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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16e가 SE라는 이름을 버린 이유

근데 이 가격이 최선인가요 쿡 씨?
근데 이 가격이 최선인가요 쿡 씨?

2025. 02. 20

안녕하세요, 이주형입니다. 애플이 무려 3년 만에 아이폰 SE의 4세대 모델을 출시합니다. 아니, 다시 보니 이름이 SE가 아니네요. 아이폰 16e라는군요.

2016년에 출시된 첫 아이폰 SE

갑자기 왜 이름을 바꿨을까요? 2016년에 처음 출시한 아이폰 SE는 당시 두 세대 이전 모델이던 아이폰 5s의 바디를 재활용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구형 디자인에 당시 최신형 아이폰이었던 아이폰 6s의 프로세서(A9)와 메인 카메라를 조합한 모델로 애플 제품에서는 흔치 않은 가성비를 자랑했죠. 하지만 이후 아이폰 8의 디자인을 지나치게 오래 끌고 가면서 최신 프로세서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닥다리 껍데기로 인해 저가형 아이폰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습니다. 애플은 이번 아이폰 16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이미지 세탁(?)의 효과를 노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아이폰 16e의 레시피는 SE라고 불리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동안 강산이 변한 만큼 좀 더 요즘 아이폰 같아 보이는 모습이에요. 아이폰 16e에는 6.1인치 OLED 디스플레이와 함께 페이스 ID가 탑재됩니다. 페이스 ID가 아이폰 X을 통해 처음 선보인 지 무려 7년 반만이에요. 그 말은 첫 아이폰부터 함께 했던 홈 버튼이 이제야 모든 아이폰 라인업에서 은퇴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죠. 일단 묵념 좀 하고요.

아이폰 16e

6.1인치 디스플레이에는 다이내믹 아일랜드 대신 우리가 ‘노치’라고 부르는 옛날 디자인의 센서 하우징을 사용한 모습도 눈에 띕니다. 물론 차이점도 있는데요, 측면의 무음 모드 스위치는 아이폰 15 프로부터 도입된 동작 버튼으로 변경되었고, 아래에는 라이트닝 단자 대신 USB-C 단자를 장착했습니다. 의아한 부분은 디자인의 기반이 되는 아이폰 14는 물론이고 12부터 탑재했던 맥세이프와 Qi2 무선 충전을 위한 자석이 16e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전 세대 SE에도 없었으니 빠졌다기보다는 추가를 안 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최근 들어 Qi2 표준의 제정으로 대세가 된 무선 충전 규격이 빠진 점이 아쉽긴 합니다. 또한, 아이폰 16 시리즈의 간판 기능 중 하나인 카메라 컨트롤 역시 16e에는 탑재되지 않았어요.

내부 사양으로는 아이폰 16 시리즈에 들어간 A18 프로세서를 채용했는데요. 새로운 CPU 코어는 애플에 따르면 전 세대 SE에 들어간 A15 대비 40% 개선된 성능을 보이고, GPU 성능 역시 40% 성능 개선이 있었어요. 하지만 AI 시대이니만큼 애플 역시 NPU인 뉴럴 엔진의 성능 또한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 성능을 바탕으로 아이폰 16e 역시 4월 초에 한국어 지원이 추가된다면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폰 16e에는 심지어 가장 비싼 16 프로 맥스에도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애플의 자체 설계 셀룰러 모뎀인 C1 칩이에요. 애플은 계속해서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다양한 칩을 자체 개발하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최적화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C1 칩 역시 그 노력의 최신 결과물입니다.

셀룰러 모뎀은 우리가 전화를 하거나, 와이파이 없이 5G 혹은 LTE 네트워크에 연결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칩이에요. 셀룰러 모뎀은 개발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해서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고, 애플도 오랜 기간 퀄컴의 셀룰러 모뎀을 아이폰에 탑재해 왔죠. C1 칩은 애플이 어떻게 보면 스마트폰에서 가장 중요한 칩 중 하나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퀄컴의 것과 비교해 실제 성능은 어떨지 비교해 봐야겠지만요.

셀룰러 모뎀을 자체 개발하면서 얻는 또 다른 이점은 전력 소모인데요. 애플은 C1 칩이 A18 프로세서와 더욱 효율적으로 통신하고 C1 칩의 효율적 공간 설계 덕분에 더 큰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폰 16보다도 더 긴 동영상 재생 기준 26시간의 배터리 수명을 자랑한다고 밝히고 있어요. (아이폰 16은 동일 조건에서 22시간)

(애플이 제공한 아이폰 16e 샘플 사진들)

3년이 흐른 만큼 카메라도 엄청난 발전이 있었습니다. 여태까지의 SE 모델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카메라는 하나지만, 그 카메라 시스템에 4,800만 화소의 센서를 달았습니다. 그 말인즉슨, 가운데 부분을 크롭 하는 방식의 50mm 초점거리(2x) 줌을 지원한다는 뜻이죠. 이 기능만으로도 아이폰 16e의 카메라 사용성이 기존의 SE 대비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아이폰 16e는 기존의 SE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문제는 가격이 상당히 올랐다는 점이에요. 미국에서도 기존 3세대 SE에서 429달러에서 599달러로 올랐지만, 한국에서는 최근의 불안정한 환율의 여파로 65만 원에서 99만 원으로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125만 원부터 시작하는 아이폰 16과는 단 26만 원 차이입니다. 물론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적은 차이는 아니긴 하지만, 아이폰 16은 16e와 비교해 초광각 카메라와 이를 통한 접사 모드, 다이내믹 아일랜드, 카메라 컨트롤, 그리고 Qi2 표준을 지원하는 맥세이프가 추가됩니다. 거기에 위에 언급은 안 했지만 아이폰 16의 A18 프로세서는 16e보다 GPU 코어가 하나 더 많기도 해요.

아이폰 16e는 그 자체로만 본다면 여전히 훌륭한 아이폰이고, 위에 나열한 16에서 추가되는 기능이 필요 없다면 26만 원을 아끼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지일 겁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16과 가격을 비교해 볼 때, 가성비가 썩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무엇보다 아쉬운 건 우리가 아이폰 SE에서 기대했던, “몇 가지 타협만 하면 저렴한 가격에 최신의 성능을 가진 아이폰을 살 수 있다”라는 전제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물론 상위 라인업들의 가격도 야금야금 올랐으니 16e의 가격도 오를 거란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99만 원이라는, 고작 몇 년 전에는 기본형 플래그십 아이폰을 살 수 있던 가격을 받아 들고나니 ‘아 그래서 SE라는 이름을 쓰기가 부끄러웠나’라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뒤늦게 듭니다.

아이폰 16e의 용량 구성은 128/256/512GB, 색상은 블랙과 화이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 16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1차 출시국에 포함되면서 21일 오후 10시부터 사전 예약을 받으며, 출시는 28일에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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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