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향수책 <아이 러브 퍼퓸>를 쓴 향수 읽어주는 여자, 조향사 오하니입니다. 내가 ‘나’인 것은 내가 가진 나의 ‘기억’과 ‘감정’ 때문입니다. 저는 기억과 감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향수를 창작하고, 글로써 이야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유독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이 우디 향수를 찾습니다. 그런데 ‘우디 향’이란 어떤 향을 말하는 걸까요?
옥스포드 영한사전에 따르면 우디(woody)는 ‘나무 같은, 나무가 우거진, 나무 냄새 같은 게 나는’이라고 나와있어요. 그러니까 우디 향수는 ‘나무 같은 향수’가 되는 셈인 거죠. BBC에 따르면 전 세계에 6만여 종의 나무가 있다고 하니 나무 같은 향, 나무가 우거진 향을 ‘단 하나’로 규정한다는 건 사실 어렵지 않을까요.
우디 향수의 이미지:
“카리스마 있고 믿음직스러운 느낌”
우디 향은 따스하고, 두껍고, 무겁고, 확실한 존재감을 가졌습니다. 자연에 가까운 향이지만 때로는 인위적인 정갈한 느낌도 있고, 차분하고 세련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존재감이 강해서 프레젠테이션, 계약서 작성, 중요한 의사 결정을 앞둔 사람들이 즐겨입는 향수이기도 하고요. 자신감 넘치고 카리스마 있으며 믿음직스러운 인상을 주거든요. 예전에는 우디한 향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성별 상관없이 즐겨 뿌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절간향’, ‘인센스 향’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죠.
최근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원래 우디 향수는 강하게 느껴져서 별로였는데 취향이 달라졌는지 요즘엔 자주 찾게 돼.” 당연히 취향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한 패션 브랜드에서 조향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포근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이사님은 제게 우디 향을 좋아한다고 말하더라고요. 몇 번의 미팅 뒤에 제가 깨달은 건, 그 분이 말하는 우디는 기존의 향수업계에서 말하는 우디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거였어요. 소나무, 편백나무, 잣나무 등에서 만나게 되는 솔향이 나는 상쾌한 피톤치드의 향을 우디로 여긴다는 것을요. 향수 업계에서 우디 향수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향수들을 몇 개 시향했는데 너무 강하고 인위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각자 생각하는 우디가 달라서 놀라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게 맞는 우디 향수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우디 향수 탐방을 시작해볼게요.
우디 입문자를 위한 향수 5종
우디 계열 대표 노트별 향수
17종 완전정복
메뉴를 고를 때 분식, 한식, 중식, 이탈리안 등 카테고리별로 접근하죠. 시트러스, 플로럴, 우디 등 여러 향수 계열 중에서 우디를 골랐다면 이제는 마치 중식 안에서 짜장면 맛집, 짬뽕 맛집을 찾아내듯 우디 맛집을 찾을 시간입니다. 샌달우드, 시더우드, 오우드 등 노트별로 추천 향수를 골라봤어요.
샌달우드(sandalwood), 시더우드(cedarwood)
샌달우드는 짙은 갈색, 고동빛의 나무 기둥을 깊이있게 만나는 동시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매끈한 물성을 사르륵 느끼게 하는 향입니다. 30년 이상 된 산탈럼 알붐(Santalum Album) 나무에서 추출해내는 원료로 인류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사랑해온 향입니다. 시더우드에는 샌달우드보다 거친, 직선이 치고 나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우드/오드(oud)
제게는 짙고 푸른 청록색을 떠올리게 하는 오우드. 바다에 앰버그리스(용연향)이 있다면 오우드는 육지에서 나는 가장 값비싼 원료입니다. 아가우드 나무에서 추출하며 역사적으로 중동 아랍권에서 큰 사랑을 받는 향수입니다. 따스하면서도 차가운, 클래식하면서 모던한, 두꺼우면서도 얇은 그 어려운 걸 해내는 향입니다.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더하면 맛이 깊어지듯 오우드에게 그런 존재가 있으니 바로 로즈입니다. 중국에서 조향 의뢰를 받아 오우드 향수를 조향할 때 오우드와 로즈 조합으로 조향을 했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다른 조향사도 오우드와 로즈가 만나는 향수를 창작했습니다.
베티버(vetiver), 패츌리(patchouli), 모스(moss)
우디 계열의 향수에서 진한 초록을 만나게 하는 향이 베티버, 패츌리, 모스입니다. 다년생 풀인 베티버의 향은 뿌리에서 추출합니다. 그래서인지 특유의 흙내를 만나게 되는 베티버입니다.
패츌리는 패출리 식물의 특유의 향에 나무의 느낌이 있어 우디 향수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1960년대 미국의 히피들이 즐기던 향이기도 합니다. 권위와 반항을 함께 만나게 되는 매력적인 향이지만 향신료계의 고수처럼 호불호가 갈립니다.
모스는 촉촉한 이끼, 땅에 떨어진 낙엽, 축축한 땅을 연상시키는 향으로, 오크나무에 붙어사는 지의식물인 오크모스(oakmoss) 노트로 적기도 합니다.
레더(leather), 토바코(tobacco)
가죽 자주색이 더해진 고동색을 떠오르게 하는 향들입니다. 레더의 가죽향은 드라이(마른) 우디로 불리기도 합니다. 가죽에게서 향을 추출할 수는 없지만 가죽 가방, 가죽으로 만든 소파 등 일상 속에서 가죽 향을 만나는 순간들이 있어서 향수에서도 표현하는 노트입니다. 시가에서 만나기 좋은 토바코 잎의 향, 그 향을 특징적으로 갖는 토바코 향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허브 향처럼 아로마틱 계열로 분류되지만 충분히 우디 향으로 분류되어도 좋을 향수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우디 향수 외에도 저마다의 매력이 넘치는 다른 향수가 있으니, 많은 우디 향수를 만나보길 바랍니다. 그렇게 삶에, 일상에 향기를 채우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오늘도 향기로운 하루되세요.
About Author
오하니
오하니 조향사, 한국 니치 향수 '히어로즈 오브 코리아' 창업자이자 향수책 ‘아이러브 퍼퓸’의 저자, 유튜브 ‘향수읽어주는 여자, 하니날다’를 운영합니다. 좋은 기억과 감정을 만드는 향수와 향기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