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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VS 알파고 대국 10주년,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2016년 3월 9일, 그날의 이야기
2016년 3월 9일, 그날의 이야기

2026. 03. 12

2016년 3월 9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이세돌 9단과 딥마인드의 아자황 박사가 바둑판을 하나 사이로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 약 4시간 뒤 이 대국장은 놀라움과 아쉬움, 그리고 두려움이 공존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딥마인드의 아자황 박사 뒤에는 마치 만화 고스트 바둑왕의 ‘사이’처럼 컴퓨터 속 인공지능 ‘알파고’가 있었고, 이 알파고는 빈틈없이 완벽한 대국을 통해 이세돌 9단을 이겼습니다. 바둑을 깊이 모르는 것이 한스러웠지만 현장에서 만난 바둑 전문가들에게 물으니 ‘앞으로의 대국도 쉽지 않겠다’는 답이 나왔습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지만 ‘이게 보통 일로 끝나지는 않겠다’는 생각과 놀라운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다섯 차례의 대국이 이뤄지는 동안 그 감정은 기대와 놀라움에서 두려움으로 번져갔습니다. 돌아보면 이 세기의 대국은 인공지능의 시대를 상징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알파고’는 단순한 바둑을 넘어 인공지능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기도 했지요.


‘가짜’ 인공지능에 던진 ‘진짜’의 충격

사실 알파고는 이 대국이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온라인 바둑계에 비밀스럽게 등장했고, 그해 초 논문과 함께 세기의 대결을 예고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데미스 허사비스 CEO에게 기술적 의미와 이를 풀어낸 계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정도로 큰 일이 될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아마도 알파고가 생각보다 그럴싸하게 바둑을 두고, 이세돌 9단이 조금은 힘겹지만 결국 인공지능을 이겨내며 그 발전에 박수를 보내는 그림을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어릴 때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인공지능은 그럴싸하지만 어딘가 허술했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컴퓨터의 목표 중 하나는 사람을 흉내 내는 인공지능에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챗GPT나 제미나이 등의 인공지능의 뼈대가 되는 머신러닝 기술도 사실 1950년대 앨런 튜링이 그 개념을 세우고 아서 사무엘이 직접 프로그래밍하지 않아도 학습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필요에 따라서 다른 전략을 세우기도 하는 자가 학습 컴퓨팅에 대한 논문을 통해 처음 세상에 태어난 개념입니다. 다만 이를 풀어낼 만한 컴퓨터가 없었을 뿐입니다.

바둑과 체스를 비롯한 보드게임은 컴퓨터를 통해 인공지능을 실험하는 단골 숙제였습니다. 머신러닝을 통한 학습과 추론은 엄청난 양의 컴퓨팅 연산이 필요합니다. 컴퓨터는 빠르게 발전했지만 인공지능에 필요한 수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체스는 비교적 그 숙제가 일찍 풀렸습니다. 체스는 1997년 IBM의 ‘딥블루’ 이후로 사실상 인간을 뛰어넘었습니다. 하지만 바둑은 달랐습니다. 연산의 규모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체스는 20개 정도의 수를 내다보면 윤곽이 갈리기 때문에 확률 계산이 비교적 쉽고 명확합니다. 하지만 바둑은 200수 이상 두어야 한 판이 끝나고, 모든 바둑돌이 똑같은 가치를 갖기 때문에 연산의 양과 결과 판단이 훨씬 어렵습니다.

바둑은 인공지능의 소프트웨어적인 성능을 떠나 기본적으로 연산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개수보다 더 많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계산이 부족하고 정밀하지 못하니 전문 바둑기사들은 이내 컴퓨터가 수를 결정하는 패턴을 쉽게 읽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알파고는 달랐습니다. 일단 막대한 연산량을 통해서 200수 뒤의 결과까지 엄청난 방법을 다 계산해 냅니다. 판단의 근거는 사람이 정해주는 대신 이 세상의 유명한 기보를 모두 다 읽어서 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패턴을 스스로 익혔습니다. 사실 기술적으로 보면 알파고는 바둑의 규칙을 아는 것이 아니라 바둑을 이기는 사람들이 각 상황에서 다음 돌을 어디에 놓을 것인지 판단을 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알파고는 바둑을 둘수록 더 똑똑해집니다. 데이터가 많아지니까요. 알파고는 개발 과정에서 한 달 동안 100만 개의 바둑 기보를 학습했는데, 이건 1년에 1천 번 바둑을 둔다고 해도 1천 년이 걸리는 경험의 양입니다. 수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게임 전체의 흐름을 읽도록 학습이 되었기 때문에 바둑이 갖는 깊이도 동시에 학습이 된 거죠.


바둑판보다 마음 흔든 인공지능

결국 이세돌 9단과 맞붙은 5번의 대국은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며칠 사이의 분위기는 좀 흥미로웠습니다. 첫날은 ‘조금 놀랍지만 컴퓨터가 대단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둘째 날부터는 공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서서히 공포가 다가오기 시작했지요. 셋째 날에는 ‘컴퓨터에게 바둑을 정복당했고, 이제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이제 대국의 승패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바둑계는 ‘이제 끝장이다’라는 분위기가 일기도 했고, 세상은 ‘다음은 내 분야 차례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대국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세돌 9단은 역사적인 78번째 수를 통해 알파고의 허점을 찔렀고 이 ‘신의 한 수’는 알파고를 흔들며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알파고가 돌을 던지자 현장에서 취재진들은 모두 환호했고, 현장에 있던 구글과 딥마인드 직원들도 기뻐했습니다. 마치 강력한 인공지능과 맞선 인간의 승리 같았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대국은 큰 긴장 없이 마무리되긴 했지만 사람들의 감정은 큰 기복 속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 5일간의 대결이 인공지능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 그리고 인간의 대응에 대한 고민이었지요. 대국이 끝난 직후 한국기원의 바둑 기사들과 인터뷰를 했었는데, 이때는 이미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았었습니다. 대신 인공지능을 통해서 오랫동안 정형화되어 있던 바둑의 흐름이 바뀌고, 인공지능과의 훈련을 통해 새로운 기풍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바둑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지요.

