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애플은 아이폰에 왜 이제서야 USB-C 커넥터를 넣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원했고, 또 여러 국가들이 커넥터를 통일하라고 압박하기도 했지만 애플은 라이트닝 커넥터를 오랫동안 고집해 왔습니다. 단순한 애플의 고집, 혹은 MFi로 불리는 애플의 액세서리 비즈니스 때문이라는 시선으로 많이 바라보지만 이 커넥터는 그렇게 단순히 단자의 모양만 바꾸는 일은 아닙니다. 나름의 이유들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1984년부터 달랐던 애플만의 연결 방식
<맥을 상징하는 이 매킨토시에 첫 하드디스크가 들어갈 때부터 애플의 규격 고집은 딱 하나 ‘성능’에만 집중되어 있었죠. 비싼 건 나중 문제였고요.>
돌아보면 오래 전부터 애플의 단자 결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형태와는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매킨토시 시절로 올라가 보면 당장 하드디스크의 연결 방식부터 달랐습니다. 90년대 우리가 흔히 쓰던 IBM PC에는 하드디스크가 EIDE, 혹은 ATA나 PATA 등으로 부르는 방식으로 연결됐지요. 핀 40개가 촘촘하게 꽂혀 있는 길고 넙적한 단자인데, 2000년대 중반 SATA 방식의 커넥터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꽤 오래 쓰였습니다.
<하드디스크의 근본적인 특성은 어쩔 수 없지만 SCSI는 분명히 전체적으로 더 매끄러운 컴퓨터 경험을 만들었습니다. 5MB, 20MB 하드디스크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이었던 시절이니까요.>
하지만 애플은 1984년 처음 매킨토시를 발표하고 하드디스크가 개인용 컴퓨터에 상용화되는 시점부터 스카시(SCSI)라는 방식으로 하드디스크를 연결했습니다. 아마 우리 삼촌들은 ‘아… 그거 빠르고 비싼 하드디스크!’라고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애플은 맥 초기부터, IBM의 파워PC 초반까지 하드디스크를 최신의 스카시 규격으로 연결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빠르니까요.
하드디스크는 SSD가 자리 잡기 전까지 PC 성능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이었는데, 자체적으로 읽기 속도의 문제도 있지만 온전히 성능을 내지 못하는 전송 규격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스카시는 최선의 기술이었고, 애플은 비싸더라도 이를 채택해서 성능을 높였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기술이 있다면 가격에 관계 없이 일단 쓰는 애플의 성격은 이 때부터 시작된 듯 합니다. 돌아보면 이 규격의 선택으로 맥은 ‘빠르다’는 인식이 있었고, 기기 성능 뿐 아니라 스카시 버스를 이용한 스캐너, 외장 저장 장치 등의 경험이 빨라지면서 디자인, 음악, 영상을 비롯한 전문가용 컴퓨터의 이미지를 갖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지금도 디자인으로 인정받는 파워 맥 G5인데, 앞부분의 커넥터 중에서 제일 아래가 IEEE1394, 파이어 와이어였습니다. 고속 외장 단자였지요.>
외장 커넥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애플은 PC에 USB가 막 달려나오기 시작할 때 USB 외에 IEEE1394라는 외장 단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니 USB를 내버려두고 엉뚱한 걸 찾는 게 이때부터였나?’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성능 때문이지요.
지금이야 USB는 고속 데이터 전송과 동시에 넉넉하게 전력을 보내는 좋은 연결 방법이지만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던 1997년, 1998년 즈음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단 처음 대중화된 USB 1.1은 12Mbps의 전송 속도를 냈습니다. 그러니까 1초에 최대 1.5MB 정도를 주고받을 수 있었지요.
물론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기존의 시리얼 포트, 패럴랠 포트, PS/2 포트 같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포트들을 통합, 대체하는 용도로 떠올랐습니다. 키보드, 마우스, 프린터 등의 외부 저장 장치를 연결하는 것이었지요. USB 모뎀이나 플로피 디스크를 대신하는 작은 메모리 정도가 데이터 전송의 중요도가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전력도 함께 공급되니 놀라운 기술은 맞았습니다. 그 외장 커넥터의 고집은 지금까지도 썬더볼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다른 포트가 필요했습니다. 역시 속도때문이죠. 애플의 외장 커넥터는 키보드, 마우스 정도가 아니라 스캐너, CD 리코더를 비롯해 외장 저장장치 등 기존 스카시를 대체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리고 맥에는 1초에 400Mbps를 전송할 수 있는 IEEE1394 규격이 적용됐습니다. 사실상 이 커넥터는 애플이 개발을 주도했고, 표준화되긴 했지만 실제 쓰일 때는 애플이 붙인 ‘파이어 와이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게 불렸습니다.
