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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ASMR을 잘하는 래퍼, 아우릴고트 인터뷰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려고요.”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려고요.”

2025. 09. 24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꼭 이런 말을 하는 친구가 한 명쯤 있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서 고민이야.” 반대로 이런 친구도 있죠.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야.” 오늘 만나볼 인터뷰이는 확실히 두 번째 타입입니다. ‘래퍼’와 ‘ASMR 유튜버’.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직업으로 소개할 수 있거든요. 아우릴고트의 이름을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아우릴고트는 2020년 정규 1집 《가족애를 품은 시인처럼》으로 데뷔한 래퍼입니다. 2021년 Mnet <쇼미더머니 10>에 출연해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녹여낸 진정성있는 가사와 오토튠을 입힌 듯한 독특한 목소리 톤으로 주목 받았죠. <쇼미더머니 10>을 열심히 본 분들이라면 언뜻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우릴스엠알’이라는 ASMR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유튜버이기도 합니다. “네? 갑자기 ASMR이요? 래퍼라면서요?” 네. 맞습니다. 래퍼이기도 하고, ASMR 유튜버이기도 합니다.

래퍼가 왜 ASMR을 하는 걸까.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직업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하던데,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건 챗GPT에게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우릴고트를 직접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오늘 인터뷰는 오직 저의 개인적인 호기심(과 약간의 사심)으로 인해 성사된 만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그럼 바로 아우릴고트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ASMR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ASMR 유튜버 중에 ‘소이’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 채널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ASMR을 한 적이 있어요. 반응이 되게 좋았죠. 저는 항상 제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나한테 원하는 게 뭘까?’ 고민해 보면서 ASMR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도 예전부터 ASMR을 좋아했고요.

래퍼가 ASMR을 한다는 거에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ASMR 유튜브를 시작할 때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당연히 있었죠. 근데 저는 그런 반응들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전에 음악 스타일이 바뀌던 시기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왜 래퍼가 힙합 안 하고 가요를 하냐” 이런 댓글이 많이 달렸죠. 처음에는 부정적인 피드백들이 신경 쓰였는데, 점점 무뎌졌어요. 오히려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ASMR도 시작하게 됐어요.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어때요?

반반인 것 같아요. 절반은 긍정적이고 절반은 부정적인 반응이에요. ASMR 유튜브를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음악 장르가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저는 데뷔 앨범부터 얼마 전에 나온 4집 앨범까지 아우릴고트님 음악을 계속 듣고 있거든요. 확실히 몇 년 전부터 음악 스타일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랩보다는 노래에 가까워지고, 가사도 좀 더 말랑말랑해졌죠. 스타일이 바뀌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지 궁금해요.

원래 하던 스타일은 정통 힙합이었어요. 저는 힙합을 문화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힙합이 나의 문화, 삶이라고 하기에는 전 아주 평범하게 살아왔거든요. 그냥 그때 많이 듣던 힙합이라는 음악의 한 장르를 이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죠. 전 원래 팝도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힙합보다 팝을 더 많이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음악이 달라진 것 같아요.

새로운 걸 도전하는 데에 있어서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오히려 제가 뭘 하려고 할 때 주변에서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저는 하고 싶은 거 안 하면 더 스트레스 받아서 그냥 욕 먹으면서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ASMR 유튜브 채널명이 바뀌었더라고요. ‘아우릴고트 ASMR’에서 ‘아우릴스엠알’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최근에 앨범을 냈는데 제 이름을 검색하니까 ‘아우릴고트 ASMR’이 더 상단에 뜨더라고요. 뭔가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유튜브 구독자 10만이 되면 채널명을 바꾸려고 했거든요. 그때 바꾸려고 생각해 둔 이름이 ‘아우릴스엠알’이에요. 영어로 하면 ‘아우릴’s MR’, 저의 MR이라는 뜻인데요. MR은 비트만 있는 거잖아요. AR은 제 본업인 음악이고, MR은 부업인 유튜브인 거죠. 이제 이름을 바꿀 때가 됐다 싶어서 그냥 지금 바꿔버렸어요.

