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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 프로 3, 역대 최고의 에어팟

"최고의 ANC"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최고의 ANC"가 틀린 말이 아니었다

2025. 10. 02

안녕하세요, 출시 첫날부터 에어팟을 써온 에어팟 고인물 이주형입니다. 에어팟이 벌써 내년이면 열 살이 됩니다. 아이폰에서 이어폰 단자를 없앤다는 충격적(?) 발표와 함께 등장한 이 제품은 처음엔 달갑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 아이팟의 ‘하얀 줄 이어폰’ 만큼이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죠.

에어팟 라인업 최초로 능동형 소음 제어, 즉 ANC 기능을 탑재했던 프로가 벌써 3세대로 진화했습니다. 이번 에어팟 프로 3 발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표현은 바로 “세계 최고의 인이어 ANC”라는 말이었습니다. 엄청난 자신감이죠.

그런데 실제로 에어팟 프로 3를 끼고 ANC 모드를 켜보니 그 말에 수긍이 가기 시작합니다. 에어팟 프로 2의 ANC 성능이 절대로 좋지 않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 성능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지금, 이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망원동의 한강뷰 스타벅스에서, 제 주변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지만 제 에어팟 프로 3에는 맥북에서 틀어 둔 아이유의 노랫소리만이 들립니다. 노래를 잠깐 일시 정지해도 대화 소리는 조금씩 들릴 뿐입니다. 오버이어 헤드폰이 아닌 인이어 이어폰에서 이 수준의 ANC를 구현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떻게 한 걸까요? 사실 에어팟 프로 3의 ANC 소프트웨어를 총괄하는 오디오 칩은 H2로 에어팟 프로 2나 에어팟 4와 같습니다. 하지만 에어팟 프로 3에는 프로 2에 없던 두 가지가 있어요. 바로 주변 소음을 더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는 추가 마이크와 새로운 이어팁입니다.

먼저 새로운 이어팁에 주목해 볼게요. 기존의 에어팟 프로 이어팁에서 귀에 밀착하는 부분이 내부가 비어 있었다면, 프로 3의 이어팁은 그 비어 있는 부분을 폼으로 채워 넣은, 실리콘과 폼이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이어팁으로 바뀌었습니다. 폼은 귀의 모양에 맞춰서 팽창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서 귀 밀폐에는 훨씬 유리한 특성이 있지만, 내구성이나 위생 면에서는 훨씬 불리하기도 합니다. 에어팟 프로 3의 이어팁은 폼을 내부에만 사용하고, 외장은 여전히 실리콘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폼 재질의 장점인 팽창성을 살리면서 위생에도 신경을 쓴 거죠. 물론 전체를 폼으로 만들지 않았으니, 제조 단가도 좀 절약했겠죠?

에어팟 프로 2 (위), 에어팟 프로 3 (아래)

에어팟 프로 3와 프로 2를 같이 놓고 비교해 보면 형태도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어폰 헤드가 좀 더 튀어나와 있고, 각도도 좀 다릅니다. 이따가 얘기할 심박 센서의 위치를 고려한 것도 있지만, 폼이 들어간 팁의 도움을 받아 귀에 더 많이 밀착할 수 있는 설계로 보이기도 해요. 실제로 애플은 에어팟 프로 3의 유닛 디자인을 새로 하면서 더 많은 사람의 귀를 스캔해서 분석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유닛의 차이 때문인지 케이스도 자세히 비교해 보면 에어팟 프로 2 때보다 미묘하게 커졌습니다.

에어팟 프로 3에서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소리였습니다. 사실 에어팟 프로 3의 소리는 의외로 호불호가 갈립니다. 훨씬 나아졌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유일한 단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직접 들어볼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는데요. 실제로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애플의 오디오 튜닝 기조는 ‘플랫’이었습니다. 크게 모나지 않은 소리 설계로 어떤 노래를 듣더라도 무난하게 대응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소리가 밋밋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도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것이죠.

