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칵테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글렌이다. 혹시 묵직한 메뉴판을 받아 들고 어떤 걸 주문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적이 있을까? 그런 당신을 위해 케이스별 칵테일 가이드를 준비했다. 약 1n년 간의 칵테일 전공을 살려 추천하고 싶은 칵테일도 몇 가지 꼽아봤다.
#케이스별 칵테일 가이드
CASE 1.
연인과의 데이트 중 방문한 바에서 아는 척 좀 하고 싶은 날엔
<칵테일 주문 공식>

언제 어느 바에서든 칵테일 좀 아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연인에게 그럴싸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칵테일 주문 공식이 있다.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기주, 맛, 도수.
1. 기주
뭐든 기본이 중요한 법. 칵테일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재료를 섞어 만들지만 그 중에서도 기본 바탕이 되는 술이 있다. 이걸 베이스, 기본이 되는 술이라는 의미에서 기주라고 부르고 알콜 도수와 기본적인 풍미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기주는 보통 위스키, 브랜디, 진, 럼, 보드카, 데킬라, 40도 내외의 이 여섯 가지 증류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각각의 대략적인 맛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위스키는 보리나 옥수수 등 곡물로 만들어 구수하고, 오크 숙성을 해 우디한 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위스키 칵테일은 묵직하고 도수가 높은 스타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첫 잔보다는 후반부에 마실 것을 추천한다.
브랜디는 포도를 증류해 만든다. 쉽게 생각해 맥주를 끓이면 위스키, 와인을 끓이면 브랜디다. 위스키처럼 묵직하고 도수가 높지만 조금 더 새콤달콤한 스타일의 칵테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진은 보드카처럼 무색 투명한 술에 허브나 향신료, 레몬과 자몽 같은 시트러스한 과일 풍미를 더한 스타일이다. 진마다 두드러지는 풍미가 달라, 같은 칵테일이라도 어떤 진을 쓰느냐에 따라 맛에 차이가 큰 편이다. 애호가들은 진 만을 따로 마시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그냥 마시기보다는 칵테일 베이스로 많이 활용된다.
럼은 흔히 뱃사람, 해적들의 술로 불린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잭 선장이 늘 마시던 술이 바로 럼이다.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남은 재료로 만들어 거칠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있다.
보드카는 특별한 맛이 없는 무색 투명한 술이다. 그래서 다른 재료의 맛을 가리지 않으면서 도수를 잡아주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데킬라는 선인장의 일종인 용설란을 구워서 만든다. 구운 고구마나 호박 같은 단맛에 허브향이 더해진 듯한 특유의 풍미가 있다.
이 중 일단 하나를 골라보자. 위에서 설명한 내용 중 뭐라도 하나 끌리는 구석이 있다면 그걸로 시작해보자. 그래도 고르기 어렵다면 일반적으로 진이나 럼을 고르면 무난하다.
2. 맛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말 그대로 원하는 맛을 바텐더에게 얘기하면 된다. 부드러우면 좋겠다든지, 톡 쏘는 맛이 있으면 좋겠다든지, 시원하고 상큼했으면 좋겠다든지, 무엇이든 좋다. 좋아하는 과일이 있다면 그걸 얘기해도 좋고. 그래도 조금 있어 보이고 싶다면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비터, 사워, 스윗’
쓴 맛, 신 맛, 단 맛 각각의 강도를 이야기해보는 거다. “새콤달콤한 걸로 주세요.”, “단쓴단쓴한 걸로 주세요.”, “시고 단맛은 적은 드라이한 걸로 주세요.” 이런 식으로 세 가지 맛 각각에 대해 원하는 강도를 이야기하면 내가 바라는 맛의 칵테일에 근접해진다.
3. 도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낮은 도수부터, 취기와 함께 분위기를 확 끌어올릴 수 있는 높은 도수까지. 그리고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원하는 정도도 이야기하면 좋다. 일반적으로는 취기가 오를수록 더 강한 자극과 도수를 원하게 되므로, 초반에는 좀 낮은 도수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자, 이제 기주, 맛, 도수 셋을 통틀어 시뮬레이션 해보자. 나는 보통 첫 잔으로는 탄산이 들어간 칵테일을 마시는 편이다.
“진 베이스에 많이 달지 않고 탄산 들어간 가벼운 스타일로 추천해 주세요.”
두 번째 잔부터는 편하다. 첫 잔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된다.
“첫 잔은 진 베이스였으니까 이번에는 진 말고 다른 걸로 하고 새콤달콤했으면 좋겠어요. 도수는 중간정도로요.”
조금 묵직한 걸 마시고 싶을 때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위스키나 브랜디 베이스에 비터스윗하고 바디감 묵직한 걸로 주세요.”
이렇게 주문한다면 괜히 잘 모르는 메뉴를 붙잡고 씨름하는 것보다, 원하는 칵테일이 나올 확률도 훨씬 높아지고 능숙하게 주문하는 멋진 모습도 뽐낼 수 있을 거다.
CASE 2.
친구들과의 단체 모임으로 방문해 정신없는 와중이라면
<시그니처 칵테일>

여럿이 방문한 경우, 메뉴판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하나씩 주문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지 모른다. 그럴 땐 바마다 한두 개 쯤은 있는 시그니처 칵테일로 시작해보자. 공들여 만드는 메뉴다보니 맛도 비주얼도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게다가 시그니처 메뉴에 걸맞은 자세한 설명은 보너스라, 맛을 충분히 느껴며 마시기도 좋다.

