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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메모 앱을 추천합니다

소설가 김중혁이 쓰는 메모 앱
소설가 김중혁이 쓰는 메모 앱

2024. 03. 11

메모는 종이에 하면 되지, 앱은 무슨 앱. 이렇게 쓰고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봐야 그럴듯한 메모 어플리케이션 몇 개 소개받는 게 전부일 것이고, ‘결국은 우리 모두 종이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마지막 문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나치게 시니컬해 보이겠지만 진심이다. ‘공수래공수거’ 하듯이 최후의 종이도 분리수거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유레카’를 외치면서 떠올렸던 멋진 아이디어나 기가 막힌 문장들 역시 분리수거될 것이고, 재로 돌아갈 것이다. ‘내 메모의 역사’는 종이에서 시작했다.

1. 메모란 무엇인가?

어렸을 때는 종이에 낙서를 했다. 교과서 귀퉁이의 여백은 중요한 메모지였다. 페이지마다 그림을 그려 하늘로 날아가는 슈퍼맨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적도 있고, 마음의 풍경을 (지금 기억으로는) 심오한 문장으로 적은 적도 있다. 아직도 그때의 메모를 가지고 있지만 다시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요즘 쓰고 있는 글과 비슷할까 봐, 수십 년 동안 하나도 발전하지 않았을까 봐 겁이 난다.

사람들은 수시로 메모를 한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너무나 특별해서, 지금 느끼는 내 감정을 온전히 기록하고 싶어서, 거대한 작품의 시작이 될 만한 씨앗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나의 일상을 캡처해 두고 싶어서, 뭔가 쓰고 싶어서, 그냥 재밌어서 메모를 한다. 어떤 메모는 자라서 걸작이 되었을 것이고, 어떤 노트는 불쏘시개가 됐을 것이고, 어떤 글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집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낙서를 시작했고, 대학 때 처음으로 소설을 썼고, 서른 살 때 소설가가 되어 쉰 살이 넘었다. 나의 메모 생존율은 얼마나 될까? 메모해 놓은 단상이나 아이디어가 살아남아 출판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식당의 적정 원가율은 30퍼센트에서 35퍼센트인데, 내 메모의 생존율은 10퍼센트 미만인 것 같다. 90퍼센트에 가까운 메모가 조용히 사라진다. 오래된 메모를 볼 때마다, ‘이런 건 대체 왜 적어놓았을까’ 싶다.

메모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메모는 부스러기이고, 먼지이며, 곧 증발하고 마는 물방울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런 조각들을 모아 큰 그림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게 훨씬 많다. 낭비가 아니다. 생존율 10퍼센트 미만이지만, 때로는 버려지기 위해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 소진되는 운명의 메모도 있게 마련이다. 머릿속으로는 엄청나게 멋진 아이디어 같지만 종이 위에 써보면 초라한 경우가 많다. 반대도 있다. 머릿속으로는 추상적이었는데 메모를 해놓고 보니 정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기록하는 동물이고, 기록을 통해서 우리가 누군지 알아나가는 존재들이다.

김중혁

어서 오세요. 노트 앱 보러 오셨어요? 어디까지 생각하고 오셨어요? <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 쓰실 건 아니죠? 아, 그런 앱은 별실에 따로 있거든요. 일단 메모 초보자하고 숙련자하고는 쓰는 챔이 다르거든요. 일단 무슨 메모를 하고 싶은데요? 버스 타고 가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나 짤막한 ‘펀치라인’ 같은 건 ‘네이버 메모장’이 제일 나아요. 아니면 그냥 ‘나한테 문자 보내기’ 기능을 쓰든가요. 아이폰 ‘기본 메모 앱’도 좋아요. 그런 건 기본 앱이니까 추가로 돈 쓸 일도 없죠. PDF도 넣을 수 있고, 문서 스캔도 잘 되고, 손글씨도 넣을 수 있고, 태그로 정리하기도 깔끔하고 좋아요. 아주 ‘무나나나나안’하죠. 아, 폰트나 스타일 바꾸고 그런 건 당연히 쉽지 않죠.

약간 폼나는 거 좋아하시는구나? 요즘 대세 앱 몇 개 소개해 드려요? 글 좀 쓰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죠. 글은 폼이 절반이잖아요. 여기 애플용 글쓰기 앱만 파는 건 알고 오셨죠?

‘노션(Notion)’이라고 들어봤어요? 제가 아는 소설가 김중혁 씨는 노션을 한 3년 썼대요. 그 사람 트렌디한 거 좋아하는 병이 있어서 남들 안 쓰는 앱 쓰는 거 진짜 좋아해요. 노션 초기부터 사용했는데 소설 원고, 동영상 파일, 영화 리뷰, 별점, 독서 노트 다 정리해 뒀는데, 어느날 갑자기 노션이 너무 느려진 거예요. 이게 데이터를 전부 서버에다 놓아두고 쓰는 거니까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던 어느날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 결정적인 문제점을 깨달았어요.

“노션의 핵심은 공유 기능인데, 나는 공유할 사람이 없구나.”

그러고는 울었다나… 하하하, 혼자 작업하는 게 힘들긴 한가 봐요. 회사에서는 공유할 문서도 많고 의견 조율도 자주 해야 하니까 노션이 요긴하지만, 소설가의 글 정리하는 데는 노션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그 사람 어디로 옮겨 탄 줄 알아요? ‘옵시디언이’라고 들어봤어요?

