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름을 좋아하는 객원 에디터 상언이다. 여름이 좋은 이유는 당장 열 가지 정도 댈 수 있지만 그중에 제일은 아무래도 음식이다. 몸이 뜨겁다 못해 속까지 뜨거울 때 베어 무는 시원한 수박이 좋고,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는 새콤한 냉면 한 그릇이 반갑고, 땀을 쫙 빼고 샤워 후에 마시는 개운한 맥주의 맛이 특히 더 각별하기 때문이다.
맥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맥주의 퍼스널 컬러는 확실히 여름이다. 다른 술에 비해 확실히 시원한 맛에 마시기도 하고, 거침없는 탄산감에 더위를 다 씻어버리기도 하니까. 또 어떤 술보다 캐주얼한 느낌이 든다. ‘맥주 한 잔?’이라는 질문은 가까운 사이든 어색한 사이든 별로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오늘은 본격 맥주의 계절을 맞아 어울리는 간식을 페어링해봤다. 모두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제품으로 구성했고, 약간의 상황도 곁들여봤다. 상황에 맞게 시원하게 즐겨보길!
[1]
오리온 더 드래프트
with 도도한 나쵸치즈맛&꼬북칩 카라멜 팝콘맛
페일라거는 밝은 색깔의 라거 스타일로, 청량감과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홉은 보통 시트러스 같은 향을 담당해 쌉쌀할 수 있지만, 오리온 더드래프트는 홉 향이 은은해 누구나 가볍게 즐기기 좋다. 거품이 많거나 퍼지는 편이 아니라 잔에 따를 때도 크게 걱정이 없다. 따라 붓는 순간 상쾌하고 향긋한 향이 나 여름에 마시기에 적합할 것! 맛은 가볍고 단맛이 살짝 맴돌며, 옅은 느낌 없이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일본 오키나와가 원산지라 오키나와 여행 때 흔하게 마시는 맥주로도 알려져 있는데 최근 국내 편의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머리 끝까지 짜릿한 탄산감은 덜하지만 잔잔한 입자의 거품 덕분에 마무리 감이 부드러운 편이다. 도수 역시 5도 정도라 평소 맥주를 자주 마시지 않거나 술 자체를 잘하지 못한다면 추천한다.
맥주가 만만한 종류기 때문에 안주 역시 과자가 무난하다. 특히 라거 안주로 감자칩 같은 짭짤한 과자와 많이 먹는데, 한국인이라면 단짠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럴 때는 도도한 나쵸치즈맛과 꼬북칩 카라멜 팝콘맛을 반반씩 넣어 섞어 먹어보시라. 입이 텁텁할 때쯤 맥주 한 모금 마시면 싹 입가심이 되면서 술이 술술 넘어간다. 심지어 꼬북칩의 바삭바삭한 소리 덕분에 술자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과자 한 봉지를 다 못 먹는 소식좌라도 이 조합이라면 금방 먹을 수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모였을 때 추천하는 조합이다. 맥주와 안주 모두 호불호가 없는 편이라 여럿이 모여 함께 먹기 좋다. 안 먹는다는 사람이 있어도 누군가 한 명 맥주캔을 치키탁-! 열고,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 소리에 손이 안 가고는 못 배길 조합이다. 같이 영화를 보거나 수다 떨면서 즐기기 좋은 스낵 페어링! 단점이 있다면 그렇게 하나씩 집어먹고 홀짝거리다가 오히려 입맛을 돋워 마라탕까지 당길 수 있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 결론: 과자는 두 개의 조합을 반반씩 넣고 섞어 먹으면 극강의 단짠 조합이 완성된다. 제품 모두 접근성이 좋고, 호불호 없는 페어링이라 캐주얼하게 즐기기 좋다.
[2]
에딩거 헤페바이젠
with Dole 황도 과일컵
밀맥주는 특성상 효모에서 나오는 바나나나 클로브 같은 향신료 때문에 해산물이나 소시지, 치즈와 자주 즐긴다. 그만큼 도수가 높지 않아도 혀를 감싸는 스파이시함이 여운 있는 편이다. 반면 독일식 밀맥주 에딩거 헤페바이젠은 부드러운 질감과 깔끔한 피니시가 절제된 느낌을 준다.
평소 맥주를 즐긴다면 과하지 않은 이 페어링이 반가울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조합! 술자리는 주로 헤비한 안주부터 시작해 배를 든든히 채우는 경우가 많은데, 2차 정도는 이 조합으로 가볍게 즐겨보길 추천한다. 배는 더 이상 부르지 않으면서도 술자리는 오붓하게 더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통조림 황도도 괜찮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돌(Dole) 과일컵이 좀 더 과일의 탱글함이 살아있어 쥬시한 편이다.
잘 알려진 조합은 아니지만, 에딩거 헤페의 크리미한 질감과 은은한 산미를 말랑하고 달콤한 황도가 이어주는 것이 마치 축구의 왼쪽 윙어 같은 느낌이 든다. 서로의 밸런스가 안정감 있달까. 묵직한 공격보단 패스와 드리블로 가볍게 연결을 이어가는 페어링! 맛 역시 몰아붙이는 터프함이 없어 산뜻하다.
- 결론: 에딩거헤페는 주로 헤비한 안주와 많이 먹는데, 상큼하고 달달한 과일 안주가 에딩거헤페의 향을 더 잘 살려준다. 이미 1차로 술자리를 끝냈으나 헤어지기 아쉬울 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조합.
