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철 음식의 시작과 끝이 여기에, 인시즌

제철 재료에도 틈새시장이 있거든요
제철 재료에도 틈새시장이 있거든요

2025. 06. 11

안녕, 미술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글을 쓰는 객원 에디터 나래다. 첫 인사인만큼 서론이 조금 길다. 좋은 물건이나 공간을 만나면 어떻게 탄생하게 된걸까 항상 궁금했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미대생 시절의 호기심이 누적된 것인지, 나를 표현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서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에디터를 자연스레 꿈꿨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완전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와 쉽게 친해지는 파워 E 성향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랄까.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늘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인터뷰이와는 순수한 팬심과 호기심으로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영업 비밀을 다 가져오고 싶다(?)

서론이 길었지만, 좋은 기회로 하나의 분야에 ‘진심’인 브랜드를 만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됐다. 저장해뒀던 물건을 하나씩 꺼내어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잘 다듬어 내보이려 한다. 시기에 맞는 아이템을 추천할 수 있는 건 덤! 

여름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는 5월의 어느날, 그로서리 브랜드 ‘인시즌(In season)’을 만나고 왔다. 인시즌의 영업 비밀을 가지고 왔다는 뜻이다. 인시즌은 작년 연희동 ‘사러가 마트’ 안에 ‘바이인시즌’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열었는데, 연희동의 랜드마크 ‘사러가 마트’를 안다면, 이 공간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그런데 매장 내부를 슬쩍 보면, 어딘가 익숙할 수도 있다. 실제로 처음 이 공간을 열고 찾아오는 고객들은 ‘어디선가 봤다’는 반응을 자주 전했다고 하더라.

대학생 때인가, 연남동 골목을 걷다 투박한 미닫이 철문과 예쁘게 놓인 과일들이 시선을 끌어 사진을 남겼던 그 가게가 인시즌이었다(과거의 연남동은 지금과 아주 달랐다). 사실은 나도 올해 깨달았다. 그때의 인시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인시즌은 그 이름처럼 적절한 때에 나에게 맞는 제철 기억을 전해주는 곳이다. 자연의 흐름 안에서, 그리고 삶의 흐름 안에서 들려주는 제철에 대한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한다. 인시즌의 영업 비밀이 궁금하다면 놓치지 말고 끝까지 읽어 보자.

김현정 대표

표면적인 해석으로 보자면 ‘제철’이라는 뜻이에요. 지금은 미디어에서 식(食)을 다루는 콘텐츠가 많아지고 작은 식품을 다루는 브랜드도 많아서 자연스레 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이 이름을 쓰기 시작한 건 거의 15년 전인데, 지금처럼 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어요. 흔하게 ‘제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죠. 주로 외국 식문화 잡지에서나 접할 수 있던 단어였어요. 잡지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단어가 적절하다는 걸 깨달았죠. 당시 제가 다녔던 대학원은 브랜딩을 공부하는 과정이었고, 학업의 결과가 이 브랜드를 완성하는 것, 곧 시작하는 거였어요.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명확했어요. 저는 건축을 전공했고 저에게 건축은 순수하게 좋아하는 학문 같은 거예요. 건축을 공부하며 느낀 건 결국은 공간 안에 사람의 삶이라는 거죠. 제가 어떤 공간을 만든다면 그 안의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이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지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았어요. 삶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식주’의 관점에서 보면 시작점은 늘 ‘식’이었어요. 먹는다는 건 나의 의도가 있든 없든 해야 하는 행위잖아요. 

제품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지금이 무엇을 하는 계절인가’를 보여주는 게 그 시작점이에요. 창가에 매번 그 시기에 맞는 문구를 써두거든요. 지금은 지나가는 찰나이지만, ‘봄 싱그런 금귤과 상큼한 피클의 계절’이라는 문구가 있죠. 결국 지금의 계절이 식(食)에 있어서 어떤 순간인지 먼저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은 하귤이 제주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계절이에요. 이 제철 식재료에 대한 궁금증으로 사람들이 공간에 들어오게 되고 이 식료품을 통해서 하귤이 가공되는 방식에 대한 두 번째 단계를 경험하고요. 그리고 한 발짝 더 들어오면 이 재료를 이렇게도 먹을 수 있구나라는 가이드를 제공해 주죠. 이러한 단계로 사람들이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공간을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기묘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큰 마트가 안에 있으니, 우리보다 훨씬 더 다양한 재료를 접할 수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포커싱되어 있는 것에 더 반응하게 되어 있어요. 오히려 마트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접하고 제철에 대해 막연하게 느꼈던 감정을 가지고 저희 가게에 들어서면, 확실한 가이드를 줄 수 있어요. 여기는 식재료 원물도 있지만 그다음 단계가 눈에 보이고, 재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호기심을 줄 수 있어요. 모든 제품은 재료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 재료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어느 곳보다도 좋은 재료가 많이 있는 곳이어서 위치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시너지가 나죠.

