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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분침이 없는 시계, 발뮤다 더 클락

어떤 의미에서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어떤 의미에서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2026. 03. 24

한때 발뮤다가 ‘가전 제품계의 애플’이라고 불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더 토스터와 더 팟, 커피메이커인 더 브루 등 기존의 가전제품을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 덕분에 비슷한 스펙의 다른 제품에 비해 비싼 가격에도 주목받았었죠. 하지만 2021년에 야심 차게 내놓은 스마트폰 ‘발뮤다 폰’의 실패 이후, 발뮤다는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어떻게 보면 발뮤다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제품이 등장하였으니, 그게 바로 더 클락(The Clock)입니다.

더 클락의 생김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탁상 알람 시계와 유사합니다. 케이스를 플라스틱이 아닌 알루미늄 블록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는 게 좀 다른 점이랄까요. (여기서 전 애플 디자인 책임자이자 알루미늄 장인 조니 아이브가 생각나는데, 실제로 발뮤다는 아이브의 디자인 컨설팅 회사 러브프롬과 디자인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고, 아이브가 더 클락의 알루미늄 케이스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를 소개해 줬다고 합니다) 아 그리고, 시침과 분침이 없다는 점도요.

그렇다면 시간을 어떻게 표시할까요? 다이얼에 내장된 총 75개의 LED를 이용해 시간을 빛으로 표현합니다. 발뮤다에서는 이를 ‘라이트 아워(Light Hour)’라고 부릅니다. 밤에는 시계를 보기가 힘들다는 단순한(?) 문제에서 출발한 결과라고 해요. 시간은 숫자의 LED, 분은 분침의 LED가 대신 표시합니다. 매시간이 될 때 다이얼에 진자가 흔들리는 듯한 연출을 구현하기도 했어요.

더 클락에는 특이하게도 우퍼와 트위터가 탑재된 스테레오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는데, 단순히 알람 시계의 기능을 넘어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어 있어서예요. 물론, 알람 기능도 당연히 있습니다. 설정한 시각 3분 전부터 조금씩 소리를 높여가며 사용자를 자연스럽게 깨우죠. 그 외에도 화이트 노이즈를 재생하는 타이머와, 빗소리나 모닥불 소리와 같은 배경 노이즈를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릴랙스 타임 (Relax Time)’ 기능도 있습니다. 발뮤다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테라오 겐은 잠이 들 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없이도 자연스러운 화이트 노이즈를 내줄 수 있는 시계를 만드는 것이 더 클락의 개발을 시작하게 된 이유라고 밝혔는데, 그만큼 이 릴랙스 타임 기능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발뮤다 더 클락의 릴랙스 타임을 실행할 때 나오는 사운드 중 일부. (소리를 켜고 들어주세요)

여기에 스마트폰 연동 기능도 있어 발뮤다가 최근에 출시한 ‘발뮤다 커넥트’ 앱과 연동하면 스마트폰의 정확한 시각 정보를 동기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알람 시계 설정이나 두 번째 타임 존 설정 등 시계의 다양한 세부 설정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탁상시계에 과분한(?) 기능이 많이 달리면 크게 두 가지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는 배터리인데요. 내장된 리튬이온 배터리로 완충 시 24시간 정도 구동할 수 있고, 뒷면에 달린 USB-C 단자로 2시간 반 정도 만에 완충할 수 있습니다. 밤에 자기 전에 꽂아놓으면 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젠 알람 시계까지 충전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받을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네요.

두 번째는 가격입니다. 더 클락의 일본 정식 판매 가격은 5만 9,400엔으로, 약 56만 원 정도입니다. (2026년 3월 23일 환율 기준) 웬만한 탁상시계를 20개 정도는 살 수 있는 돈으로, 어떻게 보면 기존의 제품을 새롭게 해석해서 프리미엄의 가격으로 내놓는다는 발뮤다의 특징이 더 토스터와 같은 발뮤다의 다른 대표적인 제품보다도 극단적으로 드러난 경우라 할 수 있겠죠.

이런 면에서 발뮤다 더 클락은 호불호가 갈리는 제품이 될 겁니다. 더 클락의 고급스러운 알루미늄 외장과 시침과 분침을 빼 버린 과감한 디자인, 그리고 유려한 기능이 엄청난 가격과 짧은 배터리 수명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겠죠. 저는 더 클락을 보면서 이런 면에서 발뮤다가 어떤 의미에선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어요. 발뮤다에 위기를 불러 온 발뮤다 폰이 어떻게 생각해도 단순히 너무 비싼 스마트폰이었다면, 더 클락은 발뮤다가 잘하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고 봅니다. 그게 (관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요.

발뮤다 더 클락은 이미 일본에서 예약 판매가 시작됐고, 4월부터 배송이 시작됩니다. 한국에도 5월 중 발매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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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