단적으로 와닿는 용도는 아이팟에 있었습니다. 아이팟은 기존에 수 십 메가바이트 정도의 메모리를 담던 MP3 플레이어를 대신해 4~5GB라는 엄청난 용량의 하드디스크를 품고 있었습니다.
<초기 아이팟의 30핀 단자는 바로 이 IEEE1394로 맥에 물렸습니다. 당시 USB는 하드디스크와 MP3 파일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니까요.>
1초에 1.5MB를 전송해서는 답이 안 나오죠. 그래서 애플은 초기 아이팟을 파이어와이어로 연결했습니다.
이후 USB가 2.0 규격으로 480Mbps로 전송 속도가 높아지면서, 애플도 USB 2.0을 내세우며 맥 뿐 아니라 윈도우 PC에서도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이팟 커넥터도 디자인을 더 얇게 하기 위해서 아이폰 4S까지 썼던 납작한 30핀 케이블가 들어갔습니다. 파이어와이어에 대한 고집보다 범용성과 더 나은 성능을 내는 방법이 있다면 단자를 고집할 이유는 없는 거죠.
자, 이제 라이트닝 이야기를 해볼까요? 2012년 아이폰 5와 함께 등장한 라이트닝 단자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커넥터는 앞 뒤의, 구분이 없는 첫 번째 커넥터입니다. 그동안 단자들이 갖고 있던 가장 큰 단점인 방향성에 대해 기술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겁니다.
방향성 외에도 마이크로 콘트롤러를 통해서 반대편 커넥터의 규격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디지털로 오디오나 비디오도 출력합니다. 기능의 확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0년을 내다본 커넥터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사실 지금까지도 단자로 보면 충분히 훌륭합니다.
특히 커넥터의 내구성이 뛰어납니다. 케이블과 그 연결 부위에 약점이 있긴 하지만 커넥터 만으로 제품을 세울 수도 있고, 큰 충격을 주어도 단자부가 휘거나 망가지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애플은 라이트닝 커넥터만 세워둔 독 액세서리를 팔기도 했지요.
하지만 라이트닝만이 아니라 USB도 진화를 합니다. USB도 앞 뒤 구분이 없는 C타입 커넥터를 내놓습니다. USB-C는 전송 속도와 전력 공급의 강점을 바탕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습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서 PC까지 수많은 기기들이 이 USB-C를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고 충전을 합니다. 지금은 사실상 규격의 중심이 되었지요.
사실 이 USB-C의 보급을 이끈 회사가 바로 애플이기도 합니다. 애플은 2016년 맥북 프로를 발표하면서 모든 외장 단자를 없애고 오로지 USB-C 포트만 4개를 넣었습니다. 충전도 USB-C 단자를 통해 USB-PD 방식으로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USB-A 타입 커넥터가 아예 없어서 처음 나왔을 때는 말도 안 된다는 불만도 많았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이후로 적지 않은 노트북이 USB-C로 충전을 하고, 노트북에 연결하는 액세서리도 USB-C를 쓰면서 대중화에 한발 더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딱 하나 남은 게 바로 아이폰이었습니다. 분명 새로운 양면 USB의 규격으로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이 이 라이트닝 단자였는데 뭔가 자리를 빼앗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 바로 ‘세상의 모든 기기가 USB-C로 충전하고 통신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애플은 라이트닝 단자를 고집했고, 사람들은 애플이 이 라이트닝 단자를 외부 액세서리 업체에 판매하는 MFi 비즈니스의 수익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기도 합니다.
국가들도 나서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스마트폰의 충전 단자를 통일하는 것에 대해 규제를 고민했고, 실제로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규제로 결정되기도 합니다. 애플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폰 15에 USB-C가 들어갑니다.
애플은 새 프로세서에 USB 3.0을 통한 고속 전송 컨트롤러를 넣었고, 아이폰 15 프로에 USB로 고속의 외장 SSD를 연결해 고화질 동영상을 기록할 수 있도록 기능을 열기도 했습니다. 새 전송 포트에 대한 준비와 활용 시나리오도 나온 것이지요.
