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구글 I/O 2025가 지난 20일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렸습니다.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퍼런스지만 우리는 안드로이드부터 메일, 번역, 지도 같은 구글의 수많은 서비스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 이벤트에서 발표되는 내용은 사실상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언어 모델과 생성형 AI를 점점 더 많이 쓰게 되면서 구글의 ‘제미나이(Gemini)’는 개발자부터 일반인들까지 그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올해 구글 I/O의 키노트는 너무나도 흥미로웠습니다. 뭔가 폭발적인 신제품이 있었냐고요? 글쎄요. 아마도 개발자들에게는 AI 관련 서비스를 더 만들기 쉬워졌고, 적은 비용으로 더 강력한 인공지능의 효과를 어디에든 연결할 수 있게 된 듯합니다. 간단한 코딩은 거의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을 테고요.
안드로이드 대신 구글의 플랫폼 중심된 제미나이
안드로이드는 없었냐고요? 네, 안드로이드는 지난해 말부터 일찌감치 16 버전이 프리뷰와 베타 버전 형태로 서서히 업데이트되는 중이고 곧 정식 배포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키노트에서는 가상현실 플랫폼인 안드로이드 XR이 발표됐을 뿐이고 안드로이드 16은 아예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구글의 중심 플랫폼이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인공지능 서비스에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서운할 필요는 없습니다. 안드로이드 16은 구글의 머티리얼 3 디자인 가이드에 따라서 외형이 조금 달라졌고, 알림의 UX도 달라지긴 했지만 이런 변화는 픽셀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런처에 덮일테고, 직접적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경험 변화에 대한 부분도 제조사들의 몫이 될 겁니다. 안드로이드는 이제 기능적인 변화보다 보안과 개발 편의성,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한 접목이 중심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키노트의 핵심을 읽어보도록 할까요.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부분은 구글의 세 가지 프로젝트입니다. 바로 스타라인, 아스트라, 그리고 마리너입니다. 모두 제미나이를 비롯한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서비스의 경험을 바꾸는 아이디어들을 현실화한 것들입니다.
먼저 프로젝트를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를 짚어볼게요. 기술들이 서로 어떻게 맞물려서 가치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는 거예요. 이 서비스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과거 구글이 했던 서비스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쓰인 인공지능의 모델들은 하나하나 훨씬 더 고도화되고, 정밀한 결과를 내겠지만 그와 함께 기술이 아이디어들과 어떻게 맞물려서 성장해 나가는지 살펴보는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접근법입니다.
프로젝트 스타라인, ‘감정 나누는 커뮤니케이션’
스타라인은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바꾸는 프로젝트입니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영상 회의 서비스인 ‘구글 미트(Google Meet)’를 발전시키는 기술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루 아침에 뚝딱 등장한 건 아닙니다. 그 시작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이었습니다. 비대면 소통이 중심이 되던 때였지요. 화상 회의의 편리함 뒤에 거리감과 어색함에 피로가 쌓이던 시기입니다. 감정에 기반한 교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만들을 기술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어졌죠.
구글은 현실감을 중심에 세웠습니다. 실제 크기의 상반신을 다 담을 수 있는 커다란 디스플레이에 3D로 구성한 상대방의 모습을 비추는 겁니다. 이 프로젝트는 2021년 코로나 시기에 비대면 소통이 중심이 되면서 단순한 화면이 아니라 현실을 생동감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시작했어요. 2023년에는 3D 캡처 기술과 인공지능을 통해서 사람을 입체화하고, 이걸 다시 실제화하는 디스플레이로 구성되는 구체적인 그림이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구글 빔’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됩니다. 핵심은 6개 카메라를 통해서 사람을 실시간으로 캡처하고, 인공지능으로 해석해서 게임 캐릭터 같은 3D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실제 제품은 HP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듯해요. HP는 기업들의 음성 회의, 원격 회의 솔루션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구글과 함께하는 건 낯설지만 괜찮은 접근인 듯해요. 이건 아마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 카메라가 6대씩 없어도 인공지능을 통해 한두 개의 카메라로 대체되고, PC나 XR 헤드셋으로 보편적인 서비스가 이뤄질 것 같아요.