처음 촬영했던 영상 어떤 건지 기억하세요?

네. 손 소리 내고 그랬던 것 같아요.

혼자 카메라로 촬영하는 건 어땠어요?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근데 제가 카메라를 잘 못 보거든요. 그래서 영상 보면 제가 화면을 잘 안 봐요.

첫 영상인데도 ASMR을 굉장히 잘하셔서 신기했어요.

아이고. 아닙니다. 근데 제가 컴맹까지는 아닌데 그쪽에 지식이 부족해서 세팅하는 게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아요. OBS 같은 녹화 프로그램 설치하고 그런 거요.

마이크는 어떤 제품 사용하세요?

이게 블루 예티라고…(정적) 네. 블루 예티라고 합니다. 브랜드는 잘 모르겠네요.

이게 ASMR에 최적화된 마이크인 거죠?

네. 이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마이크 같아요. 그리고 ‘3DIO’라고 귀 달린 것도 있고, 마네킹처럼 생긴 것도 있습니다.

유튜브 댓글 창 보면 항상 모든 댓글에 답변을 하시더라고요.

네. 시간 날 때마다 최대한 달아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댓글 있나요?

‘율킴’ 님이라고 계시는데요. 모든 영상마다 댓글에 타임라인을 써 주세요. 그래서 그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제 음악 이야기도 좀 해볼게요.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비트 만드는 게 재밌어서 프로듀서 쪽을 생각했어요. 군대에 있을 때 음악을 시작했는데, 소대 안에 인터넷이 안 되는 컴퓨터가 한 대 있었거든요. 심심해서 거기에 깔려있던 작곡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만들다가 ‘이거 재밌는데?’ 싶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음악은 원래 좋아했어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어릴 때 스타크래프트 프로 리그를 되게 좋아했어요. 거기서 선수 소개할 때랑 오프닝, 엔딩에 음악이 나오는데 그걸 MP3에 다운 받아서 계속 들었어요. 그냥 그 음악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인이 되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요. 원래 웹툰 작가가 꿈이었어요. 만화를 배우다가 애니고 진학에 실패하고 일반 고등학교로 가게 됐어요. 그리고 계속 평범하게 산 것 같아요. 21살까지. 그러다 군대에서 음악을 시작하게 됐죠.

음악하면서 번아웃 온 적 있으세요?

네. 있죠. 아마 2022년쯤인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혼자 무인도에 있는 느낌? 보통 음악하는 사람들은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같이 하거나, 회사가 있거든요. 근데 저는 그때 회사도 없고, 혼자서만 작업을 하다 보니까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누구한테 디스당했네, 노선을 바꿨네 이런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고요. 근데 이제는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해요.

‘이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다. 그냥 한 10년만, 5년만 참아보자.’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결국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걱정도 자기 스스로 만들고, 해답도 자기 안에서 찾고. 그런 것 같아요.

삶의 태도에 대해 영향을 준 사람이 있나요?

예전부터 박재범 형님이 제 롤모델이었어요. 그분은 본인 결과물에 대한 걱정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따라오는 반응에는 신경을 안 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자신의 판단을 믿고 밀어붙이는 거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창작물을 만드는 분들은 그런 태도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결과에 상관없이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는.

맞아요. 예전에는 결과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한창 <쇼미더머니>로 관심을 받고 있을 때 저도 모르게 제가 내는 음악과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더라고요. 근데 그 기대감이 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꼈어요. 반응이 좋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결과에 상관없이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외부의 방해가 있어도 작은 돌 하나 정도는 계속 굴릴 수 있는 힘이 있으면 결과가 좋든 나쁘든 이건 제가 유지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스트레스도 안 받고요.

