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오늘은 맥북 뽐뿌를 준비했다. 고백하나 할까? 태어날 때부터 사과를 씹던 사람인 척했지만, 사실 난 그리 전통(?) 있는 맥북 유저는 아니다. 그래서 맥 세이프에 대한 향수도, 불 들어오는 사과 로고에 대한 집착도 없다. 오히려 맥북보단 아이맥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윈도우 노트북과의 양다리도 오랫동안 유지했다. 뭐든 학습이 느리고 적응이 더딘 내가 평생 함께해온 윈도우를 버리고 맥OS를 택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맥이란 불편하고 예쁜 하이힐 같아 보였으니까. 액티브엑스도 깔리지 않는 데다, 액티브엑스도 깔리지 않는걸.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
아이맥을 쓰기 시작한 처음 일주일간은 매일 멀미와 공포에 시달렸다. 모든 작업이 껄끄러웠다. 브라우저를 닫으려고 오른쪽 위를 더듬거렸지만, 창닫기 버튼은 멀리 왼쪽 끝에서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프로그램들이 없었고, 메모장과 지뢰찾기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간사한 나의 손가락은 매직 마우스 없인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뇌구조가 바뀐 것만 같았다. 태어나서 여태까지 평생 맥만 써온 사람처럼! 이쯤에서 말해두자면, 이 글은 절대 윈도우와 맥OS 간의 우열을 가리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각자에게 딱 맞는 제품과 사용자 환경이 따로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은 거다.
나는 그리 영민한 사용자는 아니다. 새로운 기능에 대한 탐구 의지가 희박하며, 기계치에 가깝다. 내가 iOS와 맥OS에 쉽게 적응한 이유는 인터페이스가 유아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고 대충 생각하고 조작하면, 상상한 대로 이루어진다. 학습은 필요 없다. 본능에 따른다. 아날로그의 경험을 일부 옮겨놓은 듯한 직관적인 환경이 인상적이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함께 쓰니 ‘연결성’의 세계 안에 더더욱 견고히 갇히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전부 좋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쉽게 할 수 있는 게 많은 만큼, 쉽게 할 수 없는 것도 너무 많았다. 내겐 사소한 불편이지만, 누군가에겐 치명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애플의 열렬한 추종자임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맥을 추천하지 않는다. “나 그램 살까? 맥북 살까?”라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는 항상 LG 그램을 사라고 답한다. 왜냐면, 내 추천으로 맥북을 산 친구가 “H, 맥북에서 이거 왜 안돼?”라고 연락을 하면 나는 울고 싶어지니까…
오늘도 서두가 길었다. 수다쟁이의 리뷰는 지금 부터다. 오늘은 마음먹고 맥북을 추천해보겠다. 누군가 지금 당장 “나 맥북 써보고 싶은데 뭐 살까?”라고 묻는다면, 눈 질끈 감고 얘를 추천하겠다. 맥북 라인업의 질서를 모두 짓밟고 나타난 아름다운 변종. 12인치 맥북 말이다.
이름도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맥북. 그냥 맥북이다, ‘에어’라는 핑계도 없고, ‘프로’라는 믿음도 없다. 말하는 사람도 헷갈리고 듣는 사람도 헷갈리는 이름.
[이것은 2016년형 맥북]
2015년, 1세대 맥북이 등장했다. 아름답고 혼란했다. 역대 가장 가벼운 무게. 불 꺼진 사과 로고. 익숙하던 것들이 몽땅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근사하고 슬림한 디자인. 무게는 고작 920g이었다. 맥북 에어가 ‘에어’라는 이름을 쓰는 게 머쓱해질 만큼 가벼웠다. 나보다 날씬한 애 앞에서 ‘날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건 민망한 일이겠지. 그렇게 맥북은 맥북 에어가 오랫동안 쌓아온 아성을 뒤흔들며 등장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본래 맥북 에어는 ‘무게도 가볍고, 가격도 가벼운’ 라인업이 아닌가. 새로운 12인치 맥북은 무게만 가벼웠다. 가격은 기존 맥북 프로를 넘볼 만큼 비쌌다. 심지어 CPU는 기존 제품들보다 아래였다. 저전력 모바일용 프로세서인 코어m을 장착하고 나왔다. 맥북에 코어m이 들어갔다는 건 극단적으로 설명하자면, 100만 원짜리 제품에 50만원짜리 기기에 들어갈 만한 CPU를 넣어줬단 뜻이다. 이상하지?