화상 회의에 많이 쓰는 구글 미트도 고도화됩니다. 실시간 음성 번역이 더해져요.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면 번역이 되는 건 물론이고, 비슷한 목소리 톤으로 말해줍니다. 기계적으로 말하는 번역이 아니라 감정도 잘 전달합니다. 오랫동안 구글이 해 오던 번역, TTS, 그리고 목소리를 흉내 내는 음성 합성 기술이 복합적으로 합쳐진 기술이에요.
프로젝트 아스트라 ‘인공지능에 눈과 귀를’
프로젝트 아스트라는 이번에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서비스일 겁니다. 인공지능 제미나이에게 눈을 달아주는 거예요. 제미나이에는 키 입력 대신 음성으로 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제미나이 라이브’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가벼운 농담이나 더 깊은 정보들을 알려주기도 해서 심심할 때 말동무로 제법인 서비스입니다. 여기에 카메라를 더해서 보이는 사물에 대한 정보를 보여줍니다. “저기에 가로등이 있었네”라고 말하면 제미나이는 카메라로 사물을 읽어서 “아니에요, 저건 나무예요”라고 말합니다. “이 그림은 누구의 작품이야?”라고 물으면 그에 대한 대답과 배경 설명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 경험이 마치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이뤄집니다. 실제로 써 봐도 쉴 새 없이 말하는 제미나이는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서 떠들어 댑니다. 눈앞에 뭔가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 그걸 세세하게 설명하던 과정이 단축되는 겁니다. 구글은 오랫동안 세상을 인터넷과 연결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미나이 라이브는 스마트폰에 사람의 눈과 귀를 더한 겁니다.
이 역시 하루아침에 툭 튀어나온 기술은 아닙니다. 구글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해석하는 ‘구글 렌즈’를 계속해서 개발해 왔고, 구글 검색과 카메라에 연결했습니다. 사진의 내용을 해석해서 쉽게 검색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구글 포토’, 그리고 이미지 검색까지 그동안의 구글이 세상을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 바라보려고 했던 노력들이 이제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셈입니다.
프로젝트 마리너 ‘너를 이해하고 싶어’
마지막인 프로젝트 마리너는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인공지능입니다. 우리가 구글에 저장해 둔 개인정보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서 적절한 웹 서비스를 찾아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적극적인 형태의 에이전트지요. 예를 들면 임대료와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주고, 집을 살펴볼 수 있도록 약속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이는 구글이 지난 2018년 구글I/O에서 공개한 ‘듀플렉스’를 고도화한 거죠. 당시에는 명령을 내리면 듀플렉스의 인공지능이 직접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면서 상담과 예약을 했는데, 당시에는 너무 충격적인 경험이어서 오히려 논란이 됐었지요. 이제는 이 정도 인공지능의 접근은 거부감보다는 흥미로 다가오는 시기가 된 듯합니다.
지메일에는 이미 짧은 답장을 대신 써 주는 기능이 있는데 프로젝트 마리너는 지난 메일들과 문서의 기록들을 모두 학습해 두었다가 맥락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답을 써 줍니다. 이메일과 내가 주고받은 문서는 사실상 최근의 관심사부터, 해야 할 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상대방의 이메일은 그 자체로 내가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프롬프트죠.
이 프로젝트 마리너는 곧 서비스가 이뤄질 텐데, 구글의 시연을 보면 에이전트 역할이나 이메일 회신의 결과물이 꽤 그럴싸합니다. 사실 따져보면 답이 정해져 있는 이메일에 회신하는 일이나 뭔가를 비교하고, 예약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 중간 과정을 일부만 덜어내 주어도 좋은 일인데, 그 결과까지 잘 나온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빨래를 손으로 해야 하고, 먼지를 빗자루로 쓸어내야 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지요.
