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객원 에디터 이주형입니다. 이번에 출시된 에어팟 4, 특히 ANC 모델은 균형 잡힌(?) 무선 이어폰의 세계에 혼돈을 몰고 오는 신제품입니다. 에어팟 4 ANC 모델이 나온 순간부터 오랫동안 에어팟 프로 2를 사용한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프로가 아닌 에어팟도 쓸만할까? 그래서 에어팟 4 ANC를 받자마자 에어팟 프로 2는 잠시 서랍에 넣어두고 3주 동안 에어팟 4 ANC(이하 ‘에어팟 4’)만 사용해 봤습니다.
에어팟 4와 에어팟 프로 2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당연하게도 형태입니다. 에어팟 프로 2는 이어팁이 있는 밀폐형이고 에어팟 4는 오픈형이죠. 이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착용감도 상당한 다릅니다. 에어팟 프로 1세대부터 무려 4년 반의 기간 동안 프로만 썼던 제가 처음으로 에어팟 4를 착용했을 때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에어팟 프로의 밀폐형 디자인은 귀에서 이어폰이 쉽게 날아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느낌이 있는데, 에어팟 4의 오픈형 디자인은 귀에 걸터앉는 느낌입니다. 꽉 잡아주는 느낌이 없다 보니 떨어질까 봐 불안한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약 2-3주 동안 줄기차게 에어팟 4를 낀 채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만 귀에서 떨어져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에어팟 3와 비교를 해보면 조금 더 날렵해지고 각진 모양새입니다. 애플은 약 5,000명의 귀를 스캔한 자료를 토대로 다시 디자인했다고 밝혔는데요. 이어폰을 잡아주는 이어팁이 없는 특성상 많은 사람들의 귀와 잘 맞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귀에 맞지 않을 가능성은 있을 테니 구매 전에 한 번 시착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케이스의 전반적 모양새는 에어팟 프로 2나 에어팟 3와 다른 게 별로 없지만 은근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눈에 띄는 건 크기. 에어팟 프로 2는 물론이고 에어팟 3 케이스보다도 작아서 휴대하기에 더 좋아졌습니다. 프로 2에 있는 스트랩 구멍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케이스로 충분히 보완 가능한 부분이죠. 이 휴대성이 프로 2와 비교할 때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케이스 전면의 상태 LED는 예전 에어팟들이 아예 케이스에 구멍을 뚫어놓아 둥근 점이 늘 보였던 것과 달리 케이스 뒤에 LED를 배치해 꺼져 있을 때 훨씬 깔끔한 모습입니다. 이전 에어팟들의 후면에 늘 있던 페어링 버튼이 사라진 점도 눈에 띄는데요, 이제는 LED가 있는 곳에 정전식 패드를 내장해 두 번 탭하는 걸로 페어링 버튼을 대신합니다.
에어팟 프로 2나 에어팟 3와 비교해 빠진 것도 있는데, 바로 맥세이프 충전 기능입니다. 케이스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맥세이프를 지원할 자석을 배치할 수 없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다만 애플 워치 충전기를 활용하거나 일반적인 무선 충전은 ANC 모델 한정으로 여전히 가능하고, 에어팟 프로 2처럼 내장 스피커를 활용하여 나의 찾기 앱에서 에어팟 케이스를 찾는 기능도 지원해요. 충전 포트 역시 요즘 애플 제품들의 트렌드(?)에 걸맞게 라이트닝에서 USB-C로 바꿨습니다.
에어팟 4의 두 가지 모델, 그 차이점은?
에어팟 4는 두 가지 모델로 나왔습니다. 기본 모델과 ANC 모델이죠. 무려 7만 원의 가격 차이를 보이는 두 버전 사이에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본격적인 기능 리뷰 전에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죠? ANC는 당연히 ANC 모델에만 탑재됩니다. ANC와 관련된 주변음 허용 모드와 적응형 오디오 모드, 그리고 대화 인지 기능 모두 ANC 모델에서만 지원합니다. ANC 알고리즘에 필요한 주변 소리를 수음하기 위해 더 좋은 외부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도 차이점이에요. ANC 성능에 관한 이야기는 이따가 자세히 해보겠습니다.