선택에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비단 재료 선택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좋다’는 건 감정적이고 순수한 표현이면서도 주관적인 해석이기도 하잖아요. 좋다는 표현보다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좋다든가, 적절하다 등의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농원을 선택하는 저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업을 오래 해 온 만큼 많은 재료를 접했기 때문에 하귤 하나만 봐도 판단할 수 있어요. 결국 저희의 쓰임에 적절한 하귤을 만나는 게 중요하죠. 그 하귤이 보편적으로 좋다거나 퀄리티가 뛰어나기보다는 저희의 가공 방식에 이 하귤이 적절하고 또는 시기적으로 이 농부님하고 잘 맞다거나 하는 식이에요. 농부님들을 늘 봬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와 추구하는 방향이랄지 사람 사이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잖아요. 그런 게 맞는 사람이 존재해요. 누가 만든 것인지가 중요한 거죠.

브랜드로서 제철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농산물이 생산되어 나오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제철이 브랜드의 시작점이고 두 번째는 소비의 제철이에요. 하귤은 지금 시즌에 나오지만, 반드시 지금 먹는 것만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겨울날에도 하귤의 신맛을 먹었을 때 기분 좋은 순간이 존재하거든요. 그러면 이 사람에게는 하귤의 제철이 겨울이 될 수 있어요. 내 삶에서 소비되는 또 다른 제철이 존재하고 그건 결국 개인의 이야기가 돼요. 저희는 생산의 제철을 늘 염려하며 브랜드를 유지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소비의 제철이 존재한다는 점이 저희 브랜드의 핵심이기도 해요. 만약에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안내를 해주고, ‘힌트’를 드릴 수 있는 거죠. 다양한 상황의 제철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인간의 삶은 식문화에 점점 노출되고 있고 저도 모르게 경험을 쌓아왔을 테니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순 없어요. 다만 저는 그 식문화를 체계화하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결과로 만들 수 있는 계기에 놓여 있었어요. 대학원에서 브랜딩을 공부하며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나의 요소는 뭘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브랜드 이야기의 시작점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니 자연스레 충주와 아빠의 고향, 사과 등이 떠오른 거죠. 저의 고향 충주는 사과 농사를 많이 지어서 친척분들은 모두 과수원을 하셨고 아빠의 어릴 적 모든 기억이 있는 그곳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저에게도 각인된 장소성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그 과정에서 제가 가졌던 식문화라는 개념이 정리되었던 것 같네요. 그 바탕으로 인시즌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죠.

식(食)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먹는 행위 뒤에는 늘 만드는 ‘과정’이 존재해요. 이 일을 10년 넘게 이어오면서 중요한 건 ‘기록’이더라고요. 저라는 사람이 살아온 과정이 전부 이 브랜드에 녹아있지만 쉽게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가 30년 동안 과일을 먹어 왔지만, 그것을 이 브랜드의 시작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과거를 모두 기록한다기보다 어느 시점부터 이야기는 계속 쌓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딸기잼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올해의 딸기잼은 더 나은 결과가 되죠. 인시즌 SNS에도 꾸준히 ‘매일의 식사’, ‘매일의 관찰’ 등 매일의 경험 기록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 기록이 쌓여 인쇄물까지 만들게 되었어요. 이 브랜드를 유지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기록한다면 어느 순간에는 우리의 기록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중요한 건 이것을 왜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바이인시즌 공간을 열기 전까지는 온라인에서 제품만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10년 있었어요. 그때는 사람들의 선택 기준을 제품으로 제시했던 거예요. 온라인 판매만 의도했다기보다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고 시간이 필요했어요.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선보인다는 건 제품의 맛으로만 설득하는 게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양한 감각을 건드려야 되는 거예요. 온라인은 판매에 포커싱이 되어 있다면 오프라인은 경험에 더 포커싱이 되어 있죠.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점을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오프라인에서 손님과의 접점이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어요. 어느 시점에서 보면 두 영역의 균형을 이뤄 판매로 이어지고 좋은 시너지를 내게 될 거라 생각해요.

