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시골쥐의 팔레르모 모험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2019. 10. 17

안녕, 여러분. 시칠리아 섬으로 사무실을 옮겨서 한 달 살기 중인 에디터H다. 여러 번 강조해 언급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곳으로 휴가를 떠나온 게 아니라 사무실을 옮겼다. 사무실로 쓰고 있는 이층집 대문을 나서서 잰 걸음으로 3분을 걸으면 눈 앞에 하늘색 바다가 넘실거린다. 기왕 지중해 섬에서 살기로 했는데, 바다를 지척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집앞에 펼쳐진 몬델로 해변은 수영을 하라 넘실거리고, 태양은 일광욕을 하라 보채지만, 디에디트 일행은 묵묵히 노트북을 펴야 하는 박복한 팔자. 시차 적응도 필요없이 잠이 쏟아질 만큼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하다.

여름의 몬델로 해변은 해변가에 가득 펼쳐진 형형색색의 파라솔로 가득하다. 유럽인들에겐 원래 유명한 휴양지라더라.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10월이라 한 철 장사를 마친 파라솔이 걷히고 뽀얀 모래사장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날씨는 따사롭다. 이곳에 휴가를 온 사람들은 아침부터 수영을 하고, 점심이 되면 몰려나와 일광욕을 즐긴다. 오죽하면 이 동네에서 동양인인 내가 가장 하얗다고 느낄 정도일까. 

바닷가 마을에 사무실로 쓸 집을 얻은 것 까진 좋았다. 하지만 투명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가진 대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여긴 말그래도 진짜 시골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해변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관광객용 레스토랑이 전부. 발달한 한국의 밤을 밝히는 24시간 편의점 따위는 고사하고, 평범한 슈퍼 마켓도 없었다. 간신히 찾은 청과물 가게에서 과일과 물을 겨우 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는 단 한 군데 뿐. 생필품이나 음식을 사러 장이라도 한 번 보려면 멀리 여행을 떠나야 했다. 사람들이 흔히 유럽하면 떠올리는 도시를 구경하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나가야했다. 맙소사, 우리는 몬델로 촌구석에 갇히고 만 것이다. 

도착한지 일주일만에 굳게 마음을 먹고 7명 일행 모두가 팔레르모 시내로 떠나기로 했다. 카메라와 현금을 두둑히 챙겨서, 누가 봐도 관광객같은 모양새로. 담배 가게에서 버스 티켓을 사서 정류장에 섰다. 구글맵에선 곧 도착한다는 버스가 40분 동안 오지 않는데 얼마나 초조하던지. 동네 주민들도 버스가 왜 안오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결국 봉고차를 몰고 와 “빨레르모? 씨티?”를 외치는 이탈리아 아저씨의 호객행위에 넘어가 불법 택시(?)에 올라탔다. 시칠리아 현지인까지 가득가득 합승해 가족같은 분위기로 상경하게 된다. 

팔레르모는 시칠리아 섬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렇다고 해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규모 아니다. 로마, 베를린, 파리, 바르셀로나같은 곳을 떠올린다면 소박하다고 여겨질 거다. 11세기에 건설된 시칠리아 왕국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봉고차 아저씨가 가장 번화한 쇼핑 거리에 내려줬기 때문에 처음엔 우리 모두 “우와, 도시다”를 외치며 압도당했다. 마치 뉴욕에 처음 온 시골쥐들 처럼 찍찍거리면서. 일행들 대부분이 평생을 서울에서 산 도시 사람들인데 일주일 사이 우리 가슴 깊은 곳에 몬델로의 낙인이 찍힌 것 같았다. 

프라다, 구찌, 자라, H&M, 맥도날드까지! 아, 얼마만에 맡는 자본주의의 향기란 말인가. 이것들이 그리웠다. 젤라또와 아란치나 말고 햄버거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심지어 우리 동네엔 없는 아시안 레스토랑까지 없는 게 없었다.

나는 마음 먹었다. 내일부터 매일 버스를 한 시간씩 타고 도시에 나오리라. 여기가 내가 속할 곳이다. 일을 해도 여기 와서 할 것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에 올라가 시내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인증샷을 찍고. 인턴 에이미가 미리 답사하고 온 레스토랑에서 내장 버거라는 신기한 음식도 맛봤다. 분위기는 끝내줬지만 서버는 불친절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우리 앞에 내던지고 돌아가버렸다. 이것이 도시 깍쟁이인가.

처음엔 화려하고 큰 상점만 보였지만, 낡은 건물 사이로 골목 골목 헤매다보면 팔레르모의 진짜 분위기가 보인다. 전형적인 유럽의 도시는 아니다. 좀 더 투박하고, 소박하다. 일행 중 유럽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도시가 지저분하다고 말하더라.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뻔한 화려함이 아니라 더 좋았다.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이 눈에 띈다. 노오란 건물과 야자수의 조화는 기가 막히게 이국적이다. 낡은 골목 마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다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팔레르모에서 저녁까지 먹기로 하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지친 모습으로 카페에 모여든다. “도시는 너무 힘들어요. 몬델로로 돌아가요…”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 살다 번잡한 도시에 나온 사람의 기분이 이런걸까. 시칠리아 최대 도시답게 사람이 정말 많았다. 동양인만 지나가도 사람들 시선이 집중되는 몬델로와는 다르게, 시내에는 일본인이나 중국인 관광객이 서른 명씩 무리지어 다니는 풍경이 흔하더라. 평생 서울에서 살았는데 사람이 많은 길로 걷는 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계속 되는 호객 행위와 구걸 역시 피로했다. 카페에 한 시간 동안 앉아있는 동안 여섯 번의 구걸을 경험했다. 아이를 업은 엄마, 할머니,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 내 또래의 여자까지…. 우리는 결국 도시에서의 로맨틱한 식사를 포기하고 택시를 불렀다. 

낮에 우릴 태워준 봉고차 아저씨를 전화로 다시 불러 몬델로로 가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돌아올 땐 빈 차로 나와야 하니 아까보다 5유로를 더 줘야 한다고 했다. 지친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거리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노오란 길가의 조명이 점점 줄어들고,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시골로 넘어간다는 사인이었다.  익숙한 녹색 철문이 보이자 모두 마음이 놓였다. 진짜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모두 같은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다. 드라마 서울의 달 OST였던, 서울 이곳은. 아무래도 난 돌아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나는 평생 도시를 사모하며 살아왔다. 이런 한적한 동네에서의 삶은 난생 처음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놓이는 건지. 서로 어깨를 부딪칠 필요 없이 천천히 걸을 수 있는 해변가의 산책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고 말을 거는 사람들. 무료하고 답답하지만 갈등이 없는 동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풍경이었을까. 시골쥐가 되어버린 디에디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