[3]
쿠퍼스 스타우트
with 하겐다즈 바닐라 미니
편의점에서도 ‘맥주 플로트’를 만들 수 있다. 맥주 플로트는 아포가토의 알코올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주듯, 천천히 맥주를 부어주면 된다. 커피 대신 쌉쌀한 흑맥주가 감싸주는 매력이 포인트! 가장 클래식한 버전이 스타우트나 포터 같은 흑맥주다. 편의점 맥주로는 쿠퍼스 스타우트나 코젤 다크를 추천한다.
쿠퍼스 스타우트는 도수가 6.3도라 엑스트라 스타우트다. 8도~10도 가까이 되는 임페리얼 스타우트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일반 라거에 비하면 높다. 흑맥주 특유의 씁쓸함과 달달한 초콜릿향이 어우러져 풍미가 훌륭한 맥주다. 그래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 페어링했을 때 궁합이 좋다. 코젤 다크는 스타우트보단 묵직함이 적어 좀 더 라이트하고 부드럽게 즐길 때 어울린다.
처음 만났거나 아직 어색한 사이에서 카페, 밥까지 다 먹고 또 카페를 가자니 부담스러울 때 추천하는 편의점 조합이다. 와인을 마시자니 괜히 플러팅 같고, 술집에 가자니 시끄러운 상황이 그려질 때 야외 맥주로 가볍게 즐기기 좋은 조합이다. 다소 터프하게 술집에서 술을 마는 것보다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좀 더 귀여워 보이지 않나? 실제 미국에서는 기네스+바닐라 아이스크림 조합을 ‘Adult Float’라고 부르기도 한다.
별도 플라스틱 컵에 맥주를 먼저 따르고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떠서 넣어도 되고, 여력이 안 된다면 하겐다즈나 투게더 미니 사이즈를 몇 스푼 떠먹고 그 안에 맥주를 넣어도 된다. 다만 이 스킬을 쓸 땐 ‘아, 이거 몰라?’ 하는 거만한 태도가 아닌 수줍고 작은 목소리로 ‘아… 이거 내 필살기였는데…’ 하면서 조심조심 맥주를 부어야 맛이 산다. 실제로 맥주에 넣을 거면 몇 입 마시고 넣어야 넘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 다 먹었을 때쯤엔 술에 취한 건지 달콤함에 빠진 건지 헷갈린 채로 집에 가면 된다.
- 결론: 맥주 플로트(아포가토의 알코올 버전)를 즐길 수 있는 조합. 아이스크림 한두 스쿱을 떠먹고 맥주를 붓거나 병맥주나 캔맥주에 조금씩 넣어도 괜찮다.
[4]
IPA 리투아니아 탱커 IPA
with 셰프의킥 여경래 깐풍&깐풍만두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다. 맛집 가자고 굳이 사람들 불러낼 에너지도 없다. 이럴 땐 고독한 미식가 컨셉으로 혼자서도 만족스럽게 즐길 혼술 코스가 필요하다. 일단 접근성이 좋은 편의점으로 갈 테지만, 매일 들락거리는 CU, gs25보단 조금 더 베리에이션을 줘야 기분이 날 것 같다. 그럴 땐 수입 맥주가 많고 고급 안주가 많은 이마트24가 괜찮은 답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혼술은 알코올보단 분위기 자체에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논알콜을 선택하기엔 기분이 안 난다면 가볍게 즐기기 좋은 탱커IPA를 추천한다. IPA(India Pale Ale)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두고 있던 시절 수출용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유명한 설이다. 그래서 운송 중 상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홉을 더 많이 넣어 향미도 강하고 쓴맛도 강하다.
보통 IPA 도수가 5.5~7.5%인 것을 감안하면 탱커IPA는 5.2% 정도라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IPA 애호가에겐 밋밋한 선택지라 생각할지도. 그럼에도 향이 확실히 인상적이고 쓴맛이 덜한 느낌이라 오히려 음식의 맛 자체를 잘 살려준다. 라이트 IPA 혹은 묵직한 라거 느낌으로 상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제 술은 골랐고… 잘 어울리는 안주를 골라볼까- 할 때 눈에 띄는 ‘셰프의킥’. 맛집? 줄 안 서도 유명하고 인기 있는 셰프님들이 다 말아주신다. 특히 여경래 셰프의 ‘깐풍기&깐풍만두’가 탱커IPA와 잘 어울린다. 달콤하고 꽤 매콤한 맛을 맥주가 산뜻하게 잡아주기 때문! 사실 편의점 음식치고 퀄리티 자체가 매우 훌륭한 편이다. 편의점 음식이라면 보통 따뜻하게 데워먹어야 제맛이지만, 깐풍만두는 차갑게 먹었을 때 오히려 탱커IPA와 향미를 이루면서 매운맛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혼술이란 자고로 혼자 청승 떨어도 초라해 보이지 않아야 오래 즐길 수 있는데, 음식이 훌륭해 특히 만족스러울 페어링!
- 결론: 보통의 IPA보다 도수가 낮고, 산뜻한 느낌이라 입가심으로 좋다. 선주후면 대신 선식후주가 어울리는 혼술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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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
팔리는 기사를 쓰며, 안 팔리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균형 있는 삶은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