온라인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오프라인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온라인에서 이렇게 팔았다면 이제는 경험으로 설득할 차례에요. 결국 사업의 비즈니스 영역으로 보면 경험 소비로 확장한 거죠. ‘제품’에서 ‘제품의 경험’으로 한 번 더 확장했다고 봐요. 처음에는 일방적인 설명을 했다면, 오프라인에서는 경험을 직접적으로 제안했잖아요. 경험을 통해 설득된 소비자를 다시 온라인으로 끌어들이는 게 더 좋은 효과를 낸다고 봐요. 저희가 모두 가이드해 줄 필요는 없어요. 약간의 ‘힌트’를 드리는 거죠. 오프라인은 사람들의 경험에 약간의 힌트를 더 드리는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제철 재료에도 틈새시장이 진짜 많거든요. 사람들이 모르는 재료가 정말 많아요. 제철의 흐름이라는 게 생각보다 빨라서 이번 봄이 가기 전에 풋마늘을 도전해 보시면 좋겠어요. 지금은 나오는 재료가 워낙 많은 시즌이에요. 봄에서 여름철은 정말 바쁜데 이 틈새에 나오는 풋마늘을 잘 모르세요. 저희는 그 찰나의 풋마늘을 가지고 페스토, 크림치즈, 소스 등 다양한 것들을 만들거든요. 바질 페스토는 흔하게 경험해 보시지만 풋마늘 페스토는 낯설죠. 그런데 한국인 입맛에는 찰싹 붙는 맛의 경험치거든요. 페스토라 하면 보통 파스타라든지 빵에 바른다고 학습해 왔는데, 그걸 깨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심플하게 밥에 풋마늘 페스토를 넣고 계란 후라이 하나만 얹어 드시는 걸 권해드려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한 끼가 돼요.

사실 저는 음식 관련 전공이나 레스토랑에서 일해본 경험은 없어요. 그렇지만 익숙한 경험치가 많지 않다는 것이 갖는 장점이 존재해요. 그런 식문화에 노출된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영화 등의 간접 경험을 통한 노출이 수많은 궁금증으로 이어졌어요. 궁금증은 제가 직접 해보지 않는 이상 경계 지어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어요. 학습된 레시피를 갖고 있지 않으니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것 같아요.

피클은 어떤 재료를 조합할 것이냐의 문제에요. 그 부분이 많은 상상을 요구하거든요. 이 재료와 이 재료가 만나서 진짜 그런 맛이 나올까? 경험해 보지 않았어도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것들도 꽤 많아요. 예를 들면 피클 중에 ‘고구마 레몬 피클’이 있어요. 그건 우리가 쉽사리 상상할 수는 없거든요. 저희는 무수히 많은 재료가 늘 곁에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조합을 많이 상상해 보고 테스트해 보는 거예요. 콘텐츠적으로는 한 100가지의 피클을 한번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하거든요. 결국 100가지의 재료가 아니라 100가지의 조합인 거죠. 제 자신감은 이런 거예요. “그냥 먹어봐. 생각보다 괜찮아. 내가 먹어보니 나쁘지 않아 재미있어”

요즘 새롭게 만드는 제품들도 실은 제 기록 속에 다 있어요. 제 기록은 상업적인 의도를 가지고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3년 전의 저의 기록을 살펴보면 제품화할 수 있는 힌트는 다 거기에 있더라고요. 저희는 과일 소금으로 컴파운드 버터를 만들어요. 그럼 또 다른 맛의 매력이 있거든요. 새로운 생각을 찾는다기보다는 어느 날 소금으로 버터를 만들었던 이런 과정이 기록에 다 녹아 있는 거예요. 그런 기억을 계속 꺼내는 거예요. 제가 해왔던 것 중에 무엇을 꺼내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결국 새로운 건 다 나한테 있는 거더라고요.

브랜드를 더 확장하고 완성해 가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브랜드의 시작점부터의 모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기록이죠. ‘나’라는 사람도 10년 전의 시간 혹은 유년 시절에 엄마와 했던 이야기 등, 이 모든 것들이 잠재의식에서 ‘나’라는 사람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결국 브랜드도 이전의 어떤 시간을 거쳤는지를 놓치지 않는 게 가장 그 브랜드를 브랜드답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스쳐 지나가거든요. 때로는 돌이켜 볼 필요도 있어요. 브랜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시작점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남동 부엌이 굉장히 개인적인 활동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다면 연희동은 그 이야기에서 나온 결과들을 저희만의 팬트리로 다 열어 보였어요. 지금의 첫 매장은 욕심껏 다듬고 있고요. 처음은 이렇게 다 열었지만, 여기에서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가를 다음 단계에서 논의해야죠. 때가 되면 어떤 아이템 또는 이야기일 수 있는 한 가지를 심도 있게 풀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이 브랜드를 유지하고 이 사업의 결과 끝에 무엇이 있냐고 묻는다면 저는 공간이 있다고 말해요. ‘내가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지’도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공간을 만드는 것 역시 이 브랜드의 결과 중에 하나죠. 어떤 공간에서 이러한 삶이 펼쳐질 것인가 까지 고려한다고 이 브랜드를 정의하고 싶어요. 

  • 바이인시즌 스마트스토어 [링크]
  •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23 1층 2호
  • 매일 10:00 –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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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나래

사람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알리고 싶은 사람. 남의 ‘일’ 이야기는 늘 궁금하고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