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내일이면 파리로 돌아가는 포토그래퍼는 “떠나기 전에 단체 사진을 아주 나이스하게 찍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일요일은 하루짜리 휴가가 주어진 날이었다. 일주일 만에 주어진 휴일에 ‘단체 사진’이라는 일정이 생겨버린 거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침대에서 5분만 더 뒹굴거리고 싶었다.
사진 촬영 장소는 몬델로 해변 오른쪽 끝에 위치한 부둣가였다. 방파제가 없어 파도가 부딪치면 물이 7m 높이로 솟는 곳. 산책을 하며 종종 그 부두를 봤다. 그리고 가끔 그곳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봤다. ‘저길 누가 가지?’그렇게 생각했다.
단체 사진을 찍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필요한 건 세 가지. 그림 같은 배경과 피사체 그리고 능숙한 포토그래퍼가 필요했다. 모든 것이 있었고, 부족할 건 없었다. 부두 끝에 앉아 마지막 사진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청년들이 손짓을 했다. 휙휙. 웃통을 벗고 반바지만 입은 네 다섯 명의 아이들이었다. 우리에게 부두 끝에서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뭐지? 설마 여길 뛰어내리려고?’
네다섯 명의 아이들은 바닷속으로 달려들고 싶어서 안달난 것처럼 보였다. 상체는 25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고, 왼쪽 발이 몸 앞으로 나가있었다. 패션쇼의 피날레처럼 우리는 양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전속력으로 질주해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첨벙! 첨벙! 풍덩! 풍덩! 햇살이 바스라지는 지중해의 파란 빛깔 속으로 아이들이 다이빙을 했다. 머리부터 입수하는 완벽한 동작이었다.
그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 때문이었다. 바닥에 던져진 탱탱볼처럼 통통 튀고 있었다. 바다로 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몸에 복근이 있는 아이, 뚱뚱한 아이, 옆구리살이 귀엽게 튀어나온 아이, 키가 작은 아이.
아이들은 우리에게도 다이빙해 보라고 도발(?)을 했다. 이탈리아 사람 아니랄까 봐 온갖 제스처를 곁들이며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하는데 뜻은 몰라도 “다이빙, 너두 할 수 있어”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인턴 짹이 그 소년들과 함께 바다로 풍덩.
그 아이들을 보며 신논현 교보문고에 걸려있던 문구가 생각났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나도 어렸을 때는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즐거웠던 꼬마였다. 하지만 해본 게 많아지고 호기심이 사라지고 실패도 많아지면서 두려움이 생겼다. 나는 문득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뛰는 법조차 까먹은 앉은뱅이 어른이 되었는데.
그날 오후. 에디터M, 잭, 포토그래퍼, 나는 다시 그 부두를 찾아 다이빙을 했다. 그 아이들을 뛰었던 곳보다 얕은 곳에서. 코에 바닷물이 다 들어갔다. 켈룩켈룩 기침을 해댔고, 뭍으로 나오느라 허우적댔다.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 같다. 그땐 잘하든 못하든 그냥 했는데, 이제는 이것저것 재느라 겁이 많아진 어른이 된 것 같다. 인정받고 싶으니까,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으니까. 못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아서.
그날 밤 침대에 누우니 꼬마의 제스처가 떠올랐다.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머리 위에 양손을 합장하듯 모아 다이빙하는 시늉을 했다. 겁먹지 말고 머리부터 떨어지라는 뜻인 것 같았다. 머리부터 떨어져라. 잃을 게 많아 겁쟁이 어른이 된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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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