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플리스의 매력을 뒤늦게 안 객원 에디터 조서형이다. 보송보송한 소재는 먼지가 묻고 관리가 힘들 것 같아 피해왔는데, 와! 근데 이게 한번 입어 보니 무겁지 않고, 세탁과 관리가 쉽고, 따뜻하니까 자꾸 손이 가더라. 그러고 보니 예전에 즐겨 입던 무거운 원단의 코트나 후드티를 올해는 한 번도 안 꺼냈더라.
래퍼들을 따라 플렉스가 유행하던 시절을 기억하는지. 캐시미어, 울 같은 고급 소재가 끌고 가던 콰이어트 럭셔리는? 몇 년 전까지 완전 유행이었던 패션의 반대 흐름으로 올해는 현명한 소비와 가성비가 트렌드. 천연 고급 소재를 높은 가격에 사는 대신, 실용적인 합성 소재에 눈을 돌려볼 타이밍이다. 그래놀라코어 유행까지 탔으니 우리 올겨울엔 플리스를 입자. 나의 답을 찾는 기분으로 괜찮은 플리스 열 점을 찾아왔다. 운동이나 야영할 때 입기 좋은 기능성 브랜드부터 출근과 데이트, 여행에서도 입기 좋은 패션 브랜드의 것까지.
플리스가 뭔데?
원래는 양털을 부르는 말이었는데, 요즘 쓰이는 패션 용어로는 기모 처리한 폴리에스터 합성섬유를 말한다. 플리스 원단으로 만든 자켓과 집업 같은 의류를 부르는 말이 되기도 했고. 아니 그거 후리스 아니야? 그것도 맞다. 유니클로에서 1994년 플리스를 출시할 때 쓴 일본식 영어가 알려지면서 자리 잡은 말이다.
양털을 본떠 만든 만큼, 플리스는 공기층을 함유하고 있어 보온성이 우수하다. 물을 머금고 있는 울 소재와 달리 플리스는 합성섬유라서 가볍고 빠르게 마른다. 가방 멘 자리에도 보풀이 일어나는 캐시미어와 달리 세탁기로 막 빨아도 손상이 적지만 건조기까지는 굳이 돌리지 말자. 안 그래도 잘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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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라이트웨이트 신칠라 스냅 티 풀오버
플리스 코디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제품. 1985년에 플리스를 처음으로 상업화한 브랜드와 제품 역시 파타고니아의 이 스냅티 풀오버였으니, 근본 중 근본이라 할 수 있겠다. 신칠라는 부드러운 털을 가진 동물 친칠라의 신테틱(Synthetic, 합성) 버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파타고니아는 지금까지도 리사이클 소재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브랜드이므로 그 만듦새는 믿어도 된다.
촘촘하게 직조해서 바람이 거의 들지 않고 따뜻함은 잘 간직하고 있어서 아우터로서의 기능도 훌륭하다. 40년에 걸쳐 핏과 디자인이 크게 변하지 않고 안정적이다. 언제 다시 꺼내 입어도 유행이 지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집이 작은 여성의 경우 파타고니아 키즈 또는 보이 제품에도 눈을 돌려보자. 더 다양한 색깔과 패턴을 만나볼 수 있다.
아직 플리스 소재 옷을 입어본 경험이 없다면, 또는 올겨울 딱 한 벌의 플리스만 사겠다면, 고민 없이 이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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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클래식 레트로 X 재킷
클래식 레트로 X 재킷은 ‘파일’이라 부르는 털의 길이가 신칠라보다 조금 더 길다. 더 부피감이 느껴지고 더 따뜻하고 더 귀엽다. 아우터처럼 입을 수 있어 활용도도 더 높다. 원래도 재활용 소재 개발에 공을 들이는 파타고니아지만, 이번 시즌에는 오션사이클 인증을 획득한 100% 리프리브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를 새롭게 사용했다. 매년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패턴이 바뀌기 때문에 빈티지를 뒤지는 재미와 수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넉넉한 실루엣과 가슴의 지퍼 포켓 등, ‘플리스’ 하면 떠오르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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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녹스웨어
울 플리스 자켓
아웃도어 장비 잘 만들기로 소문난 헬리녹스에서 올해 런칭한 의류 라인, 헬리녹스웨어. 울이 35% 섞인 플리스 자켓을 만들었다. 바람막이 안감까지 더해져 완성된 보온력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다양한 스타일링과 활동성을 보장하는 투웨이 지퍼와 하이넥 디자인, 자켓 아래의 조임끈이 특징이다.
