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향수책 <아이 러브 퍼퓸>을 쓴 향수 읽어주는 여자, 조향사 오하니입니다. 내가 ‘나’인 것은 내가 가진 나의 ‘기억’과 ‘감정’ 때문입니다. 저는 기억과 감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향수를 창작하고, 글로써 이야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름 손님, 장마. 하루 종일 비가 내리면서 덥기까지 한 장마철에는 출근길이 더 힘겨워집니다. 사람으로 가득 찬 전철이나 버스 안에 들어서면 알고 싶지도 맡고 싶지도 않은 온갖 냄새들을 맞닥뜨리게 되죠. 비 오는 날에는 유난히 냄새가 많이 난다구요? 맞습니다.
공기 중에 수분이 많으면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답니다. 공기 중에 수분이 많다는 것, 즉 높은 습도를 가진 환경에서는 공기가 물기로 포화 되어있어 냄새 분자가 섞이고 퍼지는 정도가 줄어듭니다. 확산 정도가 준다는 것은 머무는 시간이 길다는 뜻이기 때문에 냄새를 인식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냄새를 더 잘 맡게 된다고 느낍니다. 장마철에는 유독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같은 맡고 싶지 않은 냄새들을 더 잘 맡게 되는 까닭이죠.
장마철의 꿉꿉함을 날려주는 향수 고르는 TIP
1. 상큼한 시트러스나 그린 허브 계열로
짙은 우디, 스파이시 계열, 매혹적인 파우더리 머스크, 바닐라는 장마철에 텁텁하게, 무겁게, 두껍게 느껴질 확률이 크답니다. 상큼한 시트러스, 그린 허브 계열 향수를 선택한다면 꿉꿉한 장마철 공기가 보다 시원하고 상쾌해질 거예요.
2. 여름엔 오 드 투왈렛
지속력이 길어 여름철 땀과 섞일 수 있는 오 드 퍼퓸보다는 지속력이 짧아서 땀과 섞일 일 없이 가볍게 자주 분사하기 좋은 오 트 투왈렛을 추천합니다. 오 드 퍼퓸이어도 베이스노트가 무겁지 않은 향수를 추천해요.
록시땅 버베나
L’Occitane Verbena
- 오 드 투왈렛
- 계열: 시트러스
2003년 출시한 뒤로 전세계인들에게 여름 향수하면 손꼽히는 바로 그 향수, 록시땅 버베나. 탑노트에서 레몬, 오렌지, 버베나 잎 추출물이 풍성한 상큼함으로, 베이스노트로 가면 제라늄이 더해져서 살짝 달달한 향이 피부 위에 남아 인간 레몬 사탕이 되게하는 향수. 이 향수는 마치 샤워를 막 마치고 보송보송한 타올에 몸을 말린 후 빵빵한 에어컨 앞에서 시원한 레몬 소다 마시는 기분을 갖게 해줘요. 장마철 쿰쿰한 수건을 레몬 버베나향 가득한 햇살에 잘 마른 수건으로 바꿔주는 향수. 회사에 두고 점심, 간식, 퇴근 때 틈틈이 입기에도 좋은 향수예요.
에따 리브르 도랑쥬 유 오어 썸원 라이크 유
Etat Libre d’Orange You Or Someone Like You
- 오 드 퍼퓸
- 계열: 그린
민트 향수 러버들의 인생 향수. 분사하자마자 민트가 나만 오길 기다린 댕댕이처럼 활기차고 기쁘게 등장해서 정체된 장마철 두꺼운 공기를 뚫어버려요. 까시스의 츤데레 같은 노트가 더해진 로즈가 살짝 느껴지면서 민트가 초록색 장미로 변신, 잔향은 장미꽃의 초록색 잎과 민트를 피부 위에 으깬듯해요. 마치 모히또 칵테일 다 마신 후의 그 까슬거리는 민트를 살짝 만질 때의 촉감이랄까요. 리조트의 인피니티 풀 바에서 갓 나온 상쾌한 모히또를 마시며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 하자”를 말할 것만 같은 향. 그렇게 유쾌한 여유로움을 온몸에 입혀주는 향수입니다.
아르마니 프리베 베티베 디베
Armani Prive Vétiver d’Hiver
- 오 드 투왈렛
- 계열: 시트러스 우디
장마철 공기 전체를 냉동실에 넣어 얼려버리는 듯한 향수.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자신의 소중한 이들에게 선물하고자 만든 향수 컬렉션인 아르마니 프리베. 베티베 디베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로 나를 둘러싼 공기를 시원 서늘한 겨울 왕국으로 만들어주어요. 하얀 눈이 내려 내 피부에 살포시 앉아 사르르 녹는 그 순간의 재질이 느껴지는 향수. 탑노트의 상큼한 레몬, 미들과 베이스 노트의 산뜻, 보송보송한 베티버의 풀, 흙. 은은한 패츌리, 카다뭄이 함께해요. 시트러스, 그린 계열 향수가 너무 뚜렷해서 날카롭고 강하다 여기는 우디 향수 러버들의 피부 온도, 공기 온도를 낮춰줄 향수입니다.
딥티크 롬브로단로
Diptyque L’Ombre Dans L’Eau
- 오 드 투왈렛
- 계열: 프루티 플로럴
비 오는 날 뿌리는 대표적인 ‘비뿌’ 향수로 1983년 출시된 딥티크 롬브로단로는 니치향수 입문자들의 첫번째 향수로 손꼽힙니다. 롬브로단로 뜻은 ‘물 속의 그림자’입니다. 딥티크 창업자 이브, 데스몬드, 크리스티앙 세 사람의 친구인 디도 머윈이 정원에서 잼을 만들기 위해 블랙커런트를 뽑고, 장미를 뽑으면서 자신의 손을 얼굴에 올렸을 때 향긋하게 나던 블랙커런트와 장미꽃잎의 향에 압도당해 만들게 된 향수로 블랙 커런트 잎의 달콤쌉싸래한 과일의 그린과 불가리아 장미의 뚜렷한 장미향이 꽉 막힌 고속도로를 가르며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당당하게 등장하는 향수입니다. 장마철 꿉꿉함을 블랙커런트와 장미로 잊을 수 있답니다.
About Author
오하니
오하니 조향사, 한국 니치 향수 '히어로즈 오브 코리아' 창업자이자 향수책 ‘아이러브 퍼퓸’의 저자, 유튜브 ‘향수읽어주는 여자, 하니날다’를 운영합니다. 좋은 기억과 감정을 만드는 향수와 향기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