- 케이스: 두 모델은 케이스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본형 모델은 애플 워치 충전기 지원과 일반 무선 충전 지원이 모두 빠지며, 하단의 USB-C 포트로만 충전할 수 있어요. 나의 찾기 앱을 통해 에어팟 케이스의 위치를 찾는데 필요한 스피커도 기본형에는 없습니다.
에어팟 4에서 개선된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칩셋입니다. 에어팟 프로 2의 H2 칩을 이어받은 것인데, 심지어 이번에 ‘업데이트된’ 76만 9천 원짜리 에어팟 맥스에도 안 넣어준 최신 칩입니다. H2 칩 탑재로 가능한 기능이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으로 머리 위치 추적을 통해 공간감을 구현하는 공간 음향 기능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번 iOS 18에서 추가된 음성 분리 기능은 실시간으로 마이크로 들어오는 소리를 분석해 주변이 시끄럽더라도 목소리만을 분리해 상대방에게 들려줍니다. 지하철과 같은 시끄러운 환경에서 통화하는 게 한결 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전화가 올 때 고개 움직임만으로 전화를 받거나 거절하는 기능도 손이 없어서 아이폰으로 전화를 받기가 힘들 때 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H2 칩을 활용한 에어팟 4 ANC 모델의 성능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ANC 성능을 보입니다. 사실 오픈형 이어폰에서 ANC를 구현한다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간의 제품들은 이게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의 성능을 보였었습니다. 바깥소리가 물리적으로 새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에서 그 소리를 감쇄시킨다는 게 사실 기술적으로 쉽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에어팟 4 ANC는 이걸 해냈습니다. 아무 음악도 재생하지 않고 있어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주변 소리가 줄어들고, 미디어를 재생하기 시작하면 주변음이 그냥 사라집니다. ANC의 원리는 결국 이어폰이 주변음을 마이크로 듣고 이를 상쇄시키는 소리를 이어폰으로 흘려보내는 것인데, 이걸 밀폐형 이어팁의 도움이 없는 상황에서 이질감 없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H2 칩의 성능이 강력하다는 의미겠죠. 당연히 에어팟 프로 2의 수준을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 신경이 쓰일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에어팟 프로 2 대신에 충분히 쓸만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에어팟 프로 2에 비해서는 확실히 저음을 걸러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느껴집니다. 에어팟 프로 2에서 저음을 걸러내는 역할은 ANC 자체의 기능보다는 밀폐형 이어팁의 공이 더 컸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버스를 탈 때 엔진음을 걸러내는 능력이 확실히 에어팟 프로 2보다는 떨어집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아 비행기에서 사용할 때는 ANC 능력 차이가 더 눈에 띄게 나타날 것 같네요. 전 에어팟 프로 2를 비행기를 탈 때도 사용하는 편이라 이 부분에서는 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리뷰 기간 동안에 비행기를 탈 일이 없었어서 테스트는 못 해봤네요)
에어팟 4의 ANC 모드는 에어팟 프로 2와 완전히 같습니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과 주변음 허용 모드, 적응형 모드가 모두 탑재되었는데요. 다만 제가 원하는 효과를 위해 에어팟 프로 2와는 다른 모드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에어팟 프로 2에서는 개인적으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거나 카페 등지에서 집중해야 하는 순간에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모드를 사용하고, 밖에 돌아다닐 때는 적응형 모드를 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에어팟 4에서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모드는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밖을 돌아다닐 때는 아예 모든 노이즈 캔슬링 모드를 꺼버리는 방향으로 사용했습니다. 에어팟 4의 적응형 모드는 iOS 18에서 추가된 노이즈 캔슬링 정도를 조정할 수 있는 메뉴에서 조정을 해도 여전히 노이즈 캔슬링의 정도가 에어팟 프로 2에 비해 강하게 세팅되어 있는 편이었고, 그렇다고 주변음 허용 모드를 사용하자니 제가 듣고 있는 미디어가 묻힐 정도로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럴 때는 도리어 모든 노이즈 캔슬링 알고리즘을 꺼버리고 미디어만 재생하게 하는 편이 좀 더 자연스럽다고 느꼈어요.
노이즈 캔슬링을 끄면 배터리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겁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에어팟 4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배터리거든요. 애플은 노이즈 캔슬링(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적응형, 주변음 허용 모드)을 사용하면 최대 배터리 시간을 4시간으로 고지하고 있는데요, 실제 테스트 결과도 애플의 추정치와 거의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이 배터리 시간은 1회 충전 시 최대 6시간을 가는 에어팟 프로 2보다 무려 30% 이상 낮은 수치예요.