굉장히 좋은 이야기네요. 저도 최근에 번아웃을 겪어서 그런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보고 계신 독자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어떻게 보면 작게 움직이는 거거든요. 스스로 결과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이 정도만 돼도 난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거니까요. 아, 제가 오랜만에 바깥에 나와서 수다를 떨다 보니까 답변을 너무 길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뻔한 질문이긴 한데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걸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좋아하는 거요. 저는 그걸 a와 b로 나눠서 생각해요. a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본능, 마음이고 반대로 b는 해야 하는 것들, 예를 들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같은 거죠. 보통 잘하는 걸 하면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잖아요. 근데 살면서 a와 b 중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저는 무조건 a를 선택해요. 과정은 훨씬 힘들겠지만 나중에는 결국 b를 선택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가 올 거라고 믿거든요.

만약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요? 생각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잖아요.

노선을 바꾸면 되죠.

만약 ASMR 유튜브가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예전에 ‘고트씨’라고 게임 방송도 했거든요. 근데 구독자가 200명에서 늘지를 않는 거예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게임하는데 멀미도 나고. 생각한 거랑 완전히 다른 거예요. 저는 게임 방송 보는 걸 좋아하니까 하는 것도 재밌을 줄 알았는데 막상 재밌지도 않고. 그래서 그만 뒀어요. 지금은 ASMR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그냥 그렇게 살고 있어요.

좋아하는 게 있으면 하고, 안 맞으면 다시 좋아하는 걸 찾고. 이게 아우릴고트라는 사람을 굴러가게 만드는 시스템인 거네요.

네. 맞아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중심도 없고, 우유부단하다고.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하지 않고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니까요. 근데 사실 크게 보면 좋아하는 일, 이 한 가지를 꾸준히 하고 있는 거죠.

쉴 때는 보통 뭐 해요?

집에서 영화 많이 봐요.

최근에 무슨 영화 봤어요?

저는 봤던 거 또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최근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랑 <브루탈리스트> 재밌게 봤어요.

예술적인 영화 좋아하시나 봐요.

네. 보고 나면 사색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어요. 영화가 끝나도 계속 생각하고 돌아보게 되는 영화들.

그럼 대중적인 영화는 잘 안 보나요?

그런 영화도 재밌긴 한데, 취향은 확실히 이쪽인 것 같아요. 아리 에스터 감독 영화도 좋아해요. <미드소마> 이런 거요. <유전>도 재밌고. 아직 한국에 개봉을 안 했는데 이번에 나온 <에딩턴>을 아직 못 봐서 보고 싶네요.

영화 이야기를 하니까 눈빛이 반짝거리네요. 인생 영화는 뭐예요?

인생 영화… <택시 드라이버>로 하겠습니다.

이유는요?

주인공한테 확 몰입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감정이 공유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인물들의 감정이 잘 느껴지는 영화를 좋아해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 한 곡 추천해 주세요.

Shaboozey의 ‘Highway’ 많이 듣고 있어요. 컨트리 포크 같은 느낌인데, 제가 그런 음악 되게 좋아합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어떤 건지 궁금해요.

새로운 유튜브 콘텐츠로 ASMR 팟캐스트를 시작해보고 싶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초대해서 ASMR로 대화하는 거죠. 예전에는 ‘큰 무대에 서는 스타가 되고 싶다.’ 이런 걸 목표로 세웠는데 이제는 당장 앞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막연한 생각은 실현하기 힘들더라고요. 지금 당장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걸 목표로 세우려고 해요.

목표를 향해 가는 게 보이는 것 같아요. 최근에 게스트를 초대해서 같이 ASMR을 하는 콘텐츠도 팟캐스트 같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내년에는 아예 큰 사무실로 이사해서 방음부스나 작업실을 뒷배경으로 놓고 촬영하려고 해요. 게스트 세 분 정도 초대해서 함께 수다 떠는 그런 그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목표예요. 근데 그러려면 앨범도 더 내야 하고, 거쳐야 할 과정이 있죠.

About Author
김수은

01년생 막내 에디터.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일단 디에디트 입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