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달에 한 번 테크 신상을 소개하는 ‘쿠도군’ 이주형입니다. 사실 이번 달 가장 화제가 된 신제품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S24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S24에 대해서는 에디터B가 직접 발표 현장(미국 산호세)에 다녀 와 쓴 기사가 있으니, 여기에서 굳이 다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CES 2024에서 발표된 흥미로운 제품들, 그리고 살짝 정신줄을 놓은 것 같은(?) 아이템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CES는 원래 그런 제품을 보는 재미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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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대체하겠다는 포부
래빗 R1
지난 테크 신상 기사에서 스마트폰을 대체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지닌 휴메인 AI 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썼는데, 연초부터 또 다른 인공지능 기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래빗의 R1입니다.
하드웨어는 심플합니다. 2.88인치짜리 화면(첫 아이폰의 화면 크기가 3.5인치였습니다) 오른쪽에 회전이 가능한 카메라와 조그 휠이 달려있습니다. 기기 우측에는 음성 명령을 내릴 때 쓰는 버튼이 있습니다. 일단 화면이 있다는 것 자체가 휴메인 AI 핀과 큰 차이점이죠?
R1의 소프트웨어 또한 휴메인 AI 핀이 지향하는 바와 다소 다릅니다. AI 핀이 LLM, 즉 대형 언어 모델을 활용했다면, R1은 ‘LAM’, 즉 대형 행동 모델(Large Action Model)을 활용합니다. 사실, LAM은 래빗 측에서 만든 단어인데, 언어를 기반으로 훈련시킨 LLM과 다르게, 행동으로 훈련을 시켰다는 뜻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다양한 앱에서 하는 행동들을 학습해서 간단한 음성 명령만으로 그 행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죠. 래빗에서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필요한 작업을 위해 각각의 다른 용도의 앱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LAM을 개발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래빗에게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래빗은 이미 배달 앱의 구조를 LAM에 학습시켜 놓았고, 사용자가 음성으로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를 시켜줘”라고 하면 LAM을 통해 학습한 R1이 알아서 그 앱을 조작하여 빅맥을 주문시켜 준다는 뜻입니다. 이미 래빗은 우버나 스포티파이 등 (특정 국가들 한정으로) 사람들이 많이 쓰는 앱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LAM을 학습시켜 놓았지만, 기본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서비스들은 사용자가 직접 학습을 시킬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래빗이 주장하는 LAM의 장점은 확실합니다. LLM에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착각하는 환각 현상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데, 이것 때문에 AI 핀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죠. LAM은 많이 사용하는 앱의 UX를 기반으로 훈련시켰기 때문에 LLM보다 자유도는 떨어져도 사용자가 원하는 의도에 적중하는 것은 쉽습니다.
다만 래빗 또한 자신들의 비전을 R1에서 완성하지 못했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래빗 R1의 하드웨어(3년 전에 나온 저가형 스마트폰용 미디어텍 프로세서로 추정됩니다)를 봤을 때 스마트폰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운 기기로 보이고, 래빗의 발표에서도 ‘스마트폰과 같이 쓰는 기기’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외의 내용에서는 다양한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냐고 얘기하면서 스마트폰이 하는 일 중 최소 일부를 대체하려고 하고 있죠. 거기에 R1에는 심카드 슬롯도 장착돼 있어서 LTE망에 연결하여 자체적으로 사용도 가능합니다. 현재로서는 기술의 한계로 LAM 명령 처리를 서버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나중에는 기기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래빗의 진짜 비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래빗은 R1을 199달러(약 27만 원)에 내놓았고, 이미 1만 대 정도의 초도물량이 완판되어 봄에 배송되는 2차 물량의 예약 판매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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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여행용 충전기
네이티브 유니온 보이지
올해는 치2(Qi2) 관련 액세서리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애플이 맥세이프 기반 기술을 제공해 완성된 치2는 맥세이프가 가진 장점은 그대로 가져오면서, 맥세이프 인증을 위해 애플에게 내야 하는 라이센스 비용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액세서리 제조사들이 앞다투어 내놓고 있는데요.
다양한 치2 액세서리 중 제 눈길을 끈 제품이 하나 있으니, 바로 네이티브 유니온(Native Union) 치2 충전기인 ‘보이지(Voyage)’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행용 충전기로, 접힌 충전기를 펼치면 무선충전패드와 애플 워치 충전 패드가 등장합니다. 아이폰과 애플 워치, 그리고 에어팟까지 모두 충전이 가능한 셈입니다. 특히, 애플 워치 케이블로도 충전이 가능한 2세대 에어팟 프로는 양쪽 모두 충전이 가능합니다.