제 사용 패턴에서는 이 두 시간이 생각보다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 밖을 나설 때부터 이미 에어팟을 귀에 꽂아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아이폰에 연결해서 사용한 후, 카페 등지에 앉아서 맥북을 열고 작업하기 시작하면 아이폰에 연결돼 있던 에어팟을 그대로 맥북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중간에 충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쓰는 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어팟 프로 2에서는 배터리 경고음을 들은 적이 손에 꼽지만 에어팟 4는 생각보다 배터리 경고음을 자주 들어서 중간에 충전을 해줘야 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어요. 사실 크게 불편한 부분은 아니지만, 충전을 위해 잠깐 하던 일을 멈춰야 하고, 일의 리듬이 깨지는 것도 소소한 불편함으로 다가왔죠. (디오니소스 짤을 소환합니다)
에어팟 4의 케이스도 크기가 작아진 대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사용하면 배터리 시간이 20시간으로, 역시 최대 30시간인 에어팟 프로 2보다 상당히 짧은 편입니다. 하지만 제 평균적인 사용 패턴에서는 에어팟 4 케이스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도리어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충전해 두는 것이 평상시의 생활 루틴에 있지 않다면 케이스의 배터리가 짧은 것도 확실히 느껴질 것 같네요.
하지만 에어팟 프로 2 사용자 입장에서 사실 에어팟 4 ANC를 사용하는 것은 위의 배터리 문제를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에어팟 4 ANC의 성능은 충분합니다. 건강상, 혹은 기호상의 이유로 밀폐형 이어폰을 못 쓰는 분들도 많은데, 그런 분들께 에어팟 4 ANC는 가뭄의 단비 같은 제품이 될 겁니다. 일단 성능 자체는 확실히 합격점입니다.
그렇다면 에어팟 프로 2를 쓰다가 에어팟 4로 오는 건 어떨까요? 에어팟 프로 2가 나온 지 2년이 넘었기에 이제 슬슬 기존에 사용하던 에어팟 프로 2의 배터리 수명이 다 했거나, 다른 이유로 고장이 나서 에어팟 4로 기기 변경을 고려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일단 이러한 수치를 낸다는 게 조심스럽지만, 에어팟 4 ANC는 에어팟 프로 2의 80%는 해내는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자란 20% 중 대부분은 배터리 수명에서 오는 아쉬움과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조금 떨어지는 ANC 성능에서 기인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외부적 요인을 제외하면 에어팟 4 ANC를 새 에어팟 프로 2 대신 사더라도 크게 후회는 안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외부적 요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가격입니다. 에어팟 4 ANC 모델의 정가는 26만 9천 원, 에어팟 프로 2의 정가는 34만 9천 원입니다. 다만, 에어팟 프로 2는 중간에 USB-C 포트 케이스로 업데이트된 것을 감안해도 나온 지 1년이 넘어서 다양한 오픈 마켓에서 이미 상시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 리뷰를 작성하는 시점에서 확인한 것만 해도 한 공인 리셀러에서는 5만 원을 할인한 29만 9천 원에 판매하고 있고, 가끔씩 할인폭이 높아져서 27만 원대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밀폐형 이어폰이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면 에어팟 프로 2가 케이스 크기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3만 원 차이 이상의 가치를 해낼 정도로 앞서기에 굳이 에어팟 4 ANC를 고를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시간이 흘러서 에어팟 4 ANC 역시 상시 할인을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겁니다.
만약에 둘 다 정가 기준에서 지금 당장 에어팟 프로 2와 에어팟 4 ANC 중 하나를 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저는 정말 깊은 고민을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께는 가격을 생각하면 에어팟 4 ANC도 정말 고려해 볼 만한 제품이라고 추천할 거고요. 분명 에어팟 프로 2 대비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게 정말 8만 원만큼의 아쉬움이냐 하면, 절대로 아니니까요.
아 까먹기 전에. 만약에 에어팟 4 일반형과 ANC 모델을 고민하신다면, ANC 모델이 7만 원의 가치는 확실히 있다는 점,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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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백수가 되었지만, 백수가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에디터이자 팟캐스터. IT가 메인이지만 관심가는 게 너무 많아서 탈이 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