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책을 출간한 이후로 내 인생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변화 중 하나는 지인들의 기대치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는 거다. 예전에는 “우리 집에 오면 파스타를 만들어줄게.”라고 말하면 대부분 “에이, 뭐 그렇게까지 해? 배달 시켜 먹자.” 같은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피자나 치킨, 떡볶이 같은 메뉴가 기본 옵션이었달까. 책을 낸 이후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다들 “파스타? 무슨 파스타 만들 거야?”라며 두 눈이 반짝인다. 솔직히, 나 이탈리안 셰프가 되는 꿈은 없었는데 말이지.
처음엔 사실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책 한 권 냈다고 갑자기 모든 요리를 척척 해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생긴 거다. 뭔가 색다른 파스타를 선보여야 한다는 기대가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물론 기분 좋은 부담이기도 하지만, 친구를 초대하는 횟수가 늘어날때마다 매번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끔은 머리가 하얘지기도 했다. 그런데 요리를 하다 보니, 이게 은근히 재미있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재료를 조합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 자체가 마치 작은 실험 같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집에 오기로 했는데, 뭘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여름 채소들과 안초비의 조합이 떠올랐다. 요즘 냉장고에 채소가 넘쳐나는 데다, 안초비는 뭐랄까, 요리에 고급스러움을 더해주는 느낌이 있잖아. 안초비를 넣으면 어디선가 “어, 이 사람 요리 좀 할 줄 아네?”라는 칭찬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은 그걸로 정했다. 가벼워보이되 한 입만 먹어도 깊은 풍미를 내는 파스타. 냉장고에 쌓인 채소를 다 쓰고, 친구에게도 “나 이 정도 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랄까. 마카롱 여사님의 요리처럼 간단하게 보이지만(쉽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잘하는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기가막힌 맛을 내는 파스타를 만들어봐야지.
먼저 재료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각 채소들을 어떻게 조리할 것인가 고민했다. 여름 두릅은 특유의 씁쓸한 맛이 있어서 파스타에 독특한 풍미를 더해줄 예정이고, 꽈리고추는 매콤한 맛으로 약간의 스릴을 더해줄 거다. 방울 양배추는 크기는 작지만 그 아삭한 식감이 일품이니까 이 파스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거야. 양파와 마늘? 말할 것도 없지. 이 두 재료가 없으면 파스타의 깊이가 확 떨어진다니까.
고민하던 사이 친구가 도착했다. 냉장고에서 꺼내온 채소 봉지들을 보고 약간 실망한 눈치였지만, 기다려봐. 이건 다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니까. 친구는 거실로 보내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할 시간. 먼저 스파게티 면을 삶기 위해 큰 냄비에 물을 부었다.
- 스파게티 200g
- 신선한 여름 두릅 6줄기 깨끗이 씻어 절단
- 꽈리고추 8개, 깨끗이 씻고 꼭지만 자르기
- 방울 양배추 5개, 반으로 자르기
- 중간 크기 양파 반개, 얇게 채 썰기
- 마늘 6쪽, 편으로 썰기
- 쯔유 1큰술
- 페퍼론치노 소량
-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2큰술
- 안초비 2마리
-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 소금과 후추
면수용 소금은 넉넉하게 넣자. 전분기를 머금은 짭조름한 면수는 이 레시피의 핵심이다. 채소는 어떻게 손질할까. 여름 두릅과 꽈리고추는 식감과 향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끄트머리만 살짝 잘라냈다. 양파는 길게, 마늘은 편으로 썰었다. 방울 양배추는 반으로 잘라두었다. 채소 손질이 끝날때쯤 물이 끓기 시작했다. 양을 가늠하며 스파게티를 쥐었다가, 조금만 더.. 더.. 하며 3인분같은 2인분의 스파게티를 냄비에 넣었다. 정말 2인분만 만들면 너무 정이 없잖아.
조리 방법
1. 면 삶기: 냄비에 물을 충분히 붓고 소금을 1큰술 넣은 뒤 끓는 물에 스파게티면을 넣고 7분 정도 알덴테로 삶는다.
2. 채소 볶기: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약불로 가열한다. 마늘을 넣고 볶다가 볶다가 노릇해지면 양파를 넣어 함께 볶는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안초비, 꽈리고추, 방울 양배추를 추가하고 겉이 노릇해질때까지 볶는다. 매운맛을 좋아한다면 페퍼론치노를 소량 추가한다.