보이지의 전반적 구조는 사실 애플이 작년에 조용히 단종시킨 맥세이프 듀오와 비슷하지만, 보이지 쪽이 훨씬 더 작고, USB-C 포트가 달려있기 때문에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맥세이프 듀오보다 디자인이 더 고급스럽습니다. 아직 네이티브 유니온 측에서 가격을 발표하지는 않았고, 올해 중으로 출시할 예정이라고만 밝혔습니다. 일단 저도 줄을 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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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박스 시리즈 S로 빵을 구워봅시다
엑스박스 시리즈 S 토스터
엑스박스 시리즈 S 모양의 토스터가 등장했습니다. 무려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판매하는 제품입니다.
생긴 건 정말로 엑스박스 시리즈 S와 닮았습니다. 특히 옆에 실제 콘솔의 열 배출구 모양을 그대로 본뜬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토스터로서의 기능에도 충실한데요, 무려 6단계의 굽기 단계를 지정할 수 있고, 베이글 전용 모드와 해동 모드도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빵가루 받침대도 구비하여 청소가 용이합니다. 빵을 구우면 ‘엑스박스 로고’가 그려지는 것도 재미있는 디테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 모양의 주방 가전을 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9년에 상위 기종인 엑스박스 시리즈 X를 공개했을 때 냉장고와 비슷하게 생겼다며 놀림거리(?)가 됐습니다. 그러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실제로 엑스박스 시리즈 X 모양의 미니 냉장고를 만들어 판매해버린 것이죠. 그러니 시리즈 S 토스터는 이 냉장고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 S 토스터는 미국 월마트에서 판매되며, 가격은 40달러(약 5만 3,0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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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트북 화면, AR 안경으로 대체되었다
스페이스톱
노트북 화면이 작아서 밖에서 작업하기에 불편한 적 없었나요? 사실 이 기사를 아이패드 미니로 쓰고 있는 저는 크게 공감할 수 없지만, 많은 분들이 불편을 느낄 겁니다. 실제로 메타 퀘스트 3나 곧 출시를 앞두고 있는 애플 비전 프로 모두 가상 데스크톱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 걸 보면요.
CES 2024에서 한 스타트업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스페이스톱(Spacetop)’이라는 제품을 통해서인데, 공간이라는 뜻의 space와 노트북을 뜻하는 laptop을 합친 단어인 것이 보입니다. 즉, 보는 공간을 훨씬 넓히는 제품이라는 뜻이겠죠? 그런데 이 노트북의 모습이 좀 특이합니다. 모니터가 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옆에는 AR 안경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노트북의 모니터를 AR 안경으로 대체해 버린 것입니다.
스페이스톱을 만든 사이트풀(Sightful)의 설명에 따르면, 스페이스톱의 AR 안경은 일반적인 모니터로 환산하면 최대 100인치 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쓰는 모니터가 20인치대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크기죠. 이 큰 면적에 창을 여러 개 띄우면 엄청난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사이트풀의 주장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 같지만, 몇 가지 문제가 보이긴 합니다. 일단, 노트북의 기반이 윈도우가 아닌 안드로이드라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삼성 DeX 등을 통해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은 생산성에서는 뒤처진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안경을 체험해 본 타 매체 기자에 따르면, 시야각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걸 사느니 기능도 더 많고 기존의 노트북도 활용할 수 있는 메타 퀘스트 3를 사라”라고 추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트북에서 화면을 없애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합니다. 역시 CES에서 나올 법한 제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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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k 디스플레이를 입은 스마트 변기
누미 2.0
전자 잉크는 매년 CES에서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작년에는 BMW가 외장을 전자 잉크로 감싸서 색을 바꿀 수 있는 콘셉트카를 선보이기도 했었는데요. 올해는 미국의 가전업체 콜러가 총대(?)를 멨습니다.
변기에 전자 잉크를 덧댔습니다. 작년에 공개된 누미 2.0(Numi 2.0) 스마트 변기의 외부 패널을 전자 잉크로 바꾼 것입니다. 다양한 색과 패턴을 설정할 수 있다는데, 이게 솔직히 변기에 무슨 기능을 더해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방수가 제대로 안 돼서 물이 튀면 패널이 망가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네요.
사실 누미 2.0 변기도 많은 기술이 들어간 변기입니다. 기본적인 비데 기능은 물론이고, 동작을 인식하여 자동으로 변기 뚜껑이 열리고 닫히는 기능, 자외선으로 변기 소독, 온도 조절 기능. 거기에 어두운 화장실을 밝히는 측면 LED와 앱을 통해 사용자별로 설정을 개인화할 수 있고, 아마존의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와 같은 음성 어시스턴트로 조작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헤이 구글! 변기 물 내려줘!) 가격도 콜러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8,625달러로 지금 환율로는 거의 1,200만 원에 달하는 만만찮은 가격입니다. 당장은 콘셉트 모델이라고 하나, 누미 2.0에 추가로 더할 수 있는 옵션으로 추후 제공 예정이라고 합니다. 추가 금액이 얼마 정도 될까요? 한 2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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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백수가 되었지만, 백수가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에디터이자 팟캐스터. IT가 메인이지만 관심가는 게 너무 많아서 탈이 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