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 유정이다. 옷 입기 좋은 따뜻한 계절을 목전에 두고 매일같이 핀터레스트를 들락거리고 있다. 특히 내가 눈여겨 보고 있는 건 ‘워크 웨어’ 룩. 오늘은 다가오는 봄에 주목해야 할 유행인 듯 유행 아닌 유행 같은 이 ‘워크 웨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워크 웨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일할 때 입는 옷, 즉 작업복을 뜻한다. 패션 업계에서는 작업복에서 파생된 패션 스타일을 ‘워크 웨어’라 부르는데, 이 스타일이 핫한 트렌드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 하지만 빠르게 끓었다 금방 식어버리는 유행은 아니었다. 최근 공개된 2024년 S/S 시즌과 F/W 시즌 런웨이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풀어낸 워크 웨어룩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쯤 되면 워크 웨어라는 개념 자체가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변치 않는 클래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겠다.
19세기 초 노동 현장에서 시작해 2024년 패션쇼 런웨이에 이르기까지. 워크 웨어가 어떻게 변화를 거쳐 왔고, 왜 유행하게 됐는지, 대표 브랜드 칼하트의 간략한 역사와 아이템까지 다뤄보고자 한다. 일단 ‘워크 웨어가 도대체 뭔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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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 웨어가 뭐예요?
워크 웨어는 19세기 미국의 철도 노동자, 광부 등 육체 노동자들이 즐겨 입는 작업복을 기초로 한다. 노동 현장에서 입는 옷인 만큼 내구성과 실용성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철근 더미를 나르고 연장에 긁혀도 쉽게 해지거나 찢기지 않는 질긴 재질, 몸을 보호해 주는 데님과 같은 튼튼한 소재, 자주 필요한 가벼운 공구는 항상 몸에 지닐 수 있도록 주머니가 많은 디자인 등의 디테일이 특징적이다.
단순히 노동자의 작업복에 불과했던 워크 웨어는 서브 컬쳐와 결합하며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는 당시 스트리트 패션을 주도하던 스케이트 보더들이 워크 웨어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투팍, 비기 등 힙합 씬의 아이코닉한 인물들이 칼하트와 디키즈 같은 브랜드의 옷을 즐겨 입는 모습이 포착되며 ‘워크 웨어 = 힙하다’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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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유행하나요?
오랜 역사를 지닌 워크 웨어가 다시금 트렌드로 부상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가 유행하면서부터다. 락다운으로 재택 근무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실용적이고 편한 옷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특히 미국에서는 실용성의 끝판왕인 워크 웨어가 부흥기를 맞이했다. 켄달 제너, 벨라 하디드 등 유명한 패션 아이콘들도 워크 웨어 룩을 자주 선보였는데, 그 캐주얼하고 자유로운 무드가 한국의 추세와도 맞아 떨어진 덕분에 국내에서도 주목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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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 웨어의 근본, 칼하트
워크 웨어를 이야기하려면 대표적인 브랜드 ‘칼하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889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창립된 칼하트는 철도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섯 명의 직원과 두 대의 재봉틀로 소박하게 문을 열었지만, 약 20년 뒤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샌프란시스코 등 7개 주에 6개의 공장 및 설비 시설을 갖춘 대형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창립자인 해밀턴 칼하트의 노력이 있었다. 해밀턴은 현장 노동자들을 찾아가 어떤 옷을 원하는지 조사하고, 그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작업복을 선보이며 튼튼하고 품질 좋은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졌다.
워크 웨어의 흐름은 칼하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워크 웨어가 ‘패션’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1994년, 칼하트는 ‘칼하트 WIP(Work In Progress)’이라는 새로운 라인을 론칭하며 본격적인 패션 브랜드로서의 출범을 알렸다. 워크 웨어 고유의 감성은 유지하면서, 스트릿 무드와 트렌드를 가미한 패션 브랜드를 선보인 것. 이 시기가 바로 투팍과 비기 등 힙합 아티스트들이 공식 석상에서 워크 웨어 착장을 자주 선보였던 때와 맞물린다. 칼하트 WIP은 헤리티지를 등에 업고 전 세계를 대표하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로 125세가 된 칼하트는 지금까지도 기존의 오리지널 라인과 WIP 라인의 워크 웨어를 함께 발매한다. 노동자를 위한 브랜드에서 출발해 셀러브리티와 일반 대중, 남녀노소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로 명맥을 이어오기까지,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노동자를 중시하는 정신이다.
*참고로 국내에 있는 모든 칼하트 매장은 ‘칼하트 WIP’ 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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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아이템
1889년, 칼하트가 창립 이후 처음 선보인 옷이 바로 ‘빕 오버롤’이다. 흔히 멜빵 바지라고 부르는 오버롤은 칼하트뿐만 아니라 워크 웨어를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손꼽힌다. 특히 칼하트의 빕 오버롤은 설립자 해밀턴이 노동자들과 직접 소통한 끝에 선보인 ‘노동자 맞춤 상품’이기도 하다. 공구나 펜을 담을 수 있는 가슴팍의 큰 주머니, 쉽게 해지지 않는 3중 스티치, 녹슬지 않는 단추 등은 그들의 니즈에 맞춰 설계됐다.
1939년 첫선을 보인 ‘워크 팬츠’에서도 일할 때 최적화된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다. 무릎 보호 패드를 넣을 수 있도록 천을 덧댄 ‘더블 니’와 장비를 넣을 수 있는 측면의 ‘툴 포켓’, ‘해머 루프’가 바로 그것. ‘해머 루프’는 허벅지 옆에 달린 작은 끈인데, 이름처럼 망치를 걸어둘 수 있는 장치다.
또 다른 대표 아이템 중 하나는 ‘초어 코트’. 1917년 발매되어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으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머피가 입은 바로 그 옷이다. ‘덕 캔버스’에 코듀로이 칼라, 커다란 품이 특징. 덕 캔버스는 섬유가 촘촘하게 짜여 일반 코튼 소재보다 단단하고 거친 환경에도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덕분에 처음 입었을 때 어색할 정도로 빳빳할 수 있지만 그만큼 내구성이 좋다. 칼하트 의류에서 두루 사용되는 소재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입은 옷은 1955년 출시된 ‘디트로이트 자켓’. 비슷해 보이지만 초어 코트보다 몸통 기장이 짧아 활동성이 좋고, 단추가 아닌 지퍼가 달려있다. 안주머니 2개와 가슴에 달린 주머니까지 총 5개의 주머니로 수납력을 높였다.
워크 웨어 룩은 기본적으로 미니멀하다. 덕분에 그 자체로 클래식하게 입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핏한 이너와 매치해도, 다양한 악세사리와 레이어드해도 멋스럽게 입을 수 있다. 흰 티에 카고 팬츠, 데님 자켓과 데님 팬츠 셋업, 무채색으로 통일한 이너에 무심하게 걸친 오버핏 워크 자켓. 취향에 따라 시도해 볼 수 있는 스타일은 무궁무진하다.
역사와 전통의 워크 웨어를 원한다면 칼하트, 디키즈, 바버, 리바이스와 같은 대표 브랜드를 눈여겨보자. 물론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와 일반 쇼핑몰에서도 특유의 디테일이 추가된 옷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볍게 워크 웨어 무드를 내고 싶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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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정
98년생 막내 에디터. 디에디트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