하지만 에어팟 프로 3에서는 약간의 캐릭터가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음이 꽤 강해졌고, 공간감도 상당히 넓어졌어요. 저는 전반적으로 에어팟 프로 3의 소리가 좀 더 화려해지면서도, 여전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서 팟캐스트까지 다양한 미디어도 크게 모나지 않게 커버하고 있어서 꽤 긍정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기호보다는 저음이 조금 강하다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에어팟 프로 3의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아마 이런 캐릭터성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소리는 어디까지나 개인 기호도 상당히 큰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에어팟 프로 3의 소리가 어울릴지 궁금하다면 먼저 애플 스토어 같은 곳에서 청음을 해보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에어팟 프로 3를 낀 채로 운동 추적을 켜면 에어팟 프로 3로 심박수를 측정합니다.

심박 센서 얘기를 해볼까요. 처음에, 이 이야기를 루머로 들었을 땐,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써보니 워치를 차고 나오지 않은 날에는 간이로 운동 추적하기에 꽤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어팟 프로 3를 귀에 낀 채로 운동을 추적하려면 아이폰에서 피트니스 앱에 들어가 운동 탭을 눌러주면 됩니다. 애플에 따르면 50여 가지의 운동을 추적할 수 있다고 하며, 아이폰의 가속도계 데이터와 에어팟 프로 3의 심박 데이터를 조합해서 운동 칼로리를 계산하는 것이죠. 다만, 에어팟의 배터리 관리를 위해 운동을 추적할 때만 에어팟의 심박 센서가 켜집니다. 저같이 애플 워치를 매일 차지 않는 사람에게 워치가 없어도 애플 워치 수준의 운동 추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셈입니다.

애플 워치와 에어팟 프로 3 둘 다 활용해서 심박수 측정이 가능합니다.

애플 워치가 있다고 해서 이 심박 센서가 쓸모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애플 워치로 운동을 추적할 때도 에어팟 프로 3의 심박 센서가 함께 켜지며, 지난 5분간의 심박수 데이터를 가장 정확하게 측정한 기기가 심박수의 출처로 사용됩니다.

이번 발표에서 애플이 몇 안 되는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 중 하나로 강조한 실시간 통역 기능도 사용해 봤습니다. 이 기능은 사실 에어팟 프로 3의 기능이라기보단 iOS 26의 기능이어서 에어팟이 없어도 되고, H2를 장착한 에어팟 프로 2나 에어팟 4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는 좋은 실시간 번역 테스트 상대였습니다.

실시간 번역을 위해서는 먼저 사용할 언어 팩을 내려받은 후, 번역 앱에서 사용할 언어를 선택해서 번역을 시작하면 됩니다. 이걸 어떻게 테스트해 볼지 고민하다가 제가 아는 독일 시계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 하나를 무작정 틀어봤어요. 번역 결과를 상대방과 비슷한 톤의 목소리를 에어팟으로 들려주면서 아이폰에서도 바로 보여줬습니다. 여기서 제가 저에게 익숙한 언어로 답하면 아이폰이 번역을 해서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상대방도 에어팟을 끼고 있다면 아이폰을 보여줄 필요 없이 서로의 에어팟으로 실시간 번역을 할 수도 있어요. 제가 독일어를 못해서 통역 결과에 대한 완전한 평가는 힘들지만, 최소한 맥락상으로는 제대로 된 번역을 제공했습니다. 실시간 번역은 애플 인텔리전스를 지원하는 아이폰 15 프로 이후의 아이폰에서 사용할 수 있고, 현재 베타 테스트 중인 iOS 26.1부터는 한국어도 지원할 예정이라 해외에 나갔을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iOS 26에서 발표한 또 다른 기능은 “스튜디오 품질의 녹음 품질과 로컬 캡처” 기능이었는데요, 부업이 팟캐스트 호스트인 저로는 상당히 관심이 가는 내용이어서 실제로 팟캐스트 녹음 때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 기능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줌과 같은 화상회의 앱을 사용했을 때 로컬 캡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로컬 캡처 버튼을 제어 센터에 미리 추가해서 캡처 대기 상태로 만든 후, 그 상태로 화상 통화 앱에서 통화를 시작하면 됩니다. 화상 통화가 종료되면 녹음도 바로 종료되며, 파일 앱의 다운로드 폴더에 저장됩니다.