이렇게 두세 잔 정도는 시그니처 메뉴를 시키고 나머지는 위에서 연습한 방법으로 주문을 이어가보자. 실패 없이 칵테일을 시키고 남은 시간은 대화로 채울 여유가 생긴다.
CASE 3.
쓸쓸함과 고독함을 주문하고 싶은 혼술의 날엔
<혼자서 바를 즐기는 세 가지 방법>

혼술 혼밥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바는 혼자 방문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였다. 그러니 바에 혼자 간다고 괜히 겁낼 필요는 없다. 카운터 너머의 전문가, 바텐더가 당신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고 취향에 맞는 칵테일 한 잔을 자연스럽게 추천해 줄 것이다.

그러니 바텐더에게 칵테일 추천을 맡겨도 좋지만 알아두면 더 좋은, 혼자서도 바를 더 잘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
1. 나만의 루틴 만들기
바를 즐기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첫 잔과 마지막 잔으로 매번 동일한 칵테일을 주문하는 루틴이 있으면 메뉴 고민에 대한 부담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 같은 칵테일이라도 바마다, 만드는 바텐더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기 마련인데, 내가 아는 맛을 기준으로 감을 잡아보는 거다. 내 주변에는 첫 잔으로 늘 김렛(Gimlet)이라는 칵테일을 주문하는 친구가 있다.

바마다 조금씩 다른 김렛 맛을 느껴보는 게 그 친구만의 바를 즐기는 방식이다. 이렇게 나만의 최애 칵테일을 찾아본다면 바에 가는 게 익숙하고 즐거운 일이 될 거다.
2. 체이서를 곁들이며 완급 조절하기
혼자일 때 칵테일을 좀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도수가 높은 칵테일과 낮은 칵테일을 번갈아가면서 마시는 걸 추천한다. 이렇게 완급 조절을 하면서 마시면 중간중간 입맛도 리프레시 되고, 너무 센 칵테일로만 달려서 일찍 취해버리는 일도 막을 수 있다. 이때 마시는 도수가 낮은 술을 체이서(Chaser) 라고 한다.
“체이서로 마실 가볍고 상큼한 거 하나 추천해주세요.”

이 말을 바텐더가 듣는다면, ‘아 이분 칵테일 즐기실 줄 아는구나.’ 하고 신나서 다음 잔을 열심히 골라줄 거다.
3. 나이트캡
노래방에서 마지막 곡은 늘 최대한 긴 걸로 튼다. 나오던 노래가 있어도 애석하지만 취소하고 마지막 곡을 시작해야 한다. 바에서의 막 잔도 그만큼이나 소중하다. 바를 나서기 전 마지막 잔은 이렇게 주문해보자.
“이제 막 잔 하려구요. 나이트캡으로 한 잔 추천해주세요.”

수면모자처럼 포근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게 해주는 한 잔을 ‘나이트캡(Nightcap)’이라고 한다. 깔끔하게 털어 넣는 샷도 좋고, 디저트 느낌의 달달한 한 잔도 좋다. 나는 보통 묵직하고 비터스윗한 칵테일을 선호하는 편이다. 마지막 잔까지 취향을 담아보자.
#글렌의 칵테일 추천
칵테일 추천을 부탁하는 지인이 많다. 빅데이터에 기반해 추천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았던 칵테일 5종과 나의 최애 칵테일 1종을 추천해본다.
1. 진피즈 (Gin Fizz)

진에 레몬 주스, 시럽을 첨가하고, 탄산수를 가득 채워 만드는 칵테일이다. 상큼하고 가볍고 청량한 탄산이 매력적이어서 첫 잔으로 추천한다.
탄산음료를 개봉할 때 나는 ‘피식’하는 그 소리를 영어로는 ‘Fizz’라고 한다. 그래서 피즈가 붙은 칵테일에는 탄산이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진피즈는 만드는 입장에서 꽤 까다로운 칵테일이기도 하다. 진, 레몬, 시럽 중에 무엇 하나 튀지 않아야 새콤달콤 조화로운 칵테일이 된다. 또 쉐이킹을 하고 탄산수까지 올려 마무리하는 손이 많이 가는 칵테일이다. 정성이 들어가는 만큼 더욱 가치 있는 한 잔이다.
2. 사이드카 (Sidecar)