옵시디언은 제텔카스텐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노트 앱인데 비주얼이 되게 멋지거든요. 가지고 있는 모든 메모를 비주얼로 보여주는데, 와… 제가 봐도 멋지긴 해요. 서버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서 좋은 점도 있고, 사람들이 개발해 놓은 플러그인도 많고, 마크다운 포맷을 사용하는 것도 좋죠. 아, 제텔카스텐은 뭐고, 마크다운은 뭐냐고요? 에이, 손님 그러면 이거 쓰세요. 간단하고 좋은 거 소개해 드릴게요.

‘에버노트’는 들어보셨죠? 코끼리 그림 아이콘 안 봤어요? 이게 디자인은 구려도 사용하긴 편해요. 메모 정리하기도 편하고요. 아 ‘데이원 (Dayone)’? 일기 앱인데 하루하루 기록하기에는 그것도 좋아요.

진짜 간단한 거 원하시면 ‘ia writer’라고 이것도 괜찮고, 요새는 또 ‘크래프트(Craft)’도 괜찮긴 한데… 아니면 이건 어때요? ‘율리시즈’라고, 이거 진짜 좋아요. 폴더형으로 글 정리하기도 좋고, 폰트도 자유자재로 바꿀 수도 있고, 다양한 스타일로 바꿀 수도 있고, 뭐니 뭐니 해도 이름이 멋지잖아요.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이 앱으로 썼잖아요.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죠. 제임스 조이스가 요즘 살았다면 이걸로 썼을 거예요.

그런데 솔직히 맥으로 글 쓰실 거면 ‘페이지스(Pages)’도 좋아요. 애플은 기본 앱이 진리라는 말도 있잖아요. 아이폰에서 아이패드로 또 맥북으로 이어 쓰기도 편하고, 스마트 주석이나 도형 작업 같은 작업도 간단해요. 아니, 손님, 그러니까, 진작에 말씀 하셨어야죠. 메모를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글을 쓰고 싶은 거예요? 두 개는 완전히 다르죠. 메모는 생각의 조각조각을 기록하는 거고, 글쓰기는 그 조각들을 하나의 글로 이어 붙이는 거잖아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스크리브너(Scrivener)’ 소개해 드릴게요.


3. 스크리브너에 정착한 소설가

돌고 돌아 다시 여기에 왔다. 스크리브너를 처음으로 사용한 건 십 년도 넘었다. 스크리브너는 무엇보다 복잡하다. 수백 가지가 넘는 기능을 모두 파악하려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한때는 스크리브너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가벼운 앱을 많이 사용했다. ‘율리시즈’는 너무나 좋은 글쓰기 프로그램이고, ‘노션’ 역시 훌륭한 노트 정리 앱이지만 무언가 아쉽게 느껴졌다.

글을 쓰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텍스트 파일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영화 한 편은 1기가바이트가 넘고, 고음질 음악 파일은 40메가바이트가 넘고, 그림 파일은 10메가바이트가 기본인데, 텍스트 파일은 원고지 1,200매 분량이 고작 573킬로바이트다. 1메가바이트가 안 되는 크기다. 가뜩이나 예술의 도구도 평범한 편인데, (묵직한 피아노? 온갖 색의 물감? 카메라? 우린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파일의 크기도 작다는 게 억울한 느낌이 든다. 글쓰기가 그 어떤 예술보다 묵직한 작업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리면 좋을까 오랫동안 고민했고, 파일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을 고안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글을 쓸 때 수집한 모든 자료를 스크리브너에 넣어보았다. 파일의 크기가 커졌다. 소설 한 편의 크기가 200메가바이트보다 커졌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온갖 재료들이 뒤섞여야 한다. 1년 전에 보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5년 전에 후배가 내게 한 말, 어제 만난 사람의 옷 스타일, 그저께 영화에서 본 대사가 뒤섞여서 오늘의 글이 탄생한다. 모든 글은 삶의 메모로부터 출발하고, 메모에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게 따로 없다. 나중에 어떤 메모가 중요해질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모으고, 외우고, 적고, 정리하고, 쓰고, 녹음하고, 찍어서 삶을 보관한다. 우리 삶이 예술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단 하나의 파일에 내가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을 정리해 두었다. 파일의 이름은 kimjunghyuk.scriv이고 크기는 2.47기가바이트다.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이 파일 하나만 지우면 된다.

4.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메모 앱

메모 앱 추천

메모 도구로 종이와 연필을 추천하고 싶다. 머릿속에 어마어마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더라도 천천히 연필을 깎는 걸로 시작하면 좋겠다. 연필을 깎다가 아이디어가 사라지면 어떡하냐고? 중요한 아이디어는 다시 찾아오게 돼 있다. 아이디어와 밀당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연필이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적어본다. 그 어떤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할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공유 기능은 약하지만, 검색 기능이나 맞춤법 기능도 작동하지 않지만 종이 위에 뭔가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새로운 생각을 시작한다.

핸드폰의 자판을 두드리지 말고, 손가락을 이용해 연필을 쥐고 자음과 모음을 써보자. 그림도 그려보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쓸 필요도 없고, 위에서 아래로 쓸 필요도 없다. 종이는 우주와 같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생기더라도, Chat GPT의 도움을 받으면서 글을 쓰게 되더라도, 결국은 우리 모두 종이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메모 앱을 소개하는 자리에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메모는 종이에 하면 되지, 앱은 무슨 앱.

About Author
김중혁

소설가. Pages, Obsidian, Ulysses, Scrivener 어플을 사용하고 Nuphy 키보드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