는 그 행위인데, X-Half의 필름 카메라 모드에서는 직전에 촬영한 사진을 저장하는 작업을 끝내고 다음 촬영을 위해 전진 레버를 밀어도 되는 상태가 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를 찍던 습관대로 전진 레버를 바로 당기고, 전원을 끈 다음, 나중에 다시 전원을 켜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촬영이 되지 않는 상황을 꽤 많이 겪었습니다. 제가 전진 레버를 당겼던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죠. 심지어 카메라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전송하는 것도 오래 걸립니다. 36장짜리 한 롤을 전송하는데 얼추 3분은 잡아야 하거든요.
이 두 문제의 공통점을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바로 ‘프로세서’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처음에는 결과물의 문제가 렌즈의 문제일까 싶었는데, 센서의 화상을 JPEG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프로세서의 처리 방식이 문제일 것 같았고, 느린 반응 속도 역시 프로세서의 문제라고 하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합니다. 제가 X100VI의 프로세서를 칭찬했던 걸 감안하면 후지답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X-Half를 ‘디지털 일회용 카메라’라고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일회용 카메라와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거든요. 비슷한 화각의 단렌즈에, 필름 시뮬레이션으로 필름의 느낌이 나온다는 점, 그리고 한 롤을 다 찍을 때까지 결과물을 알 수 없다는 점까지 비슷하죠. 실제로 결과물도 플래시가 LED인 부분만 빼면 강한 효과의 필름 시뮬레이션과 그레인 효과까지 추가하면 꽤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합니다. 물론 진짜 일회용 카메라와 다르게 여러 번 쓸 수 있다는 게 큰 차이점이긴 합니다. 아, 그리고 가격이 대략 일회용 카메라 50개 정도라는 점도요.
X-Half의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가격입니다. 위에 언급한 문제점들이 없었다 해도 이 정도의 성능에 105만 원은 사실 받아들이기 힘든 가격이니까요. 요즘 카메라 시장의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고는 하나, 6~70만 원 정도였다면 받아들이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요.
X-Half는 흥미로운 기획이긴 했으나,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X-Half에서 하나가 남겨진다면, 그것은 필름 카메라 모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모드를 X100VI와 같은 다른 X 시리즈 카메라에 소프트웨어 기능으로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전진 레버가 없긴 하지만, 그 외의 기능은 소프트웨어만으로 충분히 구현이 가능할 테니까요.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X100VI를 필름 카메라 모드로 많이 쓸 거 같아요. 후지필름이라면 이미 만들고 있겠죠?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카메라가 살아남는 방법은 결국 스마트폰보다 월등한 화질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고. 저는 거기에 ‘손맛’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냥 터치스크린의 버튼을 누르는 스마트폰과 다르게 뭔가 찍는 경험에 중점을 둔다면 스마트폰보다 더 재밌게 찍을 수 있으니까요.
X-Half는 잘만 만들었다면 이 두 가지를 모두 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둘 중 하나만 겨우 잡았습니다. X-Half의 후속작이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나온다면 단순히 지금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닌, 조금 더 진심을 가지고 만들면 좋겠습니다.
X-Half 샘플 갤러리
아직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 무작정 이케아에 들고 가봤습니다. ISO 1000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암부 디테일이 뭉개지기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청설모가 자꾸 저를 따라 다니길래 몇 장 찍어 줬습니다. 사실 꽤나 많이 찍었지만, 얘가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바람에 렌즈의 최소 초점 거리를 넘어버려서 다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고 이 사진 한 장만 겨우 건졌습니다. 필름 카메라 모드에서는 뷰파인더에서 초점이 제대로 잡혔는지도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 이따금씩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광량이 충분하면 꽤 괜찮은 사진을 뽑아주기도 합니다.
어묵에 정신이 팔린 길고양이를 꽤 가까운 거리에서 찍었지만 광각의 특성이 있는 렌즈 덕분에 조금 멀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때부터 NR의 디테일 뭉개짐을 상쇄하기 위해 필름 그레인 효과를 인위적으로 넣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설정하니 정말 필름 일회용 카메라 느낌이 물씬 납니다.
점점 목측형 뷰파인더만으로 가운데를 맞추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입니다.
안녕 피크민!
한 번은 카메라의 직관성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아내에게 카메라를 빌려줬습니다. 저에게 간단한 교육을 받고 나니 곧잘 잘 찍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내는 조리개 역시 자동으로 두고 찍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는 방향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덕분에 한낮임에도 ISO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네요.
(살 수는 없어도) 참새가 방앗간 가듯이 라이카 매장은 한번씩 들르는 편입니다. 언젠가는 살 수 있겠죠…. (한숨)
여름날의 한강 풍경.
X-Half의 앞에는 LED 플래시가 달려 있는데, 광량이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제대로 된 플래시를 탑재해줬으면, 아니면 최소한 제대로 된 외장 플래시를 연결할 수 있는 핫슈가 있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다음 리뷰에서 만나요~
About Author
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