이즈음 이세돌 9단이 “알파고가 바둑을 잘 두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둑의 아름다움을 알지는 못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바둑계는 지난 10년 동안 알파고의 대결을 바탕으로 바둑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발전의 계기로 삼은 듯합니다. 인공지능이 갈 길은 이미 정해졌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를 둔 첫 번째 고민을 한 분야라는 의미를 남긴 셈이지요.

그 뒤로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됐을까요? 자율주행, 음성 인식, 그리고 최근의 생성형 AI까지 인공지능은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사실 알파고가 기술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지요. 2016년은 알파고 직전에 구글이 공개한 텐서플로를 통해 머신러닝 기반 인공지능 기술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엿보이기 시작하던 때입니다. 그전에는 특정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실험하던 정도였는데, 텐서플로를 통해 이제 누구나 머신러닝을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비춰졌고, 알파고를 통해서 머신러닝 기반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거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며 오픈AI가 챗GPT를 내놓으면서 알파고가 만들어 놓은 가능성을 우리 일상의 현실로 꺼내어 놓았습니다. 원론적인 기술적으로만 돌아보면 우리의 인공지능은 이제 막 ‘쓸만해지고 있다’는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초 컴퓨터를 통한 인공지능의 여러 갈래 중에서 머신러닝은 가장 기초적인 분야입니다. 사실 ‘인공지능’이라는 거창한 말처럼 지능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엄청난 갈래의 확률 문제들을 빠르게 계산하고, 그중에서 답에 가까운 것을 골라내는 머신러닝 특유의 능력이 최근의 클라우드 컴퓨팅과 GPU를 통해서 그 실력을 드러내는 중이지요.


알파고가 남긴 숙제, ‘우리는 인공지능과 어떻게 살아갈까?’

알파고는 이제 더 이상 바둑을 두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딥마인드는 현재 구글 내에서 가장 중요한 인공지능 활용 연구를 맡고 있습니다. 기상 예측, 수학 추론, 단백질 분석, 유전자 해석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용 칩 설계에도 참여합니다.

전혀 분야가 달라 보이지만 따져보면 바둑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 분야들은 모두 학습을 통해 기존의 지식 경험을 익히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빠르게 시뮬레이션해서 최적의 답을 얻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바둑은 이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기술을 대중적으로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까지 사람의 지적 능력을 흉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동안의 ‘인공지능’이라는 막연한 이름을 토대로 한 어설픈 마케팅과 다른 수준의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려준 것이지요.

그리고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국이라는 이벤트를 통해서 세상에 두 가지 숙제를 남겼습니다. 한 가지는 기술 업계에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을 보여준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가능성을 바탕으로 많은 기업들이 나섰고, 지금의 커다란 생성형 AI부터 스마트폰 속 온 디바이스 AI, 그리고 개인의 다양한 AI 활용까지 본격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GPU와 메모리를 비롯한 컴퓨팅 자원을 빨아들이고, 막대한 전력을 쓰면서까지 온 세상이 인공지능에 매달리는 출발점이 돌아보면 알파고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지요. 기술 시장에 던진 숙제는 모두가 계속해서 부지런히 풀어내고 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빠른 성과들이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알파고가 우리의 일상에 던진 또 하나의 숙제, 인공지능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역사적인 대국 직후 바둑계가 무너진다는 우려부터, 내 직업은 언제 사라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사실 큰 공포로 다가왔지요. 인공지능을 어떻게 규제하고, 속도 조절과 역할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인공지능 업계가 개발을 멈추고 잠깐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답을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이런 이야기가 미련한 세상이 됐습니다. 챗GPT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의 현실이 되면서 뒤를 돌아볼 시간에 달려나가지 않으면 누구도 다음 시대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더 크게 앞섰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공지능을 통한 일자리 구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인공지능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뒤처지는 분위기도 일어납니다.

당장 유튜브 속 목소리, 장면조차 사람의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일단 가보는 게 맞는 시대가 됐습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이 정답의 기준이 되고 있고, 많은 고민과 결정, 판단을 인공지능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심지어 최근의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미사일 공격이 인공지능의 판단으로 이뤄진다는 소식이 나올 정도입니다.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혁신은 이렇게 파괴적으로 기존의 가치관을 부수며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갖고 인공지능을 밀어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창의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생성형 AI로 누구나 쉽게 높은 수준의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동시에 이제 직접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이 답답한 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워드프로세서의 등장 이후 손글씨와 타자기가 사라졌던 것처럼 도구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사고’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에 인공지능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바둑계는 알파고를 두고 새로운 기풍을 찾아냈고, 이세돌 9단은 이 효율과 확률의 기계 앞에서 ‘바둑의 아름다움’을 언급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생성형 AI의 마법 속에서 기술과 함께 ‘사고의 가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과 바둑의 가치를 새로 만들어낸 78번째 ‘신의 한 수’, 이제 우리가 둘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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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