구글의 AI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난 몇 년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온전히 오픈AI에 쏠려 있었습니다. 챗GPT가 가져온 변화는 충격적이었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답을 내지도 못한 채 대규모 언어모델이 가져온 마술에 빠져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공지능은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구글은 사실 그 고민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애초 구글은 인공지능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데이터를 더 잘 다루고, 이용자들의 속내를 이해하고, 먼저 움직이는 서비스들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걸 만들어주는 도구이자 과정이 인공지능이었을 뿐입니다.
세상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경계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듀플렉스는 2018년 구글I/O를 충격에 빠뜨릴 만큼 대단한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기술적인 시선 외에 일반인들의 눈에는 ‘감히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하고, 대화를 통해서 조율을 거치는 과정이 거부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구글은 이때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접근 방법이 조금은 달라야 한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그 이후로는 내부적으로 인공지능과 관련된 발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분위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후 구글은 내부적으로 인공지능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고민을 했고, AI가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기본적인 원칙을 세우고 그 선을 넘으면 아무리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도록 합니다. 외부에도 인공지능의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지원 사업도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글의 인공지능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글은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라는 점을 말이지요. 오히려 익숙한 일들 사이에서 크게 티내지 않고 그 기본 경험을 더 끌어 올리는 게 구글의 방향성인 듯합니다.
이번 구글I/O의 접근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구글은 새로운 경험을 소개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서비스들의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익숙한 기술들을 잘 조합하고, 적절히 섞어서 더 좋은 서비스로 발전시키는 것이지요. 구글은 수많은 서비스를 만들고, 또 그 중의 상당수를 과감하게 정리합니다. 때로는 불만스러운 부분이지만 기다리면 언젠가 그 경험이 제대로 준비될 때 다시 찾아오곤 합니다.
다시 돌아온 구글 글래스에 담긴 이야기
그래서 다시 등장한 안경이 반갑습니다. 안드로이드 XR 안경이지요. 안경테에 카메라, 마이크, 스피커, 그리고 투명 디스플레이가 합쳐진 제품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앞서 다룬 프로젝트 아스트라의 제미나이 라이브를 안경 형태의 UX로 녹인 제품입니다.
이걸 보고 ‘구글 글래스’를 떠올리신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구글의 프로젝트 글래스는 안경을 통해서 세상을 검색하고자 하는 오랜 시도를 실제 제품 형태로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애초 카메라를 통한 실시간 검색을 목표에 두고, 배터리와 컴퓨터를 배낭 형태로 만든 프로토타입으로 시작해, 이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해결해 자그마한 안경의 모습을 띄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2013년 당시에는 무단 촬영, 사생활 침해 등의 거부감을 불러오면서 ‘글래스홀(Glasshole)’이라는 민망한 비속어로 조롱을 당하고, 심지어 일부 음식점 등에는 구글 글래스를 쓰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정도로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결과물을 내어줬다면 아마 큰 무리 없이 자리를 잡았겠지만 당시로서는 기술적인 제약도 있었습니다.
결국 구글 글래스는 프로젝트로 멈추었지만 그 이후에도 구글은 이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해당 프로젝트를 맡았던 구글의 비밀 부서 ‘프로젝트 X팀’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글래스 프로젝트는 결코 멈추지 않았고, 언젠가 다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 그리고 이를 완성시키는 인공지능 등 기술들이 마련되고 구글은 잠깐 멈춰 두었던 목표를 명확한 결과물로 다시 꺼내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접근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금 한국형 AI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언급되는데, 왜 인공지능이 필요한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어떤 형태의 AI를 성장시켜야 할지에 대한 목표도 함께 고민이 되어야 할 겁니다.
‘구글은 오픈AI에 뒤처졌고, 인공지능 시대에 뒤따르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지만 구글은 그냥 하던 것들을 계속 이어 왔습니다. 구글은 답을 알고 있었고, 오픈 AI가 놀라움으로 시장의 거부감을 낮추는 사이 꾸준히 고민한 인공지능의 접근 방법이 이제 서서히 빛을 발하는 듯 합니다. 구글은 기술이 결국 사람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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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