화상 통화를 시작하기 전 로컬 캡처를 미리 눌러두면 이렇게 대기 상태가 됩니다.

품질은 딱 여행이나 출장 같이 일반적인 녹음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비상용으로 사용하기 좋은 정도였습니다. 당언히 제가 실제로 녹음에 사용하는 로데 NT-USB 마이크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 했죠. 사용 방법도 제어 센터에서만 로컬 캡처를 접근할 수 있는 등, 생각보다 복잡한 편이었습니다. 아래 제가 실제로 에어팟 프로 3와 NT-USB 마이크로 같은 방에서 녹음한 소리를 비교해볼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로데 NT-USB
에어팟 프로 3

이렇게 추가된 기능들도 많지만 가장 반가운 것은 바로 배터리입니다. 애플에 따르면 기존 6시간에서 8시간까지 늘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테스트를 위해 정오에 집을 나설 때부터 에어팟을 계속 귀에 끼고 있었는데 8시간 반이 지나서야 배터리가 1%가 되었습니다. 그날 외출 하루 종일 에어팟을 끼고 다녔는데, 그 하루를 온전히 버틴 셈이죠. (청력 건강을 생각하면 추천하진 않습니다.)

나중에는 1시간 반 정도 자전거를 타면서 사이클링 운동 기록을 위한 심박수 측정과 미디어 재생을 같이 했을 때는 80% 정도까지 줄어 있었는데,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운동하면서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최소 6시간 반 정도는 들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위에 언급한 팟캐스트 녹음 때도 2시간 10분 정도의 녹음 시간 동안 배터리가 24% 정도만 빠져서 단순 계산시 8시간 이상의 녹음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요. 다만, 케이스의 배터리가 줄어들면서 케이스까지 합한 배터리 시간은 20시간 정도로 에어팟 4와 비슷한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에어팟 유닛의 크기가 커진 상황에서 케이스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키우려다 보니 생긴 부수적 피해로 보이는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에요.

에어팟 프로 2 (왼쪽), 에어팟 프로 3 (오른쪽)

사실 에어팟 프로 3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2022년에 출시하자마자 산 에어팟 프로 2를 교체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 써본 에어팟 프로 3는 2와 비교해 또 다른 진일보를 이뤄냈습니다. 작년에 에어팟 4를 리뷰했을 때 에어팟 프로 2의 80%를 해낸다고 했지만, 에어팟 프로 3는 여기서 더욱 멀리 격차를 벌렸습니다.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가격입니다. 미국에서 에어팟 프로 3의 가격은 2와 동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환율의 여파로 2만 원 오른 36만 9천 원입니다. 사실 무선 이어폰치고는 상당히 비싼 가격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에어팟 프로 3보다 더 비싼 제품들은 아예 최고급 오디오 브랜드에서 내놓는 제품들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격차가 좀 심하게 나긴 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ANC 성능과 심박 센서의 추가, 한결 다듬어진 소리 등을 고려하면 도리어 납득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에어팟 4 ANC 모델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과거 저는 에어팟 4를 리뷰하면서 에어팟 프로 2보다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8만 원만큼의 차이는 아니라고 평가했었어요. 이제는 에어팟 프로 3의 가격이 오르면서 에어팟 4 ANC 모델과 10만 원으로 차이가 벌어졌지만, 에어팟 프로 3에 추가된 신기능들 덕분에 이젠 그만한 가치는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심박 센서가 필요 없고, 에어팟 4의 ANC 성능이 충분하다면 에어팟 4도 뒤쳐지는 제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리어 더 작은 사이즈와 오픈형이라는 나름의 특장점도 있고요. 하지만 에어팟 프로 3를 고른다면 ‘내가 10만 원을 허공에 날렸구나’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겁니다.

애플의 에어팟 라인은 팀 쿡의 애플에서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이번 에어팟 프로 3는 그 수준을 더욱 끌어올린, 역대 최고의 에어팟입니다.

About Author
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