더 이상한 일은 내가 첫 맥북으로 맥북을 선택했다는 것(봐라, 이름을 헷갈리게 지으니 이런 괴상한 문장이 나오고 만다). 2016년, 12인치 맥북의 2세대 모델이 나오자마자 나는 굴복하고 말았다. 로즈골드 컬러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맥북 프로와 12인치 맥북 사이에서 박 터지게 고민했지만, 핑크색 맥북을 가질 수 있다면 성능이고 가격이고 모두 포기할 수 있었다. 199만 원 짜리 코어 m5가 들어간 노트북을 구입했다. 하하. 내가 이렇게 이성적이다.
코어m과의 동거는 생각보다 포근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좋은 제품이었다. “이런 CPU를 가지고 이렇게 잘 굴러가다니 역시 애플의 최적화는 크- 취한다!” 애플뽕을 맞기에 충분한 제품이었다. 취한 나는 맥북을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영상을 배우겠다며 파이널컷 프로X를 구입했고, 4K로 촬영하겠다며 소니의 미러리스 카메라를 두 대나 구입했다. 마구마구 영상 편집을 했다. 가끔 심한 발열로 이상 증세를 보이긴 했지만, 인내심을 가지면 충분히 4K 영상 컷편집까지 가능했다. 자막을 잔뜩 올리면 그때부턴 끓어오르고, 멈추고, 아파한다. 어쨌든 본인이 가진 잠재력에 비해 그 이상의 결과를 보여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애플은 2017년을 맞아 3세대 맥북을 내놨다. 가볍게 터치하듯 곳곳에서 변화가 엿보인다. 먼저, 카비레이크라 불리는 인텔의 최신 7세대 코어 프로세서로 업그레이드됐다. 드라마틱한 차이는 아니다. 다만, 전작보다 조금씩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고 보면 되겠다. SSD 속도가 더 빨라진 게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2017년형 맥북을 뜯어서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학대를 시작해보았다. 파이널컷에서 한 컷에 4개의 4K 영상 클립을 넣어본다. 하드한 작업이다. 사실 인간적으로 얘한테 이런거 시키면 안 된다. 4개의 클립을 동시에 굴리면 맥북 프로에서도 버벅일 때가 있을 정도니까.
3개 클립을 동시에 플레이할 때까진 그럭저럭 돌아간다. 4개를 동시에 보려니 역시 끊김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전작인 2016년형 맥북보단 조금 덜 버벅인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던 발열도 조금 줄어들었다. 파일을 읽어내는 속도는 2015년형과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 빨라졌다.
너무 가볍고 슬림한 전자기기는 배터리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현재 2016년형 맥북과 2016년형 맥북 프로 터치바 모델을 같이 쓰고 있는데, 배터리 효율은 12인치 맥북 쪽이 훨씬 앞선다고 본다. 2017년형 맥북은 배터리 효율이나 배터리 셀 용량이 업그레이드됐다. 한나절 작업하는 수준이라면 굳이 어댑터를 챙겨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얘기(영상 편집 같은 작업을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거추장스러운 어댑터 없이 920g의 산뜻한 휴대성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정도의 배터리 성능이다.