검정색과 멜란지 그레이 두 가지 컬러가 있다. 아, 얼마 전에 레드벨벳 슬기가 행궁동 산책하며 그레이 컬러를 입었는데 좋아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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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야
알피넘 하프 집 플리스 포멜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오스트리야의 플리스. 부드럽고 유연한 4방향 스트레치 소재 플리스에 관절형 팔꿈치 구조와 래글런 슬리브 등 자유로운 움직임을 돕는 구조로 만들었다. 체온은 유지하면서도 땀은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통기성 좋은 원단이라 겨울 산행이나 러닝 등에 입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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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비전
하프 집 파일 플리스 블루 애로우
캘리포니아의 러닝 브랜드 디스트릭트 비전의 도톰한 플리스. 이탈리아산 하이파일 플리스 원단으로 만들었으며 눈에 띄는 아메리칸 인디언 패턴이 특징이다. 파워 메쉬 라이너로 땀을 더욱 빠르게 흡수하고 배출할 수 있어 한겨울 러닝 시, 레이어링 시스템 가장 바깥에 입는 아우터로 활용하기 좋겠다. 물론 따뜻하고 예쁘니까 평소에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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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모 가든
플리스 자켓
에메모 가든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어도 지하철에서 이들이 만든 가방은 한번 이상 본 적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자주 손이 가는 제품을 만드는 국내 브랜드다. 플리스 소재를 봄버 자켓 실루엣으로 소화한 게 독특하다. 카라를 세워 단추까지 닫으면 동장군에 씩씩하게 맞서는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왼팔 소매에 카드와 립밤 등을 넣을 수 있는 숨은 지퍼 포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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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스큐
투 블럭 요헤미티 플리스 풀 오버
밀리터리, 워크, 스포츠, 캠퍼스 등 역사 속 남성다운 순간들을 복각해 재창조하는 브랜드 더 레스큐의 유니크한 플리스. 마이크로 파이버 소재를 헤어리 공정해 만든 헤비 플리스 원단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신축성이 좋다. 절개와 컬러, 가슴과 양 사이드의 포켓, 로고와 스냅 버튼까지 조화로워 자꾸 꺼내 입게 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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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멘토
플러피 오버사이즈드 하프 넥 풀오버
아모멘토의 플리스는 일본에서 생산한 파일 원단으로 벨벳 같은 고급스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목 근처의 히든 스냅 버튼부터 옷 전체가 같은 톤인 것까지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다. 아웃도어 스타일링보다 핀턱 팬츠에 로퍼나 보트 슈즈 등 구두를 매치하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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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이즈네버댓
플리스 풀오버 플로럴
하프 집업 잘못 입으면 회사에서 나눠준 단체복 같은 분위기가 난다. 한끗으로 촌스러워질 수 있는 제품군도 디스이즈네버댓은 세련되게 입을 수 있도록 만든다. 겨울의 풀밭 같기도 하고, 작업하다가 물감이 묻은 것 같기도 한 이 플리스는 입으면 더 예쁘다. 색상은 총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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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머쉬룸
메도우 플레이크 플리스 아노락
버섯을 비롯한 자연을 테마로 포근한 옷을 만들어온 브랜드 러브머쉬룸의 이번 시즌 플리스.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Grantchester Meadows’가 떠오른다. 눈 조각이 쌓인 겨울 초원의 이미지가 패턴으로 담겼다. 동그란 포켓과 따뜻한 오트밀 컬러가 귀여운 오버핏 제품으로 밑단을 조여 스타일링을 할 수 있다.
올겨울 플리스 입는 방법
워낙에 편하게 입으라고 만든 옷이라 정해진 코디법은 따로 없다. 각자 편한 방법으로 입으면 된다. 평소 입던 사이즈보다 한 치수 크게 편안한 아우터로 활용해도 좋고, 정 사이즈로 코트 안에 포인트 스타일링으로 사용해도 좋다.
플리스 안에는 아무 티셔츠를 입어도 좋다. 목을 감싸는 폴라티나 얇은 후드티를 입으면 보온성도 좋고 레이어드도 자연스럽다. 플리스 위에 아우터를 입을 때는 깔끔한 실루엣을 선택하는 게 좋다. 선이 딱 떨어지는 어두운 색의 롱코트나 디테일이 많지 않은 패딩 베스트 정도.
슬림 또는 스트레이트핏 하의를 선택하는 것이 정석이다. 플리스 자체가 부피감이 있기 때문에 바지는 정돈된 느낌이 낫다. 특히 털이 길고 도톰하며 패턴이 화려한 플리스를 입는 경우에는 곰처럼 부해보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사코슈나 힙색, 크로스백 등 아웃도어 액세서리를 착용할 때도 과하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반면, 아예 플리스에 패러슈트 팬츠나 비니 등을 매치해 아웃도어 느낌을 내기도 한다.

요즘에는 플리스 상의 아래 턱 팬츠를 입고 가죽 백을 든 다음 구두를 신어 드레시한 분위기를 살리는 스타일링도 자주 보인다. 크고 화려한 귀걸이와 안경까지 곁들이면 플리스를 색다르게 소화할 수 있다. 올겨울은 플리스를 다양하게 입어보며 각자의 추구미를 찾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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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GQ 코리아 디지털팀 에디터. 산과 바다에 텐트를 치고 자면 기분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