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형입니다. 한때 미러리스 카메라의 장점이 크기였다는 사실, 기억하시나요? 미러리스 이전에 렌즈 교환형 카메라의 주된 방식이었던 DSLR에 비해 구조가 더 간단해서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요즘 미러리스 카메라를 보면 이러한 장점이 무색해 보일 정도로 다시 커진 모습입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공간을 아낀 만큼 더 많은 기능들, 대표적으로 바디 내장 손떨림 방지나 동영상 촬영 기능을 넣느라 크기가 다시 불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예요. 대표적으로 소니의 a7 1세대와 지금의 4세대를 비교해 봐도 전반적 크기, 특히 두께가 많이 늘어난 것이 눈에 잘 보이죠.
하지만 미러리스 카메라가 이 초심(?)을 유지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써드파티 렌즈로 유명한 시그마가 새로 내놓은 카메라 BF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그마 BF의 바디 기준 크기는 가로 129.5mm, 세로 73.7mm, 두께 35.6mm로, 꽤나 작은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로 꼽히는 소니의 a7CR과 비교해도 부피는 40% 정도 더 작습니다. 너비만 따지면 아이폰 16e보다도 9% 더 작죠. 무게도 388g으로, a7CR보다 42g 정도 더 가볍습니다.
시그마 BF의 디자인은 매우 단순합니다. 앞에는 렌즈 마운트를 해제하는 버튼만 하나만 있을 뿐,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시그마에 따르면 사진 촬영의 역사를 시작한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BF의 바디 전체는 하나의 알루미늄 블록을 5축으로 회전하는 CNC 기계가 7시간 동안 깎아내서 만듭니다. 보통 상판, 하판을 따로 만들어서 조립하는 일반적인 카메라와는 다른 방식이에요. 도리어 애플이 맥북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앞에서 본 사진을 보면 바디에 렌즈 마운트가 겨우 들어가는 크기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예요.
이제 뒤를 볼까요. 평소에 미러리스나 DSLR 카메라를 사용한다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보통의 카메라는 온갖 버튼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지만, 시그마 BF는 커맨드 다이얼 하나와 세 개의 햅틱 버튼이 전부입니다. 시그마에 다르면 BF는 사진 촬영이라는 본질을 목표로 새롭게 설계했다고 말하는데요. 이 인터페이스만으로도 사진 촬영에 필요한 모든 조작을 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커맨드 다이얼 위에는 상태 모니터가 있어 보통은 메인 LCD 파인더에 보일 법한 촬영 정보를 표시하고, 조작부를 통해 사진 촬영의 다양한 요소를 빠르게 조작할 수 있습니다. 메인 LCD에서는 찍으려는 화상 그 자체에만 집중하라는 의미인 것이죠.
빠진 것들은 또 있습니다. 전자식 뷰파인더(EVF)도 없고, 메모리 카드 슬롯 대신 230GB SSD와 USB-C 단자를 통해서만 사진을 외부로 복사할 수 있어요. 시그마에 따르면 JPEG 사진 14,000여 장, 무압축 RAW 사진 4,300여 장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용량입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디자인과 조작법과 다르게 내부는 다소(?) 보편적입니다. 시그마 BF는 2,460만 화소의 풀프레임 센서를 사용합니다. 여기에 위상차와 콘트라스트 방식을 혼용하는 하이브리드 AF 시스템을 채용하였고, 피사체 인식 AF도 지원해요. 비록 사진에 초점을 둔 카메라지만 최대 6K 30fps, 그리고 1080p 120fps의 영상 촬영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미니멀한 디자인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애플이 미러리스 카메라를 만들었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자는 시그마가 BF에서 시도하는 것들이 쓸데없다는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저는 이러한 시도들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그마가 BF를 개발하면서 내린 결정들이 모두 옳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러한 신선한 제품들이 업계를 계속 새롭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요?
시그마 BF는 4월에 출시되며, 바디 컬러는 블랙과 실버 2종입니다. 가격은 바디 기준 1,999달러(약 28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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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