3. 여름 두릅 데치기: 면 삶는 시간이 2분정도 남았을때 여름 두릅을 넣고 데친다.
4. 파스타 완성하기: 채소를 볶은 팬에 여름 두릅을 넣고 가볍게 섞은 후 삶은 스파게티와 면수를 넣어서 잘 섞어준다. 이 과정을 2번 반복한다. 두번째 면수를 넣을때 쯔유 1큰술을 함께 넣는다. 면과 소스가 잘 섞이면 간을 보고 후추와 소금을 추가한다.
5. 서빙: 파스타 팬이 식기 전에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를 취향대로 갈아 넣는다. 가볍게 섞어준 후 그릇에 담는다. 칠리 플레이크가 있다면 톡톡 뿌려서 마무리한다.
약불 위에 팬을 올린다.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뿌린 후 달궈진 스테인리스 팬에 물결이 생기기 시작하면 마늘을 먼저 넣고 천천히 볶아준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항상 마늘이 내뿜는 고소한 향에 취해버리곤 한다. 이 냄새를 맡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편안해진달끼. 마늘이 노릇해지기 시작하면, 양파를 넣어 함께 볶아준다. 양파는 볶을수록 달달해지니까 파스타의 감칠맛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 재료지. 그리고 이쯤에서 안초비의 등장이다. 안초비가 팬에서 녹아들면서 소스에 짭짤한 맛과 감칠맛을 동시에 더해준다. 안초비를 처음 써보는 사람들은 그 특유의 강한 냄새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이만큼 요긴한 재료가 또 없다. 푸른 채소에 매콤한 맛을 더해줄 페퍼론치노도 두개 정도 넣어줬다.
앤쵸비가 흔적도 없이 흩어지면 꽈리고추와 방울 양배추도 팬에 넣는다. 오일에 익어가는 꽈리고추의 향이 부엌에 가득하다. 재료 중 가장 단단한 방울 양배추까지 익힌 후 불을 껐다. 파스타 삶는 시간이 이삼분 가량 남았다. 이때 파스타 냄비에 여름 두릅을 넣고 데친다. 데친 여름 두릅을 꺼내어 팬에 넣고 다시 불을 킨다. 약불에서 미리 팬에 익혀둔 재료들과 여름 두릅을 가볍게 섞어주고 삶은 스파게티와 면수 한 국자를 넣고 면수가 면에 달라 붙도록 섞어주다 수분이 어느정도 사라지면 다시 면수 한 국자와 쯔유를 넣고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에멀전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오일 파스타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과정은 늘 긴장된다.
불을 끄고 나서 열기가 식기 전에 치즈를 넣어야한다. 손가락 두마디 정도 크기의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를 몽땅 갈아 넣고 가볍게 뒤적거리며 섞어서 흔적을 없앴다. 파스타를 그릇에 담은 후 치즈로 마무리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파스타의 핵심은 “간결함”과 “가벼움”이다. 주인공은 푸른 채소이니 묵직한 치즈더미에 파묻힌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팬에 남은 열기로 치즈를 몽땅 녹여주자. 젓가락에 돌돌 말아서 접시에 담아내니 알록달록한 여름 채소들이 누가 보아도 여름의 파스타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딱 30분이 걸렸다. 식탁에 파스타를 내놓고 마주 앉아 친구가 한 입 먹고 나서의 반응을 살폈다. 눈이 반짝이는 걸 보니 오늘 요리는 성공적이라는 확신이 든다. 지금까지 먹은 파스타 중에 가장 맛있단다. 사실 아까 온통 풀밭인 재료들을 보고 파스타를 만드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고. 친구는 네가 책을 낸 이유가 있다며, 관심이 고픈 신인작가를 추켜세워주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다음엔 또 무슨 파스타를 만들어볼까. 벌써부터 다음에 놀러 올 친구를 위해 머릿속으로 새로운 파스타 레시피를 구상해본다. 한편으론 이게 나름 재미있고, 또 한편으론 더 이상 “그냥 대충 만들어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약간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도 뭐, 다들 맛있다고 해주니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요리의 즐거움이란 결국 함께 나누는 데서 오는 거니까. 친구들이 와서 맛있게 먹어주고, 내가 만든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About Author
선요
파스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파스타 책을 썼다. 내일은 무슨 파스타를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