화면은 뭐, 좋다. 좋은데 지금 맥북 프로를 쓰고 있어서 조금 아쉽다. 12인치가 조금 비좁을 수 있다는 건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크기는 가벼움을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스피커는 볼륨은 나쁘지 않은데, 뭐랄까. 좀 플랫하다. 되게 좋고 그렇진 않다. 이 역시 내가 맥북 프로를 써서 더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
이 제품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 중 다들 의외로 불안해하는 요소가 키보드. 제품 바디 자체가 얇은 만큼 키보드의 깊이도 야트막하다. 이번엔 2세대 나비식 메커니즘을 적용했다. 어려운 말이다. 기존과 똑같이 얇게 만들면서도 키보드 하단의 설계를 바꿔 ‘누르는 느낌’을 살렸다는 뜻이다. 반응성이나 손끝에서 탄력 있게 붙는 느낌이 좀 더 좋아졌다. 전작이 탭틱형 가상 키보드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신제품은 얇고 가벼운 막을 톡톡 밀어내며 타이핑하는 느낌이랄까. 대신 타이핑 소리도 그만큼 소란스러워졌다.
처음으로 한/영 키가 각인된 키보드가 적용된 것도 눈에 띈다. Caps lock 키 자리에 생긴 변화다. 나는 그 불편하다는 ‘컨트롤+스페이스’ 한영키에 적응한 사람이기 때문에 배신감이 든다. 하지만 더 이상 맥북을 처음 받아든 이들이 ‘한영 전환은 오또케 하나영 ㅠㅠ’하며 눈물 흘릴 일은 없으니 반가운 변화로 받아들이자. 아, 참고로 한국 원화 표시 키도 추가됐더라.
USB- C 포트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USB-A 포트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얘기는 이제 철 지난 투정이다. 이 제품의 비현실적인 바디라인을 보면 기존 USB 포트가 들어갈 자리도 없다는 걸 납득하게 될 것이다. 다른 브랜드의 제품이나 모바일 기기들도 USB-C로 넘어오고 있는 추세라서 케이블 연결에 대한 불편함도 차차 해소되고 있다. 다만, 포트가 단 하나라는 건 꽤 불편한 일이다. 모바일 장치를 연결하거나 데이터를 이동하는 동시에 전원을 공급할 방법이 희박하다. 맥북 프로는 USB-C 포트가 무려 네 개나 박혀있는데, 여긴 단 하나라니!
불편한 것과 편한 것이 확실한 기기다. 솔직히 정말 가볍다. 맥북 하나만 가방에 넣고 외출하는 날엔 지하철을 타면서 나도 모르게 가방을 툭툭 쳐서 확인한다. 가방이 너무 가벼워서 노트북을 잊고 온게 아닌가 싶어서다.
성능은 당신이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모든 걸 다 할 순 없지만, 많은 걸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더 쾌적하게.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첫 맥북으로 2017년형 맥북을 추천한다. 쉬운 추천은 아니다. 특히나 전작보다 가격을 슬쩍 올린 덕분에, 512GB 모델을 207만 원에 구입해야 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말이다. 맥북 에어도 아직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며, 이 가격이면 터치바 없는 맥북 프로나 4K 아이맥까지 살 수 있다. 가성비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상당히 억울해지는 상황.
최고의 성능은 아니지만 최고의 경험이다. 가볍고, 예쁘고, 경쾌하다. 노트북이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운 경험을 가장 작은 바디에 녹여냈다. 그리고 그걸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제품을 쓰냐고? 이율배반적인 결론이지만 나는 터치바를 탑재한 맥북 프로 13인치 모델을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12인치 맥북보다 훨씬 무겁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업들도 훨씬 무겁다. 가벼운 제품을 동경했건만, 섣불리 터치바에 손을 댄 탓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자, 이제 긴 글의 결론을 내리자. 맥북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이 제품은 가볍고, 아름답고, 생각보다 강력하며, 생각보다 비싸다. 외모에 반했지만 내실이 부족할까 싶어 망설였다면 그냥 나를 믿고 질러도 된다. 그래픽 성능에 의존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면 피하자. 짚신도 제 짝이 있고, 인생살이 낄끼빠빠. 당신의 짝이 맞다면 지금쯤 전두엽을 스치는 지름의 개시를 받았을 것. 가자, 맥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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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