그런데 왜 이제서야?
그런데 애플은 이 좋은 USB-C를 이제서야 넣어준 걸까요? 이건 제 개인적인 상상일 뿐인데, 애플은 아마도 아이폰에서 라이트닝을 비롯한 접속 단자를 아예 없애는 것을 고민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제 이 소설을 진지하게 써봅시다.
애플은 아이폰 7부터 이어폰 단자를 없앴습니다. 당시에는 온 세상이 들썩일 만큼 큰 일이었습니다. 애플은 이제 이용자들이 블루투스로 음악을 듣는다는 데이터를 갖고 있었고, 이 전통의 3.5mm 이어폰 단자를 과감하게 지웠지요. 그리고 에어팟을 내놓으면서 무선 시장을 열었습니다. 이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아이폰의 단자를 없애면서 아주 작지만 공간이 더 확보되면서 배터리를 키우고, 내부 설계를 조금 더 간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단자가 없으면 방수에도 유리하죠. 마찬가지로 홈버튼을 물리적으로 눌리는 버튼이 아니라 탭틱 엔진의 진동으로 바꾼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기구를 더 단순화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음소거 스위치인데, 이것도 없앨 거라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폰 15에서 음소거 스위치가 사라지고 여러가지 단축 기능을 넣은 버튼으로 진화시킵니다. USIM 단자를 없애는 작업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예 eSIM만 쓰는 아이폰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이폰의 내부는 점점 더 넓어지고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iPhon 12 공개 당시 처음 등장한 맥세이프]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충전 단자입니다. 이걸 없애면 아이폰의 생산과 조립은 더 쉬워지고 내구성도 높아질 겁니다. 그러면 충전은 어떻게 하냐고요? 그래서 맥세이프가 나온 거죠. 그 이전에 아이폰에는 Qi 방식 무선 충전 기능이 더해지긴 했지만 그냥 무선 충전만으로는 좀 아쉽습니다. 반면 맥세이프라고 하면 완전히 딱 고정되는 느낌이 있으니까 유선 충전의 경험을 대체하는 데 어색함이 한결 덜합니다. 이미 아이폰의 동기화와 파일 전송도 클라우드와 무선 전송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상 라이트닝 케이블의 역할은 거의 대체가 되었습니다. 당장 사라져도 기능적으로는 대안이 다 마련된 셈이지요.
하지만 남아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수리와 복원입니다. DFU 모드를 통해서 아이폰의 운영체제를 초기화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 DFU 모드는 아예 기기를 아주 로우레벨로 부팅해서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하는 데 쓰입니다. 또한 서비스 센터에서는 기기의 이용 이력을 찍고 고장을 찾아내는 데에도 쓰입니다. 사실 이걸 무선으로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것도 무선으로 하는 방법을 특허로 내기도 했습니다. 이게 기술적으로 완전히 해결이 되고 안정적으로 적용이 되면 결국 아이폰에는 모든 단자가 사라질 수 있는 완전한 방법이 열립니다. 그리고 옆면의 버튼들도 물리적으로 딸깍 눌리는 게 아니라 아이폰7의 터치 홈버튼처럼 탭틱 엔진으로 눌리는 방식으로 대체하면 아이폰의 케이스는 이제 구멍을 내고, 부품을 꽂는 과정을 줄이고 한번에 통째로 찍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만큼 가공이 빨라지고, 강도도 높아질 겁니다. 내부 공간을 온전히 기기가 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처럼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아마 애플은 라이트닝을 고집하다가 한번에 완전 무선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간에 다른 단자를 바꾸는 혼란을 겪고, 다시 단자를 없애는 것보다 한번에 목표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애플이지요.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새 아이폰에는 USB-C가 더해졌습니다. 이게 맞는 방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완전 무선은 시간도 걸리고 아직은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애플의 방향성은 곳곳에서 완전한 무선의 전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마 곧 전환이 이뤄지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애플이 단자 전환을 미루고 또 미룬 이유도 이해를 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추측이고 상상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USB-C의 도입은 반가운 일이고, 편의성과 확장성, 그리고 더 나아가 환경 측면에서도 옳은 방법일 겁니다. 완전한 무선은 조금 더 기다려 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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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