브랜디에 오렌지 리큐르, 레몬 주스를 더해 만드는 칵테일이다. 새콤달콤하면서도 브랜디가 주는 묵직함이 있어 맛이 풍부하다.
‘사워(Sour)’라고 하는 종류인데 베이스가 되는 술에 시트러스와 단맛을 더해 새콤달콤 스윗사워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바텐더에 따라 술맛을 강조할 수도, 시트러스를 강조할 수도, 전체적인 밸런스를 강조할 수도 있어 맛의 변주가 제법 복합적인 스타일이다. 사이드카를 여러 바에서 마셔보면서 나만의 취향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3. 아마레또 사워 (Amaretto Sour)

아몬드, 살구씨 같은 견과류 향이 나는 아마레또 리큐르에 레몬 주스, 스타일에 따라 약간의 버번을 첨가하기도 하는 칵테일이다. 위에서 칵테일 기주로 보통 ‘위스키, 브랜디, 진, 럼, 보드카, 데킬라’ 같은 증류주가 많이 쓰인다고 했는데 이 칵테일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아마레또 리큐르가 베이스가 되는 스타일이다.
같은 사워 계열의 사이드카보다 도수가 낮고 좀 더 달콤하다. 이 칵테일을 주문하면 ‘계란 올려드릴까요?’하는 질문을 들을 수 있는데 당황하지 말자. 계란 흰자로 머랭 치듯이 거품을 내어 칵테일 위에 올리는 건데 전혀 비리지 않고 거품이 아주 부드럽고 맛있다.
나는 취미로 칵테일을 직접 만들기도 하는데 이 칵테일은 내 주특기다. 맛도 비주얼도 일품이다.
4. 세컨드 서브 (Second Serve)

이탈리아에서 식전주로 즐기는 허브향이 나는 씁쓸한 맛의 아마로(Amaro) 중 하나인 아마로 몬테네그로에 피노 셰리 와인, 라임 주스, 약간의 시럽과 탄산수를 더해 만드는 칵테일이다.
세컨드 서브는 테니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테니스에서는 서브 기회가 두 번까지 주어지기 때문에 첫 번째 서브(퍼스트 서브)는 보통 강하고 공격적으로 시도한다. 만약 실패하면 두 번째 서브(세컨드 서브)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보다 안전하게 넣는다. 이런 의미처럼 견과류와 시트러스의 조합이 편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주면서도 나름의 킥이 있는 재미있는 칵테일이다.
또 모던 클래식이라고 하는, 클래식 칵테일 레시피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칵테일에 속한다. 모던 클래식 칵테일들은 보통 복합적인 풍미인 경우가 많다. 체이서로 주문해 그 맛을 음미하며 다음 잔을 골라보기 좋다.
5. 맨해튼 (Manhattan)

버번 혹은 라이 위스키에 스윗 베르무트, 비터스를 더하고, 가니쉬로는 매력적인 체리가 곁들여지는 칵테일이다. 버번 위스키가 주는 달큰함과 무게감, 와인에 허브와 향신료를 더해 만든 스윗 베르무트가 주는 화사함, 수많은 향신료를 농축해 만든 비터스로 맛의 복합성을 한층 더한 비터스윗 칵테일의 정석과도 같은 칵테일이다.
칵테일의 여왕이라 불리우며, 그만큼 널리 알려지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칵테일이다. 나는 보통 후반부나 마지막 잔으로 즐긴다.
6. 네그로니 (Negroni)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칵테일을 소개한다. 진에 붉은 색이 매력적인 이탈리아 아마로 캄파리, 그리고 스윗 베르무트를 더해 만드는 칵테일이다. 매년 9월 중순 전 세계의 바에서 이 칵테일의 이름을 딴 ‘네그로니 위크’ 행사가 열린다. 네그로니 한 잔 당 1달러를 기부하는 행사로, 이 기간이 되면 국내의 많은 바에서도 네그로니의 붉은색이 강조된 홍보 포스팅으로 피드가 물든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많은 이들이 즐기는 칵테일이다.
하지만 사실 초심자에게 흔히 권하는 칵테일은 아니다. 캄파리의 쓴맛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칵테일이라며 권했다가 몇 모금 마시고는 내 앞에 잔이 두 개가 된 적도 있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는, 칵테일을 많이 마셔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게 됐다.
그렇지만 칵테일을 좀 마셔본 경험이 있다면, 꼭 한 번은 마셔보길 권한다. 진의 향, 캄파리의 쌉싸름함, 스윗 베르무트의 달콤한 허브감이 공존하는 네그로니는 정말 매력적이다. 잘 만든 네그로니는 비터 사워 스윗의 밸런스가 완벽하다.

내가 칵테일을 좋아하는 이유. 무궁무진한 칵테일의 세계에서 취향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커서다. 어떤 맛에 끌리고, 어떤 향에는 손이 가지 않는지 알게 될수록, 칵테일을 마시는 일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발견해 가는 여정이 된다. 살면서 마음에 꼭 드는 칵테일 한 잔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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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위스키와 칵테일에 대해 글을 쓰는 홈텐더. 술이 달아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